빛고을 광주의 명물 '사직골 통기타 거리'
빛고을 광주를 ‘예향’이라고 합니다. 한국화의 거장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이나 근대 서양화단의 거목 오지호(吳之湖)•강용운(姜龍雲) 화백 등이 선도한 미술의 자양분이 풍성하고, 일제시대 ‘쑥대머리’로 민족의 심금을 울린 ‘국창’ 임방울로 대표되는 국악의 고장이기도 합니다. 광주의 음식점이나 찻집, 허름한 선술집에도 그림이나 글씨 한 점 붙어 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판소리와 국악기 등을 배우는 애호가들도 어느 곳보다 많습니다. 해마다 열리는 임방울국악제 때면 아마추어 소리꾼들의 멋들어진 목청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뿐일까요? 1977년 제1회 MBC 대학가요제가 열렸습니다. 포크의 시대가 활짝 피어나려던 무렵 느닷없는 대마초 사건으로 가요계가 휘청거리던 때, 대학가요제는 대학생들의 신선한 감각과 노랫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습니다. 대상은 첫 해 ‘나 어떡해’를 시작으로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내가’ ‘꿈의 대화’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대학가요제의 1회 대상수상자인 샌드페블즈, '젊은 연인들'을 부른 서울대 트리오, 3회대상수상자인 '내가'의 김학래-임철우, 1회 MC를 맡은 이수만-맹현숙(사진 위 왼쪽부터)/조선일보DB.]
이 때 전남대 재학생 등 이 지역 젊은이들은 제1회 동상(저녁무렵•박문옥, 박태홍, 최준호), 제2회 은상(약속•김정식, 김용숙, 이해종), 제3회 은상(영랑과 강진•김종률, 정권수, 박미희) 등을 수상하며 어느 대학보다 탁월한 감수성으로 지역의 풍성한 음악적 자양분을 선보였습니다.
[제1회 대학가요제 실황을 담은 앨범]
MBC 대학가요제와 별개로 광주에서 열리는 전일방송가요제를 통해 등장한 노래가 전국을 강타한 적도 있습니다. 김만준의 ‘모모’와 하성관의 ‘빙빙빙’ 등입니다. 지역에서 출발해 서울 중심의 가요판을 뒤흔든 경우는 광주가 아니고서는 예를 찾기 힘듭니다. 1985년 광주에서 녹음된 옴니버스 음반 ‘예향의 젊은 선율’에 ‘바위섬’이라는 곡이 실렸습니다. 한 대학생이 부른 이 노래는 이듬 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포크의 고전 목록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일로 가수가 된 김원중은 지금도 광주를 베이스캠프 삼아 전국 곳곳의 무대를 오가며 ‘예향 광주’의 정서와 음악적 자양분을 실어 나르고 있습니다.
[제1회 대학가요제에서 '저녁무렵'으로 동상을 수상한 박문옥씨.]
[1985년 광주에서 만든 옴니버스 앨범에 '바위섬'을 불러 크게 히트시킨 김원중씨.]
이런 특별한 모습 뒤에는 유난히도 통기타와 70~80 시절 노래를 좋아하는 광주의 중•장년층이 있습니다. 30대에서 60~70대에 이르는 두터운 이 그룹을 우리는 ‘통기타•포크 마니아’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네요. 광주의 독특하고 풍성한 음악적 자양분과 폭넓은 마니아 층은 다른 어느 곳에도 없는 광주 만의 명소를 만들어냈습니다. 이곳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20여 년에 걸쳐 자연스레 생겨났다고 해야 옳겠습니다.
자, 이제 그곳으로 가보겠습니다.
광주 도심을 가로 지르는 광주천이 있습니다. 무등산 자락에서 발원해 영산강으로 흘러듭니다. 천 양쪽으로는 일방통행 천변도로가 있고, 북편으로는 충장로와 금남로 등 구 도심이, 남편으로는 양림동 사동 구동 양동 등 유서 깊은 동네와 사직공원, 광주공원 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도심에서 광주천을 건너 양림동 쪽으로 천을 거슬러 오르면 양림파출소가 나옵니다. 여기서 천변로를 버리고 우회전해 좁다란 오르막길을 오르면 사직공원 가는 길입니다.
[사직공원 쪽으로 오르며 바라본 통기타 거리.]
이 길 왼편은 언덕배기 동산이 이어지고, 오른 편에는 허름한 1층짜리 상가건물이 끊어질 듯 이어져 있습니다. 첫머리의 ‘돌담’부터 시작해 ‘트윈폴리오’ ‘사직골에서 다시 부르는 노래’ ‘섬으로’ ‘작은음악회’ ‘꿈의 대화’ ‘딕패밀리’ ‘올댄뉴’ 등 그럴 듯한 이름의 고만고만한 카페•맥주집 10여 곳이 반경 50m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겉보기에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이곳이 바로 광주가 가진 보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름하여 ‘사동(사직공원•사직골) 통기타 거리’.
[통기타카페 트윈폴리오 외부]
[통기타 카페 '작은음악회' 외부]
저녁 무렵이면 이 거리엔 하나 둘 불이 켜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집마다에서 노래소리가 울려나옵니다. 트윈폴리오의 ‘웨딩케익’에서부터 서유석 이장희 김추자 박인희 양희은 이정선 김민기 어니언스 김정호 정태춘 김광석 안치환으로 흐르다가 때로는 목포의 눈물, 봄날은 간다 등 흘러간 트로트로, 때로는 1950~1970년대 고전적인 팝으로 장르와 시대를 건너뛰는 레퍼토리로 끝간 데 없이 이어집니다. 반주는 거의 통기타 하나일 뿐이고, 노래는 대부분 합창입니다. 가수가 따로 있는 것도, 무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수’인 집 주인이 선창을 하지만 이내 손님들이 추임새를 넣거나 노래를 따라 하면서 가게 전체를 무대로 한 ‘집단 퍼포먼스’로 변하기 일쑤지요. 손님 중에 노래나 연주로 ‘일가’를 이룬 이들은 아예 주인의 통기타를 ‘빼앗아’ 즉석 라이브 공연을 감행하기도 합니다.
[통기타 카페 '섬으로' 내부]
[통기타 카페 '사직골에서 부르는 노래' 내부]
서울 ‘미사리’의 라이브 카페와 질적으로 다른 점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음식이나 음료를 먹고 마시며 ‘조용히 가수의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가수와 청중의 구분이 무의미한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그래서 단순한 청중을 넘어 거의 ‘프로’에 버금가는 음악 마니아들이 대부분입니다. 이곳에서 1980년대 김원중의 ‘바위섬’이 태어나 히트곡이 됐고, 제1회 대학가요제 출신 작곡가 겸 가수 박문옥 씨도 한 때 이곳을 지켰습니다. 지역 가수로 활동하는 이장순•정용주•주권기•임인식•박상선•김태진•조찬우•박윤석 씨 등도 이곳에서 노래했거나, 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즐겨 부르던 고래사냥이나 웨딩케익, 아침이슬이 생각나는 분, 엘비스 프레슬리나 비틀즈, 엘튼 존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슬며시 광주천 다리를 건너 사직골로 오르면 됩니다. 맥주 한잔 시켜 놓고 주인이나 손님의 통기타 반주에 맞춰 흥얼거리면 그걸로 족합니다. 손님 중 누군가 한 턱을 내고 싶은 이가 그런 의사표시로, 가게 안 어딘가에 매달린 징(골든벨이라고도 부른다)이라도 울리는 날이면 분위기는 한껏 달아오릅니다. 손님들 모두가 중창단, 또는 합창단이 되어 주거니 받거니 노래로 마음을 나눕니다.
[통기타 카페 '섬으로' 외부]
[통기타 카페 '돌담' 내부]
이곳에 통기타가 있는 술집이 생겨난 내력은 1980년 대 초로 거슬러 오릅니다. 정화봉(87) 할머니가 저렴하게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크라운광장’(지금의 사직골~ 자리)을 열자 대학생들이 몰려들었죠. 700㏄ 짜리 맥주 한 병에 1500원쯤 받았다고 초창기 멤버들은 기억합니다. 주인 할머니는 카운터에만 앉아 있고, 손님들이 가게 뒷마당에 쌓아둔 맥주 박스에서 술을 꺼내다 마셨다고 합니다. 커다란 봉지에 든 오징어포와 땅콩 등 안주도 직접 퍼다 먹었는데, 이건 공짜였답니다. 그러므로 계산은 탁자 위에 모아진 빈 맥주병을 헤아리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크라운광장에는 통기타를 여러 대 놓아뒀습니다. 학생들은 술을 마시다 흥이 나면 통기타를 잡아들었고, 솜씨 좋은 학생들의 기타와 노랫소리가 좋아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그러자 그 옆으로 하나 둘 비슷한 가게가 문을 열었습니다. ‘타는 목마름으로’와 ‘언덕위의 집’ 등이죠. 정 할머니는 1990년대 초 건강 상의 이유 등으로 가게를 그만두고 현재는 서울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1990년대 중반 무렵 30~40대 젊은이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음악모임 ‘별밤’에서 활동한 임인식(55) 씨가 크라운광장을 리모델링, ‘사직골’이라는 맥주집을 냈습니다. 얼마 뒤 사직골은 ‘소리모아’ 출신 박문옥(52) 씨가 맡아 운영했고, 현재는 박상선(31) 씨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가수 정용주(51) 씨도 한 때 이곳을 운영하며 노래했다고 합니다. 전남대 합창반 출신 고희석(47)•김태진(46)•장광산(46) 씨는 사직골 아래 쪽에 트윈폴리오를 운영했고, 현재는 김씨가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조선대 합창반 출신 박윤석(40) 씨는 ‘꿈의 대화’를 열어 통기타를 치며 노래합니다. 가수 김원중 씨는 광주에 머무는 동안이면 거의 매일 이 거리 어느 집인가를 찾아 음악 후배들을 격려하고 객석에서 열정적인 즉흥 무대를 열기도 합니다.
[통기타거리의 탯자리 '사직골에서 부르는 노래']
[통기타 카페 '꿈의대화']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통기타 가수들은 지난 해 가을 한자리에 모여 ‘사직골 포크음악제’를 열었습니다. 옛 KBS 자리에 들어선 영상예술센터에서 이틀 간 주권기•양승필•조동현•이장순•소리섬사람들(이윤호•강형원•안정민), 신민성 씨 등이 창작곡과 다양한 포크음악을 들려줬죠. 앞으로 이 음악제는 이곳을 찾는 고객들까지 함께 참여하는 축제로 발전해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에 이런 공간, 이런 거리가 있다는 것은 퍽이나 다행스런 일입니다. 음악•미술 등 순수 예술이나 공연, 게임•영화 등 문화콘텐츠 등 못지 않게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리는 대중음악도 당연히 문화중심도시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하고, 또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라도 문화중심도시 추진 주체와 광주시 등이 광주의 명물 ‘통기타 거리’에 주목하고, 이 거리를 지키고 사랑하는 이들의 노력을 측면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 많은 지역 음악인들의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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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런 곳의 분위기는 어떨까요?옛날 느꼈던 감정이 생각이 나질 않는군요.그저 좋았다는 생각밖엔....
그리운 그노래, 그리운 그거리, 그리운 그얼굴, 그리운 그시절...... :)
광주 전투병과학교에서 6개월 정도 교육받았는데 그 때 광주 음식이 푸짐하고 맛있었습니다.
그 상에 가운데 동동주 한 사발 올리고 먹으면 그렇게 좋았는데 그리운 시절..그게 벌써 20년 전입니다.
20년 후 난 또 다시 무엇을 하고 있을까...뭘 그리 심각하노? 먹고 마시자 인생 한순간이다. 닐니리야 닐니리야 니나노히~
시대환경이야 어찌 되었던 운치있던 젊은 시간이였습니다.
그래도 어린 나이에 사는 멋을 알았습니다.
나이를 먹으며 더 사는 멋을 못찿는 것 같아요.
이제 기타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순수한 의미의 멋을 못찿는다는 뜻이였습니다.
나이를 먹으며 오늘보다는 내일에 더 메달려 사는 것 같죠?
그때는 막걸리 동동주가 좋앗고 ~지금은 기타로 가라오케로 또 동시대를 사는 울님들이 있어 더 좋습니다 아~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