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법가 (請法歌)]
[1절]
덕 높으신 스승님 사좌좌에 오르사
사자후를 합소서 감로법을 주소서
옛인연을 잊도록 새 인연을 맺도록
대자비를 베푸사 법을 설하옵소서
[2절]
덕 높으신 법사님 대법좌에 오르사
법을 설하옵소서 맘을 씻어 주소서
모두 발심하여서 같이 성불하도록
대원력을 펴시사 길을 인도하소서
[3절]
법 높으신 스승님 큰법좌에 오르사
법을 설하옵소서 맘을 씻어 주소서
묵은 업장 멸하고 참진아를 찾도록
대자비를 베푸사 법을 설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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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식 청법게(請法偈)
차경심심의(此經甚深意) 이 경의 깊고 깊은 뜻을
대중심갈앙(大衆心渴仰) 대중들은 목마르게 갈구합니다.
유원대법사(唯願大法師) 오직 원컨대 대법사님께서는
광위중생설(廣爲衆生說) 중생들을 위해 널리 법을 설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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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법가 가사에 대해..
춘원 이광수 선생께서 작사하신
이 우리말 청법가의 1절 가사중에서 세째줄의 노래가사
"옛인연을 잊도록 새 인연을 맺도록"은 우리가 흔히
"옛인연을 이어서 새 인연을 맺도록"이라고 부르며 지금
이 노래도 "옛인연을 이어서 새 인연을 맺도록"으로 부르고 있으나,
원래는 "이어서"가 아닌 "잊도록"이 정확한 가사입니다.
-- 보현 이종린 선생님 이야기
이광수선생의 본래 청법가는 옛인연을 '잇는것'이 아니라 '잊는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아마 80년대부터?) 슬며시 그렇게 변하더군요
좋은 인연이든 나쁜 인연이듯, 인연은 허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언제나 [새인연]이지,
좋은 인연은 잇고, 나쁜 인연은 버리는, 그런 것이 아니지요.
그런 마음이 바로, 불교에서 그토록 경계하는, [분별하는 마음]이지요.
과거에 좋은 인연이든 나쁜 인연이든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
부처님 밝은 가르침에서는, 언제나 [새인연]이며 언제나 [좋은 인연]입니다.
[바로 이 날이 좋은 날]이라는 선가의 말씀도, 이를 이르시는 것이겠지요.
좋고 나쁜 것은 모두 한 생각! 우리 불자들은 언제나, 밝은 날을 맞이할 뿐입니다.
-- 총무원장 지관 스님 이야기 (병술년 신년법회에서)
(上略)
이 기회에 ‘청법가’에 대해 꼭 한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청법가 가사는 춘원 이광수가 지었는데 지금 그 뜻이 잘못 전해지고 있습니다.
문제 부분은 “옛 인연을 이어서 새 인연을 맺도록”입니다.
언뜻 보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옛 인연을 잊도록 새 인연을 맺도록”입니다.
언뜻 보면 이게 더 부자연스러워 보일 겁니다.
그러나 후자가 맞습니다.
굳이 옛 인연을 잊고 새 인연을 맺어야 한다고 한 데 바로 춘원 이광수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옛 인연을 잊도록’이라 하니 옛 친구와 선생님,
어린 추억을 잊으라는 말로 아는데 그러 것이 아닙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탐진치의 삼독과 그로 인해 이뤄진 나쁜 업,
즉 악연들은 이제 잊고 ‘새 인연’을 맺으라는 말입니다.
새 인연은 삼독을 끊은 자리, 또는 선업과 선연 등을 말합니다.
대혜 종고 스님은“설은 것은 익게 하고, 성한 것은 설게 하라”했습니다.
여기서 ‘성한 것’은 악연과 맥을 같이 합니다.
술 마시고 놀음 하는 것은 대부분 좋아합니다.
그런 것은 강의 안 들어도 어깨너머로 금방 배웁니다.
왜 인줄 아십니까?
전생부터 이미 많이 해 본 것 즉 익숙해져 있던 것이라 그렇습니다.
그런 것은 설게, 즉 버리라는 말입니다.
반대로 ‘설 한 것’은 선연을 말합니다.
공부나 봉사 등 육바라밀 실천은 잘 안 됩니다.
이것은 법문을 들어도 잘 안 됩니다.
전생부터 해오지 않아 익숙치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것은 익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오늘 이 순간 지난 일을 성찰해 악업에 따른 ‘옛 인연’은 모두 잊으세요.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 인연’을 맺기 바랍니다.
(下略)
첫댓글 그렇군요. 저도 이부분이 좀 미심적다 했더니 역시나, 고~맙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