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95. 재현과 재연
①"어이, 친구. 우리도 영화 친구의 한 장면을 재현하면서 옛 추억을 떠올리는 게 어때?"
②"요즘 사극 전성시대 아닌가. 내용도 재미있지만
옛 도성 풍경이나 복식을 그대로 재연한 게 볼 만하더군"
재현과 재연. 발음도 비슷하고 의미도 유사해 헷갈리는 말 중 하나다.
실제로 재현과 재연은 같은 상황에서 같이 쓰일 수 있는 말이라 더욱 그렇다.
일단 재연은 `연극이나 영화 따위를 다시 상연함'의 의미를 갖는다.
`그 영화는 상영이 금지된 지 삼 년 만에 재연됐다'
`그는 작년에 했던 그 연극을 재연하려고 혼자 동분서주했다' 등이 그 예다.
이 경우, 즉 영화나 연극 등을 다시 `상연' `공연'하는 조건을 갖출 때에는 `재현'을 쓸 수 없고
`재연'을 써야 맞다.
재연은 또 `한 번 했던 행위나 일을 다시 되풀이함'을 의미한다.
`현장 검증에 나선 범인이 태연하게 범행을 재연했다'가 그 예다.
한 번 했던 일을 다시 되풀이하는 그 `행위'가 초점이므로 역시 `재연'을 써야 맞다.
따라서 예문 ①의 `영화의 한 장면을 재현하다'에서 `재현'은 `재연'으로 쓰는 게 맞다.
반면 `재현'은 `다시 나타남, 다시 나타냄'이라는 다소 모호한 의미를 갖는다.
결국 예문을 통해서 그 쓰임을 파악할 수밖에 없다.
재현은 대체로 `옛 풍경이나 모습을 다시 나타냄'의 의미로 쓰인다.
70, 80년대 학교의 모습이나 고려, 조선시대의 가옥, 복식 등을 현재에 다시 드러내 보일 때
`재현'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이 때는 재연이 아니라 재현만을 쓴다.
따라서 위 예문 ②에서 재연은 재현으로 고쳐야 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재현과 재연은 혼용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상황일지라도 행위에 초점을 맞추면 `재연'을,
모습과 상황에 초점을 맞추면 `재현'으로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6·25 같은 참사가 재현/재연되지 말아야 한다'를 보자.
이 경우 같은 민족이 서로 죽고 죽이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면 재연을,
건물이 부서지고 사람이 죽어 가는 모습과 상황에 초점을 둔다면 재현을 쓸 수 있다.
또 `성균관은 성년의 날을 맞아 옛 성년식을 재연/재현했다'에서도
성년을 맞은 두 젊은이가 절차에 따라 의식을 행하는 행위에 무게를 두면 `재연'을,
그들의 옷차림이나 상차림 등 모습과 전체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면 `재현'을 쓸 수 있다.
조성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