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정리기업에 대하여 유의해야 할 사항 (1)
박주일 / 한빛은행 여신업무부 과장
최근 수년간 지속된 경기침체의 여파로 기업들의 부도가 속출하고 있으 며, 그 중에는 규모가 큰 상장기업들도 포함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들 회사 중 상당수가 회사정리를 신청하여 최근에는 회사정리사건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이다.
더욱이 최근 2~3년간의 회사정리 사례 중에는 상장회사가 많이 들어 있 는데, 상장회사의 경우 기업규모가 크다보니 채권자, 주주 등 이해관계인 의 규모 역시 크므로 정리사건에 대한 피해가 집단화되고, 관련기업에 대 한 경제적 파장이 매우 큰 바, 이로 인해 사회적·국가적 문제로까지 발 전되고 있는 현실이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1997년도 초에 발생했던 한보사태나 기아사태가 결 국은 국가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폐해를 생각한다면 회사정리의 경우를 가급적 억제해야 할 것이며 부득이 회사정리절차를 채택할 때에는 채권자와 소액주주의 피해 를 최소화하고 회사의 경영진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추궁과 불이익의 부 여를 통해 차선적인 차원에서라도 형평을 기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5년 6개월간 법정관리 업무를 담당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고 경 험하였다.
본고에서는 필자의 법정관리 업무경험에서 터득된 제반 실무지식과 은 행 실무자로서 법정관리에 임할 때의 유의사항 등에 중점을 두었다. 특히 금융기관이 회사정리절차에 동의를 한 후, 법원으로부터 개시 결 정이 내려지면 향후 어떻게 정리회사를 지도해 나갈 것인가, 그리고 정리 절차 개시 이후에 금융기관에 종사하는 실무자로서 유의할 점은 무엇인가 에 초점을 두고 기술하고자 한다.
■ 회사정리제도의 의의
기업으로서, 특히 주식회사는 그 사업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 특히 재정 적 궁핍으로 파탄에 직면하게 된 경우 어떤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 기업은 파탄 또는 해체되고, 채권자는 파산절차에 따라 일부 채권추심 만 하게 되거나 아예 채권추심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주식회사를 해체할 경우 채권자나 주주, 종업원에게 반드시 유리한 것 도 아닌 반면, 사회적·국가적으로 경제적 손실 또한 매우 크게 된다. 회사정리제도는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법원의 감독 아래 채권자나 주주 등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기업을 갱생시키고자 마련된 제도이다. 회사정리법 제1조에도 “본법은 재정적 궁핍으로 파탄에 직면하였으나 갱생의 가망이 있는 주식회사에 관하여 채권자, 주주 기타의 이해관계인 의 이해를 조정하며 그 사업의 정리재건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정리라는 것이 파탄에 직면한 회사의 갱생을 위해 다수 이 해관계인의 경제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인 만큼 그 자체가 형평성의 문제 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의 회사정리사례를 보면 회사의 위기적 상황이 계속 숨겨지다가 결국 어음이 부도처리되는 등 회사의 재정파탄이 결정적으로 표출된 후에야 회사정리신청을 하는 것이 통례이고 보면 이해 관계인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손실을 가져다 주는 것도 하나의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1).
회사정리절차를 통상 법정관리(法定管理)라고 부르는데, 이는 실정법상 의 용어가 아니라 실무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에 불과하다. 은행 임직원이 기업에 파견되어 자금의 운용 및 경영에 직접 참가하는 것을 ‘은행관리(銀行管理)’ 또는 ‘임의관리(任意管理)’라고 하는데, 회사정리는 법원이 임명한 법정관리인의 경영하에 법원의 지휘·감독을 받게 되므로 ‘임의관리’와 반대되는 ‘법정관리’라는 용어를 실무상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실정법상의 ‘회사정리(會社整理)’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 회사정리법의 연혁
우리 나라의 회사정리법은 1962년에 제정된 이래(법률 제1214호, 19 62. 12. 12. 제정.) 1981년과 1984년 두 차례에 걸쳐 극히 일부분의 조문이 수 정되었다가 1998년 2월 24일 법률 제5517호로 대폭 개정,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회사정리법은 1952년에 제정된 일본의 회사갱생법을 거 의 번역하다시피 본받았으며, 일본의 회사갱생법 역시 미국의 연방파산법 (Federal Bankruptcy Act of 1938, 일명 Chandler Act) 제10장 회사재편 제도(Corporate Reorganization)를 계수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 나라와 일본의 회사정리제도는 미국의 회사정리제도에 유 래한다고 할 수 있다2).
특히 1998년 2월의 도산관련 3법(倒産關聯 3法)이 동시에 개정되었는 바, 이 때 개정된 회사정리법의 내용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개혁적이라 할 수 있다. 즉 회사정리기간을 최장 20년에서 10년으로 단축한 것이나, 개시 결정 의 판단기준을 ‘갱생 가능성’이란 과거의 모호한 기준에서 ‘경제적 가 치’란 다소 현실적인 개념으로 변경한 것이나, 사건이 많은 법원에 ‘관 리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서울지방법원 민사합의 50부에 이 를 설치한 것 등이다3).
■ 각국의 회사정리제도
● 미국
미국에서의 회사정리제도는 1800년대 서부개척시대에 당시 공익성이 매 우 높았던 철도회사의 재건을 위해 생겨났다. 당시 미국에서 서부의 개척 은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되었는 바, 여기서 철도의 개설은 필요불가결 한 수단이었다. 철도의 부설과 노선의 확장을 위해 거액의 자금이 소요되 었으며, 당시 철도사업은 투기적 성격이 강하여 영업수익이 현실화되지 못해 만성적인 적자에 빠져 있었다.
이로 인해 담보설정된 개인의 재산이 매각되거나 일시적으로 부채상환 을 연기하는 등 비정상적인 재무관리가 빈번하였으며, 국가적 대사업이었 던 서부지역에 대한 신토지개척도 실패의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의 해결방안으로서 초기에는 형평법상의 수익관리(衡平法上의 收益管理 ; Equity Recever-ship)가 이용되었다. 이 방법에 의해 새 로운 회사를 설립하고 그 회사의 재산을 양도함으로써 철도회사를 재건하 는 방식이 고안되었다.
이와 같이 당초 미국의 회사정리는 철도회사라고하는 공익성을 띤 사기 업에 한해서만 인정되었다4). 또한 1800년대부터 1900년대 초까지 철도회사 외에는 복잡한 자본구조 를 가진 대기업이 적었던 탓에 통일적인 기업구제에 대한 필요성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20년대 말부터 발생한 미국의 대공황으로 인해 많은 민간기업의 도산이 속출하자 드디어 정치적·경제적 고려에서 회사정리제도를 성문화하기에 이르렀다.
1934년 파산법의 B절차를 기초로 하여 1938년에 찬드라법(Chapter 10 : Corporate Reorganization)에 의해 체계화되고, 다시 1978년에 연방파산법 개정(Bankruptcy Reform Act of 1978, Chapter 11 : Reorgan-ization)을 하였다. 1978년의 연방파산법 개정은 1938년의 찬드라법을 전면적으로 개 편한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특색을 가지고 있다. 1938년의 법은 회사만을 재편(再編 ; Reorgan-ization)의 대상으로 한 것임에 대하여, 1978년의 법 은 회사 및 개인사업 모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Business Reorganization).
1978년의 개정(改定)파산법은 1938년의 찬드라법이 규정하고 있던 제10 장(회사정리), 제11장(채무정리), 제12장(부동산화의)을 통합하여 동일한 절차 내에서 채무자의 양상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하였다. 이와 같이 미국의 회사정리제도는 1800년대의 형평법상의 수익관리, 1938년의 찬드라법, 1978년의 개정파산법을 통하여 회사정리의 목적에 합 목적적(合目的的)으로 대응하려고 하고 있다. 특히 1978년의 개정파산법은 이해관계인에 대하여 각각의 이해를 회사의 유지·갱생을 통하여 실현한 다고 하는 회사정리의 이념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 일본
일본에서는 회사갱생법(會社更生法)이 제정되기 이전에는 곤경에 처한 기업의 재건을 위한 법적수단으로서 상법상의 정리, 화의법상의 강제화의 제도(强制和議制度)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 제도는 그 목적이나 수단에 있 어서 한정적이거나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포괄적이고도 강력한 기업갱생의 수단으로서는 부적합한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기업의 부흥을 위한 방법의 하나로 미국 점령군의 강력한 권유로 미국의 연방파산법(Federal Bankruptcy Act of 1938, 일명 Chandler Act) 제10장 회사재편제도(Corporate Re-organization)를 본받아 1952년(소화(昭和) 27년) 회사갱생법을 제정하 였다.
당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망직후 연합군사령부의 점령하에 있었 고, 그 점령정책의 일환으로 회사갱생법이 제정되었는 바, 여기에는 미국 의 회사재편제도를 모범으로 하면서도, 독일법적 성격이 강한 일본 파산 법상의 법기술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아울러 일본 주식회사법의 제(諸)규 정과도 조화시켜 만든 특이한 제도로 평가되고 있다5). 회사갱생법은 미국의 연방파산법 제10장과는 달리 그 적용대상을 모든 종류의 회사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오직 주식회사에 한정하였는 바, 이는 회사정리절차의 복잡성에 비추어 볼 때, 이 절차는 대규모 사업의 경영에 적합한 물적회사(物的會社)의 전형인 주식회사에 있어서만 소기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하는 판단에 기인한 것이다.
이 회사갱생법에 의한 회사정리제도는 기존의 상법상의 정리, 특별청산 등의 타 절차와 비교하여 정리원인도 확대되고 절차도 복잡할 뿐만 아니 라, 이론적으로나 실무적으로 많은 문제점이 도출되었기에 1967년에 회사 갱생법 개정을 통해 해결하였다.
■ 회사정리제도와 유사제도의 비교
● 파산법상 ‘파산’과의 차이
파산법(1962년 1월 제정, 1991년 12월 개정, 1998년 2월 개정.)상의 파산 (Bankruptcy)제도는 채무자에게 지급불능 또는 채무초과 등이 생긴 경우 에 채권자 또는 채무자의 신청에 기하여 전(全) 채권자에게 만족을 주기 위하여 채무자의 전(全) 재산에 대하여 행해지는 포괄적인 강제집행 절차 를 말한다6).
파산법의 역사는 상인파산주의(商人破産主義 ; 프랑스법계)에서 일반파 산주의(一般破産主義 ; 독일법계)로, 징계주의(懲戒主義)에서 비징계주의 (非懲戒主義)로, 청산주의(淸算主義)에서 재건주의(再建主義)로 점점 바뀌 면서 발전하여 왔다. 우리 파산법은 상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 대하여도 이 절차의 적용을 인정하는 일반파산주의를 취하고 있다.
또한 징계주의에 대신하여 면책주의를 도입하여 개인파산자의 재기가 가능하도록 면책규정(파산법 제339조~357조)을 두고 있으나, 이는 자연인 에 한하여 인정되고, 법인의 경우에는 파산이 곧 회사의 해산원인이 되고 있어(상법 제17조 1항) 재기·갱생의 여지가 인정되지 않고 있다. 즉 법인에 있어서 파산절차는 기업을 완전히 해체하여 소멸시킨다는 점 에서 회사의 갱생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정리제도와는 정반대의 제도이다.
1998년 2월 24일 도산 3법의 개정 당시, 파산법도 일부 개정되었는 바, 관할법원을 다른 도산관련 사건의 경우와 동일하게 지방법원 본원합의부 로 하고(파산법 99조 개정), 손해 또는 지연을 피하기 위한 이송제도(移送制度)를 인정하고(파산법 98조의 2 신설), 관리위원회제도를 도입하였다 (파산법 101조의 2 신설).
● 화의법상 ‘화의’와의 차이
화의(和議)란 채무자에게 파산원인이 생겨 파산선고를 받게 될 상태에 빠진 경우에, 법원 기타 공공기관의 보조·감독하에 채무자는 파산선고를 면하고, 동시에 채권자도 파산절차에 비하여 유리한 변제를 받을 목적으 로 체결하는 일종의 합의 내지 계약을 말한다. 화의제도는 최근에 새로이 도입된 제도가 아니라 오래 전에 일본이 제 정한 조선민사령에 의해 의용(依用)되어 오다가 1962년 1월 20일 법률 제 997호로 제정된 후 81년과 84년 두 차례의 개정에 이어 1998년 2월 24일 대폭 개정되었다.
그러나 화의는 그 동안 활용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지난 1997년 6월 13 일 상장회사로서는 처음으로 (주)동신에 대하여 법원이 화의개시 결정을 함에 따라 세간(世間)에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킨 이후, 상장회사로서 한주통산(주)와 진로그룹계열의 6개사가 화의개시 결정을 받음으로써 법 정관리제도보다 오히려 더 선호하게 되는 풍조마저 나타나고 있다7). 화의법상의 화의는 채무자의 신청에 기하여 화의절차개시 결정이 있으 면 개별적 집행이 금지되고, 채권자집회기일에 결의에 의해서 지급의 유 예 또는 채무의 일부 면제 등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일단 회사정리제도와 유사하다. 그러나 화의는 파산의 방지가 주목적(主目的)인데 반하여 회사 정리절차는 기업의 재건·갱생이 주목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화의의 조건에는 원금상환시기, 지급이자율 등 채무변제방법을 정하여 채권자와 협의하여야 한다. 법원이 회사보전처분 후 화의개시 결정을 내 리면 회사는 화의조건을 만들어 채권자들에게 제시하여야 하고, 관계인 집회기일에서 채권자의 3/4 이상이 이에 찬성하면 화의는 가결되고 법원 이 인가 결정을 내리게 된다. 화의인가 결정이 확정되면 법원에서 독립하 여 경영활동을 할 수 있다.
화의제도는 법원에 의해 기업의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점에서는 회사정 리제도와 유사하지만, 개시 원인에 있어서 화의는 파산의 원인사실이 있 는 경우에, 또는 있을 우려가 있는 경우에 인정되고8), 일단 파산선고가 있은 후에는 화의신청을 할 수 없음에 반하여, 회사정리절차는 그 개시 원인이 포괄적으로 인정될 뿐 만 아니라, 회사해산 후 또는 파산선고 후 에도 정리절차를 개시할 수가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회사정리법 제30 조~31조). 신청권자에 있어서도 화의는 채무자(자연인 또는 법인) 본인만이 신청 가능한 데 반하여, 회사정리제 고 있으며, 아울러 기존 경영자의 경영권 유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 ‘은행관리’와의 차이
회사경영이 침체에 빠졌을 때 주거래 은행이 적자융자를 하면서 회사와 의 약정에 기하여 은행의 채권확보 및 기업구제를 더욱 확실히 하고자 은 행의 임직원을 직접 회사에 파견하여 경영의 일부 또는 전부를 인수하여 스스로 회사를 경영하는 형태를 은행관리(Bank Management)라고 한다 9).
은행관리는 회사와의 약정에 기하여 주거래 은행의 파견직원이 회사를 경영·관리하는 것이므로 이를 ‘임의관리’라 하고, 회사정리절차는 당 사자간의 합의 없이 법원이 일방적으로 법정선임한 관리인에 의하여 경 영·관리되는 것이어서 세칭 ‘법정관리’라 한다는 것은 이미 서두에서 전술하였다.
그러나 ‘임의관리’ 또는 ‘법정관리’ 등의 용어는 실정법상(實定法上)의 용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은행 실무자들 또는 기업의 실무자들이 관행상 사용하는 용어에 불과한 것이다. 주거래 은행이 직원을 파견할 때에는 은행감독원의 승인을 받아 파견하 게 된다. 은행관리에는 ‘직원상주 파견관리’와 ‘전면관리’로 나눌 수 있다. 채권은행이 기업에 직원을 상주파견하여 자금 및 담보 등의 부분적 관리 를 맡는 형식을 ‘직원상주 파견관리’라 하고, 채권은행이 기업의 경영 전반을 인수하여 직접 관리하는 형식을 ‘전면관리’라 한다10).
은행관리의 대부분이 ‘직원상주 파견관리’ 형태이며, 사안이 가벼울 때에는 직원을 상주시키지 않고 중간보고만 받기도 하지만, 직원이 상주 할 경우에는 모든 자금의 입금·지출이 원칙적으로 은행 직원의 사전 결 재를 거치게 된다. 참고로 주거래 은행이 회사정리절차에서 정리법원에 의해 정리회사의 관리인으로 선임되고, 이 위치에서 은행의 임직원을 회사에 파견시켜 회 사를 경영하게 하는 것은 외견상 은행관리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회사정리절차상의 관리인 것이다. 이들 임직원은 관리인의 대 리인 또는 그 이행보조자(履行補助者)이거나 이행대용자(履行代用者)에 해당되고 따라서 은행은 이들의 선임·감독에 과실이 없더라도 이들의 행 위로 인해 정리회사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대판 74. 6. 25. 73다692호).
● ‘워크아웃’과의 차이
최근 우리 나라는 금융감독위원회의 지휘 아래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부실기업에 대한 기업가치 개선작업(Workout)이 사회의 많은 관심을 끌 고 있다. 정부가 지난 1998년 7월초, 경제구조개혁을 신속하게 추진하면서 하반기 경제운용의 틀을 기존의 퇴출위주의 구조조정 방향에서 기업가치 개선작업인 워크아웃 위주로 전환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이 ‘워크아웃(Workout)’이란 단어는 도입 당시 ‘기업구조조정’ ‘기업가치 회생작업’ 또는 ‘기업가치 개선작업’ 등으로 불리다가 현 재는 ‘기업개선작업’이란 용어로 통일되어 사용되고 있다. 1998년 6월 25일 금융감독위원회가 제정한 협약인 ‘기업구조조정 촉진 을 위한 금융기관 협약’ 제2조에 의하면 “워크아웃이라 함은 대출채권 의 출자전환, 단기대출의 중장기 전환, 대출원리금의 상환유예, 이자감면, 채무면제 등 채무구조조정, 신규자금 지원, 상호지보 해소, 감자, 주력사업 설정, 외자유치 등을 통해 당해기업의 재무구조를 건실화시키기 위한 절 차를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현재 각 금융기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워크아웃은 우선 대상기업의 중장 기 흐름을 종합분석해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채에 대하여 다양한 방 식으로 조정을 하게 된다. 즉 기업부채 탕감과 대출금의 출자전환, 원리금 상환조건(기간, 금리)의 조정, 신규대출 등의 조치를 취하는 등 대상기업 의 채무부담 완화를 위한 여러 조치를 취한다. 또한 대상기업의 감자(減資), 자산매각, 주력사업의 정비, 영업전략 전환, 기업집단 내의 한계계열 사 정리 및 상호채무보증 해소, 대내투자자의 신규 투자자금 유입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11).
워크아웃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 회사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 다. 악성부채의 규모를 최우선으로 줄이고 사업부문이나 영업과 관련이 없는 보유부동산과 보유주식의 매각 등으로 기업가치를 높여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 등의 부담으로 매각의 효과가 반감되는 경우 가 많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지난 1997년 12월 및 1998년 2월의 세제개편 (稅制改編) 시 조세감면규제법, 법인세법을 대폭 개정하여 워크아웃을 지 원한 바 있다12).
영국과 미국에서도 경제가 어려웠던 지난 1980년대에 부실기업을 대상 으로 적지 않은 워크아웃이 행해진 바가 있다. 영국의 경우, 중앙은행인 영란은행(英蘭銀行)의 주도하에 이루어졌으며 일명 ‘런던식 접근법(London Ap-proach)’으로 불린다. 영란은행은 70 년대와 80년대 초 은행들에게 떠 맡겨진 부실기업 처리에 깊숙히 개입했 다. 영란은행은 부실기업에 대해 재무구조 개선안을 제시하는가 하면, 채 권은행들에게는 워크아웃의 장점을 내세워 설득에 나서기도 하였다. 그러 나 90년대 중반에 들어와서는 이 워크아웃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채권단 에서 워크아웃의 방안에 대하여 이견(異見)의 조정을 요청할 경우에만 도 움을 주는 방향으로 그 역할에 변화가 왔다13).
이에 비해 미국은 파산법원을 중재자로 삼는 파산제도가 발달되어 왔 다. 영국의 경우 파산법에 의한 법정관리는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이지만, 미국에서는 부실기업의 회생을 위해 파산법 11조상의 보호규정이 자주 이 용되고 있다. 미국의 채무기업들도 파산보호 단계에서는 채무가 동결되고 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을 이용해 경영정상화를 모색할 시 간을 벌 수 있었다14).
미국에 있어서의 워크아웃은 기업이 전 재산을 통합해도 회사의 모든 채무를 변제할 수 없을 때, 법원의 관여 없이 채권은행과 사적(私的)으로 회합을 가져 지급의 유예 또는 채무의 일부면제를 받아 회사의 갱생을 도 모하는 제도로서 이는 재건형 임의정리(再建形 任意整理)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이 워크아웃은 정리절차(Chapter 11) 신청 이전에 채무자와 채 권자가 합의에 기하여 임의적으로 설치하는 채권자위원회(연방파산법에 기하여 필요적으로 설치되는 공식적인 채권자위원회와는 달리, 이는 비공 식적인 위원회이다.)를 기초로 하여 추진되는 임의적 기업재건절차(任意的 企業再建節次)를 말한다15).
워크아웃으로 크게 성공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가 바로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사이다. 12년 연속 매출증가와 18년 연속 이익증가 기록을 세운 초우량기업 제너럴일렉트릭사(GE)는 자사만의 독특한 기업문화 혁신운동 인 ‘워크아웃’의 성공적인 수행을 통해서 금세기 이 지구상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기업이 될 수 있었다16).
제너럴일렉트릭사(GE)의 현재 회장인 잭 웰치(Jack Welch)가 80년대 초 회장으로 선임될 때만 하여도 GE는 일류기업이긴 하였으나 의사결정 과 관료제의 심화로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잭 웰치 회장은 단호한 결정으로 현사업의 리스트럭처링과 전 종업원의 의식 개혁 운동을 전개하였다. GE는 이와 같은 새로운 기업문화풍토 혁신을 전사적(全社的)으로 전개하였는데 이를 ‘워크아웃’이라 정의하였다. 잭 웰치 회장은 “워크아웃의 목표는 GE를 이 지구상에서 가장 비관료 적이고 가장 경쟁력이 있는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천명하였다 17).
이 ‘워크아웃’은 GE의 잭 웰치 회장이 미국의 여배우 제인 폰다가 창안한 몸매 가꾸기 프로그램에서 ‘군살빼기’라는 뜻의 미용용어로 사 용하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어 기업에 적용한 것이 효시가 되었다고 한다 18).
워크아웃은 회사정리절차와는 그 성격에서 차이가 많다. 회사정리절차 는 해당 정리기업의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워크아웃은 회생 가능성 이 높다는 점이 우선 다르다. 전자(前者)는 법원의 구속력 있는 결정 및 장기간의 시일이 소요될 뿐 만 아니라 비용부담이 과다하지만, 후자는 금 융기관 및 기업간 자율협약에 의하며, 시일도 단기간에 합의도출이 가능 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전자는 구(舊)경영진이 퇴진하고 법원이 법정관리인을 임명하지만, 후자(後者)는 경영진의 퇴진보다는 경영권의 일 부축소가 일반적이라는 점이 다르다. 워크아웃은 금융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파산법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 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재무적인 어려움에 직면한 다국적 기업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각광받고 있다19).
아직 워크아웃의 시행 초기인 우리 나라는 벌써부터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바, 회생 가능한 기업을 선별하여 지원한다는 워크아웃 본래의 취지 와는 달리 워크아웃의 대상으로 선정된 기업의 상당수가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이미 부실화되어 있고, 심한 경우에는 과거 협조융자를 받았거나 부도를 낸 기업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20).
주 1) 李哲松, "회사정리제도의 비교법적 검토", 상장협,95년 춘계호(제31호), 119면,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주 2) 林采洪, "회사정리법개설", 고시계, 1998, 12면 이철송, 前揭論文, 120면
주 3) 98년 2월 24일의 회사정리법의 개정에 관해서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논문을 참고할 것
- 관보, 제13838호, 1998. 2. 24
- 환은경영정보, "화의 및 법정관리절차 개정내용", 환은경제연구소, 1998. 3(제18호), 11면
- 高東秀, "회사정리관련법에 대한 대법원 규칙 및 예규"의 개정, KIET 실물경제, 산업연구원, 1998. 4. 15(제124호), 41∼44면
- 李炳基, "기업정리관련 법률의 개정방향 및 주요내용", 법조, 법조협회, 1998.7 ∼ 8(통권 502호,503호)
주 4) 李哲松, 前揭論文, 121면
주 5) 松田二郞, 회사갱생법(법률학전집 39), 신판(동경:有斐閣,1977),1면;정동윤,회사법(3訂增補版),법문사, 1993, 651면에서 재인용
주 6) 파산(Bankruptcy)의 어원은 '상인의 파산'을 상징하는 이탈리아어 banca rotta('무너진 작업대'의 뜻)에서 유래하며, 초기의 파산법이 주로 상인을 대상으로 하여,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형성되었고, 근년에는 채무자형무소(debtor's prison)가 폐지되고 파산자(bankrupt)라는 호칭대신에 채무자 (debtor)라는 새호칭으로 바뀌었으며, 궁지에 몰림 채무자를 파산의 굴레(汚名)로 부터 구제하려는 추세에 있다. 그러나 미국 연방법전(U.S. code) 제11장 에서의 bankruptcy(파산)이란 용어는 제7장의 협의의 파산(straight Liquidation ; 직접파산)과 제11장의 재건(또는 정리)(Reorganization or Bussiness Rehabilitation ; 기업재건 또는 기업정리)절차를 포함하는 광의의 파산, 즉 도산(Insolvency Proceedings)의 의미로 쓰인다고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