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내셔널 트러스트
한국경제신문
2002년 12월 6일 금요일 오후 6:14
동화속의 피터 래빗은 태어난지 1백년이 훌쩍 넘었건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기 토끼이다.
미국의 미키 마우스 만큼이나 영국에서 피터 래빗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컵과 접시는 물론 잠옷에도 피터 래빗은 살아 숨쉬고 있다.
귀여운 모습의 이 아기 토끼는 세계 처음으로 저작권보호를 받은 캐릭터로도 유 명하다.
피터 래빗의 고향은 영국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호수지방이다.
이 호수지방이 개발에 밀려 자연이 훼손되려 하자 사회운동가인 옥타비아 힐,변 호사인 로버트 헌터,목사인 하드윅 론슬리가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이들은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라는 운동단체를 만들어 개발저지에 성공했는데 1895년의 일이다.
내셔널 트러스트는 이후 개인들로 부터 성금을 모아 자연 및 문화유산을 사들여 시민 스스로가 관리하고 보존하는 국민신탁운동으로 발전했다.
불과 1백명으로 시작된 내셔널 트러스트운동은 이제는 2백50만의 회원을 가진 영국 최대의 시민운동단체가 되었고 "내셔널 트러스트법"까지 제정돼 세제 등의 혜택을 받고 있기도 하다.
내셔널 트러스트는 현재 27만 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며,6백마일에 이르는 해 안선을 관리하는 영국 최대의 토지 소유자가 됐다.
이 운동은 국제적으로 번져 미국 일본 호주 등 25개국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2000년 1월 출범한 우리나라의 내셔널 트러스트운동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단체는 며칠전 미술사학자 혜곡(兮谷) 최순우선생이 말년을 보낸 서울 성북 동의 집을 사들여 기념관으로 사용키로 했다.
전통한옥인 이 집의 매입비는 혜고전집을 낸 학고재의 우찬규대표와 시민들의 성금으로 충당했다고 한다.
명실상부한 "시민문화재 1호"인 셈이다.
지난 5월에는 강화도의 매화마름 군락지를 매입하기도 했다.
내셔널 트러스트운동은 자연파괴가 다반사로 행해지고 "속도"가 미덕으로 치부 되면서 삭막해져만 가는 회색도시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다음 세대를 위해 이 운동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