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원시 새마을 문고 주최로 문학기행을 갔습니다.
전북 남원시 사매면에 있는 혼불문학관 입니다.
남원으로 가는 길은 천안논산고속도로였습니다.
처음으로 가보는 길이었습니다.
전주로 들어가는 입구엔 '전주' 라고 한글로 쓴 커다란 현판이 보입니다.
임실을 지나 한적한 사매길로 들어가니 우뚝 혼불문학관이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우리 이의동에서는 1,4통 이동문고를 운영하였던 심경순님과
동사무소에서 문고관리를 해 주었던 은금순님과 저,
그렇게 세사람이 가게 되었습니다.
혼불 문학관 입구에는 인공폭포가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고
그 물의 힘으로 물레방아는 육중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돌계단을 오르니 노적봉 산자락 아래에 최명희 작가의 혼불문학관이 있습니다.
1981년 동아일보 장편소설에 '혼불' 이 당선 되어 문단의 주목을 받은 최명희 작가는
1996년까지 17년 동안 오로지 '혼불'에 매달려 혼신의 불을 태웠습니다.
안내를 받으며 문학관에 들어가니 첫 입구에는 작가가 생전에 썼던 몽블랑 만년필과
정갈한 필체로 쓴 원고뭉치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컴퓨터가 보급 되었을 때에도 작가는 원고지에 만년필을 고집하였다는군요.
옆에는 작가가 세밀하게 원고지에 남긴 남원의 사투리
삐탱이-비탈, 뿌랭이- 뿌리, 복지께-밥그릇, 봉창- 자다가, 비암-뱀,
복새물-흙탕물, 봉다리- 봉지, 등의 메모가 있었습니다.
문학관에는 소설의 장면이었던 혼례의식과 상피(서로 피하는 일)의 예시인 살구나무 아래에서,
효원의 흡월전( 소원을 비는 달맞이), 베틀, 액막이 연을 날리는 모습,
'매안 이씨' 은부의 가계도에는 박씨, 한씨, 홍씨, 김씨 의 네 부인이 있었습니다.
청암부인의 장례식 모습 등 소설 내용의 획을 긋는 중요한 장면들이
옛 배경 공간 안에서 인형들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혼불'은 일제시대인 1930~1940년대 남원의 유서 깊은 이씨 문중과 이씨 문중의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상민마을 '거멍굴' 사람들의 삶을 그린 소설입니다.
양반사회의 기품과 평민과 천민의 고난, 애환, 호남지방의 혼례와 장례의식,
정월 대보름 등의 전래풍속 등을 세밀하게 그리고 남원지역의 방언을 풍부하게
구사한 대하소설입니다.
작가는 결혼도 하지 않고 '혼불' 에만 집념을 하였고 51세의 짧은 생을 살다 가면서도
"혼불 하나만으로도 행복하였다"는 아름다운 세상을 살고 갔습니다.
결혼하지 않았으므로 더욱 소설에 집중할 수 있었겠지요.
모든 잡념이 필요하지 않은 혼자만의 공간에서 작가는 창작의 고통과 기쁨을 오랜 시간동안
함께 하면서 마지막 '혼불'( 죽기 전 몸에서 빠져나가는 생명의 불) 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떠났습니다. 작가가 지닌 문학에 대한 엄격함과 집요한 열정에
저는 한참이나 가슴이 들끓었습니다.
예술은 세상에서 살다간 '꽃' 의 흔적입니다.
기념관 밖에는 '혼불' 을 기리는 내용들이 적힌 돌들이 쌓여있습니다.
다녀간 사람들의 소원을 담은 글 도 보입니다.
우리는 기념관 안에 있는 따뜻한 사랑방에 앉아서 기념엽서도 썼습니다.
자기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 ' 보내기 입니다.
저는 딸에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바라는 사랑의 편지를 썼습니다.
기념품으로는 손수건, 찻잔을 고운 비단에 싼 찻잔보자기, 짚으로 만든 새집이 있습니다.
저는 지붕이 덮혀있는 새집을 샀습니다.
혼불 문학관 아래에는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있었는데
점심 시간이 좀 지나서인지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토란찜, 제육볶음, 두부 부침, 산나물, 호박고구마 마요네즈 무침, 동동주, 배추김치,
늙은호박을 썰어 넣은 청국장은 일미였습니다.
전라도 음식은 가짓수도 많고 정성을 다하는 손 끝의 맛이 느껴집니다.
음식을 준비해 주신 분들은 젊은 사람이 아닌 나이가 지긋하신 어머니들이십니다.
연륜이 많으신 어머니들의 손맛은 따라갈 수 없지요.
순수해 보이는 사매의 어머니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다시 '혼불'의 배경지였던 청호저수지와 노적봉 산자락을
둘러보고 물레방아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짧은 가을해는 벌써 등 뒤에서 그늘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
서둘러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온통 최명희 작가의 생각 뿐 입니다.
'나는 원고를 쓸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생애를 기울여
한마디 한마디
파 나가는 것이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 정신의
기둥 하나 세울 수
있다면'
최명희 최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