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큐슈 남단으로부터 약 685㎞ 떨어진 최남단에 위치해 있으며, 57개 섬으로 이루어진 오키나와현(沖繩懸)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섬으로, 오키나와현 인구의 88%가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아름다운 산호초가 있는 에메랄드 빛 바다와 해안으로 관광지로도 유명한 오키나와는 본래 ‘류큐왕국’이라는 독립국이었지만, 1879년 메이지정부에 의해 오키나와현이 되었다. 이후 미국 점령을 거쳐 1972년 다시 일본 영토로 편입되었다.
17세기까지 류큐(琉球)왕국으로 불렸던 오키나와는 중세 조선과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간의 무역중계지로서 번영을 누리며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해 온 독립국가였다. 그러나 일본은 1609년 사쓰마(薩摩)를 시켜 류큐를 정복, 완전히 복속시켰고 1879년 메이지(明治) 정부는 오키나와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편입시켜 버렸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곳이다. 1945년 4월 1일 미군이 상륙, 3개월간 계속된 전투로 민간인들까지 전투에 말려들어 20여 만 명의 사망자 중 주민이 9만 4000명에 이를 정도였다. 이때부터 미군에 의해 점령되어 27년간 군정 통치를 받았다.
1950년 12월 '류우큐우 열도 민간정부에 관한 명령'을 통해 미국의 신탁통치 관할지역으로 지정된 이래 오키나와 주민의 일본으로의 복귀운동은 꾸준히 계속되었다. 1960년 오키나와현 일본복귀협의회가 결성되었고, 1969년 11월 당시 미국의 R.M. 닉슨 대통령과 일본의 사토(佐藤) 총리 간 회의에서 1972년에 반환을 약속한 미ㆍ일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결국 1971년 6월 17일 미국과 일본 사이에 오키나와 반환협정이 조인되고, 1972년 5월 15일에 협정이 발효됨으로써 26년 만에 오키나와는 일본으로 복귀했다.
류큐왕국
[ Kingdom of Ryukyu , 琉球王國(유구왕국) ]
일본 오키나와현에 있던 옛 왕국으로, 류큐는 현재 오키나와[沖繩]의 옛 지명이다. 12세기부터 몇 개의 집단이 세력을 다투다가 1429년 등장한 통일왕국으로 오키나와 중심지인 나하[那覇]의 동부에 있는 슈리[首里]를 도읍으로 삼았다.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잇는 해상로에 위치하여 무역으로 발전하였고, 중국은 물론 일본과 우리나라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문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약소국으로 오랫동안 중국에 조공을 바쳐야 했으며, 1609년에 일본 시마즈씨[島津氏]의 침입을 받은 후에는 그 지배 아래 놓였다. 이후 1879년에 다시 일본의 침략을 받아 450년간의 왕조를 끝내고 오키나와현이 되었다.
도읍지였던 슈리에는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다. 특히 슈리성 정전[首里城正殿]은 국왕이 업무를 보던 곳으로 중국과 일본의 양식이 함께 공존하는 특이한 유적이며, 슈리성의 정문인 슈레이문[守禮門]은 중국의 영향을 받긴 했으나 류큐왕국의 독창적인 기법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손꼽힌다.
▼오키나와 맛집으로 알려진 캡틴캥거루 수제버거
▼츄라우미 수족관
▼만좌모 인근 나카무라 소바
▼현지인에게는 무척 인기있는 소바
▼만좌모-코끼리의 코 모양으로 침식된 류큐 석회암의 단애와 그 위에 넓은 잔디밭이 있는 곳. 류큐왕 쇼케이가 '만명이 앉아도 충분한 벌판'이라고 하여 이름이 유래되었다.
▼잔파곶
▼지나다가 들른 곳
▼류큐무라-오키나와의 문화와 예능, 자연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민속촌이다. 붉은 기와지붕의 민가, 제당공장, 도자기 가마 등 류큐열도[琉球列島]의 각지에서 옮겨온 건물 등으로 옛 오키나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선셋비치
▼슈리성-일본 오키나와 현 나하 시에 소재하며 오키나와 류큐왕국의 궁전이다.
▼오키나와식 뷔페
▼국제거리
▼오키나와 특산품 자색고구마 타르트
▼아메리칸빌리지
▼포시즌 철판 스테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