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성
미운 오리 새끼의 고향
덴마크 오덴세 (Odense)
생일날이 되던 어느 해 봄날. 매일 똑같은 일상에 졸음병이 몰려왔다.
즐겨찾기 되어 있던 여행안내 홈페이지에는 코펜하겐 시청 옆에 세워진 안데르센의 동상 사진이 메인으로 걸렸다.
순간 일렁이던 마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동화의 아버지로 통하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 이 태어난 고향이자 미운 오리새끼 무대로 알려진 오덴세가 정감 가득한 마을로 다가왔다.
동화를 찾아가는 아름다운 여행지, 미운 오리새끼 고향 덴마크 오덴세(Odense) 안데르센 공원에는 아직도 휴식을 취하는 미운 오리새끼들이 있을까 ?
그곳이 궁금해 졌다. 지루하다 생각할 만큼 활력이 없는 나날의 행복을 되찾으러 떠나고 싶었다. 그 바람은 정확히 일 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다.
북유럽 덴마크에 쌀쌀한 날씨는 이제 풀리기 시작되는 5월 하순,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했다.
안데르센을 키운 정감 가득한 마을 ,
미운 오리 새끼의 고향 오덴세(Odense).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코펜하겐 공항 내에 있는 트레인을 이용 오덴세에 도착했다. 밤 10시가 넘어야 해가 지기 시작하는데 백야현상으로 해가 진다해도 못 다닐 정도는 아니라 여행하기엔 좋다. 한국에서 더위가 시작되는 초여름인 날씨인데 지구 반바퀴를 돌아온 이곳은 옷깃을 여미는 추운 북유럽 날씨이다. 덴마크 여행이라면 동화 작가 안데르센 의에서 실마리를 잡는 게 수월하다 . 성냥팔이 소녀, 벌거벗은 임금님, 엄지공주 등 세계적 명작동화를 집필한 작가를 추억하는 흔적들이 지금도 생생해서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로 했다.
도시의 관문인 역에서 나와 너도밤나무로 둘러싸인 왕립 공원을 지나서 도심으로 연결된 고즈넉한 골목으로 접어들면 다른 세상에 온 듯하다. 그 골목으로 늘어선 상점과 카페로 이어지는 골목 만나는 지점에 붉은 벽돌의 시청이 자리 잡고 있다. 오덴세에서 가장 커다란 건물 가운데 한곳인 시청은 광장과 다양한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는 대표적인 문화공간이다.
미운 오리 새끼의 무대 안데르센 공원.
광장에 서면 어린 안데르센이 어머니를 따라 수시로 찾았던 성 크누트교회(Sct.KnudsKirke)가 보이고 남쪽으로 안데르센 공원이 이어진다. 안데르센에게 동화작가로서 꿈을 심어주었던 장소이자 그이 대표작중 하나인 미운 오리 새끼의 무대였던 안데르센 공원(H.C Andersen Haven)은 참으로 예쁘고 정감이 넘쳤다.
나무로 만든 무지개다리. 장미와 수선화가 피어 있는 정원. 샛강에 만들어 놓은 제법 커다란 종이배. 한적하게 놀고 있는 백조와 오리. 그리고 산책하기에 그만인 산책로에 이르기까지. 안데르센이 미운 오리 새끼라는 동화를 집필하게 된 것은 그의 나이 38세 때 스웨덴 여행 중에 만난 여성과 사랑에 빠졌지만 결국 실패하고 가슴앓이를 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산책을 하던 안데르센은 연못에서 헤엄을 치고 있던 백조 가족을 보고 영감을 얻어 집필한 동화라고 한다. 그가 동화를 집필하면서 배경으로 오덴세를 택한 것은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슴속 깊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데르센은 14살 때 배우가 되겠다며 코펜하겐으로 떠날 때까지 오덴세에 자랐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구두를 만드는 제화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가족은 가난했고 무척이나 불후 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문학을 좋아해 안데르센에게 매일 동화를 읽어 주었다. 아버지는 11살 때 세상을 일찍 떠났고, 코펜하겐으로 와 타향에서 갖은 시련을 겪으면서 많은 동화를 창작하게 되는데 서정적인 정서와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 그리고 따스한 휴머니즘이 담긴 작품을 많이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미운 오리 새끼. 벌거숭이 임금님. 인어공주. 빨간 구두. 등이 있는데 아동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근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으며 대부분의 생애를 해외여행으로 보냈다.
오덴세는 어디를 가든 안데르센의 마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곳곳에는 그를 기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을 딴 거리며 공원, 도시 곳곳에 그의 동상들이 있다.
안데르센 순례자들이 기본적으로 찾는 곳은 그의 생가 (H.C.Andersen Childhood Home) 와 안데르센 박물관(H.C.Andersen Museum)이다.
지도에서는 한눈에 파악했지만 외관상 다른 집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거창한 안내포지판도 없어 근처에서 한참을 헤맸다. 바로 앞에서 나 같이 헤맸던 이방인이 많았던 듯, 덥수룩한 오덴세 한 아저씨는 어디를 찾느냐고 묻지도 않은 채 손가락으로 저기라고 가리키고는 제 갈 길을 갔다.
덕분에 시내 구석구석을 여유롭게 걸었다. 시내버스가 무료이기는 하지만 굿이 탈 이유는 없었다. 여행객에게는 걸어서 쉬엄쉬엄 다녀도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하지 않아 관광스폿을 거의 만날 수 있는 아담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꾼이 남긴 흔적들 ―
안데르센 공원 끝자락에서 가파른 오솔길을 오르면 그가 태어났던 생가가 나온다. 현재 안데르센 박물관( H.C.Andersen Museum)으로 이용되는 생가에는 그의 작품세계와 다양한 자료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던 1905년에 조성되어 몇 번의 증축을 거처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입구에는 탄생 200주년 기념사업으로 새롭게 조성해 놓아 과거에 비해 보다 편리하게 박물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박물관 입구를 지나 가족사를 전시해 놓은 방을 지나면 안데르센의 숨은 실력을 유감없이 감상할 수 있는 전시장이 나온다. 안데르센은 여행을 하거나 휴식을 취할 때 수시로 스케치와 그림을 그릴 정도로 타고난 손재주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종이 작업에 유별나게 뛰어난 재주를 발휘했다. 약 100점의 종이 작품은 그가 동화 작가가 되지 않았으면 분명 그림과 연관이 있는 예술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만 큼 훌륭한 것들이다.
종이 작품이 전시된 방을 지나면 그의 생에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모아 둔 자료실로 이어진다. 그가 집필한 미운 오리새끼와 성냥팔이 소녀, 벌거숭이 임금님 등 오리지널 작품을 중심으로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 동화를 집필할 때 사용했던 펜, 늘 소중하게 몸에 지니고 다녔던 십자가가 달린 목걸이, 인자한 모습의 초상화, 그리고 가족과 관련된 것에 이르기 까지 매우 다양한 자료들이 넓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여러 전시품 중 유독 눈에 띠는 것은 여행 다닐 때 사용했던 가방과 심벌처럼 되어버린 그의 지팡이, 마술사의 요술 모자를 연상시키는 모자였다.
여행할 때 늘 끌고 다녔던 그의 가방은 이탈리아 스웨덴 독일 등을 여행할 때 사용했던 가방으로 안데르센은 이 가방을 작품의 소재로 이용하기도 했다.
유년의 작은집 , 동화가 태어난 곳
박물관에서 돌조각이 촘촘히 박혀있는 고즈넉한 거리를 조금 걸으면 유년시절의 집(H.C.Andersen Barndomshjem)이 나온다. 안데르센이 훗날 과거를 회상하면서 비록 가난하고 어려웠지만 유년 시절 집에서 보낸 시간이 가장 소중하고 행복했다고 여러 번에 걸쳐 술회했던 바로 그 장소이다. 두 개의 방과 부엌. 구두 수선공이었던 아버지의 작은 작업실로 이루어진 집은 숨이 막힐 정도로 작아 당시 어려웠던 가족사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어려운 환경이 감동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동화를 엮어 내는데 바탕이 되었다고 안데르센은 버릇처럼 이야기했다. 집안에 있던 물건들은 거의 모두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다만 10 여권의 책과 당시의 생활상을 엿 볼 수 있는 그림과 사진 20여점이 전시돼 있다.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연못가 정원의 동화 속 궁전 같은 예쁜 건물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안데르센 동화 연극이 공연되고 있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잔디밭에 저마다 자유롭게 자리를 잡고 연극에 심취해 있었다.
뒷전에서 잠시 않아 보다가 착하고 선한 안데르센을 생각하며 발길을 옮겼다.
너도밤나무(Fagus crenata var. multinervis)가 유난히 많은 오덴세에는 아주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다. 북구의 여신인 프레이야는 어느 날 “저기 오딘을 보라”고 외치면서 훗날 아주 위대한 인물이 탄생 할 것을 예측했다고 한다. 여신의 예언을 증명이라도 하듯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이 태어나 도시를 빛내고 있다.
뚜벅 뚜벅 완보로 소박한 거리를 …
코펜하겐은(Copenhagen) 도보 여행자에게 아낌없이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골목하나를 건너면 고풍스런 교회들이 나타나고 , 또 길목을 바꾸면 옛 궁전과 건물들이 즐비했다.
크리스티안보르 궁전( Christianborg Palace)은 괘나 웅장해 보였다. 1167년에 지어진 궁전인데 그 안에 현재 덴마크 수상의 집무실과 국회. 대법원이 궁전 안에 있다. 행정, 입법, 사법 3권이 한 건물에 모여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궁전 일부는 덴마크왕실의 룸으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시청에서 가까운 칼스버그 미술관이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맥주회사 칼스버그의 2대 사장 카롤 야콥슨(CarlJacobsen)이 1897년에 세운 미술관이다. 각층별로 각 나라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로댕 작품도 있다.
덴마크의 상징인 인어공주 동상은 1913년 맥주회사 사장 카롤야콥슨(CarlJacobsen)이 조각가 에드바르트 에릭슨(Edvard Ericksen)에게 의뢰해 제작한 것이다.
동화가 탄생 시킨 인어공주 동상(Statue of The Little Mermaid)은 항구해안가 작은 바위에 않아 있는데 높이 80cm 불과한 인어공주 동상은 명성에 비해서는 좀 초라하고 작은 편이다. 그래도 팔과 머리가 잘려 나가는 등 갖은 수난을 겪었으면서도 지금까지 묵묵히 그 자리에 않아 있어 덴마크 상징으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2013년 8월에는 세계관광객들의 축하 속에 100세 생일잔치까지 치렀다고 한다. 그 상징은 더욱 빛 날것이 뻔하다.
코펜하겐 뚜벅이 투어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은 아말리엔보르 궁전(Amalienborg Palace) 이다. 덴마크 왕실 가족의 거처이다. 광장 중앙에는 프레테릭 5세의 기마상이 늠름하게 서 있다. 4개의 왕실 건물이 이 광장을 에웨 싸고 있다. 건물마다 위병들이 짝을 이뤄 경비를 서고 있다. 위병들은 오전 11시30분부터 교대식을 펼치는데 이 무렵 광장은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노르웨이에서 왔다는 여행객 노부부가 귀띔하길, 왕궁 건물에 덴마크 국기가 올라가 있으면 현재 왕이 그 건물 안 있다는 표시라고 한다. 정말로 마그레테 여왕이 안에서 집무를 보고 있는지 호기심에 안을 기웃거리니 위병이 빛나는 눈빛으로 경고를 보낸다.
아말리엔보르 궁전 옆에 프레데럭(Frederick Church)교회가 위용 당당하게 우뚝 솟아 있다. 대리석(Marble Church) 교회라고 부르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고급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내뿜는 위용이 대단하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가장 크다는 지름 31m의 돔 지붕은 멀리서 봐도 찬란했다. 프레데럭 교회를 원경으로 삼은 아미리엔보르 궁전의 모습이야 말로 코펜하겐 뚜벅이 투어의 하이라이트 이었다
주택가의 평범한 주택들도 역시 동화 같은 감홍을 안긴다. 오렌지색 기와지붕에 아이보리색, 노란색 핑크빛 땀 흘린 노력으로 이룬 색감의 조화는 정갈하고 고요했다. 이런 동화 마을 느낌은 시가지 전체를 관통하며 흐른다.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안데르센을 작가로 키운 것은 어쩌면 이런 감성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가지를 배경으로 삼아 우뚝 서있는 안데르센 동상이 해 맑은 미소를 던졌다.
나는 백야 하늘 아래 이야기 한다.
오래 간직할 여행 냄새 나는 글을 쓰며,
바로 그 이야기 속으로 오래도록 즐거운 일상을 깨뜨리는 유쾌한 시간을 만들 것이라고,
여행이라는 삶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