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07년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드디어 "사건"이 벌어집니다.
제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주위에 빼놓지 않고 말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지금 이 사람 나이가 많은데, 죽고 나서 추모니 뭐니 하면서 뒷다리 긁지 말고, 살아 있을 때나 한 번 불러서 상을 줘야 하는데...."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금년 2월 25일 제 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드디어 상을 받습니다.
자~ 이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가 참여한 영화리스트 아래에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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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초기 걸작 <롤리타>

전대미문의 걸작 정치영화로 후대 영화감독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알제리전투>

너무나도 유명한 <황야의 무법자>

시대가 바뀜에 따라 단순한 오락영화에서 걸작으로 거듭난 <석양의 무법자>

<속 석양의 무법자> 이상 3편,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달러 3부작", 그 중 최고 걸작

서부영화 사상 최고 명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이소룡 감독/주연의 <맹룡과강>

올드 서부영화팬들에겐 낭만과 추억 그 자체인 <무숙자>

초 장편 대하 서사시 <1900>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화면을 보여준 작품 중 하나인 <천국의 나날들>

B급 공포영화의 걸작 <괴물>

브룩 쉴즈 주연의 그저 그런 영화 <사하라>

지난 30년 동안 나온 영화 중 가장 위대한 작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아놀드 슈워제네거 초기 히트작 <코난>의 외전 <레드 소냐>

말이 필요 없는 <미션>

명배우, 명연기, 명장면으로 가득한 갱영화 <언터쳐블>

역시 말이 필요 없는 <시네마 천국>

걸작임에도 한국에서는 싸구려 에로영화 취급받은 <욕망의 낮과 밤>

베트남전을 다룬 평범치 않은 수준작 <전쟁의 사상자들>

멜 깁슨이 연기한 <햄릿>

할리우드 영화의 전형적 모범작 <벅시>

<미션>의 롤랑 조페가 감독한 <시티 오브 조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깔끔한 스릴러 <사선에서>

연극 연출가가 만든 웰 메이드 오락물 <울프>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러브 어페어>

공포영화의 거장 다리오 아젠토가 만든 <스탕달 신드롬>

또 다른 "시네마 천국"을 노렸던 <스타메이커>

직장 내의 "역"성폭력을 다룬 스릴러 <폭로>

거장 올리버 스톤의 만만치 않은 작품 <유턴>

진보적 정치풍자 드라마 <불워스>

거장 브라이언 드팔마의 졸작 <미션 투 마스>

<시네마 천국>의 거장,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1900의 전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모니카 벨루치의 <말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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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입니다.

영화음악계의, 아니 영화계의 살아있는 전설인 그가,
지금까지 평생 520여 영화/TV 작품의 음악을 맡았던 그가,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준 그가,
처.음.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쥡니다.
아쉽게도 영화음악상이 아니라, 평생공로상이라는 명예타이틀로요.
그동안 아카데미는 영화계의 전설로 남아 있는 감독들을 초청해 명예상을 수여함으로써, 영화제의 격을 한층 높여왔습니다. 페데리코 펠리니, 쇼티야지트 레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쿠로자와 아키라 등, 그 미국 영화 관계자(제작자/감독/스텝/배우) 자신들도 책에서나 봤지 실제로 만나기 어려웠던 영화계 거장들을 차례대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초대했었지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저들이 등장한다는 건 전율과 감동 자체입니다. 무수한 영화전공 교과서들이 빼놓지 않고 거론하는 저 이름들은, 모든 할리우드 영화인들이 영화를 공부하면서 책에서나, 그리고 작품으로나 봤던 이름들입니다.

그런데, 그 또 하나의 영화계의 전설 엔니오 모리코네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 등장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궁금한게,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헐리웃 영화인 중에서 누가 이 엔니오 모리코네를 소개할까인데요, 제가 봤을 때 대충 두 명으로 압축됩니다. 거장 브라이언 드팔마나, 이미 명예상을 받았던 워렌 비티 둘 중의 하나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견해봅니다. 그 중 일단 워렌 비티 쪽에 좀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싶군요.
지금까지 <천국의 나날들>(1979년), <미션>(1986년), <언터쳐블>(1988년), <벅시>(1992년), <말레나>(2000년) 등 5차례에 걸쳐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지만, 모두 수상에 실패했고, 게다가 수많은 영화팬/영화음악팬을 거느린 <시네마 천국>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후보에도 못 올랐습니다. 그의 영화음악 작품 중 최고 걸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배급자의 등록에 관한 절차상 실수로 후보 선정 과정에서 탈락했지요.
그리고 198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탐 크루즈 주연의 <탑건>이 가져갔을 때, 당시 우리나라 영화평론가 중에서 가장 유명했으며 또 두꺼운 까만색 뿔테 안경이 트레이드마크인 정영일 씨는 "<미션>에게 아카데미 음악상을 안 주고 <탑건>에게 준 것은 아카데미의 수치다"라고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LA지역 외신기자들이 투표해서 상을 주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엔니오 모리코네는 <미션>과 <1900의 전설>로, 2번에 걸쳐서 수상했습니다. 확인은 안 해봤지만, 상을 받으러 직접 이탈리아에서 미국 땅으로 오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해봅니다. 엔니오 모리코네 정도 되는 레전드에겐.... 상을 줄지도 모르니 다른 후보자들처럼 시상식에 참여해서 앉아 있으라는 건 사실 조금은 난감한 경우죠.
하지만, 이번 평생공로 명예상은 사정이 틀립니다. 아카데미시상식 주최측에서 공식적으로 초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이번 행사에 정식 귀빈 형식으로 참석하게 됩니다.

사실, 그가 영화음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영화 역사상 최고의 영화음악가임에도, 그리고 그가 수많은 미국작품의 영화음악을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아카데미 측에서 그를 물 먹인 건, 평생 이탈리아에 살면서 영어 한마디 못(안)하는 자존심을 내걸었던 게 미운털 박힌 탓이기도 합니다.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초호화 빌라까지 구해놓고 그를 할리우드로 이사 오게 하려고 시도했었지만, 그는 그 모든 제안을 거부하고 평생 이탈리아에서 머문 유럽 토박이입니다.
과거의 엔니오 모리코네는 아무리 시시한 영화라고 할지라도, 자기에게 음악부탁이 들어오면, 거절 없이 대부분 응낙했던 걸로 유명하지요. 그건 그가 영화와 TV를 넘나들며 참여한 약 520 여편의 작품 수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1961년 이후(비공식 데뷔는 1959년) 지난 47년 동안 523편이나 참여했으니, 평균적으로 매년 약 11편씩 영화/TV 음악을 양산해낸 셈이네요. 지금은 나이가 들어 그 페이스가 현저히 떨어졌지만, 현재도 <시네마천국>의 쥬세페 토르나토레가 만들고 있는 <레닌그라드>, 그리고 브라이언 드팔마가 감독하는 <언터쳐블: 카포네 라이징>을 작업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지요. 이 영화들은 내년쯤 개봉할 예정입니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감독 몇몇은 항상 엔니오 모리코네에게 음악을 부탁했지요. 대표적으로는 세르지오 레오네와 쥬세페 토르나토레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한테는 이름이 상당히 낯설겠지만, 이탈리아 거장 중에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라고 영화 역사상 미학적/철학적/사회적으로 가장 난해한 문제작들을 남겼던 천재감독이 있는데, 그가 감독한 영화의 대부분을 엔니오 모리코네가 책임졌지요.

지금 흐르는 이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가 감독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의 메인 테마입니다. 제목 그대로 "옛날 옛적 서부에서" 있었던 총잡이들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그걸 굉장히 슬픈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 영화는 서부영화 사상 최고 걸작 중 하나입니다.
특히 찰슨 브론슨과 헨리 폰다의 맨 마지막 대결 장면은 서부영화 결투 장면 중 최고 "간지"라고 할 정도로 으뜸입니다. 10여 분 동안 말 한마디 없이 팽팽하게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엔니오 모리코네의 엄청나게 웅장하고도 가슴 뭉클한 음악이 깔리면서, 둘이 서로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과거의 장면을 교차로 보여주고는.... 이어서 번개같이 총을 뽑아 "빠방~"하고 단 한 방으로 승부를 내는 그 장면은 생각만 해도 후덜덜~ 그 자체입니다.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는 영화 각본 및 작품 의도를 그의 학교 동기 동창이기도한 엔니오 모리코네에게 모두 전해주고는, 미리 영화음악을 작곡하게 하고, 이후에 그 음악을 받아 그걸 들으면서 영화를 찍고 편집하는 식으로 작업했습니다. 16년에 걸쳐서 그 둘이 만들어낸 "원스 어폰 어 타임" 3부작, 즉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옛날 옛적에 서부에서/1968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레볼루션> (옛날 옛적에 혁명이/1971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옛날 옛적에 미국에서/1984년)는 미국 근대사를 애수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탁월한 명작들입니다. 특히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때문에 더욱더 아련한 느낌과 함께 더 큰 감동을 선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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