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류의 다섯시대는 헤시오도스의 <노동과 나날>에 설명되어 있는데, 이중 네 번째 시대인 영웅의 시대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서는 설명되고 있지 않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첫시대인 황금시대는 크로노스의 통치하에 있었고, 이후의 네 시대는 제우스의 통치하에 있었죠.
아래에 인용된 내용은 유재원 교수님의 <그리스 신화의 세계>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1. 황금 시대
크로노스가 우주를 지배하던 태초에 황금의 족속이 살았다. 이들은 아무런 걱정도 고통도 몰랐고 이들에게 삶은 축제의 연속이었다. 이들은 늙지도 않았고 죽음을 잠드는 것처럼 생각하여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땅은 돌보지 않아도 스스로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 주었기에 이들은 모든 것을 평화롭게 나누었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대지가 이들을 모두 덮어 버린 후에도 이들 황금 족속들은 행운을 갖다 주는 좋은 정령이 되어 마을 근처에 머물면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다.
크로노스는 신화를 통해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 하나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식들을 잡아먹는 포악한 신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황금시대를 지배했던 신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만 수단을 강구하던 크로노스가 미쳐 인간에게 눈을 돌릴 틈이 없었고, 그로 인해 신들의 간섭이 없었던 인류는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쩠든 이 황금시대의 모습은 인간의 이상향의 모습이다. 황금시대의 인류가 살았던 그곳이 '유토피아'이고, '에덴동산'이며, '무릉도원'인 것이다. 자연의 은총만으로 살아갈 수 있었고, 평등했으며 행복했던 시대이다. 이러한 황금시대가 왜 멸망했는지는 설명이 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티탄신족을 섬기던 황금시대의 주민들을 새롭게 권력을 잡은 제우스가 멸망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글에서는 '인간이 신들과 지나치게 가까워지자 그만 교만해져서 신들을 경멸했기 때문에 황금 시대가 끝났다고 말한다. 인간들 중에는 자기도 신들처럼 강하고 지혜롭다고 우쭐대는 사람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이상향은 '아르카디아'이다. 목양신 판의 고향이기도 한 아르카디아는 우거진 산림지역이라고 하는데, 쉽게 접해보지 못하는 이 지역에 대한 일종의 신비함과 경외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 자동차의 이름중 '아카디아'가 있는데, 이것은 바로 아르카디아의 영어식 발음인 것이다.
2. 은의 시대
두 번째 족속은 올림포스의 신이 은으로 만든 족속이었다. 이들은 생김새나 영혼에 있어서 황금의 족속과 닮은 점이 하나도 없는 형편없는 족속이었다. 이들은 백년 동안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야 했다. 성장하여 사춘기에 이르면 어머니 곁을 떠나는데 우매함과 무모함 때문에 얼마 살지 못했다. 은의 족속은 신들을 공경하지도 않았고 제사를 드리지도 않았다. 제우스는 이들의 불경스러움에 분노하여 은의 족속을 모두 멸망시켜 버렸다. 하지만 이들은 명계에서 황금 족속 다음으로 존경을 받았다.
제우스가 여러가지 면에서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는 것은 그리스 신화의 곳곳에서 발견이 되는데, 인류의 창조 과정에서도 그 모습은 나타난다. 크로노스가 만든 인류가 풍성한 황금시대를 이루었지만, 그 이후에 제우스가 만든 나머지 시대들은 여러가지로 불만족스러운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3. 청동 시대
세 번째 족속은 청동 족속인데 이들은 물푸레나무에서 생겨났다. 이들은 앞서 살았던 은의 족속보다 훨씬 더 형편없는 족속이었다. 몰염치하고 호전적이어서 항상 싸움을 일삼고 끔찍한 일들을 저질렀다. 다이아몬드와 같은 냉혈적인 심장을 가졌고 무슨 짓을 하든 전혀 수치를 느끼지 않았다. 무기와 집을 모두 청동으로 만들었으나 아직 검은 빛의 철은 다룰 줄 몰랐다. 이들은 신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가 자신들을 다스리다가 아무 흔적 없이 음습한 하데스의 집으로 사라져 갔다. 청동 족속이 사라지자 대지 위에는 또 다시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만이 남게 되었다.
청동 시대의 주민들은 아마도 프로메테우스와 아테나에 의해 창조된 족속 같다. 그렇다면 리카온이나 바우키스와 펠라몬 같은 사람은 이 청동시대에 살았던 사람인 것이다. 또 앞의 설명이 맞다면 청동시대의 주민들은 제우스가 보낸 홍수에 모두 죽었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데우칼리온과 피라가 영웅시대와 철의 시대의 주민들을 창조한 것이다.
[여담 :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주고 많은 지혜를 준 티탄족의 신이다. 그렇다면 성경과 비교하자면 그의 역할은 바로 사탄이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는 인류를 대신하여 벌을 받고 있으며 인류의 구원자로 묘사되고 있다. 즉 그것은 예수의 역할이다. 만약 프로메테우스가 신들을 속이지 않고 불과 지혜를 인류에게 선물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황금시대와 같은 삶을 누렸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에덴동산에서처럼 말이다.
그러나 서양문화의 중요한 두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도교에서 동일한 역할을 맡은 프로메테우스와 사탄의 대접은 완전히 틀리다. 즉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의 구원자이며 영웅으로 숭배받고 고통을 이겨내는 정신력을 나타내고 있지만, 사탄은 그저 악마일 뿐이다. 누군가 프로메테우스를 좋아한다면 충분히 납득이 갈 만한 설명이 뒤따르겠지만, 사탄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악을 숭배하는 사람으로 인식될 것이다.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이미 있었던 이야기다. 이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은 '만약 그렇지 않다면?'이라는 질문에서 얻을 수 있는데, 즉 황금시대의 사람들의 삶이 무미건조하다는 것이다. 원시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탄은 그렇지 않을까? 여기에서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도교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다신교를 믿는 신앙과 유일신을 믿는 종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신교에서는 이러 저러한 모습의 다양한 신들이 어울리면서 절대선이나 절대악이 없으면서 공존하는 것이다. 그것이 또한 신화의 매력이라 생각된다.]
4. 영웅 시대
제우스는 청동 족속이 사라진 대지를 네번째 인류인 영웅족속으로 채웠다. 이들은 신들의 후손으로 반인반신이었기에 앞선 청동족속보다는 덕도 높았고 수치와 명예를 알고 존중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처참한 전쟁이 계속 벌어졌다. 테베의 일곱 용사가 테베를 공격한 것도, 오이디푸스의 비극이 일어난 것도, 트로이 전쟁이 벌어진 것도 모두 이 시대의 일이다. 영웅 족속이 멸망한 뒤에 제우스는 이들을 지구 끝에 있는 아름다운 섬으로 데려갔다. 이곳에선 일년에 세 번씩 달콤한 과일이 영글었다. 영웅들은 이 천국과 같은 곳에서 평화롭고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다.
다른 시대가 금속의 이름을 붙인데 반하여, 이 시대에 유독 '영웅'이라는 호칭을 붙인 것에서 보는 것과 같이 시인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시대라고 생각된다. <세계의 유사신화>에서는 청동시대와 영웅시대를 둘 다 청동시대로 묶어 부르면서, 청동시대를 '제 1의 청동시대', 영웅시대를 '제 2의 청동시대'라 부르고 있다. 이들은 사실상 청동시대와 같은 시기에 살았다고도 한다. 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이 시대를 배경으로 등장한다.
5. 철의 시대
다섯 번째 인간은 철의 족속이다. 철 족속의 삶은 낮이고 밤이고 불안하고 피곤할 뿐이다. 신들은 이 족속에게 끊임없는 걱정거리를 안겨 주고 있다. 이들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가 하얗게 세어진다. 아이들은 부모를 닮지도 않고 아이들끼리도 제각각이다. 친구와 친구 사이도, 배우자들끼리도 서로를 위하지 못하고 제 앞가림하기에 바쁘다. 예전처럼 형제들 사이에 우애가 있지도 않다. 조금 자라 독립하게 되면 부모를 공경하기는커녕 말대답이나 하고 모욕하기 일쑤이고 심지어 욕지거리까지 해댄다. 부모가 늙으면 공양을 안고 내쫓아 버린다. 신의와 정의, 진리에는 조금의 가치도 인정하지 않고 사악하고 파렴치한 자들을 칭송한다. 수치도 이 시대에는 사라지고 없다.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자들이 있으면 이들을 모함하고 험담한다. 거짓 맹세를 밥 먹듯 하며 남의 불행을 보고 즐거워한다. 지상에 남아있던 마지막 신들마저 하늘로 올라가고, 인류는 무법천지 속에서 치유할 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헤시오도스는 인류의 다섯시대를 설명하면서 자신은 철의 시대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종말은 알 수 없다. 매우 처참하게 설명되고 있는 이 시대의 모습이 언제 끝나고 어떤 새로운 모습이 나타나게 될 지에 대해, 더 이상 신화에서는 설명되고 있는 것이 없다. 이런 비관적인 신화속의 역사에 따르면 언젠가는 인류의 끔찍한 종말이 나타날만 한데, 그리스 신화에서는 그것이 없는 것이다. 어쩌면 신들이 부여한 영원한 벌일지도 모른다. 다른 신화에서 예언서와도 같이 전해지는 인류의 종말과 세계의 파괴는 그리스 신화에는 없는 것이다.
엉뚱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리스 신화의 끝을 <오딧세이아>로 생각하고 싶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략적으로 트로이 전쟁에 참가했던 영웅들의 자손 1~2세대 정도까지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로마 신화로 이어져서 아이네이아스의 여행과 로마 건국이 계속 이어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로마 신화이다. <오딧세이아>의 끝부분에서는 오딧세우스가 고향인 이타케로 돌아가고,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을 척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어서 구혼자들의 가족들이 오딧세우스에게 대항하지만 제우스와 아테나가 이 싸움을 중지시키고 '평화'를 이루게 한다. 그리고 사실상 이 이후의 사건은 없다. 영웅들도 더 이상 없고, 신들도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