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를 순회하다 보면 자주자주 "교복 자유화해 주세요."하는 '사랑하는 제자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습니다.
하기야 교복에 선을 넣어 허리를 날씬하게 보이게 하고, 스커트 단을 최대한 올려 미니 스커트의 멋을 풍기고 싶어하는 것은 물론 운동화 끈 하나, 양말 길이 하나에도 온 신경을 집중하는 사춘기 제자들의 특성을 아는지라 그 때마다 애매한 웃음으로 제자들의 염원을 흘려 보내곤 했습니다.
그러나 내신성적의 상대평가 방침에 따라 1등 2등 3등 ~ 이렇게 석차가 매겨지다 보니 필기 노트를 빌려주지 않고, 거꾸로 노트를 훔치기도 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어제의 친구가 지금은 나의 '웬수'가 되는 기막힌 현실 앞에 고1들의 반란(?)이 사회를 떠들썩하더니, 급기야 두발 자유화라는 이슈로 광화문 촛불 집회의 성격이 변질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 제자들의 소원은 ?
5월 19일 오후 3시 30분,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직접 만든 두발관련 초안을 놓고 학생회장과 부회장도 참석시킨 가운데 학교운영위원회를 열었습니다.
먼저 초안을 만든 학생 대표들의 자세한 설명을 들은 후 운영위원들은 많은 의견을 나눴습니다.
초점은 머리 길이와, 층머리에 있었습니다. 귀 밑 15센티의 기준을어떻게 완화하느냐, 머리의 층과 숱치기를 어떻게 하느냐를 놓고 여러가지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학생들의 순수성과 자율성을 믿고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학생들 스스로가 염색과 파마는 안 되며,샤기 컷과 커트도 안 되며, 머리층의 옆 머리가 옆으로 내려 왔을 때는 반드시 핀으로 꼽는다는 등 , 또 이와 같은 규정을 지키지 않았을 때 일자머리로 하게 하고, 머리 길이를 제한하는 벌칙까지 제안하는 자기 정화 자세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몇 년 전 교복 자유화 조치로 광복 이후 입고 다녔던 일제시대형 교복을 벗어 던지고 사복으로 바꿔 입다가, 사복을 입었을 때 나타난 여러 가지 부작용으로 다시 새 교복을 입은 전례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바지를 입게 해 달라고 강력하게(?) 건의를 하길레 들어 주었다가 어느 추운 겨울 선생님들을 시켜 바지 입은 학생수를 집계해 보았더니 2천여명 학생 중에 고작 50 여명 밖에 안 입고 있어 오히려 선생님들이 더 놀랐습니다.
옷 차림과 머리 모양의 아름다움은 주관적이고 유행을 따르는 것이라서 고정된 형태가 영원하다는 보장은 절대 없습니다.
예상 외로 갑론을박 없이 오히려 어른들인 운영위원들의 관대한 시각이 돋보여 어떤 면에서는 학생들이 내놓은 초안보다 더 자유로운 개정안을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학생들을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은 더 관심을 기울여 어린 학생들의 생활을 지켜보고, 결코 '자유'가 아닌 '자율'에 바탕을 둔 우리들의 '사랑하는 제자들'이 슬기롭게 머리 모양을 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자기 갈 길을 탐색하는 모습을 기대해야 된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한국 교육의 미래는 밝다고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