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박목월, 김수복, 김영남
노랫말에 있듯이 인생은 나그네 길인지도 모릅니다. 인생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불경의 『자타카』에서는 “초대하지 않았어도 인생은 저 세상으로부터 왔고, 허락하지 않았어도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갔다.”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성경에 야곱이라는 사람이 아들 요셉을 찾아서 애굽이라는 나라에 갔을 때, 애굽왕 바로가 물었습니다. “당신의 나이얼마입니까?” 그러자 야곱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입니다. 나의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창세기 47:9) 이렇게 야곱은 자기의 일생을 나그네 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잠깐 지나가는 여행길의 나그네인지도 모릅니다.
‘나그네’ 하면 떠오르는 시인이 박목월입니다. 박목월의 시 「나그네」에서는 길을 가는 나그네의 호젓한 모습이 그려집니다. 이 시는 조지훈의 「완화삼」에 화답하여 지은 것으로 1946년에 《상아탑》이라는 잡지에 발표한 시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축적된 여행 경험을 나그네라는 인물을 설정하여 풍경화처럼 그리고 있습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 「나그네」전문
이 시는 7. 5조 민요가락으로 친근한 우리말의 구사를 간결하게 하고 있습니다. 표현이 명확하고 내용이 평이합니다. 대중시의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는 “시는 율어에 의한 모방이다.”라고 한 모방론적 관점에서 볼 때, 당시 조국의 일제 강점기 상황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현실이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마땅히 있어야 하는 이상적 세계를 시가 모방한 것이므로 당위적 인생에 대한 진실을 구현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드디어 화성 전곡항이 개항되었다
온몸에 녹슨 철조망을 감고 있다가
세계 보트 대회를 열기 위해 온몸의 철망을 걷었다
이제 몸을 열어 밀물이 밀려왔다가 멀리 밀려가는 저녁,
그 너머로 해가 진다
어느 시인은 철조망 너머로 먼 바다를
빠져나가는 일몰을 노래하려 했으나
눈에 찔려 잠을 설쳤다고 했
바다에 배를 띄워 평화를 노래하는 저녁을 마주보면서
온몸에 감겨오는 철망의 저문 눈동자 속으로
저물고 긴 저녁을 노래할 수 없는 해가 넘어 간다
몸속에 오래도록 박혀있던 뼈가 다시 걸려온다
온몸에 감겨있던 녹슨 뼈를
저물어 가는 펄밭에 깊이깊이 박는다
저물어 가는 해를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몸속의 노래를 깊이깊이 박는다
그 조각난 노래들이 해가 되어
몸속에 다시 떠오를 때까지
-김수복, 「철조망 . 1-해」 전문
경기도 화성 전곡항을 여행한 김수복이 계간 《불교문예》 (2008년 가을호)에 발표한 연작시 「철조망」의 제1편 부제는 "해" 입니다. “온몸에 감겨 오는” 철망의 어둡고 비극적인 이미지를 극복하고 나가고 싶은 시적 지향은 “바다에 배를 띄워 평화를 노래하는 저녁” 또는 “조각난 노래들이 해가 되어/ 몸속에 다시 떠오를 때까지” 등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밝음의 지향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해안가는 철조망으로 대부분 차단되어 있습니다. 분단의 상황을 시인은 자신의 아픔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온몸에 철조망이 감겨 있는 국토를 자신의 몸으로 느낌으로써 분단된 국토의 아픔은 자신의 아픔으로 전이됩니다. “몸속에 오래도록 박혀있던 뼈가 다시 걸려온다”는 것입니다. 시인의 초기 작품에서 드러나는 민족적인 살상의 상처가 아직 그대로 살아 온몸에 감겨 녹슨 뼈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노창선, 「존재와 비존재가 존재하는 시간의 이불」, 《불교문예》, 2008. 가을호)
대부분의 여행시가 성공하기 어려운 것은 여행을 하면서 경험한 풍물을 대충 보여주거나 거친 일정을 서술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시는 감동을 주는 것인데 여행정보를 주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1997년 신춘문예 당선작품인 김영남의 시는 유려한 서사의 흐름과 비유가 돋보입니다. 대개의 여행시에서 볼 수 없는 감각이 이 시를 명작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닷가
그 마을에 가면
정동진이라는 억새꽃 같은 간이역이 있다.
계절마다 쓸쓸한 꽃들과 벤치를 내려놓고
가끔 두 칸 열차 가득
조개껍질이 되어버린 몸들을 싣고 떠나는 역.
여기에 혼자 뒹굴기에 좋은 모래사장이 있고,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줏집이 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외로운 방들 위에 영롱한 불빛을 다는
아름다운 천장도 볼 수 있다.
강릉에서 20분, 7번 국도를 따라가면
바닷바람에 철로 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와
푸른 깃발로 열차를 세우는 역사,
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다.
-김영남, 「정동진역」 전문
정동진역은 강릉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동해변에 있는 열차역입니다. 그러나 창작자 자신은 실제로 이곳의 여행을 통해 창작 동기를 얻은 게 아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5.1~2월호) 지역 안내용으로 소개한 어느 잡지의 정동진역 사진을 책상 앞에 오려놓고 30분 만에 갈겨썼다고 합니다. 상상이 닿는 대로 자유롭게 쓴 이 시가 신춘문예에 당선되리라고는 자신도 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점들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합니다.
이 시는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 잔을 주고받기에 좋은 소줏집”이라는 문장이 압권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잔을 주고받기에 좋은 커피집”이었는데, ‘커피집’을 ‘소줏집’으로 고치는 것이 더 운치가 있겠다고 생각하여 고쳤다고 합니다.
-공광규「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중에서
2025.3.3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