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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주역풀이 제7회>
제15강 진리와 생명의 기쁨과 평화 :
풍천소축(9), 천택리(10)
◆ 하늘 위로 바람이 불어간다. 그것을 풍천소축風天小畜이라 한다. 하늘 위의 바람은 무엇인가? 천지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숨이요 진리의 바람이다. 우주와 만물이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의 숨결이 태초부터 운행하고 있었다. 아무 형체도 없는 텅 빈 흑암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생명의 근원적 힘으로서 생기가 그 수면 위로 운행하시며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말씀의 빛이 곧 태초의 시작이었다.
우주의 바다에 하나님의 숨이신 진리의 바람이 불어오자 생명의 물결이 일어난다. 생명의 물결마다 진리의 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무한한 시공 안에서 빛의 별들과 신명과 만물이 서로 손을 잡고 한 생명의 춤이 되어 웅장한 교향곡처럼 울림으로 시작된 천지신명의 온생명 세계는 바로 하늘 위에서 불어오는 하나님의 영, 창조의 숨결로부터 비롯되었다. 말씀의 영에서 생기가 나와 빛이 되고 빛은 모여서 에너지가 되고 에너지는 뭉쳐서 물질이 되고 물질은 터져서 빛이 되고 빛은 또한 물질을 만나 생명이 된 것이다.
땅에 돋아난 생명의 싹은 비록 작고 작은 것이지만 그 속에 자기가 태어난 우주의 모든 진리를 품고 있다. 풍천소축風天小畜은 이처럼 연약하고 작은 생명이 우주의 모든 진리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괘의 모습으로 말하면 연약한 것이 다른 강한 것들을 붙잡고 있다는 뜻이다. 연약한 것이란 무엇인가? 유순하고 겸손한 생명을 유순한 것이 한다. 또 강한 것은 하늘의 덕을 말한다. 하늘의 덕은 강건한 것인데 달리 말하여 진리를 말한다. 진리처럼 강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생명처럼 유순한 것이 없고, 진리처럼 강한 것이 없다. 그런데 유순한 생명 속에 가장 강한 진리의 하늘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풍천風天 소축小畜이라 한다. 바람은 유순한 생명의 상징이요 하늘은 강한 진리의 상징이다.
바람의 또 다른 의미는 태초에 하늘 위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숨결이다. 태초는 언제인가? 태초의 맨 처음이란 하늘 땅이 나타나기 이전이다. 시공이 나타나기 이전에 하나님의 숨결만이 창조의 근원으로서 운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은 그 태초의 숨결을 지금도 운행하고 계신다. 148억 년 전 초기 우주가 나타날 때 폭발하는 그 순간의 진동이 이 순간에도 여전히 진동하며 우주배경복사로 나타나듯이 하나님의 숨결은 지금도 여전히 운행하고 계신다. 창조의 영이신 그 숨결, 그 바람에 부딪히는 순간이 태초다. 하늘 밖으로 올라가 잠깐이라도 그 숨에 부딪혀 반짝 빛으로 머물 수 있다면 그는 진리를 깨닫고 거듭나는 참 생명이 된다. 나는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있었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는 말이다. 태초부터 있는 나는 참이요 거듭난 생명이다. 생명은 진리의 빛이다. 태초의 숨, 태초의 말씀, 진리의 빛이 없으면 생명도 아니다.
그럼 이런 진리를 품고 태어난 생명은 어떻게 살림살이를 살아야 하는가? 풍천소축을 뒤집으면 천택리天澤履가 된다. 하늘이 주는 기쁨을 가지고 사는 우주적 살림살이를 천택리天澤履라 한다. 하늘은 높은 것이요 호수와 바다는 깊고 낮은 것이다. 호수는 기쁨을 상징한다. 가장 낮은 호수는 가장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기뻐한다는 말이다. 하늘을 품고 있는 호수처럼 인생은 기쁨으로 살게 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 천택리天澤履다.
바람처럼 유순하고 겸손한 덕은 바다와 호수처럼 가장 낮은 곳에 처하여 결국 높은 하늘을 우러러 받들며 기쁨으로 충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삶의 존재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풍천소축이라면 인간의 이상을 실현하는 삶의 실천 원리를 밝히는 것이 천택리라는 것이다.
◆ 풍천소축風天小畜
하늘 위에 바람이 부는 것을 소축小畜이라 한다. 소축은 형통한다. 구름이 빽빽한데 비가 오지 않는다. 나로부터, 내가 있는 서쪽 교외로부터다.
풍천소축風天小畜이니 형亨이다. 밀운불우密雲不雨이니 자아서교自我西郊니라.
하나님은 진리의 영이시고 창조주로서 생명의 근원이 되시며 우주 만물의 창조와 운행 및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사랑의 말씀이시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다 헤아릴 수 없지만 계시로 나타나시는 그 영의 바람을 만나서 휩싸이는 실존적 종교체험으로서 나 자신의 근원을 볼 수가 있다. 이런 종교적 진리체험을 소축이라 한다.
그 체험은 잠깐이요 또한 한 점 무한소로 자기가 없어지지만 (소小, 소라는 글자가 낱알, 또는 점을 나타냄) 무한하고 영원한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기에 모든 것을 함축하는 (쌓을 축畜) 순간이요, 시공의 흐름이 잠시 그치고 멈추는(그칠 축畜) 순간이라서 영원한 현재가 되는 그것을 소축이라 한다. 문왕은 바로 이처럼 하늘 밖의 절대자를 만나서 자기의 근원을 보게된 체험을 했기에 소축이라 했고 자신을 진리의 왕, 즉 문왕이라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진리체험은 형통하는 것이다. 형통한다는 것은 절대자와 만남으로써 근원과 통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구름은 빽빽한데 비가 오지 않는다. 어찌해야 될까? 진리의 바람은 언제나 어디나 없는 곳이 없다. 구름이 빽빽한데 비가 내리지 않는 것처럼 진리의 바람은 어디나 있지만 그것을 깨닫고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 바람이 없다고 야단 치지만 사실은 부채가 없는 것이지 바람이 없는 것이 아니다. 부채만 있으면 어디서나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생명의 바람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부처요 깬 사람이다. 부채를 들고 있는 사람이 부처라는 말이다. 구름이 빽빽하다. 성령의 구름을 붙잡아 진리의 비를 내리는 사람이 성인이다.
문왕은 진리를 깨닫고 시대적 변화와 변화된 시대의 뜻을 보았다. 그저 하늘만 바라보던 그런 신화적 시대에서 벗어나 이제는 인간의 덕으로 빽빽한 구름을 붙잡아 비를 내릴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라는 사명이었다. 농기구를 만들고 정전법을 만들고 관개시설을 만들어 천수답을 수리답으로 변화시켜 백성들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자 했다. 또 예를 세우고 덕을 베풀어 백성의 마음을 안정시키고자 했다. 문왕은 이처럼 자기의 사명이 성령의 구름을 붙잡아 진리의 비를 내려서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라 여겼다. 그래서 유리라는 감옥에 갇혀 지내면서 주역을 풀이했다.
구름이 빽빽하게 차 있는 시대에 진리의 비를 내리게 하는 도구가 무엇인가 하면 주역이었다. 전쟁과 대사의 길흉을 묻는 점서로서 주역이 아니라 하늘의 도와 인간의 길을 찾는 새로운 진리의 원천으로서 주역을 풀이했다. 주역을 가지고 새로운 사상과 철학으로 세상을 변혁하려고 했던 사람이 문왕이었다. 비가 와야 하는데 누가 비를 내리게 할 것인가? 나로부터, 내가 있는 곳부터 비가와야 되지 않겠는가?
상나라 문화가 끝나고 새로운 주나라 문화가 시작된 것은 바로 문왕, 진리의 왕인 나에게서 비롯될 것이다. 문왕은 새 문화 창조의 수단으로서 주역을 풀이했고 특히 주역 64괘 가운데 풍천소축을 자신의 괘로 여기며 새 시대를 개창하는 진리의 왕이 된 것이다.
◆ 풍천소축 괘를 판단해본다. 소축은 부드러운 것이 자리를 얻어 상하에서 응하는 것이다. 그것을 말하여 작은 것이 일체를 붙잡고 있다고 한다.
단왈彖曰 소축小畜 유득위이柔得位而 상하응지上下應之 왈曰 소축小畜
건강하고 겸손하다. 진리처럼 강한 중용을 가지고 그 뜻을 실천해가면 마침내 형통한다.
건이손健而巽이니 강중이지행剛中而志行이라 내형乃亨이니라.
소축괘를 보면 일음오양一陰五陽으로 되어 있는데 네 번째 효 육사라는 일음一陰이 나머지 오양五陽을 붙들고 있는 상이다. 지극히 작은 것, 육사 하나가 강한 것 다섯을 붙잡고 있는 상이다. 작은 것은 무엇일까. 진리의 빛으로 태어난 작은 생명이다. 진리를 깨닫는 체험, 이것은 비록 작은 것이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모든 새로운 역사를 이루는 씨앗이요 싹이 된다. 다석이 1942년 1월 하나님을 만나서 믿음에 들어가는 체험을 한다. 그 한 순간의 체험이 있었기에 이후 그 체험을 가지고 수십년간 생명의 말씀이 나온다. 작은 성령체험 가운데 일체의 말씀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소축小畜이라 한다. 예수는 이름 없는 나자렛 촌뜨기로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복음을 전하다 반란죄로 십자가형을 받았다. 그러나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기에 온 세상이 그가 없이는 하나도 된 것이 없다. 일즉일체요 일체즉일이다. 앞으로 한국이 새 역사를 일으킨다면 그것은 다석의 말씀을 기반으로 일어날 것이다. 다석은 비록 작은 생명이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진리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풍천 소축이라 한다. 하나님의 진리와 함께 하는 그것을 강중이라 한다. 강한 진리를 가지고 매 순간 중용을 잡아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뜻을 실천해 가면 결국 형통하게 된다. 나로부터, 우리나라부터, 그리하여 온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지이다.
◆ 괘상을 풀어본다. 바람이 하늘 위로 불어 가는 것이 소축이다.
상왈象曰 풍행천상風行天上이 소축小畜이니라
이로써 군자는 문덕文德을 아름답게 빛낸다.
군자君子는 이의문덕以懿文德이니라.
하늘 위의 바람이 소축小畜이다. 하늘 위의 바람이란 기독교로 말하자면 성령이다. 인도 사람들은 브라만이라고 하는데 브라만도 바람이라는 뜻이다. 우주의 원리 혹은 우주적인 생명을 브라만이라 한다. 그리고 내 안의 생명 또는 내재하는 진리를 아트만이라 한다. 우주적인 생명과 내 생명이 하나가 되었을 때 범아일여梵我一如라 한다. 초재와 내재가 일치되는 그런 경험을 풍천소축이라 한다.
군자는 이의문덕以懿文德, 진리眞理로 덕德을 아름답게 펼친다. ‘의懿’란 ‘아름답다’는 뜻이다. 군자는 아름다운 문덕文德을 지녀야 한다. 문덕文德이란 진리의 덕이다. 문은 성인의 말씀인 진리요, 덕은 속알의 생명 또는 예술이다. 다른 말로 철학과 예술이다. 우리 속에 들어있는 참을 찾을 때, 속알을 찾을 때, 그것을 철학이라 하고 자기의 속알을 밖으로 드러내며 실천하는 것을 예술이라 한다. 다시 말하여 예술의 아름다움이 안으로 들어가면 철학이요 철학의 아름다움이 밖으로 드러나면 예술이라 한다. 철학의 빛을 밝히고 예술의 아름다움을 빛내는 것, 그것을 문덕文德이라 한다.
하늘 위의 성령의 바람이 모든 문덕文德의 원천이다. 성령체험에서 진리의 빛이 나오고 생명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성령체험에서 비롯된 진리의 기쁨을 아름다운 예술로 드러내는 것을 말하여 이의문덕以懿文德이라 한다. 근본체험을 가지고 진리의 기쁨과 생명의 덕을 아름답게 높이자는 것이다. 군자의 삶은 이처럼 진리의 기쁨을 철학으로, 생명의 아름다움을 예술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 천택리天澤履(10)
호랑이 꼬리를 밟는데 사람을 물지 않는다. 형통한다.
이호미履虎尾인데 부질인不咥人이니 형亨이니라
천리의 세계를 기쁨으로 실천하면 이상세계가 실현된다. 그것을 천택리라 한다. 이상세계가 되면 어린이와 호랑이가 어울려 평화롭게 산다. 천리를 깨닫고 실천하는 것은 기쁨의 세계요 평화의 세계다. 모든 생명은 빛 가운데 일어나서 모두와 어울려 평화를 누린다. 진리에서 터져 나오는 힘이 생명의 기쁨이다.
풍천소축을 뒤집으면 천택리가 된다. 하늘 아래 호수가 있다. 호수는 기쁨을 나타낸다. 바다처럼 깊은 호수는 높은 하늘의 기쁨을 품고 있다, 하늘을 품고 있는 기쁨의 바다, 그것을 천택이라 한다. 리履는 실천한다는 뜻, 또는 신발이다. 신발을 가지면 걸어갈 수 있고 뛸 수도 있다. 신발은 우리 몸의 맨 아래에서 받쳐주며 산다. 신발처럼 바닥에서 이웃을 섬기며 기쁘게 사랑을 실천한다는 뜻이 천택리다.
◆ 천택리 괘를 판단한다. 리履는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밟는 것이다.
단왈彖曰 리履는 유리강야柔履剛也이니라
백성들이 위정자를 기뻐서 쫓아가는 것이 리履다. 유柔는 백성들이고 강剛은 위정자들인데 백성들이 위정자를 믿고서 기쁘게 쫓아가면 그것이 이상세계다.
◆ 기뻐서 하늘에 응한다. 그러므로 호랑이의 꼬리를 밟아도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형통한다.
열이응호건說而應乎乾이니 시이是以로써 이호미履虎尾이나 부질인不咥人이니 형亨이니라.
백성들이 기쁜 마음으로 왕의 정치에 응하면 그것 또한 이상세계다. ‘열說’은 기쁘다는 뜻이다. 학생들이 기쁜 마음으로 선생을 쫓아가면 그 학교는 제대로 된 학교다. 또 온 가족들이 아버지를 기쁜 마음으로 쫓아가면 그 집은 잘 되는 집안이다. 온 백성이 대통령을 기쁜 마음으로 쫓아가면 그 나라는 잘 되는 나라다.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지도자를 쫓아가야 한다. 이상세계의 주인공은 중정을 얻은 구오이다. 이상세계의 왕은 어떤 사람인가?
◆ 강한 것이 중정이 되어 제왕의 지위에 올라 모든 고질을 없애고 일체를 밝고 투명하게 비춘다.
강중정剛中正이 리제위履帝位이니 이불구而不疚이면 광명야光明也니라.
강剛하고 절대 치우치지 않고(中) 그리고 정말 실력 있는(正) 중정의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이제위履帝位). 그리고 부정부패가 없어야 한다(불구不疚). 구疚는 오래된 병이다. 부정부패라는 병이 있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 부정부패는 얼마나 오래된 고질병인지 모른다. 부정부패가 없고 정의의 빛을 온 세상에 비춰서 명랑하고 기쁜 광명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이런 중정의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광명으로 다스려야 이상세계가 된다.
◆ 괘상을 본다. 위는 하늘이요 아래는 연못이 있는 것을 리履괘라 한다.
상왈象曰 상천하택上天下澤이니 리履이니라
생명은 작고 약해도 강한 것을 붙잡는 힘이 있다. 그것을 풍천소축이라 한다. 그리고 하늘의 힘을 얻은 생명은 신발을 신고 기쁨으로 달려간다. 상천하택, 위에 있는 하늘은 강한 진리의 힘이고, 아래 있는 연못은 생명의 기쁨이다. 생명이 갖는 진리의 힘을 풍천소축이라 하면 힘이 솟아나는 생명의 기쁨을 천택리라 한다. 진리의 힘과 생명의 기쁨이다. 하늘(天)은 진리理의 상징이요 호수(澤)는 우리 마음을 상징한다. 그래서 천택天澤을 심즉리心則理로 볼 수 있다. 하늘의 진리와 열린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통하여 평화의 기쁨과 사랑이 충만한 것이다.
◆ 군자는 이것을 보고 상하를 분별하고 백성의 뜻을 안정시킨다.
군자君子는 이以로써 변상하辨上下요 정민지定民志하니라
위는 하늘이고 아래는 호수다.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호수에는 하늘이 비쳐서 하늘과 호수가 하나가 되었다. 하늘에 별이 반짝이듯 우리 마음속에는 도덕률이 빛나는 것을 실천이성이라 한다. 하늘에서는 진리의 별이 반짝이고 땅에서는 정의의 강이 흘러간다. 그런 이상세계의 실천을 천택리라 한다. 이상세계의 모습은 무엇인가?
변상하辨上下 정민지定民志다. 높은 하늘은 하늘답고 아래 땅은 땅답게 되어 하늘과 땅이 하나로 어울린다. 높은 지위와 낮은 지위가 모두 알맞게 자리를 잡아서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답게 제 역할을 바르게 해야 한다. 그래서 ‘정민지定民志’, 모든 백성이 각자 맡은 직업을 가지고 자기 일에 만족하면서 화평하고 기쁘게 어울려 사는 것이 우리의 꿈이다.
▲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