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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김대혁 동문
홈커밍(Home coming)이 뭘까요? 누구나 그러하듯 처음에는 홈커밍이 의대졸업 25주년을 맞아 모교를 방문하여 장학금도 내고, 그동안 못봤던 은사님들과 동기들을 만나는 행사라고 피상적으로 생각을 했었습니다. 또 의대졸업후 지금까지 결혼과 육아, 의료활동에 전념하며 각자 나름대로 험난한 인생여정을 겪어왔고, 어느덧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인 50세에 이르러, 한번쯤 살아온 인생을 회고하며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작년 1월 동기회장이 같이 일해보자며 전화가 왔길래 흔쾌히 수락하면서 다른 동기들보다 좀더 일찍 홈커밍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홈커밍 준비위원장의 중책을 맡은 이태현동기회장은 바쁜 병원업무에도 불구하고 홈커밍행사를 물심양면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는데, 특히 잊을만 하면 감성을 자극하는 훈훈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준비기간 내내 이루 말할 수 없는 노력을 계속하여 많은 동료들의 감동과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그 결과 동기회 총원 159명중 90%가 넘는 145명이 모금에 참여하였고, 동기밴드에도 139명이 가입하는 등 놀라운 참여 열기를 보였습니다.
특히 온라인상의 교류는 이번 홈커밍의 성공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이면에는 특히 ‘강남시스터즈’라는 3명의 여동기의 활약이 눈부셨는데, 그 주역인 서현주동기의 이야기를 전하면,
“의대 특성상 학생수가 많아서 6년간 같이 공부해도 얼굴만 겨우 알 뿐 서로를 잘 모르고 졸업한 동기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대다수 동기들이 졸업 25주년 홈커밍을 앞두고 반갑고 설레는 마음도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동기들을 못알아보고 서로 어색하면 어떡하나하는 마음도 솔직히 있었습니다. 동기밴드는 이미 개설되어 있었지만 그리 활성화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동기들이 눈팅만 하는 조용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홈커밍을 앞두고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고 가슴앓이했던 첫사랑, 짝사랑에 대한 학생때의 아련한 추억들이 조금씩 나오면서, 밴드 분위기가 점점 활성화되었습니다. 이렇게 봇물 터지듯이 나오는 재미있는 동기들의 이야기들을 근거로 ‘남동기 본성 분류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제목은 요상하지만 동기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폭발적인 지지로 이 작업은 동기 대다수가 밴드의 재미에 푹 빠지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이 작업은 특히 서울 쪽에서 활동하는 3인의 여동기 김남수, 김선아, 서현주가 주로 이끌었고 ‘강남 시스터즈’라는 애칭과 많은 팬들까지 생겨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전에 온라인을 통한 만남과 유대관계가 충분히 형성되었기에, 실제 대면할 때는 이미 낯익은 친구가 되어 25년간의 공백이 주는 충격이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었습니다.
2016년 1월 동기회 홈커밍회장단이 결성되었는데 전회원의 간부화를 목표로 회장 1인에 24명의 남녀부회장, 11명의 이사진, 9명의 고문단과 감사 등 총 52명이 대규모 인력이 골고루 참여하게 되어 파급효과가 극대화되었습니다. 회장단이 구성된 이후 총 13번의 준비회의와 3회의 여행지 답사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8660동무생각코러스'라는 이름으로 결성된 동기회 합창단의 활약이었습니다. 총 23명의 현역의사들이 전문음악인을 지휘자로 영입하여 약 5개월간 13회의 모임을 통해 노래과 율동을 연습하였습니다. 청도와 밀양, 포항 등 타지역의 동기들도 진료활동후 먼길을 달려와 연습에 참여하였고, 단원들이 자발적으로 음식과 물, 복사물, 노래녹음 등을 챙겨와서 연습을 도왔습니다. 처음에는 제각기 산만하던 노래가 연습이 거듭될수록 점점 조화롭고 아름다운 화음으로 바뀌었는데, 이러한 조화와 일치의 경험은 합창단 모두에게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공식적인 홈커밍 행사는 2017년 5월 19일 오후 3시, 경북의대 중앙강당에서 모교발전기금 및 동창회 장학기금 전달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행사장에는 근 25년만에 처음 만난 동기들을 비롯하여 미국과 전국 각지에서 많은 동기들이 찾아와 옛친구들을 서로 얼싸안으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올해 8660동기회에서는 모교발전기금으로 1억원, 동창회 장학기금으로 5천만원을 전달하였는데, 특히 재미 이영직동기는 본인과 최근 사별한 부인이자 의사인 고 이순기선생님의 이름으로 5만달러의 장학기금을 모교에 개인적으로 쾌척하였습니다.
이윽고 오후 7시에 사은회가 시작이 되었고, 작고한 동기인 김길동, 박춘재, 손정은, 김현식에 대한 묵념이 진행될 때에는 보고싶어도 볼 수 없는 고인들을 생각하며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이날 사은회에 참석해주신 은사님들은 모두 45분이었고 참가동기는 재미동기회 이영직, 이동현을 포함하여 112명, 모두 합쳐 157명의 참석자들이 식장을 가득 메워 역대 최고의 성황속에서 행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모두가 기다렸던 합창단 공연은 1부 마지막 순서였는데 턱시도와 드레스로 성장을 한 23명의 단원들이 줄지어 무대로 입장하는 순간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고, 첫 곡인 '우정의 노래'를 열창한 후 퇴장하는 도중에 열화와 같은 앵콜이 터져나오자 단원들은 마지못한 척 다시 무대위로 올라왔습니다. 물론 미리 짜여진 각본이었지만 관객들은 이러한 깜짝쇼에 더더욱 열광하였습니다. 두번째 노래인 '세시봉메들리'는 7분이 넘는 여러 노래에 맞춰 커플댄스와 군무가 재미있게 어우러진 정말 멋진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로서 약 5개월간의 열정어린 연습은 모두의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성공적인 공연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사은회 2부에서는 지은장학회에 대한 소개가 특히 여러 은사님들과 동기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지은장학회는 1997년 군복무중 순직한 고 김길동동기의 외동딸인 김지은양(당시 중2)의 학비를 지원하기 위해 2011년에 발족되어 현재까지 단한번의 중단도 없이 매학기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13차에 걸쳐 총 5200만원을 지원하였는데, 이 사업은 지은양의 대학졸업때까지 계속될 예정입니다.
2부 후반에는 특별한 공연이 있었는데 이 공연의 가수인 추호식동기는 약 3년간 개인적으로 판소리를 배워왔고 이번 사은회에서 처음 무대에 서는 뜻깊은 자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판소리 흥보가(興甫歌)중 '박타는 대목'을 7분 가까이 온몸으로 열창을 하여 관객들의 애정어린 찬사를 받았고, 김기연동기는 우아한 드레스에 여신같은 자태로 단상에 올라 은사님께 드리는 글을 낭송하여 관중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이어서 모든 제자들이 객석 가운데 앉아계신 은사님들을 원형으로 둘러싼 채 스승의 은혜를 제창하였는데 '스승의 은혜는 하늘과 같다'는 가사처럼 오늘의 우리들을 있게 한 스승님들에 대한 깊은 감사와 존경으로 모두가 한없이 먹먹해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다음날인 5월 20일과 21일은 여수로 홈커밍 여행을 갔습니다. 여행에 참가한 동기들은 모두 91명의 대군이었는데 버스 3대가 아침 9시에 모교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먼저 출발하고, 오후에 버스 1대가 후발대를 싣고 뒤를 따랐으며, 일부는 개인차편으로 여수로 향하였습니다.
첫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시원한 해풍을 즐기며 여수 해양 레일바이크 관광을 하였고, 저녁식사후에는 돌산대교 유람선 선착장에서 그 유명한 여수밤바다 야간크루즈에 탑승하였습니다. 한때 우리 8660동기들은 경북의대라는 한배에서 6년간을 함께 여행하였고, 그 때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맺었던 우정은 25년이 지난 지금 다시 꽃을 피워, 마침내 우리들을 재회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이윽고 해가 지면서 서쪽 하늘은 붉그레한 노을로 온통 물들었고, 하나둘 경관조명이 켜지며 돌산대교는 여수 밤바다 위에서 동화속 구름다리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여수 밤바다를 흘러가는 한 척 유람선 위에서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앉아 술을 권하며, 서로에게 못다했던 마음을 전했고, 어깨동무나 열렬한 포옹으로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기도 하였습니다. 홍안의 청년들이 25년이라는 긴 세월을 건너와 이제 반백의 머리를 하고 다시 만났습니다. 25년만에 다시 서로에게서 느끼는 이 벅찬 동질감과 동료애는 남은 인생동안 우리들의 우정이 변함없이 유장하게 이어지리라는 강렬한 예감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서로에게 따뜻하게 녹아든 2시간여의 크루즈여행이 어느새 끝나고, 회포를 풀기에는 턱없이 짧았던 항해에 대해 아쉬워하며, 우리 일행은 숙소인 여수 앰블호텔로 향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오동도 산책이 있었습니다. 오동도는 여수시에 인접한 작은 섬으로 예전에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동도로 불리게 되었고, 현재에는 동백나무 군락이 유명한 아름다운 섬입니다.
전날 밤늦게 무리한 동기들은 아직 꿈나라에 가 있었지만, 아침 일찍 일어난 친구들은 조식 후에 자유롭게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동도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오월의 청명한 날씨와 맑고 투명한 바닷바람 덕분인지 섬에 있는 나무들은 각자 신비한 신록으로 빛나며 우리들을 맞아주었습니다. 짧은 산책이었지만 모두들 살아온 시간을 잊고 학창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벗들과 어울려 숲길을 걸었고, 담소를 나누거나 친구들 또는 호감있던 남녀동기끼리 사진을 찍으며 잠시간 못다한 연애소설의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하였습니다.
마지막 점심식사를 하던 중에 사은회에서 판소리를 했던 추호식동기가 친구들의 열화에 못이겨 흥보가중 ‘가난타령’을 구성지게 한 곡조 뽑아내었습니다. 이 ‘가난타령’은 가난으로 고통받는 현실을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한을 노래하는, 흥보가 중에서 특히 비장미가 빼어난 대목인데, 25년만에 만난 친구들을 보내기 싫지만 보내야하는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한 우리 동기들의 심정과 딱맞아 떨어져서일까요, 추호식 동기가 술기운과 비탄한 심정을 버무려 뜻밖의 열창을 하게 되면서 분위기는 갑자기 숙연해졌습니다. 이후 이태현회장이 소감연설를 하던 도중 결국 참아왔던 눈물을 왈칵 쏟게 되었고, 이를 시발점으로 여기저기서 훌쩍훌쩍 여동기들의 울음이 터져나오고, 일부 남동기들도 눈시울을 붉히며 시린 가슴을 안고 서성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먹먹한 분위기에서 겨우 식사를 마치고 일부 동기들이 먼저 떠나게 되면서 서로 뜨거운 악수와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었고, 만난지 3일만에 다시 헤어져야 하는 현실은 서로서로를 이산가족처럼 애틋한 마음으로 배웅하게 만들었습니다.
홈커밍여행이 끝난 뒤 동기밴드에서는 전보다 더 많은 글들이 올라오며 여행에서 못다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커밍아웃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번 25주년 모교 홈커밍은 동시에 우리들 인생의 50주년 홈커밍이 되었고, 홈커밍을 통해 배운 평등안(平等眼)으로 서로의 마음속에서 금강석처럼 변치않을 우정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에 나오는 멋진 싯귀처럼 우리 동기들 모두가 서로서로 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귐을 길이 맺어, 훗날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며, 끝으로 홈커밍을 위해 누구보다도 헌신한 이태현회장님과 밴드스타 강남시스터즈 여동기님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첫댓글 저가 7월에 숙제를 내야 된다고 해서, 분위기 파악 안하고 급하게 올렸습니다, 유명작가나 시인의 글이 아닙니다,
동문 잡지에 실린 글인데 같은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 글이라서 저는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본인은 아직 등단도 안했고 의수협에 활동할 여건이 안된다고 하셔서 저가 글을 올려도 되는지 망설었습니다. 좌충 우돌하는게 제 특기입니다. ㅋ
의대 동기들의 우정이 참 소중하고 멋집니다. 부럽기도 히구요. 글의 곳곳에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피드백을 해 주기로 했습니다, 글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들을 해주시면 전달하겠습니다~
큰 행사를 성공적으로 하려면 뒤에서의 수고와 땀이 밑걸음이 되어야 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네요. 25년만에 만나서 추억을 되살리는 감격스러운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기도 하고요.
이글을 읽으며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실지 모르겠는데,
동기 유자녀에게 장학금을 주는 뜻깊은 일을 하시던데, 이 부분을 좀더 기술하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했다면 제3자에게 더 많은 공감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훈훈한 동기애가 가득한 감동적인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깊이 있는 조언 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잘 전달하겠습니다. 꼼꼼하게 읽으셨네요. 댓글에 그런 마음이 보입니다 , 글 쓰신 선생님이 좋아하시겠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홈커밍이었군요. 7년전 제 25주년 홈커밍을 생각해보니 너무 약소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