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8. 1.) 작곡가 김동진 선생이 타계하셨다.
해설자께서는 추모 시간을 갖고 싶다며
생전 김동진 선생과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첫 순서로 신영옥이 부르는 가고파를 들려주었다.
경희대 교정에서 있었던
호세 카레라스 내한 공연 실황이었다.
소프라노 가수가 부르는 가곡은
발음이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이 '가고파'는 바리톤으로 들어야
제 맛일 듯하다.
1933년, 김동진 선생이 스무 살 되던 해 작곡한 곡이
이은상 작사의 이 가고파 4연이라고 한다.
그보다 앞서 열일곱 살에는
김동환 작사 '봄이 오면'을 작곡하였다 한다.
3절까지 가사 하나하나가 참으로 가슴을 저미는 곡이다.
올봄 예산 봉수산에서 이 노래를 얼마나 불렀던지.
96세로 타계하셨는데
선생의 집이 옥인동이라서
세검정이 집인 해설자는
선생이 거리를 지나다니는 모습을
우연치 않게 본 적이 많았다고 한다.
왜소하고 초라한 할아버지 모습이었다며,
그렇지만 저분이
'가고파'나 '호수' 같은 명곡을 작곡한 분임을
누가 알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세월이 그런 게 아닐까.
한참 전, 무릉형님을 따라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이라는 동시를 쓴
박경종 선생을 뵌 적이 있다.
양로원에서였다.
그때도 그런 느낌이었다.
당시 이미 90이 넘으셨는데
떨리는 손으로
찾아간 사람들에게 일일이 글을 써 주셨다.
해설자는 문화 예술인의 타계 소식을
우리 언론에서 너무 소홀하게 다룬다고
맹비난을 하였다.
추모 특집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제작해
고인을 추모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
그게 안 되니 당신이라도 이렇게
추모의 시간을 마련한다며
가고파를 들려 준다.
................................
요하네스 브라암스(1833-1897)
브라암스는
해설자가 40대 중후반에
엄청나게 몰입했던 음악가라 한다.
그리하여 브라암스 음반이라면 무조건 사들여서
음악계에서 브라암스 하면
그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할 정도였단다.
1992년인가 혼자서 브라암스의 여정을 따라
유럽을 여행하던 중
함부르그에 가서 브라암스 생가를 찾았는데
집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더란다.
너무도 허무하여 서성이다가
작은 비석 하나가 브라암스의 생가터임을 알려주고 있는 걸 발견하고
감회가 뭉클하였다는데,
브라암스는 가고 차가운 돌비석 하나만 남아
멀리서 온 객을 맞이하는 것이
인생무상, 예술영원을 실감케 하였다나 어쩐다나......
하여간 말씀도 잘하신다.
예전 산성동에 살 때
브라암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물론 라디오로 들었는데
음악을 듣는 동안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깊은 물속에서 물방울이 뽀글뽀글 수면 위로 떠올라
팡 팡 터지는 듯한 느낌,
바로 그 물방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세상이 달리 보였다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다시 들어보지 않았다.)
.....................
브라암스는 스무 살 때까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연주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아버지가 세 번째 결혼한
열일곱 살 연상의 어머니를 심하게 구박하는 것을 보고 자라
가정적으로 그늘이 많았단다.
"멘델스존을 들으면 그냥 화사하고 밝아요.
귀에 들어왔다가 바로 나가버려요.
깊은 통곡이 없기 때문에,
마음의 그늘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음악이 나온 거지요.
그러나 브라암스는 들을 수록
가슴 깊은 곳의 무언가를 건드립니다.
북독일의 음습한 풍토와 가정의 잿빛 그늘,
아마 이런 것이 브라암스 음악에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모친 사후에 도이치 레퀴엠을 작곡했는데
불행하게 살았던 어머니에게 바치는 진혼곡이지요."
"브라암스 음악은 절제하고 또 절제하고,
차고 넘치는 게 없습니다.
음악 역시도 고치고 또 고치고......
세상에 어떤 작곡자가 마흔 넘어 교향곡을 처음 작곡합니까?
모짜르트나 슈베르트는 즉흥적으로 작곡을 했습니다만
그래서 태작이 더러 있습니다만
브라암스는 64년 생애동안 125곡을 작곡했는데,
어느것 하나 버릴 게 없습니다.
그만큼 심사숙고하고 진중하게 작곡했습니다.
최선의 결과를 얻을 때까지 고치고 또 고쳤던 거지요.
그랬기에 농도 짙은 여운을 남기는 음악이 나왔던 겁니다."
브라암스가
클라라 슈만과 결혼하지 않았던 것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가을에서 겨울에 어울리는 음악이
바로 브라암스란다.
브라암스와 도스토예프스키도 잘 어울릴 것 같다.
겨울이면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던 때가 있었다.
..........................
브라암스는 20세 때 슈만의 집에서
헝가리에서 온 바이올리니스트 레미니를 만나
유럽을 함께 여행하는데
이때 헝가리 집시 음악에 관심을 두었다 한다.
이로써 탄생한 곡이 헝가리안 댄스.
처음에는 피아노 이중주곡으로 작곡했는데
후일 출판인의 권유로 관현악곡으로 편곡하였단다.
집시 음악을 편곡했을 뿐
자신의 창작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브라암스는 이 헝가리안 무곡에 작품 번호는 붙이지 않고
일련번호만 붙였다고 한다.
첫 번째 들은 곡이 헝가리안 댄스 1번, 5번, 6번.
니클라우스 하노코트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였다.
아련한 선율의 1번은 지휘자 정명훈이
앵콜곡으로 즐겨 연주하는 곡이란다.
두 번째로 교향곡 1번을 들을 예정이었지만
김동진 선생 추모 시간을 갖는 바람에 생략.
(다음 날 kbs의 다시듣기로 교향곡 1번을 들었다.
교향곡 10번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베토벤의 영향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다음으로 들은 것이 바이올린협주곡 D장조. 작품번호 77번.
이착 펄만의 바이올린과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였는데
45분이 어찌 지나갔나 싶게 몰입하여 들었다.
지팡이 두 개에 의지해 무대에 나와
자리에 앉은 이착 펄만.
연주가 끝났을 때 그의 얼굴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브라암스에게 베토벤이 모델이었다면
이착 펄만에게는 하이페츠가 그랬으리라.
연주 도중 스스로 경이에 찬 표정을 지을 때 그는
어쩌면 하이페츠가 들어도 만족했으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착 펄만은 하이페츠 사후 그를 회고한 글에서
"그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내가 지금 신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했단다.
브라암스는 이렇게 말했다.
"악보에 음표를 찍으려 할 때마다
베토벤이 나를 쳐다보는 걸 느꼈다.
베토벤이 그만하면 되었다고 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쳤다."
브라암스는 4개의 협주곡을 남겼는데
첼로 협주곡을 쓰지 못했다.
브라암스는 1896년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을 듣고 감탄하며
자신도 첼로 협주곡을 쓰고 싶어 했으나
그로부터 4개월 후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브라암스의 육성 테이프를 라디오에서 잠깐 들은 적이 있다.
느낌으로 보자면 남저음 목청이어야 할 듯한데
뜻밖에도 가늘고 불안한 고음이었다.
올가을에는 브라암스를 들어봐야겠다.
우선 피아노협주곡부터......
2009. 홍차 |
첫댓글 음악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네요.
음악가들 살았던 이야기가 재미있지요. 그 시대 이야기며......
'가고파'는 고1 시절 교내합창대회 때 우리반 합창곡이었지요. 딴에는 고상하게 부르겠다고 폼잡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가고파, 이제서야 폼 잡고 부를 만한 곡이지요.
노니는 모습 뒤에 그림자 처럼 붙어 있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