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작가 몇 명을 살펴보자.
1) 도널드 저드(D.Judd 1928~1994)
미주리 주 출신으로 46-47년에 한국에 미군으로 근무한 경력도 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철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하였다.
1950년대에는 추상미술을 하였다.
63년부터 상자와 같이 똑 같은 직사각형 형태를 벽에 부착하므로 사다리처럼 설치하므로 유명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무로 작품을 하였으나 63년도에 성공을 거두므로 금속을 재료로 사용하였다.
1973년부터는 텍사스로 이주하여 작품을 하였다. 자신은 폴록, 스틸, 뉴먼, 로스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다.
저드의 작품 경향은 66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나무보다는 알루미늄, 황동, 도금된 철 또는 강철로 제작하였다. 이전 작품보다 좀 더 규칙적이고, 산업적이다.
1966년 이후에는 죽을 때까지 그의 작품은 같은 원리로 제작하였다. 개방형 상자 구조, 재료의 면이 평평하고, 같은 단위를 반복하였다. 고유 또는 채색된 색채로 하였다. 이러한 원리로 여러 변수들을 끊임없이 재조정하면서 작품을 제작하였다.
2) 로버트 모리스(R.Morris 1931~
미국 미주리주 출신으로 캔사스 시티와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술 공부를 한 미니멀리즘의 대표적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부분이 모여서 전체를 구성하는 질서를 거부하고 각 부분들은 서로 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단순한 오브제를 기교 없이 그대로 발표하므로 극도로 지적인 작품을 제작하였다.
60년대에는 퍼포먼스도 선 보였다. 대지 미술과 환경 미술에도 참여하였다.
그의 미술 이론의 기초는 “단일한 형태”라고 부르는 기초적 구조이론을 주창하였다.
그는 조각은 회화와는 별개라고 생각하였다. 조각(대상)과 관람자의 관계를 불변의 관계가 아니고 항상 장소에 따른 시각의 정의에 종속되는 것(메를르 퐁티의 ‘지각 현상학’)이라고 하였다.
관람자는 배치된 조각들 사이로 돌아다니면서 감상을 한다. 따라서 감상자가 어느 위치에서 감상하느냐에 따라서 인식에 차이가 나타난다.(다르게 인식한다.)
모리스의 작품은 하나의 배치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위치를 바꿀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다.
3) 칼 안드레(C. Andre 1935~
마사추세트주 출신이다. 브랑쿠시의 제자로서 그의 영향을 받아서 나무로 조각을 시작하였다. 1966년에 뉴욕의 유태인 미술관에서 열린 기초적 구조‘전에 139개의 내화 벽돌을 각각 분리시켜서 일렬로 배치하였다.
회화는 우리에게 환영을 일으킨다. 인물상 조각도 인물로 형상화되어서 우리에게 인물에 대한 환영을 일으킨다. 안드레는 조각에서 그 환영을 없애려 하였다.
안드레는 가공한 재료를 사용하였다. (벽돌, 철판 등) 이러한 재료를 단순히 결합시키기만 하였다. 그러나 묶고, 붙이고, 용접하고, 나사나 볼트로 조여서 결합시키는 방법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린버그는 이런 종류의 조각을 반대하였다.
“이들 조각은 기껏해야 좋은 디자인과 같을 뿐이다. 최악의 경우는 터무니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이들 작품은 지나치도록 관념의 산물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라는 뜻으로 말하였다.(그림이나 조각은 간단하게 하여 놓고 작품의 설명을 관념적이고, 사념적으로 요란하게 한다는 뜻이다.)
안드레는 자신이 발견한 이 기법을 거의 변화시키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4) 댄 플래빈(1933~
뉴욕 태생이다. 공군 기상 전문가를 위시하여 여러 기술직에 근무하였다. 1959년도에 비로소 미술의 길로 들어섰다.
기술적 분야를 공부한 경험을 살려서 형광등 불빛과 네온 불빛을 이용하여 정적인 환영을 창조하였다. 1960년에 메소나이트 상자의 표면을 단색으로 칠하고, 모서리에 전구를 달아 빛 성상(light icon)의 연작을 발표하였다. 일반적으로 진동하거나 번쩍이는 빛의 효과를 피하였다. 미니멀 아트가 추구하는 단순하면서도 꾸밈없는 표현을 선호하였다.
플래빈의 작품은 대부분이 도판으로 보기가 어렵다. 플래빈의 작품은 공간을 차지하는 효과를 보아야 한다. 도판으로는 그 느낌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빛이 공간에서 만들어 내는 효과는 회화와 유사성을 갖는다.
플래빈의 작품에서 회화성을 거론하는 이유에는 작품이 벽에 부착되므로 회화적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작품이 회화적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플래빈은 형광등 같은 산업적 제품을 재료로 사용하므로 “ ready-made"의 범주에 넣기도 한다.
플래빈은 1963년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기법에 거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또 하나는 작품의 설치에 장소를 아주 중요시 한다. (설치 미술에는 장소 특징성(site-specific)이라는 것이 있다.) 플래빈의 작품에는 이 장소 특징성이 해당한다.
5) 솔 르윗(S. Lewitt 1928~
미국의 코네티컷 주에서 출생하였다. 1965년에 뉴욕의 대니얼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전시회에 초대를 받으므로 미니멀 화가의 반열에 오른다.
알루미늄의 대들보 위에 에나멜을 쒸워서 구워 만든 작품을 선보였다. 틀도 없고, 유리도 끼워 넣지 않은 다중의 칸막이 구조물이 르윗 작품의 대표적 구조물이다. 이러한 형태의 구조물로 인해서 저드, 로버트 모리스와 더불어 미니멀리즘의 대표 작가로 꼽힌다.
르윗 작품은 구체 미술처럼 수학적 공식에 의하지 않는다.(* 구체 미술--원래는 구상 계열의 미술을 뜻하였으나 현대 미술에서는 그 개념이 다르다. 수학적 원칙에 의거하여 부분들 사이의 비율과 관계를 결정하는 기하학적 추상을 말한다. 구성주의의 한 형태로 인식한다.
최근에는 기하학적 추상미술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한다.)
르윗의 작품은 시각적으로 질서 정연함이 느껴지나 해석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론은 적용할 수가 없다. 감상자가 작품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보도록 만들었으므로 작품과 감상자의 공간적 위치에 따라서 느낌이 다를 수 있다.
사람들은 르윗의 조각이 개별적이고, 관계없는 사물로 실재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러한 미술 개념에서 발달하여 개념미술로 나아간다. 실제로 르윗이 개념 미술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6) 리처드 세라(1938~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생이다. 철공장에서 일하여 번 돈으로 미술 공부를 하였다.
1966년에 뉴욕에서 처음으로 전시회를 가졌을 때는 고무 네온판 등으로 작업하였다. 이후에는 녹인 납, 철판 등을 이용하여 최소의 가공을 하였다. 중력에 의한 구조물 설치를 원칙으로 하였다.
나중에는 조각이 점차로 거대해져 갔다. (규정된 건축 기술 규약을 무시하고 중력에 의하여 설치하므로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공공 구조물은 설치 장소가 중요하므로(공간성) 대지 미술적 요소도 지녔다고 한다.
7) 에바 헷세(1936~1970)
독일 태생의 유태인으로 미국에 와서 활동하였다.
부모는 이혼을 하였고, 히틀러의 유태인 학대를 피하여 가족이 미국으로 도망왔다. 유년시기에 어머니의 자살도 경험하므로 힘든 시련을 겪어야 하였다. 예일에서 미술 공부
1964년 이후에 좌대가 없는 조각을 하면서 미니멀리즘에 참여하였다.
안과 밖의 구성을 바꾸므로 내부<->외부의 개념을 부정하였다. 비고정성의 섬유 밧줄이나 실을 벽에 무정형으로 걸어두거나, 늘어뜨리는 작품을 제작하였다.
뇌종양으로 일찍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