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보다 진한 돈
웹 에세이 작가 노자규는 “종점”이란 작품에서 자식들을 위해 희생한 추억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회한을 그렸다. 아버지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자신이 모아온 재산을 나눠주기 위하여 흩어져 살고있는 자식들을 찾아 나선다. 그는 친구의 보증을 서준 잘못으로 쫄딱 망했으므로 부모를 도와달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모두가 어렵다는 핑계를 대면서 부모를 짐스럽게 귀찮아하며 문전박대하는 모습들을 보고 전 재산을 불우한 이들에게 기부하기로 마음 먹는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피보다 돈이 진하다고 여기는 태도에 크게 실망하면서도 아내에게는 자식이 부모의 내리사랑을 품어보지 못해서 철없이 구는 것이지 우리를 버렸다고는 상처받지 말자고 위로한다.
이처럼 피보다 돈이 더 귀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2013년 인천에서 형제를 두고 있는 어머니가 자신의 소유 건물에서 세를 받아 비교적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둘째 아들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어머니가 등산을 갔는데 돌아오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에서는 수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둘째 아들도 어머니를 찾으러 나선다고 하면서 형의 차를 운전하고 다녔는데 경찰에서는 이러한 행동을 의심하게 되었다. 형도 소재가 불명인데다가 그 차의 블랙박스를 조사해보니 전부 지워져 있었다. 그래서 둘째 아들을 용의자로 특정하고 신문을 하여 자백을 받아내었다. 도박을 하다가 빚을 지게 되었는데 어머니가 심하게 꾸짖자 끔찍한 마음을 먹게 된 사건이다. 어머니만 없으면 어머니의 돈을 차지하게 될 것 아닌가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였고. 또 어머니의 재산을 혼자 차지 하려면 형도 없애야겠다고 범행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결국 어머니와 형의 시신을 발견하였으며 둘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아무런 재산도 갖지 못했다.
서울 송파에서 아버지와 남매가 살고 있었다. 이들 남매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남은 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아들은 결혼을 하여 분가를 하였고 누나는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병든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살았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아버지가 생전에 정신이 온전할 때 남매를 불러 놓고 이야기를 했다. 아들에게는 결혼할 때 전셋집이라도 얻어 주었는데 누나는 결혼도 못하고 아버지를 모시고 살림을 하고 있으니 아버지 명의로 되어 있는 33평짜리 아파트는 딸에게 주겠다고 했다. 그 당시는 아파트값이나 아들에게 준 전셋값과 사업자금등이나 비슷했기 때문에 아들은 별다른 불평 없이 동의를 하여 소유권 이전까지 마쳤다. 그런데 2022년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갑자기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19억이나 되어버렸다. 그러자 남동생이 누나를 찾아와서 돈을 얼마라도 나눠달라고 했다. 누나는 남동생에게도 아버지가 전세값 뿐만 아니라 그동안 사업자금도 많이 주었는데 그 돈 모두 어떻게 하고 자기한테까지 손을 내미냐고 거절했다. 남매가 옥신각신하며 싸우다가 남동생이 누나의 목을 조르고 머리를 쇼파 모서리에 여러번 찧어서 구급차에 실려갔다. 한달후 누나는 깨어나지 못하고 그 충격으로 사망하였다. 남동생은 이왕에 일을 저지른 것을 돌이킬 수도 없다고 생각하고 누나가 실수로 머리를 다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아파트까지 상속받을 욕심이었으나 결국 19억짜리를 차지하는 대신 18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귀하게 키운 외아들이 아직 공부하는 대학생인데 아가씨를 부모에게 데려와서 결혼할 여자라고 소개를 하였다. 시아버지는 두 사람에게 지금은 공부할 때이니까 학교를 마치고 결혼하라고 타일렀다. 그때 아들이 어머니에게 드릴 말씀이 있다고 아가씨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잠시후 밖으로 나온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아가씨가 임신을 했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순간 당황했으나 어차피 손이 귀한 집인데 차라리 잘되었다고 판단하고 아가씨 부모와 상견례를 하게 되었다. 결혼을 시키면서 시부모는 아이까지 임신한 며느리가 볼수록 예쁘게 여겨져서 아들의 명의로 아파트를 사주었다. 그런데 이들에게 결혼한 지 불과 두 달이 안 되어서 커다란 불행이 닥치게 되었다. 아들이 학교에서 귀가하다가 심정지 상태로 사망하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요점만 정리하고자 한다. 청천벽력같은 슬픔에 시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새댁인 며느리도 실의에 빠졌다.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은 살기 마련인지 시부모는 서서히 충격을 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아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며느리가 잉태한 손주가 태어날 날을 손꼽으면서 희망을 가져보았다. 그런데 한동안 집을 비우고 친정에 가 있던 며느리의 태도가 수상했다. 연유를 알게 되자 시부모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에 거의 실신 지경이었다. 며느리가 친정 부모들의 설득으로 낙태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유산된 것이 아닌가 했으나 며느리 부모들이 자식의 장래를 생각해서 설득했다고 하면서 부모의 심정으로 이해를 해달고 용서를 구하였다. 그러나 시부모는 냉정한 마음이 되어 아들 명의로 되어 있는 집을 다시 시부모에게 돌려 놓고 인연이 여기까지니 새출발하라고 통고하였다.
이에 며느리는 물론 친정 부모까지 나서서 위자료 조로 집이라도 가져야 살지 않느냐고 거절했다. 결국 법정 다툼으로 비화하였다. 법원에서는 남편이 사망했으므로 며느리가 상속 1순위가 되는데 복중에 태아도 같은 1순위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태아를 자연 유산이 아니고 낙태한 것이므로 동 순위 상속인을 며느리가 살해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며느리는 상속결격 사유가 되어 집을 상속받지 못하고 후 순위인 시부모에게 상속된다고 판시하였다. 이상과 같이 세상은 피보다도 돈을 중심으로 진하게 요동치며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