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가족은 곧잘 ‘사랑의 원천’으로 그려지지만, 사실 가족만큼 골치 아픈 사람들도 없지요. 미움과 갈등을 처음 배우는 집단이기도 하고요. 가족이란 어쩌면 당연히 사랑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최선을 다해 ‘사랑해보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들’일 겁니다. 어차피 가장 가까운 인연으로 맺어졌으니까요.
단편영화로 실력을 다져온 이지은 감독의 첫 장편 ‘비밀의 언덕’은 누구나 몰래 감춰뒀을 법한 가족에 대한 비밀스런 생각을 11살 소녀의 눈길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명은’은 가족이 부끄럽습니다. 생활에 쫓겨 품위나 인정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부모가 창피하고 잘난 척만 하는 오빠가 재수 없습니다. 집안의 생계수단인 젓갈 가게는 친구들이 볼까 두려운 냄새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명은은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지요. 다른 멋진 부모를 만들어내고, 가상의 가족을 소재 삼아 글솜씨를 발휘하며 상상의 공간을 현실로 바꿔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픈 가족사를 가진 쌍둥이 자매가 전학 왔는데, 이 아이들은 짠한 자기네 가족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교내 백일장의 스타로 떠오릅니다. 명은의 글짓기 라이벌이 등장한 셈이지요. 친구를 시샘하듯 부러워하며 명은의 글쓰기는 달라집니다. 가족에 대한 부끄러움을 솔직히 표현한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미운 심정이 가득했지만, 처음으로 가족을 똑바로 바라본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어째! 명은의 작품이 지역 대회에서 대상으로 뽑혀 신문에 실리게 됐네요.
“제 솔직한 마음 때문에 가족이 상처받을까 봐 겁나요.”
자기 글을 읽고 속상해할 엄마 아빠의 얼굴이 떠올라 명은은 어쩔 줄 모릅니다. 상을 포기하려 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명은의 가슴 깊은 곳 ‘비밀의 언덕’에 묻어둔 가족을 향한 못마땅함이 어느새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는 과연 딸의 글을 읽게 될까요?
사랑이란 온갖 시련을 거쳐 성장하는 살아있는 교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의 사랑도 마찬가지겠지요. 고까운 게 있으면 원망하고, 고백할 게 있으면 털어놓고, 감출 것이 있으면 서로를 위해 숨기면서 그렇게 연민을 키워가는 공동체가 가족 아닐는지요. 오늘 소개하는 저예산의 소박한 영화가 가족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한결 풍부하게 해주리라 확신합니다.
글 _ 변승우 (명서 베드로, 전 가톨릭평화방송 TV국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