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공 후손들의 고향 용산(용호리)
주부공 후손들의 고향인 용산은 백제시대에 두잉지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연기현에 속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연기현 동일면의 지역이 되었다. 「여지도서」에 충청도 동일면 방리편에 용호리와 관련된 용산리, 용당리, 부암리 등의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1895년 23부제 실시로 공주부 연기군 동일면에 속했다가 13도제 실시로 충청남도 연기군 동일면이 되었다. 1914년 연기군 동일면 이현리,용계리,용연리와 합강리의 일부가 병합하여, 용호리라 하여 연기군 동면에 편입 되었다.
해방이후 용호리는 몇 차례 행정구역이 변화된다. 1950년대 초반까지 1리에 5개반을 두었다가 6.25 전쟁 후에는 3개리로 나뉜다. 1966년경에 다시 1리로 통합되고 이장 1명과 서기 1명을 두어 행정업무를 담당하다가, 1979년 3개리로 편제 되었다. 주부공의 후손들이 주로 거주한 곳은 하룡마을로 행정상 1리에 속한다. 용호리는 연동면에서 가장큰 면적을 차지했고, 2012년 세종시의 출범으로 용호3리가 분리 다솜리로 신설되어 기존의 용호리는 1, 2리만 관할하게 되었으며, 현재 세종시 연동면 용호리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용호 1, 2리는 용호리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여 연동면 관할의 리가 되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5-3생활권에 해당되며 개발이 완료된 후 동으로 전환된다. 생활권의 마을 명칭은 ‘미리재마을’이며, 용호 1, 2리의 여러 고유지명중 조음의 효율성을 고려하여 미리재를 활용해 붙여진 이름이다(자료출처 : 연동면 발행 연동면지 용호리편).
용호리에 거주하는 성씨는 결성장씨, 진주강씨, 부안임씨가 대부분이며,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의 성」에 용호리 결성장씨는 동족마을로 기록되어 있다. 주부공의 후손들은 주로 마을주변의 농경지 및 인근 마을인 문주리앞의 동진들에서 농사 지으며 살아 왔으나, 세종시 출범으로 마을 전체가 수용되어 현재는 마을이 없어지고 개발이 진행 중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고향을 추억하고, 후손들이 선조들이 살아왔던 생활 터전을 사진 속에서라도 느낄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기존의 마을 사진과, 세종시 출범 직전까지 살아왔던 종중원들의 주택 사진을 이곳에 옮겨 놓았다(자료출처 : 연기군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지원사업소).
종중원들의 주택 사진은 분량 관계로 이곳에 옮기는 것을 생략 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