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시도 답사 후기
26년전인지 오래전에 ㅇ거사님과 대천에서 배를
타고 원산도(40분(?) 소요)를 답사한 적이 있다.
그 때 언젠가 삽시도를 답사하리라 마음을
먹었으니 시간이 지난후 이제야 답사를 가게
되었다.
4월달에 새차가 나오면 일행을 모시고 함께 절과
섬,바다를 순례할 수 있는 봄날의 꿈을 머금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되 기획을 하게 되었다.대천항,
1시간전에 예매하고 20분전에 선착장 입구에 가니 안내가 왜리 늦게 오냐 소리쳤다. 나는 내
구형(30년된 수동 손목시계) 시계를 번개 속도로 쳐다 보니 정확히 20분전이었다.
"안 늦었는데요?" 라며 대꾸했다. 승선 인파와 함께
뒤로 승차하는 것이 여간 조심스러웠다. 스마폰을
보니 구형 손목시계가 6분이 늦었다. 운항선 배는
바다 풍랑과 태풍을 피하기 위해 승선,운행 시간을
철두철미하게 지킨다.
30분이 지나며 머리가 지끈한 것이 조금 어지러웠다.
부산~시모노세키 밤12시간을 달려 참고 이겨낸
역사를 되짚으며 이까짓 배멀미 하며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 줬다. 자신을 위할자가 진정 자신이다.
내리자 마자 대나무숲 섬속 절을 찾아 참배했다.
관세음보살님과 용왕님,남순동자님께 이틀간의
순례를 무사하게 도와주십사 하고 기도했다.
바로 인근 밤섬 해수욕장을 찾았다. 오후 3시 20분의
햇살은 마냥 따스했으나 중급의 미세황사에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더했다.
사실 바다를 고1때 처음 봤고 섬은 그 후로 아마
10년은 지나 봤으리라. 그 호기심과 신기함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드넓은 바다하며 출렁이는 파도소리
하며 천상낙원이 아닌 바다 낙원이었다.
허공,바다,소리가 어우러진 진경이요,환상이었다.
밤섬해수욕장은 저녁 햇살이 사선으로 퍼져 2월의
지는 볕으로 제법 밝게 모래 해변에 스몄다.비수기인 연유로 인적이 전혀 없었다. 거의 독무대, 나의 독무대였으니 지구별의 주인공이라 어찌 선언치
않으랴.
서해바다의 일몰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황금빛
황홀경이다. 하루를 마감하는 그 짧은 여운,
마지막까지 타는 정열은 가히 무대의 피날래를
장식하는 장엄한 각성의 현장이 되는 것이다.
황금노을 서정의 최고 숭고함, 그 자체였다.
해가 진 후에도 그 여운은 한참을 이어졌다.
낮과 틀리게 어두운 밤이 되니 서북풍이
제법이거니와 차가워 손이 시리기 까지 했으니
손ㆍ발 뜨시게가 제법 유효했다. 이 밤이
깊어가면서 춥고 힘들은 중생들을 헤아리시는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니,나 역시 남순동자가 되어 그들의 고뇌에 한참 다가갈수 있었다. 내가 춥고
서러워야 힘든 남들의 세계도 인정하는 계기가
된다.
답사 명목이었는데 인적없는 바다는 호젓함과
간절함, 바다의 장엄함과 파도의 함성을 온 몸으로
듣는 어둠속의 장중함 바로 그 분의기였다.
뭍과 바다, 밝음과 어두움,군중과 혼자 그 양면을
헤짚어 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서해 황혼을 온전히 만끽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저녁공양을 뜨시게 해야 하는데 바람이 거세게
불어 도저히 가스불을 켤 수도 없고 도무지 해풍에
어찌할 도리가 없어 비상시를 대비해 가져온
송편을 몇개 먹어 요기를 했다.
낮에 일찍 절에 들어 편히 쉴 것을 괜스래 서녘
황혼에 취해 가는지도 모르게 시간을 써 절에
갈 수도 없고, 바다 언덕을 피해 선착장 창고를
낮에 봐둔 기억이 나 그 선착장으로 갔다.
다행이 화장실 물이 있어 양치질이 가능하겠다
싶었다.
바람이 더욱 세고 추었다. 차안에서 뜨신
손발 패드를 깔고 손에 쥐었으나 바닷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다. 내일 영하 5도로 내려간다는
뉴스를 보니 지금 엇비슷 날씨온도 이리라.
폭풍이면 어떠랴, 파도소리나 실컷 듣자 했던
나는 찻고 쇠붇이 부딪는 소리와 어디 방향인지
이름모를 금속성 아귀소리인듯, 깨지는 소리인듯
타클라마칸 사막을 걷고 지새던 삼장법사가
불현듯 생각 났다.
철야정진도 하는데 바닷가 관세음보살님과 용왕대신이
머무는 이 천혜(?)의 도량을 어찌 인식하지 못하랴.
20여분이 지나자 파도가 치는데 선착장 내 있는 곳까지
용이 꿈틀대듯 바람과 섞여 때리는데,바다가 좋다
좋다 하며 평시 간직했던 관념이 부서져 휘청이는
차 요동에 조금 두려움이 앞섰다.운전석에서 침낭을
걸쳐 지새우려던 다짐이 흔들렸다.
30여분을 태풍과 파도소리에 집중하며 전화기를
보니 충전이 끝나가고,더구나 충전선이 고장나
전화기가 방전될 상황이었다. 밤이 늦어 어찌하랴.
비수기라 온 숙소가 폐쇄되고,여름 장사라 주인들이
겨울에는 뭍으로 돌아 갔다는 전언이다.
차박으로 기도하며 지낸다 해도 전화가 방전되니
안심이 안됬다.
문닫고 육지로 떠난 펜션의 간판에 전화 번호가
있었다. "사장님! 오늘밤 태풍이 심한데 창고나
헛간이라도 하루 묶게 해 주세요. 침낭은 있으니
바람만 피하면 아침 일찍 나가는 배 타려는데요"
"아~어쩌지요? 창고는 잡동산이 짐이 가득차고
건물 뒤편 바람이 덜한 곳에서 쉬시지요"
한 쪽 벽이 태풍을 막아 섰지만 여기도 장난이
아니었다. 일찍 절에 들어 두발 펴고 편히 잠이나
잘 것을 .... 그 놈에 서녘 황금노을 본다고
빽시리 서해 광풍을 맞게 됬으니.
이 바다 언덕위에서 무섭게 불어오는 서북풍
삭풍을 맞는 일이 내 팔자에도 있으니까 맞겠지
하며 스스로 위로했다.
부처님은 설산에서 영하 30도~영상40도를
오르 내리는 가운데 극한 고행을 거듭하셔 인류
구제의 대원을 성취하셨는데 배타고 차타고 와
바람막은 차안에서 고행이랍시고 스스로 간주한다면
부처님이 얼마나 비웃으실까.
관세음보살을 염했다. 극한의 위험에서 중생구제의
대원을 보여주시는 관세음보살님. 바닷가 비탈진
바윗가에 대숲으로 장엄된 도량 보타낙가산.
내가 지극한 일념으로 찾는 곳이 바로
보타낙가산이다. 내가 일념을 바쳐 정진하는 도량이
관음보살 상주처다.
침낭을 덮었지만 냉기가 차에 스며 몸을 움츠리게
했다. 그래도 손안,발바닥에 핫팩을 감싸 버틸 수
있었다. 부처님은 고통속에 시현하시고, 관음보살은
난경에 강림하시는 법이다. 서해 섬 답사하는 일정속
꼴에 수행ㆍ고행이라 한다면 역대 조사들이
그 얼마나 등을 돌리시겠는가.
추위가 엄습해 쪼그린 체구로 잠을 자는듯
마는듯, 관세음보살님은 이근원통 수행으로
들리는 그 모두를 안으로 갈무리 하셔 완벽한
무애자유를 얻으셨는데, 내게는 아득하게 비몽사몽간에 파도소리 바람소리만 들려 왔으니, 내 수행은 부처님
만리 밖 그 어느 모퉁이렸다.
새벽 5시 찌부득하고 무거운 몸을 추스리며
일어나니 목이 칼칼했다. 선창 방파제를 걸었다.
춥긴 했으나 어제 보다 공기가 신선해 제법
기분이 좋았다.
"선창가 고동소리~~~"
아니 옛 노라라니, 이 시국에 일심기도를 바쳐
따시고 배부른 몸의 가피를 이뤄야지
에그머니....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다시 관음기도로 전환하는가 싶더니
"삼학도~ 파도깊이~"
에그머니나 왜그런다냐?
다시 또 마음을 가다듬어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 ........
관세음보살님이시여,
낙산사에서 의상대사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나투셨듯 지금 여기 어젯밤 추위에 잠못들어
후즐그래해 가지고 양치질도 못하고 세안도
못한 이 무지몽매한 중생을 어여삐 여기시어
이 기도에 응답하시어 우선 따습고 배부르게 해
주시고 결국 올곳은 깨침을 주소서,
성불로 인도하소서 !"
그때
선창가 방파제를 올라 넘어친 파도가 내 볼때기를
힘차게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