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목민 정두환의 음악으로 본 세상이야기 2.
19세기 오페라
정 두 환(문화유목민)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Orpheus). 그의 음악은 동물과 식물들도 춤추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연주를 하는 음악가였다. 그의 음악은 신중의 신이라는 아폴론(Apollo)을 감동시켜 그에게 첫 번째 리라(lira)를 선물받는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Eurydice)는 결혼한 사이였다. 하루는 강가를 걷고 있는 에우리디케에 반한 목동의 신 아리스타이오스(Aristaios)가 쫓아가게 되고 이에 당황한 에우리디케는 도망가다가 그만 독사에 물려 그 자리에서 죽게 된다. 아내의 죽음에 상심이 컸던 오르페우스는 저승에서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지하세계로 내려간다. 지하세계의 신들을 오르페우스는 음악으로 감동시켜 아내의 부활을 허락받는다. 하지만, 여기에 조건이 붙는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그 조건은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아내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원래 그리스 신화에서는 지상에 도착하기 직전에 아내 오르페우스의 얼굴을 보는 바람에 다시는 그녀는 볼 수 없는 죽음으로 사라지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페라에서는 사랑하는 부부는 무사히 지상으로 올라온다는 행복한 내용으로 개작된다. 이유는 프랑스 왕 앙리 4세와 메디치 가문의 마리아의 결혼식 축제용으로 만들어진 오페라이기 때문이다. 이는 1600년 10월 5일 세상에 오페라가 처음으로 상연된 날의 이야기다.
오페라가 생겼을 무렵에는 왕족 또는 귀족, 그리고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그 후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관객이 증가하게 되었으며 1637년에 오페라 극장이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만들어지게 된다. 이후 이탈리아 중심으로 발전하던 오페라가 17세기를 거치면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이유는 이탈리아를 점령하였던 국가들이 각자의 나라로 예술품을 옮겨가면서 음악도 같이 옮겨간 것이다. 1618년부터 벌어진 30년 전쟁에 제국은 무너지고 전쟁에 승리한 프랑스가 새로운 문화의 지배권을 유럽에 펼치게 된다. 이로부터 400여년이 지난 지금의 오페라는 그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 많이 발전하였으며, 오페라 극장 또한 기술 발전만큼 많이 변했다. 예술 또한 사회 질서에 크게 반하지 않는다. 오페라가 왕성했던 17~8세기를 건너뛰고 19세기 오페라를 이야기하는 것은 19세기 유럽 도시 대부분이 오페라하우스를 중심으로 친교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종합예술인 오페라는 대본인 문학과 무대예술인 공연이 큰 축을 이룬다. 문학의 대본은 딱딱한 문어체가 아니라 편안하게 들리는 운문체로 이루어지며, 무대에서는 발레, 의상, 조명 그리고 다양한 장식의 볼거리와 더불어 아름다운 선율들이 어우러지는 종합예술로 대중들의 인기를 끌기엔 충분한 장르였다. 사람들이 모여 예술도 즐기면서 비즈니스도 하는 일종의 사교 모임의 확장을 오페라하우스가 담당하였다. 오페라가 인기를 끌면 끌수록 작곡가들에겐 단기간에 오페라를 완성해야 했으며, 공연 또한 활성화될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유럽은 산업혁명이라는 큰 흐름에서 금융과 자본이 결합하여 풍부한 자본력으로 경제, 사회, 이념, 종교 등 모든 면을 변화시켰다. 풍부해진 경제력을 바탕으로 예술을 즐기는 각국은 이탈리아 전통의 오페라보다는 각 나라의 고유한 정서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하게 된다. 나라마다 지닌 언어의 독창적인 억양과 강세, 언어 특유의 분절법에 따라 음악에는 언어에 맞는 리듬과 선율 등이 각각 다르게 발달하게 된다. 오페라 내용 또한 이탈리아는 남녀 간 사랑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선율의 서정적인 아리아가 발달하였으며, 프랑스는 사랑, 가족, 나라에 대한 충성심 등 주제의 다양성과 더불어 무대장치 발달로 무대 연출에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여 오페라를 발전시켰다. 독일은 신화와 전설 등에서 주요 소재들을 착용하여 선과 악, 헌신과 복수 등 주로 이중적 구조를 이야기하였지만, 아주 복잡한 음악의 화성이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 오페라를 발전시켰다. 큰 틀에서 오페라는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의 언어권으로 유럽 오페라가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이탈리아 오페라
유럽 전체의 오페라 중심축에 있었던 이탈리아 오페라는 매일 밤 도시마다 오페라가 열렸으며 관객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열정적으로 반응하였기에 좋아하는 성악가의 노래를 따라부르는가 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 성악가에게는 가차 없이 야유와 비난을 직설적으로 퍼붓기도 하였다.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는 고전주의 오페라를 계승한 조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 가에타노 도니제티(Gaetano Donizetti. 1797-1848), 빈첸초 벨리니(Vincenzo Bellini. 1801-1835)등에 의해 발전하였으며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 오페라는 아리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관객들은 전체 줄거리나 오페라 진행도 중요하지만, 주요 아리아를 중심으로 관람하였다. 이 때문에 주연 성악가의 몫은 아주 중요하였고, 인기도에 따라 오페라의 흥행이 판가름 나는 현상까지 이어지게 된다.
프랑스 오페라
프랑스 혁명 이후 오페라는 대규모의 합창과 호화스럽고 다양한 볼거리, 화려하게 꾸며지지 않은 아리아 등 프랑스 오페라의 몇몇 전통적인 면을 고수하였다. 프랑스 청중들은 인위적인 성악 양식 보다는 무대의 다양한 볼거리에 감동을 받았다. 이러한 프랑스 오페라의 전통에 새로운 경향들을 접목시켜 오페라는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크게 세가지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 1.희가극(opera comique), 2.서정극(opera lyrique), 3.대가극(grand opera)으로 존재하였다. 희가극은 레치타티보(Recitativo)를 연극과 오페라의 중간 정도의 위치하는 장르다. 오페라의 규모도 작기 때문에 출연자 수도 적으며, 음악도 대체로 단순하여 오페라 극장이 아니라 일반 무대도 올릴 수 있는 작품들이다. 평이하게 무대에 올리 수 있기에 오페라의 주제나 내용도 거창하지 않고 일상적인 것들이 주를 이룬다. 서정극은 희가극보다는 조금 낭만적인 대사를 레치타티보로 사용하용하며, 희가극과 대가극의 중간 위치라고 보면 된다. 샤를르 프란시스코 구노(Charles Francois Gounod.1818.-1893)의 《파우스트》(Faust,1859)와 죠르주 비제(George Bizet.1838-1875)의 《카르멘》(Carmen, 1875) 등은 모두 대사를 갖는 오페라 코미크였으나 후에 레치타티보를 붙여 서정극으로 바뀌었다. 대가극은 경제가 허용되는 다수의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여 다양한 볼거리와 풍부한 낭만주의적인 요소를 겸비한 대규모 오페라다. 규모가 아주 큰 프랑스의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는 화려한 음색이 환상적이다. 오페라의 규모가 커지면서 작곡가들은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더욱 키울 수 있게 되었다. 1820년대 초 이탈리아 작곡가 로시니는 프랑스로 새로운 낭만주의를 찾아 옮기게 된다. 이탈리아 양식을 탈피하여 프랑스식 양식으로 작곡한 오페라가 프리드리히 쉴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의 극에 기초한 《윌리암 텔》(Guillaume Tell, 1829)이다. 이 오페라는 6시간이나 되는 긴 시간을 요구하는 대서사다. 원곡은 5막이었으나, 후에 3막을 삭제하고 4막과 5막을 합쳐 모두 3막으로 만들었다. 로시니는 파리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독일 오페라
독일 문학을 중심으로 낭만주의 운동이 일어났듯이, 독일 오페라가 가장 낭만적 경향이 짙게 나타났다. 특히, 독일 전통 오페라는 레치타티보를 말로 하는 징슈필(Singspiel)이다. 19세기에 이르러 낭만적인 영향과 더불어 독일 고유의 오페라 특징을 발전시키게 된다. 민족주의적, 낭만주의적 전통을 확립한 작곡가가 칼 마리아 폰 베버(Carl Maria von Weber, 1789-1826)다. 그는 1817년에 드레스덴(Dresden)의 궁정오페라 감독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오페라 작곡을 시작하게 된다. 이탈리아 오페라가 우세하던 드레스덴 궁정오페라에서 징슈필《마탄의 사수》(Der Freischutz, 1821), 《오이란테》(Euryanthe, 1823), 《오베론》(Oberon, 1826)을 작곡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의 19세 첫 오페라 《결혼》(Die Hochzeit.1832)을 시작으로 《요정들》(Die Feen. 1833), 《사랑금지》(Das Liebesverbot. 1836), 그리고 《리엔치》(Rienzi. 1838-1840) 등 초기 작품 이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Der fliegende Holländer. 1841)으로 시작하며 《탄호이저》(Tannhäuser. 1845)와 《로엔그린》(Lohengrin. 1845-1848)의 중기 작품을 거쳐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 1857-1859), 《뉘른베르크의 명가수》(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1845-1867), 《파르지팔》(Parsifal. 1882)에 이르게 된다.
19세기, 아름다운 선율 중심의 고전주의 오페라를 계승한 이탈리아 오페라는 프랑스와 독일 오페라에 비해 비교적 보수적 경향을 유지한다. 한편, 프랑스와 독일 오페라는 화성과 줄거리 등에서 낭만주의적 음악 양식의 변화를 시도한다. 이탈리아 중심의 시대에서 유럽 전역으로 펼쳐나가 각 나라의 특색과 특징에 맞게 발전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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