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나선 DNA, 때론 네 가닥 구조"
- 세포내 존재 관찰
오철우 기자
영국 연구팀, 형광시각화 이용해 세포내 DNA 사중구조 분포 확인
"세포분열 DNA복제 단계에서 발생. 암세포 억제약물 가능성 기대"
» 네 가닥의 사중구조 디엔에이 구조 그림(왼쪽). 인간 세포에 나타난 형광 표시는 사중구조의 존재를 보여준다(오른족). 출처/ 케임브리지대학 보도자료
생명유전 물질인 디엔에이(DNA)를 떠올릴 때 쉽게 생각나는 상징 이미지는 ‘이중나선’일 것이다. 이중나선은 아데닌(A)과 티민(T), 구아닌(G)과 시토신(C), 이렇게 네 가지 염기로 이뤄진 두 가닥의 화합물 사슬이 꽈배기처럼 결합한 디엔에이의 물리적인 구조를 잘 보여준다. 그런 디엔에이가 이중나선 말고 다른 방식으로도 존재할 가능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여 년 전,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네 가닥으로 이뤄진 입방체 모양의 독특한 디엔에이 사중구조가 존재할 가능성은 여러 실험에서 제시되면서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되었으나, 정작 살아 있는 세포 안에서 사중구조가 직접 확인되지는 못했다. 그런 사중구조 디엔에이의 존재가 영국 연구자들에 의해 살아 있는 인간 세포 안에서 최근에 관찰됐다(<C&EN> 보도, <네이처> 보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샨카르 발라수브라마니언(Shankar Balasubramanian) 교수 연구실의 연구자들은 지난 20일 과학저널 <네이처 케미스트리>에 낸 논문에서 사람 세포에서 디엔에이의 ‘구아닌-사중구조(G-quadruplex)’의 분포를 관찰했으며, 이런 독특한 디엔에이 구조의 발생을 조절하는 기법을 찾았다고 밝혔다. 구아닌-사중구조는 염기 중 구아닌이 유독 많은 디엔에이 부위에서 네 가닥으로 짜인 입방체 모양의 독특한 염기서열 구조를 말한다. 특히, 관찰해보니 이런 디엔에이 구조는 암세포처럼 세포 분열과 디엔에이 복제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에서 주로 나타나, 이번 연구 결과가 암 연구에 좋은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연구자들은 전했다.
구아닌-사중구조의 디엔에이는 어떻게 확인했을까? 연구자들은 구아닌-사중구조의 존재를 찾아내기 위해서 시각화 기법의 실험을 디자인했다. 먼저 이중나선 구조에는 붙지 않고 사중나선 구조에만 선택적으로 달라붙는 특별한 항체 단백질을 만들었다. 여기에다 형광을 띠는 물질을 달았다. 일종의 형광 표지다. 이런 형광 표지 항체들이 세포에서 구아닌-사중구조가 많은 곳을 찾아 어느 한 곳에 많이 몰리면 빛은 더 밝아지게 마련이다. 형광이 밝을수록 사중구조가 많음을 보여준다는 얘기다. 이제, 살아 있는 세포 안에서 형광 빛이 탐지된다면 이는 세포 안에 구아닌-사중구조의 디엔에이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 구아닌-사중구조에 붙는 단일사슬 항체(빨강색)를 표적으로 찾아가는 형광 표식(노랑색)의 이중사슬 항체 단백질(보라색)이 인간 디엔에이(파랑색)에 있는 구아닌-사중구조(입방체 모양)을 탐지하는 데 사용됐다. 그림과 설명문 출처/ C&EN, Giulia Biffi
이런 방식으로, 연구자들은 사람 세포에서 구아닌-사중구조가 실제 존재하는 곳을 시각적으로 찾아낼 수 있었다. 특히 눈길 끄는 대목은 세포 분열의 디엔에이 복제 단계(‘S기’)에서 형광이 더 강한 빛을 띤다는 점이었다. “이는 네 가닥 사중구조의 농도와 디엔에이 복제 과정 사이에 확실한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발라수브라마이언 교수는 케임브리지대학 보도자료에서 “이번 연구는 급격히 분열하는, 예컨대 암 같은 세포의 유전자에서 사중구조가 발생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염색체 말단부위인 텔로미어의 '구아닌-사중구조'를 표현한 3차원 모델링 그림. 출처/ Wikimedia Commons 연구자들은 구아닌-사중구조의 발생을 조절하는 새로운 저분자 화합물도 찾아냈다고 보고했다. 특정한 저분자 화합물을 세포에 넣으면 구아닌-사중구조의 발생을 늦출 수 있고, 그래서 세포 분열도 늦추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자들은 구아닌-사중구조의 발생을 막는 저분자 화합물이 암세포에서 세포 분열을 막는 약물을 만드는 데 활용될 것으로 잔뜩 기대하고 있다.
사실 디엔에이의 독특한 사중구조는 이번 연구에서 처음 알려진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실험실 차원에서 사중의 염기서열 구조가 존재할 수 있음이 알려진 이래, 구아닌 염기가 많이 분포하는 염색체의 말단 부위(텔로미어)나 일부 암 유전자를 중심으로 사중구조 연구가 계속돼 왔다. 최근에도 실험실 용액에서 이뤄진 구아닌-사중구조에 관한 연구는 흥미로운 관심 대상이 됐다.
이번 연구 논문는 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기보다는 그동안 이어진 여러 연구자들의 성과를 바탕으로, 디엔에이의 사중구조가 실제로 '살아 있는 인간 세포 안에' 존재함을 보여주는 시각 증거를 제시했으며, 그 사중구조의 발생 빈도를 조절할 수 있음을 처음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디엔에이의 특별한 사중구조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초기 진입 단계일 뿐이다. 발라수브라마니언 교수는 “우리는 여전히 많은 것을 모른다. 한 가지 생각으로는 이런 사중구조가 디엔에이 복제 동안에 생겨나는 어떤 성가진 존재(nuisance)가 아닐까 한다”라고 전했다. 케임브리지대학 쪽은 “왓슨과 크릭이 1953년에 디엔에이의 이중나선 구조를 처음 발견한 이 대학에서 사중나선 구조를 처음 관찰하는 성과를 냈다”는 점을 강조했다.
[논문 초록 번역]
“네 가닥으로 이뤄진 구아닌의 사중 핵산 구조는 대단한 관심을 끈다. 유사 생리적 조건에서도 높은 열역학적 안정성을 유지한다는 점은 세포 안에서도 이런 구조가 형성될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정 구조에 달라붙도록 조작한 항체를 생산해 이를 인간 세포 안에 있는 디엔에이 구아닌-사중구조를 시각화하는 데 응용했으며 그 결과를 여기에 보고한다. 우리는 디엔에이에서 구아닌-사중구조의 형성이 세포 주기의 전개과정에서 조절된다는 점, 그리고 내부 요인에 의한 구아닌-사중구조 디엔에이를 저분자 물질(ligand)을 이용해 안정화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와 함께 이런 발견은 포유류 세포의 유전체(게놈)에 구아닌-사중구조가 존재함을 입증해주는 실질적 증거가 되며, 안정화 기능의 저분자 물질이 세포 안에서 구아닌-사중구조를 찾아가 그 기능에 간섭할 수 있음을 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