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차를 배우며
조미경
오전의 햇살이 넓은 창 커튼을 헤집고 살며시 거실을 들여다본다.
모처럼 즐겨보는 시인의 산문집을 펼쳐놓고, 찻상 앞에 앉아 여유를 부려본다. 발그스레 우러나온 아마란스 꽃차를 두 손으로 받쳐 한 모금 머금으니 화색의 주조음이 아른거리고, 햇살 고운 아침 이슬에 숙성된 풀꽃 내음의 맛과 향기가 입안 가득 맴돈다. 몇 바퀴 입안을 적신 찻물이 오롯이 목을 타고 내려가 가슴을 적셔오면 살포시 눈을 감아 본다. 천, 지, 인, 세 번으로 나누어 마시니 우주가 내 몸 안에 스며든다.
지금에 이르도록 누군가를 위해 뜨겁게 눈시울 적시며 살아온 내 가슴속 포용의 품 안에 안온한 미소가 절로 풍긴다.
저 지난해 공공기관에서 농촌 여성의 복지 증진을 위해 여러 배움의 장을 제공해 줄 때 꽃차 마이스터 2, 3급 자격증 과정을 선택했다. 삶의 후반부에는 내 삶에 좀 고운 색깔의 물을 들여 보고 싶었다.
꽃차 수업이 있는 날은 거리가 먼 농촌 지도소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 첫 수업 날은 꽃을 닮은 지도 교수님의 고운 자태가 교육장 안을 환히 밝혀 설렘이 더 가득했다.
수업은 이론부터 시작한다. 꽃차의 정의며 종류 중국의 ‘진연’이라는 농업대학 차 학과 교수가 처음 차 이론을 확립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꽃차의 역사는 『삼국유사』 가락국에 도착한 허왕옥 공주와 시종 20명에게 난초로 만든 마실 것을 대접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엔 귀족과 서민 사회에서 일반화되어 연등회 팔관회에 음청류로 쓰이면서 다양화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비로소 차의 문화가 대중화되면서 허준의 무궁화 차로 설사를 멈추게 하고 조선 중기에 금은화 차로 임금님의 감기를 처방했다고 한다. 이미 건강과 마음을 다스리는 차 문화가 이리 오래된 줄은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차를 만드는 과정을 ‘제다’ 라고 한다. 선생님이 깨끗하게 채취해 준비해온 각종의 꽃, 줄기 뿌리까지 제각각의 다른 과정으로 만든다. 알맞은 온도로 찌고 덖고 열처리를 한 후 유념(비빔)하는 과정을 4.5명이 한 조가 되어 만들며 마지막에 향 가두기를 처리한 후 드디어 예쁜 색과 향기를 머금은 꽃차가 완성된다. 집에 돌아와서도 꽃차를 배우기 전에는 지천에 핀 야생화에게 잠깐의 눈길만 주었건만, 이제는 눈에 띄는 꽃은 내 손을 거쳐 야생화 차로 탄생한다. 계절마다 만들어진 꽃차는 친구와 지인들과 나누기도 한다. 사실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 모두 내게 기쁨을 주는 아름다운 꽃들이라는 것도 꽃차를 접하며 다시 알게 되었다.
이렇게 작고 가녀린 식물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다는 건 실로 새로운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다. 사실 요즘 숨 쉬는 공기마저 바이러스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질보다 양적인 물질의 풍요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꽃차를 마시는 시간은 홀로 명상하는 시간이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제하는 진정한 심리적 안정과 휴식을 안겨주는 시간이다.
모든 실생활의 문제 해결방식들이 인공지능의 활용 등 기계화‧지능화되는 환경 속에서 꽃차테라피가 소통 치료와 힐링 문화의 매체로 자리매김해 가길 소망해 본다.
이제까지 살면서 죽을힘을 다해 참고 견디는 것은 해 보았다 할 수 있을지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한 번이라도 죽을힘을 다해보진 못했다. 다른 누군가 많은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내 삶을 얼마만큼 극복했다고 안주하지도 않는다.
누가 가슴에 품고 있는 작은 소망하나 말하라고 하면 나지막이 ‘꽃들이 사계절 피어나는 조그만 정원을 가꾸면서 꽃차를 만들어 내는 들꽃찻집의 주인이 되고 싶다’ 고 귀엣말로 전해 보련다.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신이 내린 아마란스
염증 진정 해독작용에 무화과
피를 맑게 하고 혈관 질환에 구절초
루테인 많고 피로 회복에 만수국
두통 감기 예방에 국화
이런 고운 빛깔과 고운 향기로 꽃차를 우려서 소담스레 찻상을 내어서 삶의 현장에서 혹 상처 입은 친구들이 발걸음을 하면 내면의 영혼을 달래어 주는 약차로 쓰담쓰담해 주고 싶다.
우리의 삶의 윤활유가 되어 주는 산야에 피어나는 꽃들이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달금하고 고소하고 약간은 쓰고 심심한 맛을 내어 심신을 치유해 주듯이 우리도 더 열심히 자연에게 손 내밀어 소통의 온기도 내주어야겠다.
이제 일어나 들길을 지나서 강가를 걸어가야겠다. 보랏빛 제비꽃, 노오란 민들레꽃, 자잘한 별꽃 같은 이름 모를 하얀 꽃들에게 키 낮추어 눈 맞추고 작은 소리로 사랑스럽다고, 너 덕분에 행복하다고 메아리를 남겨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