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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파
미국의 시카고의 마천루 건축을 중심으로 전개된 건축 /전성기 1883-1893 -
시카고 지역의 공업화에 의한 도시팽창에 의해 고층화의 요구
마천루 건축의 발달에 기여한 기술 - 엘리베이터 (오티스 형제의 엘리베이터 발명)/
철골구조 -건식구조/ 대형 판유리 (시카고 창) /포틀랜드 시멘트
최초의 선구적 인물 /월리암 르 바론 제니 -철골 기술자 -( 홈 인슈런스 빌딩 /1885)
대표자 - 번함 & 루트 (릴라이언스 빌딩) 루이스 설리반 (웨인라이트 빌딩/1891) (개런티 빌딩/1895)
-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
●시카고 파와 루이스 설리반
유럽의 건축전통을 받아들이고 절충주의(折衷主義) 양식을 따르던 건축계의 흐름속에서
시카고나 디트로이트 등의 산업을 중심으로 큰 공장이나 창고가 기능에 따라 실용건축이 세워졌다.
공업화와 더불어 실용성이 요구되었으며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MASS와 PROPORTION에 대한 본질적인 추구와 새로운 시대정신에 따른 예술형태를 추구하게 되었다.
시카고파의 성장기는 1883년에서 1893년 사이이며
William L.B. Jenny가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시카고파가 창안한 철골구조를 시카고 구조라 하며
사무소 건물에 나타난 간결하고 당당한 형태의 창을 시카고 창이라고 한다.
(19세기에 얻어진 기술과 기능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형태주의의 형태상 표현)
시카고 학파는 현대적인 오피스 빌딩을 만들었다. (Administration Center, 그림 1)
그것이 근대건축의 중요한 공헌을 했으며
미국의 마천루인 고층건물의 발전에 절대적인 공헌을 하였다.
제니는 건축상세나 장식에 관해서는 무뎠다.
그러나 그의 1889년 Leiter 빌딩은 철골조의 큰빌딩에서의 문제를 자유롭게 해결하였다.
그는 Ecole Poly-technique 과 Ecole Centrale에서 기술적인 훈련을 받았고
프랑스의 기술자들과 독일의 장식전문가들이 연합하여 호기심의 혼합물을 만들었다.
1873년에는 Louis Sullivan이 일을 하였고 건축에 있어 감추어진 기능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 이외에도 Martin Roche, Holabird, Daniel Burnham, John Root와 같은 미래의 시카고 건축가들을 배출했다.
제니의 첫 작품인 Leiter, 1879(그림 2)은 벽돌로된 기둥과 외벽,
후에 시카고창이라고 불리는 넓은 개구부, 내부는 그 기간동안 표준이 된 주철재기둥이었다.
Home Insurance building, 1883- 1885는 제니가 새로운 두가지, 높이와 구조로 지어진 건물이다.
그것의 복잡한 구조는 완전히 융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니가 Home Insurance building을 작업하는 동안
Richardson은 Marshall Field Wholesale store를 계획하였다
니의 첫 작품인 Leiter, 1879(그림 2)은 벽돌로된 기둥과 외벽,
후에 시카고창이라고 불리는 넓은 개구부,
내부는 그 기간동안 표준이 된 주철재기둥이었다.
Home Insurance building, 1883- 1885는 제니가 새로운 두가지,
높이와 구조로 지어진 건물이다.
그것의 복잡한 구조는 완전히 융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니가 Home Insurance building을 작업하는 동안 Richardson은 Marshall Field Wholesale store를 계획하였다
이것은 시카고 건축가들이 얼마나 신중하게 큰 덩어리를 통합하는가를 보여주었다.
Richardson은 존엄적인 면을 다루면서 서있는 빌딩에 활력을 주입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Home Insurance 빌딩처럼 창의 지배적인 면을 강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구조에 있어서는 다소 보수적이었다.
Richardson의 육중한 돌벽은 전시대의 것이었다.
Adler와 Sullivan이 그들의 Auditorium을 지을때도 내부는 철구조였으나 비슷한 육중한 외벽을 사용했다.
건축가들은 일단은 제니의 뼈대구조를 따르지 않았지만
Home Insurance 빌딩이 지어진 3년후에는 Holabird와 Roche가 12층 뼈대구조의 Tacoma 빌딩을 세웠다.
제니는 계속해서 그의 당시로서 뼈대 구조로 지어진 가장 높은 건물인
제 2의 Leite빌딩 홈인슈런스빌딩 Manhattan 빌딩(1891, 그림 3) 을 지었다.
Manhattan 빌딩은 상대적으로 좁은 Dearborn가에 있기 때문에
보다 많은 햇빛을 받기 위하여 Tacoma빌딩처럼 bay window로 정면을 채웠다.
그러나 이창은 매우 조심스럽게 모양의 다양성을 가졌고,
햇빛이 들어오는 상층부에서는 다양성이 사라졌다.
시카고의 커다란 백화점중 하나인 the Fair빌딩(1891, 그림 4,5)은 9층짜리의 건물인데
여기에 뼈대구조가 디자인의 요소를 결정한다는 원칙으로 만들었다.
1,2층은 거의 유리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소유자가 가능한 많은 양의 전시공간을 위해서였다.
Monadnock, 1891은 Burnham과 Root에 의하여 단순조적조로 지어진
16층의 건물로 조적방식이 마지막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창내기 돌출베이, 곡선으로 처리된 모서리와 코니스등은 구조적으로 볼 때
논리적인 만큼 우아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 건물의 모습에 리듬감있는 움직임을 더하게 한다.
당시의 비평가들은 이 건물을 모든 고층사무소 건물중 최고의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고층빌딩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무거운 조적벽이 해결책은 아니었다.
그것은 작은 치수의 창에서 알 수 있다.
표현적으로는 시카고학파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표현은 건축학적인 순화작업을 통해서 이끌어 졌다.
또다른 Brunham과 Root의 건물인 the Great Northern hotel, 1891은
깨끗한 벽돌로 이루어진 정면을 가지고 있으며
사무소에 사용되었던 시카고 창이 호텔방을 장식하고 있다.
제니의 the Fair빌딩도 이 시기에 지어졌다.
3년후에는 Marquette 빌딩이 Holabird와 Roche에 의해 지어졌다
arquette 빌딩(1894, 그림 7)은 예외적으로 비율이 잘되고 단순성이 부과된 넓은 크기의 시카고 창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19세기의 전형적인 시카고 사무소 빌딩으로 남아있다. 가로에서 볼때는 막힌 블록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E의 모양(그림 8)을 하고 있다. E의 가운데 부분은 상대적으로 어둡기 때문에 일리베이터 홀로 사용되고 있다.
각측의 공간은 대부분 파티션이 없이 입주자에 맞게 다시 나눌수 있게 되어있다.
카고학회 건축가들은 철재뼈대구조-그 당시에는 시카고 구조라고 불리었던 새로운 형태의 구조를 고안하였다.
그들은 또한 진흙의 시카고 땅에 대응하기 위하여 떠있는 기초라고 하는 새로운 종류의 기초도 창안했을 뿐만 아니라
수평으로 연장한 시카고창도 소개했다. 다가 현대적인 비지니스, 관리빌딩도 만들었다.
카고학파의 건축사적 중요성이라 하면 19세기 초반에 건축과 구조, 건축가와 구조가 사이에 있던 분리를 치유하였다는 것이다.
놀라운 대담성을 가지고 명확한 표현으로 구저와 건축을 결합시킨 순수한 형태를 시카고 학파는 만들어 낸 것이다.
Leiter 빌딩 (1889, 그림 9)
illiam Le Baron Jenny는 Home Insurance 빌딩의 시카고 구조의 첫예시를 보여줄뿐만 아니라
Leiter 빌딩처럼 내력벽이 없는 첫빌딩을 세우기도 했다. 그중 Leiter빌딩은 1889년에 계획되었다.
니는 400feet(120m)나 되는 긴면과 8층높이를 매우 간단한 단위를 이용하여 다루었다.
뼈대구조는 외벽에 있는 거대한 사각형모양에 의하여 분할된 모습을 강조하였다.
이 나누어진 부분들은 판유리창으로 채워졌으며 단지 방화용 철제기둥에 의하여서만 분리되었다.
건축학적으로서의 뼈대구조는 후에 현대건축에서 좀더 발전하였다.
Le Corbusier의 Maison de Verre(그림 10)는 그 발전의후기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뼈대구조의 속성은 주택에 필요한 서비스공간으로 사용되었다.
Leiter빌딩은 고층빌딩의 처음이었지만 순수한 형태를 사용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 빌딩의 중요성은 그 높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건축과 구조의 표현에 있어서의 개성인 것이다.
Leiter빌딩은 건축적 순수성의 한종류로서 기록되고 건축사에 있어서 무시되어서는안된다.
Reliance 빌딩 (1894, 그림 11)
건물은 15층 높이의 유리탑이다.
기단부분은 다소 어둡고 겸손해 보이는 석재로 되어 있으며
이 기단위로 솟아로은 유리와 백색타일로 처리된 몸부분과 강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평지붕으로 처리된 처마는 얇은 슬라브로 되어 단지 차양역할 정도로 밖에 강조되지 않고 있다.
석재로된 돌출 코니스는 전혀 존재하기 않는다.
수평으로 비례감있게 처리된 시카고 창은 이미 1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초기 시카고 학파의 사무소 건물에서 보이는 활모양의 창들은
다소 독립적이거나 고립되어 있는 디자인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
Reliance빌딩의 창은 빛을 더 받아들이기 위하여 돌출되어있다.
이창은 유리로 된 건물의 몸체와 전체적으로 잘 통합하고 있다.
공기같은 경쾌합과 순수한 비례감을 가진 Reliance빌딩은 시카고 학파정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Mies van Der Rohe의 유리와 철의 마천루계획은 1921년에는 유럽건축사에게는 꿈이었다.
이런종류의 꿈과 같은 계획을 시작한다는 점에서 Reliance빌딩은 약 30년 정도 앞서있는 것이다.
이것은 시카고의 빌딩들은 환상-미래의 건축적 기대에 대해서 좀더 자극적이었다는 것이다.
Sullivan : the Carson, Pirie, Scott sotre, 1899-1906 (그림 13)
빌딩의 복잡성에 불구하고 표현의 장점이 매우 뛰어나다.
창고형태의 계속적이고 막힘이 없는 내부는 여전하다.
정면부는 필수불가결한 기능과 빛의 유입으로 이루어지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빌딩의 기본적요소는 뼈대구조와 일치하게 취급되거나 같은 수평으로 연장한 시카고창으로 되어있다.
전면은 그 기간의다른 어떤 빌딩도 일치시키지 못한 힘과 정확성이 보여지고 있다.
창은 얇은 철프레임으로 명확히 분절되어 있다.
저층부의 창은 테라코타로 만들어진 좁은 장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선은 작아서 잘보이진 않지만 입면의 수평적인 면을 강조하는데 도움을 준다.
좁은 수직적인 뼈대를 지닌 유리로된 코너의 둥근부분은 수직선이 강조되어 있으며 이것은 건축주의 요구에 의해서이다.
설리반의 다른건물 Wainwright, Prydential, Bayard빌딩에서
그는 계속하여 디자인에서 수직적인 것과 코너에서의 교각을 점차 강조해갔다.
그는 좁은 기둥을 사용하고 빌딩에 고딕성당에서 보이는 수직상승을 강조했다.
어느 뼈대구조의 건물-철, steel, 강화 콘크리트에서는 중립적인 공간의 그물망이 생긴다.
이런 새장 구조는 완전히 평등한 공간을 만드고 어떤 고유의 방향은 없다.
설리반은 그물망에서 수직적인 면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Carson, Pirie, Scott store에서는 평행한 뼈대구조 본래의 그물망을 빌딩의 입면으로 사용했다.
개런티빌딩 (1894) 개런티건물은 설리반의 고층사무소건물의 절정을 이루는 대표작이다.
이 건물의 선례는 궁극적으로 르네상스의 궁전 건물에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이런 사실에서 르네상스 건축가들과 루이스 설리반의 건축디자인에 대한 접근방식이
서로 유사한 인본주의적인 것임을 알수 있다. 이 건물은 실제로 다리형상의 기둥위에서 있다.
수직의 연속성과 인간의 직립한 모습을 결합시키고자 하는 드라마는 여기서 실현되고 있다.
위로 뻗어 올라가며 움직이는 듯한 이 건물은 두다리로 걷고 있으며 살아 숨쉬는 듯 하다.
이 사무소의 건물은 형태는 단순하게 수직으로 솟은 직육면체로, 직사각형의 평면으로 되어있다.
저층부, 몸체, 상부층으로 수직적으로 3등분된 모습이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저층부는 다시 1층과 중2층의 두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아치형상의 문은 입구를 나타내고 있다.
이건물의 건축적 형태는 인간의 형상에서 이끌어 내어 추상화 시킨 유기체적인 인간의 삶과 성장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정신적인 것을 표현하고자한 이 고층건물은 다른 세계에 대한 인간의 도달을 상징화하였던 중세교회의 탑을 대신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이 건물은 인간적 가치에 기초한 확신과 안정에의 열망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 건물은 과거의 창조적 힘들을 모두 흡수하고 있으며 동시에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Wainwright 빌딩, 1890 아들러 및 설리반 설계
이건물은 설리반이 설계한 첫 번째 대마천루 작품이다.
여기에 그는 리차든식의 아치를 버리고 수직적인 피어의 높이를 두배로 확대시킴으로써
피어와 스팬드럴로 이루어지는 전체의 패턴을 저층부와 육중한 우각부의 피어, 애틱층으로 구성된 틀 속에 짜넣었다.
그 이외의 다른 피어들은 그 내부에 구조용 기둥들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설리반은 의식적으로 그 건물의 수직성과 조소적인 특징을 강조한 반면,
그 당시 시카고파 건축가들이 시카고 창을 이용해 시도해온
구조적 bay의 표현을 회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기능을 따르고 있는 형태는 그에게 있어서는 개방된 강철제 상자라기 보다
오히려 똑바로 서있는 강한 인체의 형태였다.
루이스 설리반(louis sullivan)
은 시카고 학파 중 가장 잘 알려진 건축가이다.
어떤 사람들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주장을 그의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설리반을 근대 건축의 아버지로 여기고 있다.
그는 마천루의 구조와 기능적인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그 기술과 기능적인 해결을 하나의 의미있는 형태로 통합하려고 시도해 왔었다.
설리반은 또한 고층산업건물을 진정한 건축이자 예술의 한 작품으로 맨 처음 간주한 사람일 것이다.
1896년에 그가 출간한 -예술성을 고려한 고층 사무소 건물계획(the tall office buillding artistically considered)-
이라는 저서는 이것을 잘 입증해 주고 있다.
설리반은 건축과 자연속의 사물간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자연속의 모든 사물은 모두 하나의 형상, 다시 말해서 '형태(form)'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겉으로 나타난 외형으로서 우리에게 그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 보여주며,
우리들에게 뿐만 아니라 그 대상물 각각을 구별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맹렬한 기세로 하늘을 날고 있는 독수리이거나. 활짝 핀 사과 꽃이거나, 떠 다니는 구름이다.
지구위로 떠오르는 태양 등 어느 것이던 간에 이 모든 형태는 기능을 따르고 있으며,
이것은 하나의 법칙으로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설리반은 기능주의 건축과 유기적 건축 두 분야의 선구자로서,
또는 그 창시자중의 한 사람으로서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설리반은 건물과 인간사이에는 특별한 유사점과 상관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그가 특히 존경하는 건물인 리차드슨(Richard--son)이 설계한
시카고의 마샬 필드 창고 건물을 휴머니스트적인 측면에서 서술하고 있다.
설리반은 고층사무소 건물의 기능을 연구한 결과 건물은
그 중요기능에 따라 수직적으로 구분된 3부분
즉, 점포, 음식점, 기타 공적 공간을 수용하는 저충부(base),
개인 용도로 사용되는 전형적인 사무실인 몸체(shaft)부분,
그리고 기계 설비를 위한 애틱(attic)층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상상력이 풍부한 많은 디자이너들과 마찬가지로,
설리반의 형태 역시 분명 기능만을 따른 것은 아니었다.
능력있는 디자이너들은 자기들이 말한 대로 실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설리반은 착상이 대범하고 유기적인 장식에 대해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아르누보(artnouveau)를 미국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들러와 설리반(Adler & Sullivan)
개런티건물, 버팔로, 미국 뉴욕주, 1805년경
개런티 건물은 설리반의 고층 사무소 건물의 절정을 이루는 대표작이다.
이 건물의 '선례'는 궁극적으로 르네상스의 궁전 건물에까지 올라 갈 수 있는데.
이런 사실에서 르네상스 건축가들과 루이스 설리반의 건축 디자인에 대한 접근방식이
서로 유사한 인본주의적인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제임스 보가더스는 르네상스의 베니스 풍 궁전양식을 각색하여
뉴욕에 있는 주철 골조 구조물로 설계된 하퍼 앤 브라더스 건물에 적용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헨리 홉슨 리차드슨이 설계한
시카고 aktif 필드 창고 건물도 이러한 노선을 따라 지어진 건물이다.
이 건물은 일종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부활로 볼 수 있으며
안정에 대한 인간의 뿌리깊은 욕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연속성과 영속성에 대한 미국적인 자신감을 아주 잘 나타내고 있다.
다음에 1888~1889년 사이에 설리반이 설계한 건물인 시카고의 워커 창고 건물(walker warehouse)은
리차드슨의 건물로부터 거의 직접 유래한 것이지만, 여기서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볼 수가 있다.
설리반은 아치를 꼭대기 층에 까지 단절됨이 없이 확장시켰으며
스팬드럴(spendrel,위아래 창문 사이의 벽체 부분)을 약간 들어가게 함으로써,
외관이 단정한 스크린의 모습보다는 분절된 3차원의 부재의 패턴으로 나타나게 하였다.
1890~1891년 사이에 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에 세워진
웨인 라이트(wain wright)건물은 설리반이 설계한 첫 번째 대마천루 작품이다.
여기에서 그는 리차드슨의 아치를 버리고 수직적인 피어의 높이를 두 배로 확대시킴으로써,
피어와 스팬드럴로 이루어지는 전체의 패턴을 저층부와 육중한 우각부의 피어,
애틱층으로 구성된 (frame0속에 짜 넣었다.
그 이외의 다른 피어들은그 내부에 구조용 기둥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설리반은 의식적으로 그 건물의 수직성과 조소적인 특성을 강조한 반면,
그 당시 시카고 학파 건축가들이 '시카고 창'을 이용해 시도해 온
구조적 베이(bay)의 표현을 회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설리반의 의도는 이들의 의도보다 더 복잡하고 인간적이었다.
기능르 따르고 있는 형태는 그에게 있어서는 개방된 강철제 상자 라기 보다는 오히려 똑바로 서있는 강한 인체의 형태이었다.
1895년에 세워진 버팔로의 개런티(guarauty)건물에서는 이 모든 요소들이 함께 조합되어 표현되고 있다.
이 건물은 이제 실제로 "다리 형사의 기둥 위에 서있다.
"그러나 이기둥은 그 건물의 볼륨을 한정하여 주는 동시에,
상부 코니스 부분에까지 높게 연장되어 있는 모서리 부분의 프레임으로 에워싸여져 있다.
여기서 웨인 라이트 건물에서의 정적인 슬라브는 쓰이지 않고 있으며,
리차드슨의 아치형상이 다시 나타나게 되지만 이 아치가 연결해주는
가느다란 벽기둥들은 아치를 향해 솟아오르고 있다기보다는
커다란 프레임으로부터 떨어트린 스크린처럼 밑으로 끄집어내려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수직적 연속성과 인간의 직립한 모습을 결함시키고자 하는 드라마는 여기서 실현되고 있다.
개런티 건물(Guarauty Buillding)의 건축적 형태
이 사무소 건물의 형태는 단순하게 수직으로 솟은 직육면체로, 직사각형의 평면으로 되어있다.
저층부, 몸체, 상부층으로 수직적으로 3등분된 모습이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저층부는 다시 1층과 중2층(mezzanine)의 두 부분으로 나주어져 있으며, 아치 형사의 문은 입구를 나타내고 있다.
사무실 공간이 한층씩 쌓아요려진 주요 몸체 부분은 시각적으로 저층부와 분리되어 있다.
모서리 부분의 피어만이 의도했던 연속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모서리 피어는 또한 중심 중앙 몸체부분을 상층부와 연결시켜주고 있다.
후퇴된 스퍁드럴은 중앙몸체부분의 수직성을 강조해주고 있으며,
몸체 부분을 육중하고 수평적으로 구성된 저층부와 분리시키고 있다.
얇게 돌출된 코니스는 위로 솟아오르는 듯한 수직적인 움직임에 명확한 종지부를 부여할 수 있게끔 육중하게 처리되어 있다.
이 건물의 비례는 인체에서 이끌어낸 듯하며, 리듬감 있는 움직임은 인간의 발걸음과 일치하는 것 같다.
모서리 부분의 피어와 그 사이에 채워진 피어간의 대조는 웨인 라이트 건물에서보다 훨씬 세련되게 처리되어 있다.
이런 대조의 효과는 다른 세부적 부분들과 전체 형태에 있어서도 여전히 찾아볼 수 있다.
개런티 건물의 건축적 의미
이 건물의 건축적 형태는 인간의 형상에서 이끌어내어 추상화시킨
유기체적인 형태로서 인간의 삶과 성자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이 고층건물은 자신을 초월하여 성장하고 성취해 보려는 인간의 영원한 욕망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취는 단지 물질적인 상태로만 남아 있을 수가 없다.
인간은 삶의 불가해한 부분(정신)에 대해서도 지고한 열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번째의 정신적인 것을 표현하고자한 이 고층 건물은 다른 세계에 대한
인간의 도달을 상징화 하였던 중세 교회의 탐을 대신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이 건물은 인간적인 가치에 기초한 확신과 안정에의 열망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나의 예술적인 업적으로서 이 건물은 과거의 창조적인 힘들을 모두 흡수하고 있으며, 동시에 미래에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카슨 파이리 스코트백화점(Carson Pirie Scott & Company) 시카고, 미국,1899~1904
이 건물은 스테이트 앤 메디슨(State and madison)가라는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모서리'에 위치해 있다.
이 건물에서 설리반은 가로 혹은 광장을 한정시킴으로써 상호 보완적으로
도시공간을 결속시켜주는 사무소 건물의 유형을 창조하였다.
개런티 건물이 띠고 있었던 모습의 이미지는 적합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포기되었다.
이 건물의 표면은 모서리 부분 이외에는 수평적인 연속성을 지니도록 처리되었다.
모서리 부분은 수직성이 강조되어 있는데 이것은 건축주의 강한 요구 때문에 채택된 것이다.
기둥과 스팬드럴은 동일한 면에 위치해 있으며 수평적인 '시카고 창'이 아주 정확하게 끼워져 있다.
이 창은 얇은 금속 프레임으로 되어 있어서 외관을 명확하게 분절하고 있다
아래층은 가볍고 산만한 장식으로 인해 이 부분의 구조적 지지감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따라서 상부층은 지면에서 분리되어 떠 있는 듯 하며, 라로를 따라 수평움직임의 속도가 가속되고 있다.
이 건물이 1900년을 전후해서 완공되었을 때 시카고 건축가들은 상업적 고전주의로 되돌아 갔으며,
이후 30년 동안 뉴욕의 아카데믹한 건축 실무자들이 군림하게 되었다.
그러나 루이스 설리반은 다음 세대의 건축가들에게 자신의 발자취를 남겼는데.
이것은 특히 그의 제자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계승되었다.
기디온은 이 건물을 1923년 발터 그러피우스가 설계한
시카고 트리뷴 타워(Chicago Tribune Tower)의 현상공모안과 비교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이 각자 비슷한 해결책에 도달하였다는 것,
즉 방법에 있어서의 일치는 시카고 학파가 이 시대의 정시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기디온은 이와 같은 건축 표혀방식이 보로미니의 파상벽(undulating wall)만큼이나 영향력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시카고 학파의 영향은 절충주의의 유입으로 단절되었다.
루이스 설리반은 다음세대에서 자신의 업적을 남기었다.
그리고 20세기의 10년동안은 시카고 학파의 전통이 몇몇 젊은 회원에 의하여 살아나갔다.
그들의 몇몇 빌딩은 유럽의 떠오르는 세대에 보여주려고 하였으나 자국에서도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문자상의 건축교육이 이루어져 젊은 사람들에게 시카고학파의 원칙은 단절되고 말았고 그들의 개성또한 파괴되고 말았다.
고립속에 남아있던 몇몇 회원들은 점점 쇠퇴하게 되었고 그들의 대부분은 그들의 전성기에 보여주었던 힘을 잃었다.
1922년 시카고 TRIBUNE빌딩 설계경기에서 미국건축가 Raymond Hood가 수상했다.
그러나 그 당시까지 자신의 힘에 확신을 가지고 참고 견디어온 시카고학파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학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 원칙또한 Woolworth Gothic의 유행으로 밀려버렸다.
설계경기에 참가했던 외국인 Gropius의 안은 현대적이지 않고 오래된 경향의 안이라고 생각되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의심할바 없이 실행되고 있는 고딕보다는 시카고학파의 정신에 가까웠다.
Gropius의 1922년 안과 설리반의 Carson, Pirie, Scott store를 비교해 보면
건축적인 표현으로 해결할 수 없는 뼈대구조의 그물망모양, 확연히 분절된 면,
중간의 고정된 패널과 옆면의 좁은 통기창에 의한 시카고창이 거의유사하다.
어떻게 보면 시카고 학파로부터 나온 계획안 같지만
시카고 창이나 시카고 고층빌딩은 당시 유럽에 알려지지 않았다.
두사람이 독립적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은 시카고 학파는
시대정신(시대정신)이 스며든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시카고 학파가 새로운 방법을 완벽히 얻은 매순간 그것의 발전과 영향은
1893년 Chicago Worls's Fair에 의하여 보급되었고 발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영향은 다른 곳에 영향을 주는데는 오랜시간이 걸렸다.
[출처] [펌] 시카고파 |작성자 robink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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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카고 파 .. 다른 관련 자료 있음 많이 좀 알려주세요..
카~간만에 서양근현대건축사,ㅎ~넘 어렵습니다. 이쪽에 관심이 많으신가봐요?^^
길어서 나눠 읽는 중. ^_*
1989년 가을, 핵교와 사당동 철거촌을 오가던 시기. 모더니즘이 어쩌구 씨카고파가 저쩌구.. 주절거리던 건축과 교수넘들의 중얼거림이 귓가에 맴도는듯 하네여 ㅎㅎ
건축사를 철학사나 문화사와 같이 배우면 재밌습니다. 지금은 잊어버렸지만 시카고파 말고도 여러 경향이 나타나죠.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같은 책 권해드리고 싶네요. 여러권이지만 꽤 괜찮죠. 개인적으로 건축과에서 '건축행정학'이나 '주거문화사'나 '주거심리학'같은 과목을 필수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개발이 '건축'의 문제기도하고 '행정'이나 '돈'의 문제이기도 해서 설계나 시공하는 입장에서봐도 문제가 심각하지만 건축인의 목소리를 반영하기가 어렵죠. 게다가 한국에선 그게 정치의 영역이기도 해서 대국민 홍보말고는 뾰족수가 없습니다. 자괴감이 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