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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강독 원본을 다시 수정하여 올립니다.
Q의 장르를 결정하는 것이 주요한 문제인데 이것이 말씀 모음집인가 아닌가
그리고 지혜의 말씀인가 예언적 말씀인가
또한 초대교회의 케리그마와 다른 내용읠 케리그마를 가지고 있는가에 관한 논쟁들에 대한 각 학자들의
견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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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의 문학적 장르
근대문학비평은 신약성서 학자들이 본문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장르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하였다. 장르는 “소설” “단편” 또는 “소네트”와 같은 문학 작품의 범주나 형태이다. 텍스트의 장르 결정은 단순히 분류의 과정이나 방법이 아니다. 텍스트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저자가 쓰고 있는 장르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역사 시험에 통과하기 위하여 나폴레옹에 관한 소설을 읽을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소설 저자의 관심은 허구의 소설을 쓰는 것이지 역사적 사실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텍스트의 장르를 모른다면 그 의미를 쉽게 오해할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고 있는 것이 비극이나 보다 심각한 다른 장르의 이야기가 아니라 농담이라는 사실을 듣는 이가 모른다면 농담을 애처롭게도 잘못 이해할 수도 있다. 만약 화자가 그 장르에 적절한 역설 익살 등을 성공적으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 결과 내용을 오해하거나 심지어 말하는 이나 듣는 이를 곤혹스럽게 만들 것이다. 학술 저자들이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을 어떻게 이해하고 연구하는 지를 검토하기 전까지는 Q와 같은 텍스트의 의미가 장르와 연결되어 있다는 가설의 중요성이 명백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최근까지 학자들은 초기 기독교 문학의 본질에 대한 그들의 이해 때문에 성서의 문헌들의 장르를 고려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세기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리스도교 문헌을 구전 전승에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하였다. 따라서 진정한 문학작품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따라서 상류사회 문학(Hochliteratur)과 비교가 되었다. 칼 루트비히 슈미트(Karl Ludwig Schmidt)는 이러한 태도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복음서는 근본적으로 상류사회 문학이 아니라 서민 문학(folk literature)이며,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서민의 책이며, 그리고 참고문헌이 아니라 제의 전설이다.” 이러한 전제의 토대는 프란츠 오버벡(Franz Overbeck)의 연구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는 신약성서와 후대의 교부문헌 사이에 문학적 연속성이 없다고 보았다.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은 편지와 같은 비문학 형태나, 전형적인 교부문헌과 당대 헬레니즘 문헌에서는 전형적이지 않은 문학적 형태 또한 갖고 있었다. 따라서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을 공동체 관심사로부터 나타난 문학적 양식이 생겨나기 이전(pre-literature, Urliteratur) 독특한 양식이라고 단정하였다. 이 공동체는 묵시론적으로 공동체였고 따라서 세계의 종말에 경도되어 후세를 위해 문학적 유산을 창조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 따라서 그들의 문학적 소산은 오직 서민 문학(folk literature, Kleinliteratur)으로서 규정될 뿐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을 대하는 이러한 방법은 양식비평의 등장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양식비평은 윈시 그리스도교 문헌의 구전 양식을 구분하고 교회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문서의 장르들 범주화하기 위하여 발전한 비평방법이다. 양식 비평가들은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을 단순히 구전 전통의 대용물로서 보았다. 예를 들어 복음서는 구전 전승단위들의 모음집이다. 초기 양식비평가인 마틴 디벨리우스는 복음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유형화하여, 복음서 본문을 “자료의 모음집” 정도로 생각하였다.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이와 비슷한 견해를 드러냈다:
[복음서의 문학적 구성]은 대체로 새로운 것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구전 전승으로 시작된 것을 완성할 뿐이다... 문학적 구성은 복음서 작가들 이전에 형성되었으므로 자료의 역사와 유기적 관계 속에서만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편집 비평(redaction criticism)의 등장과 더불어 이러한 관점이 변하기 시작했다. 편집 비평은 전승자료들이 결합하여 각가의 복음서를 형성한 특별한 방법에 주의를 기울였다. 복음서 저자들이 이야기와 말씀과 비유등을 무작위하고 단순하게 모은 것이 아니라 보다 세심하게 자료들을 선별하고 편집하여 매우 의도적인 방식으로 자료들을 짜깁기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편집 비평가들은 복음서가 각 저자들 자신의 신학적 의도의 산물이지 단순한 임의의 모음집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초대 교회가 다가올 종말과 부활하신 주의 도래에 경도되어 정교한 문학적 활동을 할 능력이 없는 묵시적 공동체라는 가정은 마찬가지로 묵시론적 기대를 지닌 다른 집단의 문학 작품 존재로 인하여 잘못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예를 들어 묵시론자들과 쿰란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임박한 세계 종말이라는 신념에도 불구하고 수준 높은 문헌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다른 분야들의 연구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결과들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민간전승에 대한 연구는 구전 전통과 문헌 전승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기록된 문서는 읽어야 하고 구전 전승은 구술을 이행해야 하므로 전승이 구전에서 문자의 형태로 이동할 때 형식과 기능에서 중요한 변화가 생긴다. 이러한 연구들은 학자들에게 예수의 말씀을 적어놓은 모음집인 Q 문서라 할지라도 형태와 장르의 문제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확인 시켜주었다. Q의 연구는 특별한 문학적 장르와 상관없이 수집된 것이라 보였던 예수의 비유와 경구가 실제로 한 장르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씀 자료, 담화 또는 초기 저자들이 사용한 단순히 말씀이라는 용어가 Q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Q의 장르를 규정하는 데 별다른 노력이 필요 없다. 그럼에도 여기 주목할 만한 예외가 있다. 예를 들어 프라이드리히 슐라이에르마허(Freidrich Schleiermacher)는 Q의 산상 수훈을 잠언록, 즉 지혜 말씀들의 선집으로 보았다. 홀츠만(H. J. Holtzmann)은 Q를 히포크라테스의 아포리즘들과 비교하였는데 이는 둘 다 주제별로 구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Q를 단순한 말씀 모음집으로 보는 경향이 덜하다. 한편으로 그들은 예수의 일생에 대하여 관심이 거의 없는 Q와 같은 문서를 만들어 내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버나드 바이스(Bernard Weiss)는 Q가 수난 사화를 포함하고 있지 않고 전기로서는 불완전 하더라도 다수의 말씀들은 “역사적인 도입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버나드는 Q는 최소한 ”전기의 도입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결론은 마태와 누가복음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미 마가복음 자료들뿐만 아니라 마가복음 2:24-28; 3:31-35; 10:28-34; 13:5-31에서 발견되는 담화들과 “최초 복음서에 포함된 보다 단순하고 본래적 양식을 지닌 마가의 서사적 부분들을 포함하여 재구성한 Q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바이스는 마가 역시 Q를 사용하여 Q를 편집하고 서사를 추가하였다고 믿는다. 마태와 누가 둘 다 Q를 이용했기 때문에,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종종 마가복음에도 함께 나타나는 서사와 말씀들의 보다 단순하고 본래적 양식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 바이스는 마태와 누가가 마가가 윤색한 것보다 Q의 보다 단순한 판본을 유지하고 있다고 믿는다. Q를 재구성하는 데 수 많은 마가의 자료를 포함하였기 때문에 바이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Q를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대기적인 문서를 창조할 수 있었다.
베이컨(B. W. Bacon) 역시 Q는 예수의 사역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 하였다. 베이컨이 보기에 Q는 예수를 지극히 고결한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 이사야 예언의 고난 받는 종” 묘사하였다. 베이컨은 이사야 42:1-4 을 인용한 마 12:18-21를 Q에 대한 이러한 신학적 읽기의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이 본문은 누가 병행구가 없다. 따라서 베이컨 해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본문이 정확히 Q의 부분인지 아닌지가 의심스럽다.
버킷(F. C Burkitt), 번디(W. E. Bundy) 그리고 엠마누엘 허쉬(Emannuel Hirsch) 또한 Q를 단순히 하나의 말씀자료로 보는 것을 넘어서 전기적 개념으로 생각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만약 Q가 마태와 누가가 공유한 자료만을 기반으로 재구성되었다면, Q에는 수난 사화가 없었을 것이고 예수의 부활에 관한 말이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Q가 이렇게 중대한 사실에 이와 같이 침묵할 수가 있을까? 따라서 버킷(F. C Burkitt), 번디(W. E. Bundy) 그리고 엠마누엘 허쉬(Emannuel Hirsch)는 누가 특수자료와 수난 사화에서의 "근소한 일치(minor agreement)" 를 Q의 것을 생각하여 Q의 수난 사화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했다. Q의 것으로 결정한 의심스러운 본문의 갯수에도 불구하고 Q의 것이라는 수난 사화는 연속적인 서사가 아니며 재구성된 텍스트는 후대의 “전기적인 복음서”에 상응해 보이지는 않는다.
Q에서 예수 자신의 복음을 인식한 아돌프 율리허(Adolf Julicher), 폴 베른(Paul Wernle), 아돌프 폰 하르낙(Adolf von Harnack) 과 같은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예수의 말씀 모음집이 교육목적이나 교리문답을 위해 사용되었다고 주장했다. 하르낙에 의하면, Q는 단순 갈릴리 사역시기 예수의 말씀 모음집이라는 것이다. 이 모음집은 특정한 편견을 본문에 반영하지 않은 수집가에 의하여 편집되었다. 율리허 이 모음집이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한 “원형적 양식” 그대로 예수의 말씀을 전승하였다고 까지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한 관점들은 Q문서가 마가복음에 나타난 신학에 종속된 것이라고 생각한 이들의 의견으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주안점의 변화는 율리허에게서도 나타나 1906년 신약성서 개론에서 Q문서와 마가복음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바꾸었다. 자신의 이전 입장과 마찬가지로 Q는 마가복음보다 앞서지는 않으나, 마가복음 보다 늦게 최종 형식에 도달하여 마가복음의 영향을 받았다. 예수의 어록으로부터 시작하는 Q는 마가복음을 보충하는 교리문답으로 발전하였다. 율리우스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도 이러한 의견 변화의 전개에 있어 중요한 인물로서 그는 또한 Q가 가르치기에 적절한 자료들을 가지고 마가복음을 보중하기 위하여 편집된 모음집이라고 주장하였다. 벨하우젠은 Q의 저자가 수난이나 부활과 같은 서사적 자료를 누락시킨 것은 Q가 마가복음을 전재하고 있었으며 마가복음을 상세히 설명하려고 시도하였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당시의 많은 학자들에게 Q가 역사적으로 마가복음 이후 문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Q는 “분명히 신학적으로나 해석학적으로 두번째 복음서에 종속되어 있음이 분명하였다.” 이 학자들은 Q가 마가의 신학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마가복음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벨하우젠은 마가복음과 Q가 겹치는 부분을 살펴보면서, 더 나아가 Q 또한 마가복음에 문학적으로 종속되어 있다고 제안하였다. 이러한 논지가 입증될 수 없는 까닭은 Q가 마가복음의 구조나 구성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스트리터(B. H. Streeter)와 맨슨(T. W. Manson), 그리고 독일의 디벨리우스(M. Dibelius)등 이후의 학자들은 십자가형을 받아 죽었다 부활한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초대교회의 설교 또는 케리그마에 Q문서가 신학적으로 종속되어 있다는 생각을 수용하였다. 따라서 Q는 그 자체로 해석되지는 않지만 마가복음의 관점에서 즉 수난과 부활에 대한 마가의 강조라는 관점으로 해석이 된다. 스트리터는 Q문서가 선교사들의 지침서였으며 초기의 선교사들이 봉착하였던 문제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고 생각하였다. 예를 들어 Q 3:7-9, 16-17, 7:18-35에서 예수와 세례요한과 그의 제자들의 관계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디벨리우스와 마찬가지로 스트리터에게 있어서도 Q는 교훈집이다. Q는 충고집으로 독자들이 특정한 윤리적 기준을 지킬것을 권고하는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와 같이 Q는 케리그마에 대한 윤리 부록집이었다. 이러한 판단은 결국 사라져 같으나 스트리터는 문학적 관점에서 상당히 가치 있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예를 들어 스트리터는 Q가 잠언이나 Pirke Aboth(65명의 실명과 익명의 유대교사인 랍비의 지혜의 말이나 경구 모음집)와 같은 책과 유사한 그리스도의 ‘지혜의 말씀’ 모음집으로 말씀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으며 또한, 디다케(Didache)와 유사하게 Q도 묵시록으로 끝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아래에서 보게 될 것이지만 이후 나타난 Q의 장르에 관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이러한 관찰 내용들은 예언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역시 Q가 윤리적 지침을 주로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초기 교회가 예수의 말씀 모음집을 확장하여 예수의 말씀이라는 것을 창조하고, 그리고 문화에서 뽑아낸 속담들 흡수하여 예수의 말씀으로 만들었다. 이와 유사한 과정을 시락서에서 볼 수 있는데, 이 고대의 말씀들의 모음집은 다른 격언 자료들과 합쳐서 확장된 것이다. 따라서 하르낙의 생각처럼 Q는 예수의 말씀의 자료가 아니라 초기 교회의 가르침의 자료였다. 불트만에 따르면 원래의 Q는 양식과 관련된 표제에 따라 주제별로 정리한 예수의 말씀을 모아 논 것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랜 편집과정에서 아람어의 판본으로 시작되었던 Q가 그리스어 번역으로 이어졌고, 묵시적이고 예언적 말씀과 같은 공동체에 대한 교화를 위한 자료 그리고 권면을 위한 자료들이 첨가되고 전승되었다. 불트만은 그리스도교 케리그마의 중심성을 주장하였으며 자신의 공관복음서 전승사에서 Q를 케리그마의 부속서로 보았다. 그리스도고 신앙의 신학적 중심이 케리그마라는 것 즉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 사역이라는 확신이 Q의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결과를 가져온다.
불트만은 자신의 저서 신약성서 신학에서 Q에 대한 입장이 바뀌었다.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의 메시지는 “신약성서 신학에 대한 전제들 가운데 존재하는 것이지 신약성서 신학 자체가 아니라는” 단언으로 시작하였다. 교회는 예수의 메시지를 원형 그대로 전하지는 않았다. 교회에 있어 예수는 단순히 예언자 혹은 교사 또는 율법의 비판자 혹든 오실 인자가 아니었다. 만일 예수가 이들 중 하나였다면, 교회는 여전히 유대교의 분파이지 그리스도교 교회가 아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초대 교회 공동체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나님께서 인자로 존귀하게 한 분이라고 선포하였다면, 이 선포가 그리스도 교회를 유대교 분파로부터 완전히 구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정적인 부분은 교회가 예수의 인격과 운명을 “유대교의 종말론적 틀을 부수어 버리는” 종말론적 사건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Q는 함죽적으로 이러한 내용을 드러냈는데 세례요한의 종말론적 설교를 통하여 시작하여 팔복으로 지속되고 그리스도의 다시오심에 관한 말씀에서 끝마치고 있다. 따라서 신약성서 신학에서 불트만은 자신의 공관복음서 전승사에는 나타나지 않은 측면을 Q에 대한 논의에서 소개하고 있다. Q는 디벨리우스, 맨슨, 스트리터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케리그마에 대한 권면적, 교훈적 부록이 아니라 완전히 전개되지는 않았어도 예수의 인성과 운명에 대한 종말론적 의미에 대한 독립적이고 신학적 이해이다. Q는 “예수의 비 메시아적인 연설과 헬레니즘적 교회의 자의식으로 충만한 케리그마 사이의 전승 단계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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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용이 길어 둘로 나눕니다
허걱! 잠도 안주무시고 이렇게 까지 하시다니 대단하시네요. 선생님은 힘드셨겠지만 매끄러워진 번역을 보니 기분은 좋습니다. 수고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