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말씀 산책
누가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는 놀라운 일을 하거나 상을 타는 일이 있으면 축하의 인사를 한다. 그럼 생일축하는 누구에게 하는 축하의 인사일까? 내가 어릴 때는 태아를 품은 산모는 생명을 담보로 하는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의사의 정기 검진을 받으며,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보며, 예정일에 병원에서 분만하는 것도 아니고 진통이 오면 산파도 없이 이웃 할머니들의 도움을 받아 솥에 물을 끓어놓고 산고를 이겨내야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죄를 지은 인간을 자상으로 추방할 때 준 가혹한 고통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기 전에는 손가락 발가락은 다섯일까? 아빠를 닮은 애를 낳게 될까? 살아서 아이를 볼 수 있을까? 근심하지만 어린애를 분만하게 되면 건강한 애를 얻게 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고통을 다 잊어버리고 자녀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어머니다. 그럼 축하는 이렇게 해산의 고통을 이겨낸 어머니에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세상에 고고의 소리를 내며 태어난 아이에게 돌려야 하는가?
아니다 생일 축하는 태어난 어린애의 몫이다. 누가 생일축하를 그 어머니에게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애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커 갈수록 생일을 챙긴다. 생일이 되면 선물도 받고 친구들을 불러 파티도 하고 또 친구 집에서 자고와도 부모가 이를 허락한다. 그래서 생일을 기다리며 혹 부모가 자기 생일을 잊어버릴까 걱정이 되어 “오늘은 거의 내 생일이다(almost my birthday)."라고 부모에게 생일 예고를 외친다. 그리고 생일이 되면 “오늘은 내 생일이다!”라고 두 손을 번쩍 들고 외친다. 생일은 분명 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난 그들의 날이고 생육하고 번성할 의무를 다하고 떠난 부모의 날이 아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결혼하고 부모를 떠나 자기 가정을 이룩하고 살고 있는 것이 30년이 넘는다. 그래서 2인 1가구로 살면서 우리도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한 때는 철없는 우리 2세들처럼 나는 “며칠 있으면 엄마 생일이다.”라고 자녀들에게 엄마 생일 예고를 하기도 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이메일이 흔하지 않아서 생일이 되면 자녀들이 예쁜 생일 카드를 보내왔었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그림엽서 같다고 말하는데 정규 규격보다 크고 예쁜 생일카드를 받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편지와 함께 따로 쪽지를 넣어서 깨알 같은 글씨로 부모님 은혜 감사하다는 글을 써 보내면 우리는 두 번, 세 번 그 편지를 되씹어 읽으며 기뻐한다. 아내는 눈물을 글썽일 때가 많다. 남들은 명절이면 자녀들이 손자들을 데리고 부모를 찾아오고 가정에 활기가 넘치는데 우리는 그런 것을 잊은 지 오래 되었다. 그래서 생일카드와 전화를 받는 것이 유일한 기쁨인데 때로 애들은 바빠서 생일을 잊어버리고 전화도 안할 때가 있다. 그럼 전화를 기다리다 못해 아내는 눈물을 흘릴 때가 있어서 멀리 있는 자녀들에게 생일 예고 통지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을 초극했다.
옛날과는 다르게 지금은 카톡이 생겨서 “생일 축하 드려요.” 하면서 생일 케이크나, 꽃들 사진 그리고 무료로 다운 받은 이모티콘 하나 쯤 첨가해서 보내면 그것으로 생일 축하가 끝난다. 바쁜 세상인데 그 정도면 감사표시는 끝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도 그것으로 자족(自足)한다. 물론 우리도 그들에게 잘한 것이 없다. 얼마 전까지는 자녀들의 생일 때는 꼭 케이크와 초를 사서 그들과 같이 있을 수는 없지만 함께 있다고 생각하며 집에서 생일축하노래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나이 50을 정점으로 그 애들의 생일은 그만 두기로 했다. 이 일에 많이 익숙해져서 아내는 둘이서 사는 것이 외롭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늙어서 둘이 살면서 청승맞게 무슨 케이크까지 사서 생일축하를 하느냐고 핀잔을 준다. 그래도 우리는 한 번도 거른 일이 없다. 처음에는 데커레이션이 제대로 된 생일 케이크를 샀는데 지금은 안 그런다. 사 와도 한 번에 다 먹을 수도 없고 또 케이크에 바른 크림 토핑이나 꽃 장식들은 거추장스럽고 소화에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축하 뒤에도 계속 냉장고에 넣어 놓고 먹을 수 있는 카스텔라로 된 롤 케이크로 바꾸었다. 이렇게 양식은 바뀌어졌으나 정성은 변함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생일 아침 일찍 내가 사는 소형 도시에 많지 않은 파리바게트에 나가 그날 만들어 놓은 케이크에 긴 초 8개 짧은 초 4개를 달라고 해서 아침 식사 탁자를 장식하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햇빛보다 찬란히 샘물보다 더 맑게/ 온 누리 곱게곱게 퍼지옵소서
뜨거운 박수로 축하 합니다/ “내 아내” 생일을 축하합니다.
물론 위 생일축하 노래의 “내 아내” 부분은 내가 독창을 한다. 생일이란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인데 일 년 더 죽음 앞에 다가서는 생일을 왜 축하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출산 하느라 수고한 아내가 생일축하를 못 받는 날이 가까워진다는데 그렇게 힘들지 않은 생일축하 못해줄 것도 없다. 어떤 아내들은 생일에는 좋은 옷을 사 달라, 패물 수집이 취미인 여인은 패물을 사 달라는 등 요구조건이 많은데 아내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단 한 가지 애들 생일에는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약간 호화스러운 식사를 사 달라는 것이 고작이다. 나는 꼭 이 작은 요구는 들어주고 있다.
이번 큰아들 생일은 주일이었다. 금년 여름은 유난히 더워서 한 달이 넘게 찜통더위가 계속 되고 열대야가 계속 되었는데 그 한 주일이 바로 생일이었다. 그런데 그날 교회에서는 나이 든 분들이 힘들었겠다고 은퇴 장로들의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외국이 아니어서 식사 초대에 부인까지 초대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아내와 외식하는 날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혼자 갔다. 이른 저녁을 마치고 집에 와보니 아내는 그때에서야 신라면을 끓여 먹고 난 뒤여서 스티로폼 용기에 벌건 국물이 묻어 있는 상태였다. 너무 미인해서 쳐다보고 있는데 아내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혼자 먹을 때는 신라면이 재격이에요.”
첫댓글 항상 감동되는 훌륭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더욱더 건강하게 지켜 보호하여 주시기를 하나님 아버지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