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심경 174 /아호대의 화상 7 /좌선의 지침[坐禪銘] 7
君不見가 磨?作鏡喩有由니 車不行兮在打牛로다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드는 것과 같다는 비유는 까닭이 있는 말이다.
그리고 수레가 가지 않을 때는 당연히 소를 대려야 하리라.
해설 ; 아래의 이야기를 이끌어 온 것이다.
6조 혜능 스님의 제자 남악회양스님이 그의 제자 마조도일(馬祖) 화상이 앉아서 좌선만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의 잘못을 깨우쳐주고자 하루는 기왓장을 가지고 가서 좌선을 하고 있는 암자 앞에서 소리를 내어 북북 갈고 있었다. 마조가 물었다.
“기왓장을 갈아서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남악스님이 대답하였다.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을 만든다네.”
“기왓장을 간들 어찌 거울이 되겠습니까?”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이 되지 못한다면 좌선을 한들 어찌 부처가 되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컨대 소가 수레를 끌 때 수레가 만약 가지 않으면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가 가지 않을 때 소를 때리지 않고 수레를 때리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부처가 되려고 하면서 그 근본을 다스리지 않고 이 육신을 다스려서 부처가 되기 위하여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거나 굳이 관절염에 걸리면서까지 결가부좌를 고집하는 참선납자가 적지 않다. 그것은 마치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는 것과 같으며 수레가 가지 않을 때 소를 때리지 않고 수레를 때리는 것과 같은 일이다. 참선자는 깊이 살피고 또 살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