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이 큰 사건도 그 내막을 들어다 보면 시시콜콜한 개인적인 감정에서 출발한 일이 많다.
1498년 연산군과 류자광이 선비들의 싹쓸이 판을 벌인 일이 무오사화이다. 이 때 빌미를 제공한 사람은 김일손이였다.
김일손이 춘추관 기사관으로 있을 때 스승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을 성종실록에 실었다.
조의제문은 중국 초나라 임금의 억울한 죽움을 애도한 글이다. 진시왕이 죽자 진나라에 망한 나라들이 다시 일어났는데 초나라도 그 중 하나이며 초나라를 일으킨 사람은 항우였다. 항우는 초나라의 왕족인 의제를 왕위에 올리고 후일 초패왕이 되어 더 이상 쓸모 없는 의제를 죽여버린 것이다.이 내용이<조의제문>인데 김종직이 이 글속에 세조가 왕위찬탈한 것을 은근히 빗대어 쓴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그 때 춘추관의 우두머리는 이극돈이였고 이극돈은 김일손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이극돈이 전라감사 시절 세조비 정희왕후 국상 중에 기생과 술먹고 놀아났다는 사실이 김일손의 사초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극돈은 김일손을 찾아가 지워 달라고 사정사정했으나 거절당했다.
한편 김일손은 이극돈에 대해 해묵은 감정이 쌓여 있었다.
김일손이 이조정랑에 천거 되었을 때 이조판서로 있던 이극돈이 극구 반대하여 승진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승진을 하지 못한 김일손은 이극돈을 원망하며 얼마동안 지내야 했다.
괘씸하게 여긴 이극돈은 류자광을 찾아가 <조의제문>이 실록에 실린 것을 일러 바쳤다.
한편 류자광은 김일손의 스승 김종직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이였다.
류자광은 남원 사람으로 함양에 놀려 갔다가 나무판에 시를 써서 함양 읍내에 있는 학사루에 걸어 두었는데 훗날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부임하여 류자광의 시를 떼어 버린 것이다.
류자광은 세조 임금때 남이장군을 역적으로 몰아 죽인 간악한 소인배로 하늘 아래 머리를 같이 할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마침 류자광이 김종직의 원수를 갚기 위해 벼를고 있을때 이극돈이 <조의제문>에 대해 귀뜀을 해 준 것이다. 류자광은 "잘 되었다 어디 한번 혼줄이 나봐라" 좋아 하면서 연산군에게 일러 바치면서 수많은 선비들이 죽어 나간 무오사화가 일어 난 것이다.
역사는 이렇게 한 인간의 감정을 풀기 위해 벌어 지지만 그 결과는 너무도 끔찍하게 전개되고 만다.
그래서 연산군은 이렇게 말하였다.
口是招禍門. 舌是殺身斧 --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죽이는 도끼다.
첫댓글 좋은 자료 잘 읽었네... 수고 많으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