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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성배의 족구매거진 원문보기 글쓴이: 송한용
전국에 계신 동호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송한용 입니다. 오늘 칼럼은 지난 번에 예고했던데로 은퇴를 선언한 현대파워텍의 공격수 강만규 선수와의 인터뷰로 꾸며보도록 하겠습니다. 늦은 시간 전화로 인터뷰 해주신 강만규 선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길고도 긴 강만규 선수의 족구 이야기 한 번 빠져보도록 하시죠.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송한용(이하 '송'): 강만규 선수!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만규(이하 '강'): 저도 너무 감사합니다. 재미있는 인터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송: 네! 알겠습니다. 저도 재미있는 인터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강: 안녕하세요? 현대파워텍 공격수 강만규 입니다. 1982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고, 올해 35살 입니다. 키는 183, 몸무게 75입니다. 가족은 아내와 슬하에 8살 된 아들과 6살 된 딸이 있습니다.
송: 현대파워텍에서 맡고 계시는 업무가 궁금하네요.
강: 저희 현대파워텍은 오토미션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서브반이라고해서 조립공정 라인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송: 우리 동호인 분들이 가장 궁금해 하시는 것이 바로 강만규 선수의 무릎상태일텐데요. 무릎상태가 어떠신지 그리고 현재 근황이 궁금합니다.
강: 오른쪽 무릎 연골을 수술한지 6개월 정도 되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무릎 상태는 족구를 하기에는 무리라서 족구는 안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재활 운동과 그동안 하고 싶었던 테니스를 하면서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송: 무릎이 안좋으신데 테니스를 하신다고요? 테니스는 무릎에 무리가 가는 운동이 아닌가요?
강: 물론 무리가 많이 갑니다. 그래서 그렇게 심하게 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저희 반장님, 아! 오병관 반장님 아시나요?[송: 네 물론 알고 있죠. 족구계의 전설의 공격수이시잖아요.] 네 맞습니다. 그 분께서 저희 반장님이시거든요. 반장님께 처음에 권유를 받았습니다. 어차피 제가 언제까지나 족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시다시피 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운동을 안하면 삶이 재미가 없으니까 반장님께서 함께 해보자고 제안하셔서 무릎에 무리가 안가도록 지금은 취미삼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송: 아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위의 질문보다 우리 동호인 분들이 더욱 궁금해 하는 내용일텐데요. 이제 은퇴를 결정하신건가요?
강: (잠시 머뭇거리다가)네! 감독님과 동료 선수들에게는 이미 얘기를 했고, 제 뒤를 이어 저희 파워텍의 공격수를 맡을 선수를 영입하려고 많이 준비를 했었습니다. 현재 내부 사정으로 인해 아직 선수 영입은 결정이 안 된 상태입니다. 은퇴를 결정하게 된 이유는요, 양쪽 무릎이 좋지 않은 상태예요. 제가 그동안 몸을 너무 많이 혹사시키다 보니 몸도 힘들고 그래서 족구에 대한 열정이 조금씩 떨어져가고 있었거든요. 예전에 무릎이 다쳤던, 아마 2012시즌 정도로 기억하는데요, 그때부터 족구를 슬슬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병원에서도 족구를 할 수는 있다고 말하지만 내년에 36세의 나이를 고려해봐도 예전만큼의 기량을 보일 수는 없을 것 같아 아쉽지만 이제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송: 그럼 현대파워텍의 다음 공격수가 궁금한데요, 물망에 오른 선수가 있나요?
강: 네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저희 회사에서 내부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부분이니 제가 이 자리에서는 공개할 수가 없습니다.
송: 네 알겠습니다. 사실 강만규 선수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이 바로 은퇴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이 대답의 여부에 따라 오늘 인터뷰의 내용이 상당부분 바뀔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아쉽지만 오늘 인터뷰는 그 동안의 선수생활을 정리하신다는 생각으로 해주셨으면 좋겠고요, 세부적인 이야기는 잠시 뒤에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족구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강: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부사관으로 지원해 전라도 담양에서 군복무를 하다가 처음으로 족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말 그대로 '군대 족구'였어요. 오버넷도 없고 발바닥으로 공격하고 당시엔 족구보다는 축구를 좀 해서 부대 대표로 축구 시합을 많이 다녔어요. 전문적으로 족구를 시작한 건 담양에 있는 부대에서 축구를 하다가 오른쪽 무릎 후방 십자인대 파열로 큰 부상을 당했어요. 그런데 그 부대가 '특전사'이다보니 그 무릎 상태로 훈련을 받기는 무리라서 포천에 있는 부대로 전출을 가게 되었죠. 그때부터 저의 족구인생이 시작된거죠. 23살때, 그러니까 2004년이겠네요. 부대 행정보급관님이 부대 족구 시합때 제가 족구하는걸 보시고 부대에 조그만 팀을 하나 만들어서 지역 시합을 다니곤 했어요,
송: 그럼 결과적으로 그 무릎 부상으로 인해 족구를 시작하시게 된 거네요?
강: 아, 그렇죠.(웃음) 어쨌든 그 무릎 부상으로 포천의 부대에 전출을 가고 거기서 족구를 시작했던 거니까요.
송: 아이러니하게도 강만규 선수의 족구인생은 무릎 부상으로 시작하셔서 무릎 부상으로 끝나게 된 거네요.
강: (웃음)그러네요, 공교롭게도 정말 그렇게 정리하게 되었네요.
송: 그 이후 GM대우 족구단으로 입단하시게 되었는데요.
강: 네 그렇습니다. 아까 잠깐 언급했듯이 포천에 있는 부대에서 팀을 만들어 대회를 다니고는 했습니다. 그러다가 인천대회를 나간 적이 있는데 당시 최강부 대우족구단 형님들 눈에 제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머리가 하야신 분이 제게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너 나랑 같이 족구해 볼래?' 눈치 빠르신 분은 그 분이 누구신지 아실겁니다. 바로 전설의 세터 김해수 삼촌이셨습니다. 사실 전 그 분이 그렇게 유명한 분이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웃음) 어쨌든 이때부터 속된 말로 족구에 미쳤었습니다. 2005년 전역하고 바로 대우에 입사하는 것으로 약속받았거든요. 그때부터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부대 숙소 근처에 진짜 작은 체육관이 하나 있었는데 비가 오거나 저녁이면 연습할데가 없어서 자주 이용을 했습니다. 문이 닫혀 있을때가 많아 몰래 창문으로 들어가 연습하곤 했죠. 뛰어차기를 연습하다가 체육관 천장에 있는 전구를 수십게 깨먹어서 갈았던 적도 있고, 또 한 번은 자다가 족구하는 꿈을 꾸는데 뛰어차기가 갑자기 안되는 거예요. 그러다 잠에서 껬는데 꿈 속에서 안되었던게 너무 무서워서 새벽에 공들고 체육관에서 연습했던 적도 있었습니다.(웃음)
송: 그러면 군인이라는 그 좋은 직업을 그만두시고 족구 선수를 한다고 했을때, 집안에서 반대는 없었나요?
강: 저는 아버지가 초등학교때 돌아가셔서 어머님과 형과 함께 살았었는데, 학창 시절 태권도 선수생활을 했기 때문에 운동한다는 부분에 대해서 크게 거부감이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대우라는 대기업에 들어간다고 하니 집안에서 오히려 좋아하셨던 것 같습니다.
송: 그러면 GM대우 족구단의 운동 환경은 어땠나요?
강: 사실 전역하고 약속 받았던 입사가 바로 되지 않았어요. 입사시기가 맞지 않아 몇 개월은 그냥 놀면서 운동만 했어요. 그래도 족구단에 대한 회사의 지원은 괜찮았던 것 같아요. 시합 전 1주일 정도는 회사에서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도 했고, 거리가 먼 곳에서 시합을 하면 회사 버스도 지원해 주는 등 다른 팀들이 많이 부러워 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조금 아쉬웠던 것은 전용구장이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타구장에서 다른 팀 운동할 때 같이 껴서 했었어요. 당시 세터 (서)권일이 형도 저와 같이 입사 대기여서 둘이 많이 돌아다니면서 개인 훈련을 했던 것 같애요. 운동장에 있는 축구 골대에서 둘이 공 주워가면서 했었죠. 힘들었지만 나름 재미있었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네요.
송: GM대우 시절 즐거웠던 추억이 있다면요? 또 반대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강: 즐거웠던 추억은 정말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GM대우 시절 저의 첫 전국대회 우승이었던 것 같은데 2005년 제주도에서 벌어진 전국대회였습니다. 그때 우승하고 재미있게 제주도 관광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 아참! 그때 4강전에서 (조)용수 형님때문에 너무 화가나서 감독님께 '저 못하겠어요.'하고 뛰쳐나간 일이 생각나네요.(웃음)
송: 그때 상황을 자세히 좀 알려주시겠어요?
강: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용수 형님이 승부욕이 상당히 강해요. 당시 4강전이 (강)세구 형이 있었던 신창전기 팀과의 대결이었는데요. 3세트에서 경기가 잘 안 풀렸었어요. 그때 자꾸 용수 형님이 저 한테 '이렇게 좀 해, 저렇게 좀 해'하면서 자꾸 제게 고함을 치는거예요. 물론 팀을 위해서 그리고 꼭 이기고 싶어서 그런 건 충분히 이해를 하지만 공격수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자꾸 주문이 들어오니까 그것 때문에 저도 어린 마음에 화가 많이 났었던 것 같애요. 게다가 작전타임 시간까지 그게 이어지니까 저도 모르게 그런 험한 말이 나왔나봐요. 그런데 그 날, 회사차원에서 제주도에서 대회를 하니 관광 겸 응원을 위해 많은 관계자 분들이 와 계셨거든요. 그 분들도 놀라서 저를 많이 진정시키시려고 했어요. 다행히 그게 결과적으로 우리 팀의 정신상태를 강하게 해주고 뭉치는 계기가 되어서 우승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웃음) 그 이후에는 2006년 sbs방송 시합에서 우승하고 뒤풀이로 나이트클럽 가서 신나게 놀았던 것도 기억에 남고요.
송: 말씀을 끊어서 죄송한데요, 이거 하나 꼭 짚고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당시 sbs대회(5인제)에서 강만규 선수와 김동한 선수가 함께 공격을 하셨는데, 강만규 선수가 부공격수 역할을 하셨고, 김동한 선수가 주공격수 역할을 하셨는데, 무슨 이유가 있었나요?
강: 아 그때 전주에서 벌어졌던 sbs대회 예선리그전에서 위니아 만도와의 경기 도중이었는데요, 제가 발목을 심하게 접질려서 응급실에 실려갔었습니다. 결승전이 한세대학교와의 대결이었는데 발목에 테이핑도 하고 압박 붕대도 감았지만 그때까지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어요. 게다가 발목에 신경을 쓰다보니 허리에 담이 걸린거예요. 사실 대회를 준비하면서 제가 주공격수, 동한이 형이 부공격수로 호흡을 맞췄고, 준비도 했는데 결국 시합 며칠 전, 어쩔 수 없이 제가 부공격수, 동한이 형이 주공격수로 역할을 바꾸게 되었고, 그렇게 시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동한이 형이 정말 잘해주셔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송: 아 그랬군요. 그때 정말 궁금했는데 이제서야 의문이 풀리네요, 감사합니다. GM대우 시절 이야기 계속 부탁드립니다.
강: 그래도 대우시절 저한테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족구를 잘하게 만들어 준 정(情) 많은 대우 형님들과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저를 많이 예뻐해 주시고 정말 많은 사랑을 주고 챙겨주시던 용수 형이 제가 대우 직원 아파트에 입주했을 때 이불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형수님과 함께 챙겨 오셨을 때 정말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해수 삼촌은 집으로 저를 직접 초대하셔서 맛있는 밥도 해주셨고요, 감독님 및 형님들이 돈 모아서 용돈 및 맛있는 것 많이 챙겨주셨습니다. 정말 좋은 분들이셨죠.
힘들었던 기억은 정규직으로 입사가 안되는 것이었어요. 그때 정말 힘들었습니다. 형들도 많이 미안해 했고요. 다른 팀에서 이 사실을 알고 연락이 많이 오더라고요. 처음에는 많이 거절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 이야기가 나오던 시기라 빨리 자리를 잡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또 몇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또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니 한 번 가보자고 생각해서 다섯 팀 정도 다녀온 것 같아요. 그 중에 파워텍도 있었습니다. 이때 정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송: 그렇게 결국은 이적을 하시게 되었군요.
강: 그 날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2006년 8월 8일, 결국 현대파워텍으로 입사를 했습니다.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대우 형님들한테 정말 미안했고, 저도 많이 아쉬웠거든요. 대우에서 족구에 입문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고 공격수 강만규를 만들어 준 팀인데 이별하려고하니 정말 힘들더라고요. 인천에서 서산으로 내려오면서 용수형하고 둘이 통화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입사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현대파워텍으로 이적하게 되었네요.
송: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적응하시게 되었는데요. 현대파워텍의 운동 환경은 어땠나요?
강: 음...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좀 힘들었어요. 대우에서 운동했던 것과는 다르게 체계적이고 정말 프로 선수들처럼 연습했거든요. 주야간 업무를 하고 일과 후 운동을 하는데 기본 2,3시간씩 운동을 하니 많이 힘들더라고요. 특히 야간근무 이후 운동을 하니까 몸이 많이 무겁고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워낙 연습을 좋아하니까 그 부분은 힘들지만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근데 당시 야간 근무 후 잠 한 숨 못자고 대회에 출전했을때는 정말 정신력으로 버틴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형들이 좀 무서웠습니다. 당시 저희 팀 멤버들이 민경철, 성우석, 장동향, 조용준 선수가 있었는데 민경철 선수를 제외하곤 모두 직업 군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약간 군대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요?(웃음) 그 부분이 적응하기 조금 힘들었습니다.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은 넓은 체육관이 있어 좋았고, 정말 족구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팀이었습니다. 또 방송 시합에서 많은 우승을 하고 족구팀이 매스컴을 타니 회사에서 홍보팀을 만들어 지원도 많이 해주고 있습니다.
송: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적을 한)이후에도 GM대우 팀과 자주 겨루셨을텐데 기분이 어떠셨나요?
강: 정말 많이 겨뤘습니다. 그런데 저도 그렇고 대우 형들도 그렇고 정말 서로 지기가 싫었던 것 같습니다. 경기 중 양팀에서 가끔 설전을 펼친적도 있었으니까요. 물론 저와 그런 건 아니었고요, 저희팀 주장과 대우 팀 주장이었던 용수 형과 분위기가 험악하게 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경기장 밖에서는 서로 웃으면서 인사하곤 했습니다. 아마도 친한 사람들이다 보니 더더욱 지기가 싫었었나봐요. 아무튼 치열하게 경기를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송: 네 저도 잘 아는 사람과 대회에서 맞붙으면 특히 지기가 싫더라고요.(웃음) 그럼 파워텍에서 첫 우승은 언제였나요?
강: 2006년 벌어진 전국체전으로 기억합니다.
송: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출전했던 수 많은 대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 혹은 경기가 있었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강: 기억에 남는 대회는 참 많았던 것 같아요, 특히 방송대회가 기억에 많이 남네요. 몇개 대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우승했던 것 같아요. 이상하게 카메라가 있으니까 더 잘되더라고요. 방송이 자주 나가니까 극장, 옷가게, 술집, 길가에서 사인 요청도 많이 받았고 팬들과 사진도 찍기도 하고 그랬죠.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기억에 남는 경기라면 2008년 속초에서 벌어졌던 걸로 기억하는데, 문체부 대회 이천시청과 결승전이었죠. 아마 파워텍 입사 후 첫 방송대회 우승이라 더욱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14년 청원대회, 이날 야간 근무 후 출전을 했었습니다. 4강에서 부천중앙, 결승에서 한세대학교와 맞붙었는데 4강부터 다리 경련과 무릎 통증으로 투혼을 발휘해 간신히 우승을 했습니다. 그 날 우승을 결정 짓고 유니폼 뒤집어 쓰고 울 던게 생각나네요.(웃음) 그리고 2015년 옥천대회, 무릎이 아파 출전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던 대회였는데 결승에서 하이트진로음료를 누르고 우승을 했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래도 이 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올 2016시즌 울산대회를 준비하다가 천유빈 선수의 아버지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셨는데, 며칠 후 연락이 와서 참가하자고 하더라고요. 꼭 참가해야하나 싶었는데 본인이 강력히 원해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족구에 대한 열정 그리고 평소 천유빈 선수 아버지께서 족구 선수로 파워텍에 입사한 걸 많이 자랑스러워 하셔서 아마 유빈이가 아버지께 마지막 선물을 드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울산으로 내려가면서 감독님 및 팀원들이 '유빈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결의를 다졌습니다. 그리고 시합 때, 정말 최선을 다해 경기를 했습니다. 다행히 우승을 차지해서 가시는 분께 작은 선물이라도 드린 것 같아 마음은 에리지만 기억에 오래 남을 대회였습니다.
송: 정말 아는 이들에게는 울컥할 만한 감동적인 대회였군요. 공교롭게도 그 대회가 강만규 선수의 마지막 최강부 우승이기도 했고요. 그렇다면 패배한 경기 중 그래도 강만규 선수가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경기가 있나요?
강: 2008년 증평에서 벌어졌던 클럽리그전 이천시청과의 8강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정말 많은 것을 느꼈어요. 전 공격이 너무 단조롭고 강공에 의존하다보니 상대 수비수들이 다 잡아 올리더라고요. 근데 세구 형은 머리를 써서 공격을 하는거예요. 길게 치고 짧게 치고 이쪽 저쪽으로 찔러대고, 완패였어요. 그때 그 경기가 많은 것을 느끼게 한 경기였습니다. 사실 강공의 비중을 좀 줄이고 연타 페인트 등을 적절하게 섞어서 공격을 해야 한다는 조언은 많이 들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제 힘을 믿고 강공의 비중을 줄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구 형이 그 날 경기 운영하는 모습을 보고,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저렇게 해야만 내가 더욱 발전할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뛰어차기 비중을 줄이고, 안축, 발코, 연타, 페인트 등의 공격에 더욱 집중해 연습을 했습니다.
중편으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