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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들의 환속과 징계 그리고 죽음이 의미하는 것- [3월 특집 교회의 권력구조와 폭력의 악순환-2]
※ 편집자 주)
올해 3월부터 가톨릭프레스는 매월 특집 주제를 선정해 주제와 관련한 내용을 취재하고 분석하여 연재 보도 합니다. 특별히 연재 마지막 편에서는 [마무리와 제안]을 보도 합니다. 특별보도팀 ‘저스티스(Justice)’는 가톨릭프레스만의 살아있는 언어로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될 것을 다짐했습니다. 첫 번째 특집 주제는 [교회의 권력구조와 폭력의 악순환]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 교회의 권력구조가 미치는 영향력과 순환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을 시도했다. 그 가운데 이번 시간에는 교구활동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사제'와 '직무'에 집중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위해 관련 데이터를 분석했다.
사제의 환속과 징계, 죽음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각각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제의 환속에 있어서는 각 교구마다 특정 기간을 기점으로 그 수가 증가했고, 사제의 죽음에 있어서는 특정 교구에서 청년층 사제의 죽음이 많았다.
사제 사망의 경우 사인을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서품을 받은 지 10년 이내의 사제가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그 수가 많다면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제 하나씩, 데이터가 의미하는 것에 다가가 보기로 하자.
사제들의 환속과 징계 그리고 죽음이 의미하는 것
한국천주교회에서 사제의 역할과 비중은 크고 절대적이다. 특히 본당 주임사제는 주교로부터 본당을 이끌어갈 사목위원을 임명하고 구성할 권한과 교회의 예산을 집행할 권한 등 본당 운영의 전권을 부여받는다. 또한, 지역에 사는 신자들 앞에서 강론하는 설교자이기 때문에 정치인과 공무원에게도 사제는 중요한 사람이다.
신자들은 사제를 영적인 아버지라고 부르며 세상 어디에도 말 못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한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신자들의 죄를 용서한다. 사제라는 이름은 한국 사회에서 존경의 대상이고, 그에 따른 배려와 보호도 받고 있다.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한국천주교회는 추기경 2명, 대주교 5명, 주교 29명을 비롯해 교구사제가 총 4,087명이다. 전국의 사제 1인당 평균 신자 수는 1,360명 정도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역대 사제 통계자료를 근거해 올해 안으로 사제 서품자가 6,000명이 넘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사제들의 이탈이 크게 늘었다. 스스로 사제의 길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고, 교회법에 근거해 교구로부터 사제의 직분을 박탈당하는 경우도 있다. 심신의 질병으로 휴양하거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청년의 나이에 죽음에 이르는 사제도 많다.
교회법은 제1권 일반규범에서 교회 직무의 상실(제2절)에 관해, 제184조-제196조에서 직무에 관한 용어를 ‘사퇴’, ‘전임’, ‘해임’, ‘파면’으로 정리한다. 그러나 신자들이 주보를 보아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은 교회법적 용어와 실제 사용 용어가 교구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매년 주교회의에서 발표하는 「주교회의 한국 천주교회 통계」에서는 해당년도에 타교구나 수도회로 이적했거나 성직을 떠난 신부를 제적(Excardinatio)신부로 나타내고 있다. 이에는 ‘환속’과 ‘면직’이 포함된다. 질병으로 몸과 마음을 보양 중인 신부는 ‘휴양’, 조사일 현재 소임지 발령을 대기하고 있는 상태이면 ‘대기’, 자의·타의를 포함해 성사집행을 할 수 없는 직무정지 상태를 ‘휴직’으로 기록한다.
가톨릭프레스 특별보도팀 '저스티스(Justice)'는 「주교회의 한국 천주교회 통계」와 「주교회의 한국천주교 주소록」, 「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사제 인명록」 등을 토대로 1996년부터 2014년까지의 변화를 정리해 보았다. 이 근거 자료를 통해 사제들의 직무이탈 및 변화 추이, 평균 사망연령 등을 분석할 수 있었고 의미 있는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자료 분석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와 각 교구에서 공개한 자료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교구 자체적으로 누락된 정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전제한다.
사제들의 직무이탈과 교구정책의 연관성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 우리는 특정 시기에 사제들의 직무정지 처분이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서울대교구는 2000년도를 기점으로 직무정지나 제적 사제가 크게 늘었다. 약 5년 단위로 직무정지와 제적 사제를 분류했을 때, 2000년부터 2004년까지의 직무정지와 제적 사제가 이전보다 급격히 증가했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일정한 숫자를 유지하지만 2000년 이전보다 많은 인원이 직무정지와 제적의 대상이 됐다.
인천교구는 2005년을 기점으로 직무정지나 제적 사제가 크게 늘었다. 역시 5년 단위로 분류하였을 때, 2005년부터 직무정지나 제적 사제는 이전의 4배를 기록했다. 수원교구는 2002년부터 직무정지와 제적 신부가 늘어났으나, 최근 5년에는 전 교구에서 가장 많은 직무정지와 제적을 기록했다. 반면 제주교구는 지난 10년간 직무정지나 제적된 사제가 1명도 없었다.
제적, 직무정지 등과 관련한 규정과 절차상의 문제는 다음 편에서 더욱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우리는 직무이탈의 특징적인 현상에 주목해 보았다.
이러한 직무정지와 제적 사제의 증가와 교구 정책의 변화에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우연의 일치겠지만, 서울교구와 인천교구는 교구 보수화와 사업화가 진행된 시기에 직무정지와 제적 사제의 수가 급등하는 현상을 보였다. 교구는 풍족해졌지만, 사제들의 내적 갈등은 더욱 깊어진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생긴다.
서울대교구는 2000년 한국통신 노조 농성을 마지막으로 명동성당에서 사전허락을 받지 않은 농성을 불허했다. 일각에서는 한국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는 명동성당이 노동자에게 등을 돌린 일대의 사건이라며, 이를 통해 서울교구가 본격적인 보수화를 시작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후 명동성당은 ‘신자들의 기도에 방해된다’는 명목으로 성당 내 농성을 허락하지 않았고, 때에 따라서는 무력을 동원해 명동성당에서 농성자들을 몰아냈다.
인천교구는 2005년 11월 공식적으로 성모자애병원을 인수해서 운영을 맡기 시작했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인천교구가 병원을 운영하면서부터 병원 측의 노조탄압과 돈벌이 경영이 시작됐다. 이후 인천교구는 관동대 인수와 국제성모병원 건립 등 각종 병원 사업을 진행했지만, 의료보험금 부당 청구, 여성 노동자 탄압과 해고라는 오명을 덮어쓰게 됐다. 한때 노동사목의 발원지로 불리던 인천교구는 현재 여성노동자 탄압 혐의로 여성단체에게서 ‘성 평등 걸림돌’ 상을 받는 처지가 됐다.
왜 사제들은 평균수명만큼 살지 못할까...
교구별 사제 사망 평균 연령(09~15년도)
사제들의 사망과 관련한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 더욱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제 인원수가 많은 상위 7개 교구를 대상으로 사망 인원이 많았던 시기인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사망한 사제들의 평균나이를 조사한 결과 인천교구의 사망 사제 평균나이가 타 교구에 절반 정도에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세계인구 현황보고서 기준, 한국 남성의 평균 수명은 78세이다. 그런데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사망한 사제들의 평균나이를 분석했을 때 부산교구는 78.9세를 기록해 한국 남성의 평균수명보다 0.9세 높았다. 다음으로는 광주대교구가 76.5세로 2위를 기록했고, 대전교구가 74.4세로 3위를 차지했다. 4위는 서울교구로 72.9세였으며, 대구대교구가 71.4세로 5위를 기록했다. 수원교구는 68.3세로 6위를 기록했다.
문제는 인천교구다. 인천교구에서 지난 7년 동안 사망한 사제들의 평균 나이는 46.3세였다. 이는 사망 신부들의 나이가 부산교구보다는 30년가량 젊었다는 뜻이며 6위인 수원교구보다도 20년가량 젊다는 의미이다. 최근 인천교구에서 젊은 사제들의 죽음이 눈에 띄게 많다는 것이다.
사제들의 사망에는 신체적·심리적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원인이 있다. 신체적 질병을 예방, 치료하기 위해서 각 교구는 2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지원한다. 우리는 각 교구에 사제들의 심리적·정신적 문제 발생을 예방하거나 문제 발생 시 지원하기 위한 조직, 기구, 활동 등이 있는지도 물었으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심지어 어떤 교구는 특정 기관을 언급하며 사제의 심리적·정신적 상담과 문제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언급된 기관에 확인해본 결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대답을 듣기도 했다.
개인 문제가 아닌 구조 문제로 접근해야 진실 전체가 보이는 법
개인이 아닌 조직적·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정신분석학에서 C. G. 융은 페르소나(Persona)를 집단심리 발현의 한 측면으로 설명했다.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나타내는 심리학 용어인 ‘페르소나’는 개인이 사회적 요구에 적응할 수 있게 해 주는 매개체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페르소나’는 그리스의 고대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 탈’에 어원을 두고 있다. 곧 페르소나는 집단이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역할인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교사는 권위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 의사는 인체의 신비에 정통하고 이성적인 사람, 어머니는 자식들을 사랑하고 희생하는 사람이라는 사회적 기대가 있다.
가톨릭교회의 사제는 기도생활에 충실하며 영적으로 충만해 사람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사람, 하느님을 따르기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며 돈과 명예를 탐하지 않고 청빈한 삶을 사는 사람, 자상한 아버지 등의 ‘페르소나’가 우리 의식 전반에 흐르고 있다. 이처럼 페르소나는 한 사회가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우리가 기대하는 페르소나가 무너졌을 때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최근 바티칸이 호평했다는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는 기존 사제들의 페르소나는 자취를 감추고 추악하고 폭력적인 사제들의 어두운 모습이 드러난다. 감춰져 있던 ‘집단의 어둠’이 수면위로 표출된 것이다. 이 영화가 전 세계인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화제가 되는 것은 아마도 페르소나가 무너지면서 받은 충격과 어쩌면 짐작하고 있었을 ‘감춰진 어둠’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실재 인물인 마틴 배런 전 '보스턴 글로브' 편집국장은 현지 기자회견을 통해 "개인 문제가 아닌 구조 문제로 접근해야 진실 전체가 보이는 법"이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교회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아야 하며, 자기 존재의 신비에 대해 숙고해야 합니다. 이런 활기차고 적극적인 자기 인식은 그리스도께서 계획하셨으며 자신의 거룩하고 흠 없는 신부로서 사랑하셨던 교회의 이상적인 모습과 오늘날 교회가 세상에 보여주고 있는 실제 모습의 비교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바로 쇄신을 위한, 교회의 용맹하고도 열정적인 노력의 원천입니다. 이 노력은 바로 교회의 모범이신 그리스도와 같이, 교회 자체의 자기반성이 교회 스스로를 지적하고 반성하며, 교회 내의 구성원들에 의해 생겨난 결점을 바로잡기 위함입니다. (제 26항)”
'사목'과 '자비'가 아니라 '사업'과 '번영'을 중요시 한다면...
2000년대 이후 한국 천주교는 외적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성당과 성지는 더욱 화려해지고 커졌다. 가톨릭병원들은 개선과 증축으로 일반 대형병원과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다. 교회의 성장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노력이 오늘날 좀 더 쾌적하고 안락한 교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쾌적하고 안락한 교회에 힘없고 소외된 이들이 함께할 자리는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자들의 품위 있는 신앙생활을 이유로 노동자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성지개발을 강행하면서 다른 종교와 마찰을 빚었다. 교회가 부유해져야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일부 지도자들의 논리는 자칫 낙수효과를 떠올리게 한다.
교회가 세속화를 진행하는 동안 사제들의 내적 상처와 혼란이 커졌고, 이전과는 확연히 차이가 날 만큼 많은 수의 사제들이 환속했다. 환속에 대한 고민은 분명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따르겠지만 교구가 세속화를 향한 큰 발자국을 남길 때마다 ‘우연히’ 환속하는 사제들은 큰 폭으로 늘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성경 말씀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또한 국제성모병원 건강보험금 조작과 인천성모병원의 돈벌이 경영·노조탄압의 오명을 쓰고 있는 인천교구에서 최근 7년 동안 사망한 사제의 나이가 타 교구의 절반 수준인 것은 단순히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다. 우연의 범위라고 하기엔 타 교구보다 30년가량이나 낮은 사망 연령대는 처참하다. 만일 교구가 ‘사목’과 ‘자비’가 아니라 ‘사업’과 ‘번영’을 중요시 여겨, 교구 사목자들의 상처를 부추기고 방치했다면, 과연 교구 지도부와 주교는 그 죽음의 무게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천주교중앙협의회를 방문해 주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물질적인 번영 속에서도 어떤 다른 것, 어떤 더 큰 것, 어떤 진정하고 충만한 것을 찾고 있는 세상에 이 희망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형제 사제들은 여러분의 성화 직무를 통하여 이 희망을 제시하십시오. 이 성화 직무는 신자들을 전례와 성사 안에 있는 은총의 샘으로 이끌어 줄 뿐만 아니라,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라는(필리 3,14 참조)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행동하도록 끊임없이 재촉합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친교 안에서 성덕의 불꽃, 형제적 사랑의 불꽃, 선교 열정의 불꽃이 타오르게 함으로써 이 희망을 지킵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는 여러분이 언제나 여러분의 사제들 곁에 머무를 것을 부탁합니다. 날마다 일하고 성덕을 추구하며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는 그들의 곁에서 용기를 북돋아 주십시오. 하느님의 백성을 섬기는 그들의 아낌없는 봉사에 감사를 드린다고, 저의 사랑에 넘치는 인사를 전해 주십시오.”
교황은 주교들이 ‘언제나 여러분의 사제들 곁에 머무를 것’을 특별히 부탁했다. 사랑의 실천은 관심 가지고 지켜보고 가까이 다가갈 때 비로소 시작된다. 문제를 찾아 ‘지적’하고,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용기’를 주고 ‘함께’ 가기 위해 곁에 머무르는 것이다.
사제로서 성화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어떤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지, 직무이탈에 있어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조직의 영향은 없는지 용기 있게 들여다보고 ‘내어놓고’ 말할 수 있을 때 실마리는 바로 그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3부 에서는 [3월 특집 교회의 권력구조와 폭력의 악순환-3 : 주교들의 인사폭력]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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