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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도 행함이 없음을 근심하라
『학문하는 공부에는 ‘지(知)’와 ‘행(行)’이 있는데, ‘지’는 나의 지식을 지극히 하여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고, ‘행’은 몸소 행하여 실천하는 실제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행하고자 하면서 먼저 알지 않으면 여러 이치를 살필 수 없고, 단지 알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일에 적용할 수 없으니, 반드시 정확한 지식과 밝은 견해로 힘써 행하는 데 뜻을 둔 뒤에야 바야흐로 진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학문뿐만 아니라 다스리는 것도 그러하니, 은(殷)나라 재상 부열(傅說)의 말에 “아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행하는 것이 어렵다.”라고 하였습니다. ··· 아, 오늘날의 폐단을 알지 못함을 근심하지 말고 오직 시행하지 못함을 근심해야 하니, ··· 전하께서는 이렇게 쉽게 알 수 있는 것을 취하고 분발하여 고식적인 데 안주하지 말고 변혁을 꺼리지 말며, 조정을 바로잡는 것을 요체로 삼고 정사의 폐단을 개혁하는 것을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도로 삼으소서.』<한포재 이건명 선생, ‘옥당의 응지 차자(玉堂應旨箚)’에서>
옥당의 응지 차자[玉堂應旨箚〕
···································································· 한포재 이건명 선생
[한포재 이건명 선생이 1697년(숙종23) 5월 2일에 올린 차자로 그 대략적인 내용이 《국역 숙종실록》 23년 5월 2일 기사에 보인다.]
삼가 아룁니다. 국가가 불행하여 기근이 해마다 들고 저축이 고갈되어, 굶어 죽은 사람들이 길에 즐비한데, 재이(災異)까지 겹쳐 발생하고 변괴가 갖가지로 생겼습니다. 게다가 파종하는 절기를 당하여 가뭄 귀신이 포악을 부려, 한 달 넘게 비가 내리지 않으니, 우리 성상께서 이미 직접 사직단(社稷壇)에 나아가 지성으로 제사를 받들고, 이어 죄수를 소결(疏決)하여 풀어 주어 은혜를 넓고 깊게 베풀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늘의 진노는 걷히지 않고 화기(和氣)가 펴지지 않아, 국가의 계책과 백성들의 근심이 아득하여 끝이 없으므로, 의당 전하께서는 밤낮으로 편하지 못하셨을 것인데, 윤음(綸音)을 널리 내려 위로 성상의 부족함을 책망하고 아래로 시정(時政)의 득실을 물으시니, 말뜻이 정성스럽고 간절하며 성의가 넘쳐흘렀습니다. 신들처럼 변변치 못한 사람들이 근밀(近密)한 직책에 있으면서 실로 털끝만큼도 해와 달 같은 성상을 도울 만한 것이 없지만, 또한 어찌 시종 침묵으로 일관하여 우리 전하께서 도움을 구하시는 성대한 뜻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신은 자신을 헤아리지 않고 감히 연석(筵席)에서 강론한 ‘지행(知行)’ 두 자를 반복하여 전하를 위해 말씀드리니, 밝으신 성상께서 헤아려 채택해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신들이 삼가 생각하건대, 학문하는 공부에는 ‘지(知)’와 ‘행(行)’이 있는데, ‘지’는 나의 지식을 지극히 하여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고, ‘행’은 몸소 행하여 실천하는 실제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행하고자 하면서 먼저 알지 않으면 여러 이치를 살필 수 없고, 단지 알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일에 적용할 수 없으니, 반드시 정확한 지식과 밝은 견해로 힘써 행하는 데 뜻을 둔 뒤에야 바야흐로 진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학문뿐만 아니라 다스리는 것도 그러하니, 은(殷)나라 재상 부열(傅說)의 말에 “아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행하는 것이 어렵다.”라고 하였습니다. 밝고 거룩하신 전하께서 오늘날 병통의 근원을 살피셨다면, 반드시 남김없이 통촉하셨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직까지 분발하여 고치셨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신들은 이에 실로 답답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니, 옛사람의 ‘현명한 임금을 원망하라’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또 전하께서 이전부터 재이를 만나면 의견을 구하는 전교를 내리시어, 중앙과 지방의 신하들이 또한 아뢴 바가 없지 않은데, 감히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시행한 것은 어떤 일이고, 개혁한 것은 어떤 폐단입니까. 대체로 온화한 말씀으로 후하게 칭찬한 것에 불과하니, 단지 보기에만 아름다울 뿐 방치하고 폐기하여 마침내 한 장의 휴지 조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다면 비록 아름다운 말과 좋은 경계가 있다 하더라도, 어찌 치도(治道)에 보탬이 되겠으며, 기이한 계책이 있다 하더라도, 어찌 어지럽게 망해 가는 형세를 구제할 수 있겠습니까.
신들이 이미 드러나 쉽게 알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논하여 보겠습니다. 붕당(朋黨)의 화(禍)는 전하께서 모르는 바가 아닌데, 옳고 그름을 밝혀 붕당을 깨뜨린 실제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언로가 막힘은 전하께서 모르는 바가 아닌데, 곧은 기상을 넓혀 언로를 연 실제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취사(取捨)가 치우침은 전하께서 모르는 바가 아닌데, 도와주고 억누름을 마음대로 하여 좋아하고 싫어함을 명백하게 보이지 않으시니, 공도(公道)가 없어질 것입니다. 기강이 무너짐은 전하께서 모르는 바가 아닌데, 진작시킬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따르며 임시로 보완하시니, 온갖 일들이 잘못될 것입니다.
선비의 취향이 경박한데도 새롭게 진작할 방도가 없고, 민생이 곤궁한데도 편안하게 다독이며 구제하는 계책이 없습니다. 바로 이 몇 가지는 은미하여 알기 어렵거나 높고 원대하여 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고, 단지 전하께서 뜻을 기울여 힘써 행하는 데 달려 있을 뿐인데, 무엇을 꺼리어 행하시지 않는 것입니까. 명령의 시행은 반드시 처음에 잘 살펴야 뒤에까지 오랫동안 유지되니, 법이 시행될 만하면 백성들이 알고 믿을 것입니다.
요즘 묘당(廟堂)에서 아침저녁으로 처리하는 일은 문부(文簿)를 기일에 맞추는 것에 불과한데, 오히려 또 앞뒤가 모순되고 변경함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도둑을 체포하는 한 가지 일을 가지고 말씀드리면, 갑술년(1694, 숙종20)에 결정한 것은 사람을 죽이거나 도적질을 했다고 자백한 경우에는 법대로 처형했는지 여부를 따지지 말고 모두 체포한 사람들을 논상(論賞)하도록 하였는데, 지금 또 그 수효가 지나치게 많다는 이유로 조사하여 구별하는 조치가 있기에 이르렀다고 들었습니다. 4년 동안에 포상받은 자들이 몇 사람입니까? 일체 가려낸다면, 그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비록 가엾이 여기기에 부족한 자라 하더라도, 어찌 크게 신뢰를 잃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묘당으로 하여금 다시 여쭈어 재결하게 하되, 반드시 부득이한 경우가 있으면 일단 이전의 일은 제쳐 두고 지금 제정한 법령을 따르게 한다면, 거의 체통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백성들이 잘살고 못사는 것은 수령에게 달려 있어, 성상께서 신중하게 선발하라고 단단히 주의를 준 것이 진실로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주의(注擬)할 때 사(私)가 공(公)을 이겨서는 안 되는데, 멀고 험악한 고을을 사람들이 대부분 싫어해 기피합니다. 이 때문에 풍족하고 아름다운 고을은 권세가 있는 집안으로 돌아가고, 멀고 외진 고을은 잡스런 무리로 충당하므로, 은택이 아래에까지 미치지 못하여 백성들이 의지해 살 수 없으니, 어찌 크게 한심스럽지 않겠습니까.
수령의 망기(望記)에 천거한 사람을 모두 기록하는 것은 조종(祖宗)의 법으로, 그 의도하는 바가 있습니다. 만약 천거된 사람이 죄과를 범하거나 장오(贓汚)에 관계되는 경우, 그 천거한 사람을 상고하여 죄의 경중(輕重)을 따져 형률을 시행하니, 거의 분경(奔競)하는 무리를 징계하고 신중하게 선발하는 법을 정밀하게 할 수 있습니다. 변방 고을에 문관(文官)과 무관(武官)을 번갈아 임명하자는 것과 근시(近侍)를 가끔 수령에 임명하자는 것도 요즘의 아름다운 논의이지만, 방금 제수하였다가 곧바로 체차(遞差)하여 끝내 실효가 없으니, 진실로 애석하게 여길 만합니다.
부비(浮費)로 재물을 소모하는 것은 그 폐해가 몹시 큽니다. 우리나라의 조세(租稅)가 가볍고 부세(賦稅)가 무거운 것은 매우 본말이 전도된 것인데, 지부(地部 호조)의 경상비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종묘(宗廟)의 경비와 백관의 봉록(俸祿)의 수가 수만이고 군병의 비용이 거의 3, 4만이 넘으니, 국력이 여기에서 고갈됩니다. 군비(軍備)는 비록 나라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진실로 국가의 재력을 보아야 하는데, 앉아서 양식만 축내는 쓸모없는 군사의 명색이 매우 많으니, 훈련도감(訓鍊都監)의 제도와 같은 것은 비록 쉽사리 바꿀 수 없다 하더라도, 마땅히 조금씩 줄여 정밀하고 간략하게 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호위군관(扈衛軍官)의 부류에 이르러서는 한결같이 양민(良民)이 도망쳐 들어가는 소굴이 되어 실제 쓸모없이 헛된 이름만 있고, 각 군문(軍門)에서 ‘막속(幕屬)’이라 일컫는 자들은 실로 쓸데없이 식량만 축내는 무리가 많으니, 모두 혁파하여 폐단을 조금이라도 줄이도록 하소서. 여러 관사(官司) 가운데 사복시(司僕寺)가 가장 넉넉하여, 둔전(屯田)에서 바치는 조세의 수가 한없이 많은데, 내구마(內廐馬)를 사육하는 비용에 보탰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하였습니다. 단지 관원의 녹봉과 서리(胥吏)의 주머니를 채우는 비용으로 삼고, 온갖 비용을 모두 호조에 요구하니, 이것이 무슨 제도란 말입니까.
우리나라 서리(胥吏)의 폐단은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처사(處士) 조식(曺植)이 “우리나라는 서리 때문에 망한다.”라고 말한 것은 참으로 매우 적절하다고 할 만합니다. 교체되는 관원은 관아를 객관(客館)과 같이 여기는데, 그곳에 굳게 자리 잡고 있는 서리는 제 물건처럼 만들어 권력을 잡고서 마음대로 남게도 하고 모자라게도 합니다. 또 법전에 실려 있는 경우에는 본래 정해진 수가 있으니, 무료(無料)라고 일컫는 것은 모두 원액(元額) 이외의 것입니다. 이 무리가 공문(公門)에 분주(奔走)하면서 백방으로 도모하는 것은 모두 부서(簿書)로 훔치고 관장(官長)을 속이는 일이니, 또한 마땅히 크게 도태시켜 난잡한 길을 막아야 합니다.
양역(良役)이 치우치게 괴로운 것은 실로 백성을 병들게 하는 것 중에 큰 것이어서, 신(臣) 이건명(李健命)이 이전의 상소에서 대략 언급하여, 묘당에서 복계(覆啓)했는데, 우선 천천히 의논하도록 하라고 윤허하셨습니다. 앞으로 무슨 시행할 것이 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신들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이처럼 두려워하고 조심해야 할 때를 당하여 묘당과 비변사(備邊司)의 여러 재신(宰臣)들에게 거듭 명하시어, 지금 제거하지 못한 정사의 폐단과 줄이지 못한 부비(浮費)를 낱낱이 조목조목 열거한 뒤 먼저 큰 것부터 나중에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폐단의 근원을 힘써 연구하고 좋은 계책을 깊이 생각하여 아침저녁으로 강구해 시행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오늘 정사의 폐단 하나를 개혁하고 내일 좋은 명령 하나를 반포하는 등 쉬지 않고 부지런히 강구하여 점점 정돈되게 한다면, 실로 국가의 다행이요, 백성들의 복일 것입니다.
아, 오늘날의 폐단을 알지 못함을 근심하지 말고 오직 시행하지 못함을 근심해야 하니, 공자(孔子)가 “공언(空言)을 남기는 것은 행사(行事)의 절실한 것을 밝히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이렇게 쉽게 알 수 있는 것을 취하여 분발하고 진작하여 고식적인 데 안주하지 말고 변혁을 꺼리지 말며, 반드시 조정을 바로잡는 것을 근본을 바르게 하는 요체로 삼고 정사의 폐단을 개혁하는 것을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도로 삼아, 한 시대의 정사를 새롭게 하고 오래도록 편안하게 하는 왕업(王業)을 이루소서.
신들은 구구한 생각을 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전하께서 지금 한창 강론하시는 《성학집요(聖學輯要)》에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내용이 그 안에 이미 갖추어져 있습니다. 다만 선정신(先正臣) 이이(李珥)가 호걸스런 재주로 나라를 다스릴 뜻을 품고서 소장을 봉하여 경계를 올린 것은 시무(時務)에 절실한 것이 많고, 《동호문답(東湖問答)》의 경우는 실로 나라를 다스리는 큰 방도이니, 만일 한가하실 때에 특별히 예람(叡覽)하신다면, 성상의 마음을 개발하고 치도(治道)에 도움이 되는 것이 반드시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아울러 이를 유념하소서.
[주-1] 옥당의 응지 차자 :
1697년(숙종23) 5월 2일에 올린 차자로, 그 대략적인 내용이 《국역 숙종실록》 23년 5월 2일 기사에 보인다.
[주-2] 아는 …… 어렵다 :
《서경》 〈열명 중(說命中)〉에 보인다.
[주-3] 현명한 임금을 원망하라 :
우매한 군주는 어떤 일을 하고자 해도 하지 못하지만, 현명한 군주는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기 때문에, 백성이 원망한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숙종이 충분히 훌륭한 정사를 할 수 있는 자질이면서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쓰였다. 옛사람의 말에 “어두운 임금을 원망 말고 현명한 임금을 원망하라.”라고 하였다.
[주-4] 신(臣) 이건명(李健命)이 …… 복계(覆啓)했는데 :
이건명은 1697(숙종23) 4월 23일 올린 상소에서, 제거해야 할 정사의 폐단 가운데 큰 것으로 병제(兵制)가 갈래가 많고, 양역(良役)이 편벽되게 괴롭고, 전정(田政)이 고르지 못한 점을 들면서, 이전부터 국가를 위하여 깊이 염려한 자들이 반드시 변통하고자 하였으나 지금에 이르도록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잘못된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니, 바로잡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寒圃齋集 卷3 陳戒疏》
[주-5] 공언(空言)을 …… 못하다 :
공언은 시비(是非)를 포폄(褒貶)할 뿐 당세에 쓰이지 않는 언론(言論)을 가리키는데, 공자가 일찍이 이르기를 “내가 공언을 남기려고 할진댄 집정자들의 행사에 부쳐서 깊고 간절하게 드러내 밝히는 것만 못하리라.[我欲載之空言, 不如見之於行事之深切著明也.]” 하고, 마침내 《춘추(春秋)》를 짓게 된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130 太史公自序》
<출처 : 한포재집(寒圃齋集) 제3권 / 소차(疏箚)>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서종태 채현경 이주형 전형윤 강지혜 (공역) | 2016
玉堂應旨箚
伏以國家不幸。饑饉連年。蓄積蕩竭。餓莩載路。灾孽沓至。變怪百出。又當播種之節。旱魃肆虐。彌月不雨。惟我聖上旣已親莅社壇。至誠將事矣。繼以疏釋 a177_386b罪囚。覃恩汪濊矣。然而天怒未回。和氣未宣。國計民憂。茫無際涯。宜殿下夙宵靡寧。播降絲綸。上而責聖躬之闕遺。下而問時政之得失。辭旨懇惻。誠意藹然。如臣等無似。職在近密。實無絲毫可裨日月。而亦安得終始泯默。以負我殿下求助之盛意。竊不自揆。敢以筵席所講知行二字。反復爲 殿下獻焉。惟聖明裁幸焉。臣等伏念學問之功。有知有行。知者致吾知而窮事物之理也。行者躬自行而有踐履之實也。如使欲行而不先知則無以察諸理。徒知而不能行則無以措諸事。必須的知明見。着 a177_386c意力行。然後方可進步。此非獨學問而已。惟治亦然。傅說之言曰。非知之艱。行之惟艱。以殿下之明聖。察今日之病源。想必洞燭無遺。而迄未聞有奮發而變改者。臣等於此。實不勝悶欝之懷。而有古人怨明主之意者也。且殿下從前遇灾。必下求言之敎。中外臣庶。亦不無所進者。而抑不敢知所施者何事。所革者何弊歟。率不過溫言優奬。只爲觀瞻之美。而放倒廢閣。終作一張之故紙。夫如是則雖有嘉言善戒。而何補於治道。奇謀異策。而何救於亂亡哉。臣等請就其已著易知者而論之。朋比之禍。殿下非 a177_386d不知之。而未聞有明是非破朋比之實。言路之壅。 殿下非不知之。而未聞有恢直氣開言路之實。取舍之偏。殿下非不知之。而任其扶抑。好惡不爲明示。則公道淪矣。紀綱之壞。殿下非不知之。而不思振作。因循架補。則庶事隳矣。士趨婾薄而無作新之方。生民困悴而無康濟之策。卽此數者。皆非幽隱難見。高遠難行者。只在殿下加意而力行而已。夫何憚而莫之爲也。命令之行。必審於初而持久於後。法可行而民知信矣。近來廟堂之上。朝夕酬應。不過文簿期會。而猶且前後矛盾。更變無常。只以捕盜一事 a177_387a言之。聞甲戌定奪則殺人明火之承欵者。勿論正刑與否。皆令論賞。而今又以濫數之故。至有査覈區別之擧云。四年之間。被賞者幾人。而一倂澄汰。則其所呼寃。雖不足恤。豈不爲失信之大者乎。宜令廟堂更加稟裁。必不得已則姑置前事。從今著令。庶可得體矣。民生休戚。係於守令。聖上之申飭愼簡者。固非一二。而注擬之際。私不勝公。遠惡之地。人多厭避。是以饒官美地。歸於勢利之家。遐鄕絶邑。充以庸雜之輩。澤不下究。民不聊生。豈非大可寒心哉。守令之望。皆書薦主者。祖宗之法。而其意有在。若其所擧 a177_387b之人。觸犯罪科。關係贓汚。考其薦主。輕重施律。則庶可懲奔競之徒而精遴簡之法矣。邊地之交差文武。近侍之間試守宰者。亦近日美議。而乍除旋遞。終無實效。良可惜也。浮費之耗財。爲害甚大。我國稅輕而賦重者。已極倒置。而以地部經用言之。宗廟百官之奉。其數數萬。而軍兵之需。殆過三四。國力於是乎竭矣。夫戎備者。雖有國之不可闕。固當視國財力。而冗兵之坐食者。名色甚多。如訓局之制。雖不可容易變改。亦宜稍加簡汰。以精約爲務。至於扈衛軍官之類。則作一良民逋逃之藪。無實用而有虛名。各軍門 a177_387c之幕屬爲稱者。實多冗食之徒。倂令革罷。以除一分之弊。諸司之中。太僕最饒。屯田所納。其數不億。而未聞添補於廐馬養飼之需。只作官員之俸廩。胥吏之囊槖。而凡百需用。皆責於度支。此何制置也。我國胥吏之弊。其來已久。處士曹植之言我國亡於胥吏者。誠可痛切。官員之遞易。有同傳舍。而胥吏之盤據者作爲己物。把持權柄。任意盈縮。且法典所載。自有定數。而所稱無料。皆是額外。此輩奔走公門。百般經營者。無非竊簿書欺官長者。亦宜大加澄汰。以杜濫雜之逕矣。良役偏苦。實是病民之大者。臣健命前疏略 a177_387d及。而廟堂覆啓。姑以徐議允下。未知前頭有何設施。而臣等愚意當此惕厲之日。申命廟堂與備局諸宰。凡今弊政之未祛。浮費之未省者。一一條列。先自大者而後及其細。力究弊源。深思善圖。朝夕講劘。要令可行。今日革一弊政。明日頒一善令。孜孜不輟。漸就整頓。則實國家之幸而生民之福也。嗚呼。今日之弊。不患不知。而惟患不行。孔子曰載之空言。不如行事之深切著明。伏願殿下取此所易知者。淬勵振作。勿安於姑息。勿憚於變革。必以正朝廷爲端本之要。革弊政爲安民之道。以新一代之治。以成久 a177_388a安之業焉。臣等區區之意。又有獻焉。殿下方講聖學輯要。修己治人。固已備矣。第先正臣李珥以豪傑之才。抱經世之志。其封章進戒者。多切時務。而如東湖問答。實經綸之大方也。倘於燕閒。特賜睿覽。則想其開發聖心。裨益治道者。必不淺尠。伏願殿下幷此留神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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