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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황홀한 글 감옥을 읽고(2011.10.08)
조정래 작가 생활 사십년 자전에세이
조정래 소설가의 자전적 에세이를 읽었다. 그런데 이 에세이는 특이하다. 대학생들의 질문을 받아 답변하는 형식으로 썼다. 우선 관심 있는 항목을 골라 읽었다. 골라 읽는 재미도 있고 나의 관심분야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조정래 소설가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84개의 질문을 모두 옮겨 적었고 답변 내용 중에서 마음에 두는 대목을 골라 적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한번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은 나의 자전 소설과 같다.
올해로 문학 인생 40년이 되었다. 지난 20여년 동안 괘 많은 강연을 해왔다. 그때마다 독자가 아쉬워했던 것이 질문 시간 부족이었다. 어떤 독자들은 편지를 해오지만 거기에 일일이 답장을 쓰기도 어려웠다. 세 편에 걸친 긴 소설에 대한 독자의 궁금증은 많고, 그것을 속 시원히 풀어주지 못하는 것은 늘 미안한 짐으로 남았다. 또 내 마음에 남아 쉽게 지워지지 않는 질문 하나가 있었다.
왜 자전 소설은 쓰지 않느냐
몇몇 출판사에서 그런 문제들을 전체적으로 풀 수 있는 책을 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하고는 했었다. 그러나 새 작품을 쓸 일이 바빠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또한 그런 글을 쓰기에 적당한 시기가 아닌 것 같기도 했던 것이다.
...(중략)...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이들에게 5백여 가지의 질문을 받았다. 겹치는 것은 빼고,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을 간추린 것이 이 책에 수록된 84가지다.
그 84가지 질문은 대충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문학론, 작품론, 인생론. 그 응답들을 형식을 달리한 나의 자전소설로 읽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말 중에서
30)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는데?
미국의 흑인 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를 읽고 큰 충격을 받으셨고, 작가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깨달았다고 하셨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이승은,영남대
미국은 1억명의 인디언을 학살하며 그 대륙을 차지했고, 아프리카 흑인 5천여만명을 끌어다가 노예로 부리며 오늘의 부를 쌓아올린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 떳떳할 수 없는 죄악의 역사에 정면으로 도전해서 흑인 노예의 처절한 역사 수난을 형상화하는 동시에 인류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한 작가가 알렉스 헤일리였고 그 작품이 뿌리였습니다.
그들은 그 범죄를 형식적이나마 사죄한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범죄로 차지한 부와 풍요를 언제 흑인과 한번 나눈 적 없이 자기들끼리만 독차지해왔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흑인의 인권을 찾고자 했던 말콤 엑스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암살해버렸습니다.
알렉스 헤일리는 그 분노와 증오를 이성화하고 논리화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 감정 상태에 두었더라면 그런 글을 써낼 수 없었을 것이란 깨달음을 얻었던 것입니다.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 그것은 작가가 지녀야 하는 가슴이고 의식이었습니다.
알렉스 헤일리는 뿌리를 씀으로써 내적으로는 노예로 살다 간 한에 사무친 선조의 통한을 풀었고, 외적으로는 이기주의를 앞세운 비인간적인 범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전 세계인에게 새롭게 각성시키는 동시에 흑인이 얼마나 수준 높은 전통문화를 가진 정다운 사람들인가를 재인식시켰습니다. 그것은 작가의 존재 의미와 사명을 성공적으로 실천한 모범이었습니다.
우리민족의 처절하고 통렬한 역사적 삶을 소설로 쓰는 것이 작가로서 풀어야 할 최소한의 소임이라고 생각해오고 있던 저에게 알렉스 헤일리는 하나의 거울이었습니다.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품고 민족사 앞에 서기로 저는 마음을 다잡았던 것입니다.
10)어떤 책을 골라 읽어야 하는가
그렇게 긴 소설을 많이 쓰려면 책도 많이 읽으셨을텐데, 어떤 책을 골라 읽어야 합니까. 책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고 혼란스럽습니다.-송은하 한국외대 독일어과
세계문학전집 완독 : 작가마다 다른 다채로운 문체, 형형색색의 소재, 각양각색의 주제, 온갖 기발한 구상, 기기묘묘한 표현 기법, 무궁무진한 상상력, 세련된 대사 처리의 효과, 과감한 생략의 역효과, 뜻밖의 상징의 감동, 살아 생동하는 무수한 인물 군상......
그건 세계적인 천재들이 맘껏 펼치는 문학의 대향연이며, 언어의 대축제입니다. 그 잔치에서 맘껏 마시고, 취하고, 즐기십시오.
한국문학전집도 완독: 5백권의 책을 읽지 않고는 소설을 쓰려고 펜을 들지 말라.
그 5백권은 세계문학전집 1백권, 한국문학전집 1백권, 중,단편소설집 1백권, 시집 1백권, 기타 역사, 사회학 서적 1백권입니다. 그것도 한 차례씩만 읽고 말 것이 아니라 5년을 주기로 되풀이해서 읽으면 그보다 더 좋을 것이 없습니다.
글쓰는 작업은 오로지 혼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한정 긴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 철칙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기질이나 체질이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하거나 여러 사람이 모여 떠들썩하게 술 마시기를 좋아하거나, 이런저런 잡스런 놀이를 좋아하든 일찌감치 글쓰기를 포기하십시오. 제가 자신있게 장담하건대, 그런 사람은 절대로 작가로서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14)가장 존경하는 작가는?
등단하시기 전까지 정말 많은 책을 읽으셨을 것이고 습작도 많이 하셨을텐데, 그 중에서 가장 존경하거나 닮고 싶은 작가가 있었다면 누구였는지 궁금합니다. 정승석 경원대 경영학과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생각해야 될 사항
-왜 그런 소재를 선택했을까
-주제와 소재는 효과적으로 조화되어 있는가
-주제의 형상화는 잘 이루어져 있는가
-사건 전개는 우연이나 조작적이지 않고 실감 있고 필연적인가
-구성의 허술함이나 무리는 없는가
-인물들의 개성과 생동감은 살아 있는가
-문체의 특성은 무엇인가
-감각과 묘사력은 특색이 있는가
-결말 처리는 효과적이었는가
-소설로서 성취도는 어느 정도인가
빅토르 위고 처럼 되고 싶었다
왜냐하면 사회. 역사의식을 문학성과 가장 조화롭게 형상화한 모범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역사는 두 사람으로 대표된다. 정치사적으로 나폴레옹, 문화사적으로 빅토르 위고
빅토르 위고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하며,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옹호하는 작가였습니다.
52)한강에 나오는 파독 광부 도전기의 배경은?
한강에서 읽었던 파독 광부 도전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30년이 지난 후 2000년대에 있었던 일들을 소설의 소재로 삼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구혜미 영국유학생
우리의 쓰리고 아픈 경제발전 과정을 총체적으로 그려 풍요 속에 사는 젊은 세대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제가 한강을 쓴 첫 번째 목적이었습니다.
고등실업자는 인생 막장에서 서독 광부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선택은 슬펐으나 비장했고, 치열했습니다. 석탄가루를 들이마시는 그들의 투지는 결국 자신의 삶을 구했고, 가난하고 슬픈 조국을 구하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글쓰는 보람이란 동감하는 영혼을 만나는 것입니다.
21)조정래 문학 인생에서 아내 김초혜는?
남들이 공처가라고 놀리면, 아내 앞에만 서면 깜짝깜짝 놀라는 경(驚)처가 라고 스스로를 표현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엔 문학을 함께 공부한 동료이자, 지금은 아내가 되신 김초혜 시인, 두 분은 오래도록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계신데요. 조정래 선생님의 문학 인생에 아내는 어떤 전설 인가요? 김정인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내 소설 절반은 아내가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내 김초혜는 제가 쓴 소설의 최초 독자였고, 최고의 열독자였고, 지적자였고, 수정자였고, 감독자였고, 충고자였고, 격려자였고, 결재자였고, 지지자였고, 축하자였습니다.
김초혜는 나에게 날로 새롭게 피어나는 꽃이다.
2003년 김제에 아리랑문학관이 세워지자 아내는 그동안 고이 간직해왔던 링컨 초상화를 내놓았습니다. 그건 제가 그린 자화상과 함께 아리랑 문학관 제2전시실에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이런 부부의 삶이 어떤 전설이 될지도 모르지요.
58)작가 조정래 문학의 정수를 꼽으라면 어떤 문장?
태백산맥과 아리랑 한강을 원고지 양으로 계산하면 5만1천500장에 육박한다고 들었습니다. 원고지를 쌓으면 5미터50센티미터에 이르는 그야말로 글의 대홍수에서 인생의 한 문장, 작가 조정래 문학의 정수를 꼽는다면 어떤 문장이라 할 수 있나요? 이큰별 고려대 사회학과
단어를 두 개 이상 조립해서 다른 사람들은 흉내도 내지 못하게 하면서 자기만의 독점적 소유권을 영원히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만해 한용운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김소월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을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조지훈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김영랑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미당 서정주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
어머니(김초혜)
한 몸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 일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한 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꾸어
태어나면 어떠하리
79)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데, 노벨문학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국문학이 민족문학이나 민중문학 성격이 짙어 노벨문학상을 탈 수 없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또, 독자들에 의해 선생님도 노벨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황의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첫째, 노벨상이란 우리가 그렇게 세계 최고라고 꼽는 것처럼 다른 나라도 그렇게 여기는 상이 아니며,
둘째, 그 상은 세계에서 정치성이 강한 상으로 이미 소문나 있으며,
셋째, 백인우월주의에 뿌리를 두되 그것을 희석하고 세계성과 공평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끔 흑인과 황인종을 끼워 넣으며,
넷째, 명료한 개관적 심사 기준이 없이 그때그때의 국제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입니다.
노벨상은 한국문학의 목적이 아닙니다. 따라서 조정래 문학의 목적도 아닙니다. 이제 그만 촌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리니 국민께서도 노벨상에 너무 급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너무나 세계적인 것 좋아하고, 세계적인 것에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그건 참 유치하고 창피스러운 일입니다.
노벨상의 한 가지 매력은 상금이 15억원 정도고, 매해 국제 금리 만큼씩 올라간다는 점입니다. 결코 그런 일이 없겠지만, 만약 소나기 오듯 제게 노벨상이 돌아온다면 그 상금을 서너 개의 시민단체에 고루 기부하겠습니다.
소설가 손소희 선생이 생전에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상은 주는 것이 아니라 뺏는 것이다.
44)아들과 며느리에게 태백산맥을 필사하게 했던 이유는?
한강 마지막 인터뷰에서 아드님과 그 아드님의 아내 분께 자신의 책을 원고지에 옮길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벌써 시간도 꽤 흘렀으니 그분께서도 이제 완성을 하셨는지요? 그 속도가 굉장히 빨라 놀라셨다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저도 그 부분을 읽고 선생님의 능력을 몹시 흠모했던지라 책을 베끼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더군요. 이 질문은 조정래 선생님께 올린다기보다는 그 아드님 분과 그 아드님의 아내 분께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하시고 난 후 성과가 있으셨나요? 있다면 어느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정재희 아주대 사학과
남의 눈길에 끌리게, 남의 마음에 담기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꾸준한 노력으로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임신했을 때 태백산맥을 베껴서 재면이가 그렇게 머리가 좋은가 봐요.-조정래 선생의 며느리-캐나다3학년 1년동안 29명을 제치고 1등, 교실출입문에 우리 한글을 쓰고 그 옆에 영어로 발음 표기한 종이 부착, 세 살 때 영어가 쓰인 셔츠를 안입겠다고 30분 버티기
매일매일 성실하게 꾸준히 하는 노력이 얼마나 큰 성과를 이루는지 직접 체험케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루에 원고지 10매씩만 베끼면 4년이면 다 베낀다 그겁니다. 10매를 베끼는데는 1시간쯤 걸립니다. 하루에 1시간의 노동을 바치는 것, 얼마나 쉽습니까.
저는 태백산맥 베끼기를 통해서 아들과 며느리가 인생이란 스스로 한 발, 한 발 걸어야 하는 천리 길이란 것을 깨우쳐 주고 싶었습니다. 인생이란 지치지 않는 줄기찬 노력이 피워내는 꽃이라는 것을 체득시키고 싶었습니다.
32)엄혹했던 시절에 태백산맥을 쓰기로 작정했던 이유는?
태백산맥을 쓰기 시작한 시점은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입니다. 그 엄혹했던 시절에 왜 그런 작품을 쓰기로 작정했는지 궁금합니다. 민주화된 지금 시점에서 읽어도 아슬아슬하고 불안하게 느껴지는 장면들이 너무 많은데요. 김영혜 이화여대
우리가 처한 분단 상황과 그에 얽힌 정치적 상관관계, 그 속에서의 우리의 삶이 그만큼 복잡하고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오로지 진실한 글을 씀으로써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어코자 하는 한 사람의 글쟁이일 뿐입니다.
우리민족의 가장 큰 불행은 분단이고,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역사적 과제는 통일입니다. 따라서 남과 북 정권에 똑같이 지워진 가장 큰 짐은 통일 성취입니다.
두 정치세력이 대결하면서 오래 끌어온 문제를 서로 힘을 합쳐 해결하기로 합의하면, 그 시점부터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는 지금까지 끌어온 세월의 두 배가 걸린다.
적대적인 두 세력이 야기한 문제는 그들의 힘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그 둘 사이에 문화라는 중간 여과 과정이 있어야 한다.
분단극복소설의 기본 틀-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
1)반공교육이 사회주의나 빨치산을 악마나 흡혈귀라고 했던 것을 인간으로 바꾸는 것
2)우리의 군대, 경찰, 그리고 미군이 전쟁 통에 저지른 잘못들도 솔직히 드러내 따지자.
그렇게 해야만 서로의 잘잘못이 드러나고, 그 진실의 토대 위에서 진정한 용서와 이해가 이루어져 화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인식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새롭게 쓸 수 있는 분단소설이라는 확신이 들자 저는 어서 빨리 글을 쓰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혔습니다.
알피니스트가 거기에 산이 있으니까 가듯 작가는 새로 발견한 이야깃거리를 향해 그 어떤 장애든 무릅쓰며 달려가는 존재이입니다.
12)예술에서 재능과 노력은 몇 대 몇?
흔히 예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문학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많은 글을 써오셨습니다. 예술을 하는 데 재능(소질)과 노력은 어느 정도 비율이어야 합니까? 이재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골프선수 김미현은 두툼한 카펫위에 미국 동전 두 개가 포개져 놓입니다. 뭉툭한 골프채 끝이 그 동전을 칩니다. 동전은 정확하게 위의 것만 날아갑니다. 또 동전을 포갭니다. 골프채가 동전을 칩니다. 또 그 얇은 위의 동전만 날아갑니다. 또 다시 시도합니다. 결과는 똑같습니다.
세계적인 천재 첼리스트 카잘스는 평생에 걸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세 시간씩 따로 연습을 했다. -날마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서.....
열정은 능력이다. 가장 뛰어난 능력은 지치지 않는 열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닌데 자기 스스로 그 어느 분야의 예술에 끌리고, 하고 싶고, 하면 즐겁습니까? 그렇다고요? 그렇다면 당신이 그 분야 예술에 재능을 타고 난 것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노력은 재능을 능가하는 힘이며, 인간에게 신술을 가져다주는 마력을 발휘하며, 유치하게 금언을 흉내 내서 말하자면 성공의 어머니입니다.
저는 저의 재능보다는 노력을 더 믿었습니다.-조정래
07)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저는 아리랑을 먼저 읽고 태백산맥을 좀 읽다 만 독자입니다만, 혹시 선생님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시대 순으로 읽으라고 추천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우문인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습니까? 김미영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글을 잘 쓰려면 정신 집중해가며 책을 많이 읽고, 문인 교수들을 대하며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돌은 단 두 개, 뒷 돌을 앞으로 옮겨 놓아가며 스스로, 혼자의 힘으로 강을 건너가야 한다. 그게 문학의 징검다리다.
많이 읽고(多讀), 4
많이 생각하라(多商量) 4
많이 쓰고(多作) 2
이미 좋다고 정평이 나 있는 작품을 많이 읽으십시오
그 다음에 읽는 시간만큼 그 작품에 대해서 이모저모 되작되작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29)신문에 연애소설을 쓰지 않기로 결심한 까닭은?
선생님은 신문에 연애소설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건 왜 그런 것인가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정수 경상대
작가가 돈에 작품을 파는 것은 창녀가 몸을 파는 것보다 더 더러운 짓이다.-톨스토이
46)식민사관과 근대화론에 대한 견해는?
소설 아리랑은 일제 시대의 폭압에 저항했던 우리 민족의 투쟁과 승리의 역사를 부각하고 그 역사는 민족적인 긍지와 자존심을 회복케 하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근대화론 등 식민지 시기의 성과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식민사관과 근대화론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가요?
망각한 반쪽의 역사를 찾아 나서는 길, 그것이 아리랑 쓰기였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써서 역사의 진실의 집을 짓는 것, 그것이 아리랑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남, 북한 정권 지배집단은 자기네 체제 유지에 편리하고 유리한 대로 분단 이후의 역사만 왜곡하고 암장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확인하고 있는 것처럼 분단 이전의 역사, 식민지 시대의 역사까지도 자기네 입맛에 맞도록 거짓으로, 가짜로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제가 만주를 첫 번째 해외 취재지로 정한 것은 망실된 사회주의자들의 투쟁을 찾을 수 있는 최적지가 만주였기 때문입니다.
식민사관과 근대화론을 어떻게 보느냐고요? 굳이 대답이 필요할까요?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망발이고 궤변입니다. 한국의 하늘 아래서 한국의 공기로 숨 쉬고, 한국 땅에서 난 곡식을 먹고 살고, 한국 사람의 노동으로 형성된 보수로 살아가는 자들이 어찌 그리도 충실하게 일본 극우의 앵무새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인지요.
50)박정희 정권에 대한 작가 조정래의 평가는?
한강에는 박정희 정부에 대한 상반된 두 가지 평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5.16을 쿠데타가 아니라 혁명이라 칭하며, 독재정권을 경제성장이란 결과로 칭송하고 떠받드는 축이 있는가 하면, 5,16은 혁명이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과 민주주의를 찬탈한 쿠데타며 유신까지 하면서 경제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영구집권을 노린 박정희는 독재자라는 평가 또한 작품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작품을 통해 박정희 정권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모두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혹 박정희 정권에 대한 선생님의 평가를 들어 볼 수 있겠습니까? 최수연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백성은 바다요, 권세는 그 위에 뜬 일엽편주다.
천하에 가장 천해서 의지할 데 없는 것도 백성이요, 천하에 가장 높아서 신과 같은 것도 백성이다.-다산 정약용
70)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에 대한 평가는?
소설 한강에는 포철, 현재의 포스코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포철을 일구어낸 박태준 명예회장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묘사하시는데요. 반면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 상반된 상황을 묘사하시는데 걸림돌은 없었는지요? 이도형 성균관대 사학과
평소 본인의 역사관과 박태준 평전은 진정으로 충돌하지 않는 문제입니까? 배정훈 연세대 사회학과
우린 레닌 동지가 꿈꾸고 추구한 이상향을 저는 여기 포철에서 보았습니다.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꿈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모스크바 대학 총장 빅토르 사도브니치
레닌은 이루지 못한 것을 박태준은 이루어낸 것입니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
양질의 노동력은 강요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최고의 처우에서 나옵니다.
박태준은 자원도 없고, 자본도 없고, 기술도 없던 3무의 상태에서 두 개의 거대한 제철회사, 세계 2위의 철강국가의 신화를 이룩해낸 인물입니다.
짧은 인생을 영원한 조국에- 박태준 집무실, 건설현장 에 붙어있는 평생의 좌우명
71)지식인의 책무는? 그리고 세상을 읽는 능력을 기르려면?
지식인의 책무는 무엇이라 생각하시고, 대학생이 지식인으로서 자기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읽는 능력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좋을지 알려주십시오. 연유진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다름 아닌 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 지배계층의 정직한 권력 수행, 지식층의 양심적 언행 등을 총괄하는 것입니다. 일제에 나라를 강탈당했을 때 안중근, 신채호, 한용운, 김구, 안창호, 박은식, 이회영, 김원봉, 윤봉길, 이봉창 같은 분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섰던 것이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우월하고 문명한 국가가 열등하고 미개한 나라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시어도어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을사보호조약 을 인정하면서 한 말
코리아 인민은 자치 능력이 없으므로 일제가 패망한 뒤 수십 년에 걸쳐 연합국의 신탁통치를 받아 정부를 운영하는 능력을 수습해야 한다.-프랭클린 루즈벨트 의 말
코리아인은 자치 능력이 없다. 항일독립운동을 이끄는 코리아의 지도자 중에도 일제가 패망한 이후 자기 나라를 이끌어 갈 인물이 없다. 일제가 패망한 뒤 코리아에 즉각적인 독립을 주는 것보다는 선진국의 고문이 코리아인을 정치적으로 훈련시키면서 코리아를 통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코리아는 중국이 지난날의 종주권을 되찾아야 할 나라다.-쑨원(손문)과 장제스(장개석)
첫째, 지식인의 삶을 충실히 살다 간 분들의 전기나 평전을 골라 읽으십시오.
둘째,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인의 책과 글을 골라 읽으십시오.
새째, 진정성을 가진 시민단체를 골라 틈틈이 자원봉사를 통해 실천 경험을 쌓고, 성취의 보람 속에서 안목을 더욱 넓혀 가십시오.
참된 지식인의 삶은 고달프나 그 의미와 보람은 하늘의 넓이입니다.
76)예술가에게 영감 이란 무엇입니까
예술가들은 대개 영감을 통해 창작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떠신지요. 영감이란 근본적으로 무엇입니까? 안세희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한 가지에 치열하게 집중하고 몰두하는 생각(사고)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에 폭발하는 불꽃처럼 원하던(찾고자 했던)바가 환하게 꽃피우는 것이 영감입니다.
흔히들 영감은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 그것은 영감이 떠오르는 그 순간만을 보는 인식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반드시 자기가 구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깊고 깊은 고심과 몰두가 쌓여야만 영감은 분출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영감이란 고심의 깊이와 몰두의 강도에 따라 결정된다.
현대과학이 입증한 바에 따르면 예술가가 창작 작품에 몰두해 있을 때는 뇌파가 보통 사람의 다섯 배까지 발산된다고 합니다.
63)어떻게 하면 조정래 선생처럼 될 수 있는가
이것도 질문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안할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처럼 되려면......이지혜 한동대 언론정보문화학과
재수 있는 놈은 되고 재수 없는 놈은 안되는 거지 뭐- 백남준(성공비결에 대해)
그거 다 사기야-백남준(예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제 답은 이 책 전체가 될 것 같습니다.
82)작가 조정래는 어떤 남편, 어떤 아버지, 어떤 시아버지, 어떤 할아버지입니까
손자까지 두신 줄 압니다. 어떤 남편, 어떤 아버지, 어떤 시아버지, 어떤 할아버지 신지요. 궁금합니다. 김민석 충남대
최고의 할아버지? 그건 자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가슴 속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사랑을 아낌없이 손자들에게 주었으니까요.
아버지는 자기 자신에게 가장 엄한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이다. 할어버지처럼.
77)오랜 세월 동안 하루 종일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은?
집필기간 중에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도 않고 하루 종일 글만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그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오랜 세월 글을 써오시면서 건강은 어떻게 지키셨는지요? 서덕 성균관대 러시아어문학과
첫 번째 물음 : 집념+극기+자족
두 번째 물음 : 소식+채식+맨손체조+산책+등산(일요일)
아침 6시에 기상, 8시30분부터 글쓰기 12시30분 점심식사 바로 낮잠 오후6시30분 저녁
새벽 2시에 취침
제가 가장 불행할 때가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이 사람 저 사람에 얽혀 하루를 없애고 집으로 돌아올 때고, 가장 행복할 때가 글을 쓰고 있을 때입니다.
83)아리랑 문학관, 태백산맥 문학관을 보면서 느낀 감회는?
대하소설을 세 편이나 쓰셨고, 그 수고를 격려하듯 아리랑과 태백산맥 두 개의 문학관이 생겼습니다. 살아생전에 문학관이 두 개씩이나 세워진 것은 선생님이 최초이신데요. 감회가 어떠신지요? 노민영 한국외대
저에게 두 개의 문학관은 너무 과분합니다. 저는 이 땅에 태어난 행운과 문학을 한 보람을 함께 느낍니다. 지금까지는 글쓰기가 너무 바빠 틈을 내지 못했습니다만, 앞으로는 좀 쉬엄쉬엄 하며 여유를 찾아 두 곳에 몇칠씩 머물도록 할 것입니다. 김제에서 한 사흘, 벌교에서 한 사흘 머물며 문학관에서 독자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그것이 독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은혜 갚음이 될 것 같고, 또한 생존작가의 문학관을 만든 의미도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많은 분을 그 두 곳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72)순수문학과 참여문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른바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은 계속 대치상태로 보입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그게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정성호 동의대
모든 동물은 뼈와 살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문학도 오랜 생명성을 가지려면 그래야 합니다. 여러분의 분별력을 존중하기 때문에 무엇이 소설의 뼈고 무엇이 살인지 사족을 붙이지는 않겠습니다.
순수, 참여의 맞섬에 대해 독자 여러분께서는 전혀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건 평론가들이 그저 하는 일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좋은 소설만 골라 읽으시면 됩니다. 거기에 고루 들어 있는 뼈와 살의 맛을 즐기시며
01)문학과 역사의 상관관계는?
선생님은 대하소설 3부작을 모두 각각 두서너 번씩 숙독한 독자입니다. 저마다의 모습으로 질곡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만큼이나 마치 화면을 보고 있는 것처럼 치밀한 배경 묘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험난하고 처절한 민족의 역사를 다룬 문학과 역사의 상관관계는 어떤 것인지요? 남지원 연세대 사회학과
소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답하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답을 찾으려고 수천년 동안 방황했던 것이 철학자들입니다.
소설은 인간에 대한 총체적 탐구다.
역사는 인간이 살아온 이야기이되, 기록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만 간추려 엮어 놓은 기록이다.
작가는 역사를 몰라서는 작품을 쓸 수 없지만, 역사가는 문학을 몰라도 역사 연구를 할 수 있다.
세계적인 명작으로 평가되어 고전으로 남은 작품의 90퍼센트가 역사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리고 외국의 어느 평론가는 말했습니다. 역사를 포괄하지 않고는 대작을 탄생시킬 수 없다.
02)문학과 민족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나
선생님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통해 민족의 수난과 고통 그리고 아픔과 슬픔을 새롭게 느끼며 우리 모두가 민족적 존재라는 자각과 민족 역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게 됩니다. 그런 소설을 쓰는 동안 선생님은 민족 분단이 야기한 좌우 이념 대립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하고, 수사기관에 끌려 다녀야 하는 수난을 겪기도 하셨습니다. 선생님, 문학과 민족은 어떤 관계를 갖는 것입니까? 최유진 덕성여대 사회학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작품은 그 작품을 있게 한 모국어의 자식들이다. 그 모국어를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 그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같은 민족입니다.
가장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민족에 대한 정의는 무엇입니까. 언어, 풍속, 습관이 같고, 통일된 한 나라를 이루는 큰 무리, 그것이 민족입니다. 그 공통점의 맨 앞에 서는 것이 언어 아닙니까. 그러니까 문학과 민족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민족이나 어떤 나라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소설은 역사책보다 한결 더 효과적일 수 도 있습니다. 역사책이란 대부분 정치사에 치중한 건조한 기록일 뿐이지만, 소설은 전통, 정서, 풍속, 습관 등이 다채롭게 펼쳐지면서 감동까지 주기 때문입니다. 감동은 예술 특유의 생명력인 동시에 마력적인 힘입니다. 그 힘은 우리 영혼에 오래오래 남아 삶을 의미 깊게 하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세계적인 고전의 반열에 오른 명작 거의가 그 민족과 그 땅의 삶을 총체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03)작가와 소설의 가치 그리고 위상은?
문학을 문학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가 담겨 있으며, 진실을 추구하는 작가의 가치관이 미학적으로 어우러져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특히 선생님의 작품들은 그 분량으로나 내용으로나 무겁고 심각한 문제들을 담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소설을 남다르게 생각하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작가와 소설, 그 존재 가치랄까 위상이랄까, 어떤 것인지요? 박해나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정신이상 증세가 바로 소설 구상의 진행이고 자기 생각의 객관성 점검이고, 긴 소설을 써나가기 위한 마음 다짐이었던 것입니다.
작가는 인류의 스승이며, 그 시대의 산소다.
인류의 스승이란 칭호는 그만큼 위대한 작품을 써낸 작가들에게만 국한된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글을 쓰고 있는, 아직 객관적 평가가 내려지지 않은 작가들에게 주어진 것이 뒷부분의 그 시대의 산소 노릇입니다.
제일 잘 된 소설 한권!
04)문학에서 언어란 무엇인가
지난 3월 태백산맥이 3백쇄를 돌파했습니다. 말과 글의 매질적 차이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만한 양이면 독자들과 꽤 성공적인 소통을 하신 것 같습니다. 말과 글의 간극을 어떻게 채울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언어의 생명력 이라는 말과 작품의 생명력은 동일한 것입니까. 또 문학에 있어서 언어란 무엇입니까? 김윤정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3대 발명품 정치, 종교, 언어
인류의 생활과 역사에 그 어떤 것보다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기 때문이다.
문자는 문학의 모태입니다. 그리고 문학은 문자의 꽃입니다. 문자를 가장 아름답게 엮어내고 그러면서 문자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로 지은 원한은 백년을 가고, 글로 지은 원한은 만년을 간다.
글의 생명은 영원하다.
언제나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아니, 일부 독자도 언제나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가끔은 일부 독자라도 만족시키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세익스피어
05)소설은 꼭 진실을 써야 하는가
태백산맥이 몇 년 전에야 이적성 혐의를 벗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사회 분위기는 여전히 이념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선생님은 어느 글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태백산맥 같은 작품을 쓰셨다고 했는데, 신변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소설에서 꼭 진실을 써야 하는 것인지요. 소설에서 진실의 비중은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요. 소설의 이야기성을 생각하면 진실의 무게감을 선뜻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송옥진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소설가의 산소 역할의 산소는 무엇일까. 그건 진실입니다. 사회적 진실, 역사적 진실, 인간적 진실을 옹호하고 육성하고 지키는 일, 그것이 바로 산소 역할입니다.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을 위하여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하고 맞서야 하는 것이 작가의 소임입니다. 그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을 작품으로 지키고 실현하는 것이 곧 진실입니다.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고, 샤르트르가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고,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 사건을 짊어지고 정부 권력에 도전했던 것은 작품과 함께 행동으로 진실을 지키고자 했던 본보기였습니다.
진보적인 작가의 길은 조금은 성직자의 길이기도 하고, 조금은 철학자의 길이기도 하고, 조금은 개혁자의 길이기도 합니다.
06)작가의 문학 권력화?
선생님의 소설은 리얼리즘의 극치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작가가 독자를 많이 갖는 것은 행복한 일이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문학권력이 될 위험성도 있습니다. 작가의 문학 권력화가 바람직한 것일까요? 이원석 카톨릭대 국제학부
문학권력이라는 말은 몇 년 전에 최초로 쓴 분은 전북대 강줌남 교수가 아닌가 합니다. 그분이 문학권력이라고 이름 붙였던 것은 몇몇 평론가들이 계간지를 발판 삼아 배타적이고 편파적으로 평론행위를 일삼고 출판사까지 운영하면서 문단 세력화 하고 있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강 교수가 이미 적시했듯이 그 대상은 창비와 문지(문학과 지성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제 경우를 문학권력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 듯합니다. 저는 다른 문인들과 그룹을 짜거나 패거리를 만들어 문단에서 권력 행사를 도모한 일도 없고 폐쇄적이고 편파적 문학행위로 다른 문인들을 배척하거나 업신여긴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08)어떻게 해야 어휘가 풍부해지나
선생님께서는 무거운 주제의 굵직굵직한 장편소설을 많이 써오셨습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보면 의외로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가 많고, 온갖 단어들이 다채롭게 등장해 우리말의 단어가 이렇게도 다양한가 새삼 놀라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단어를 많이 알게 되나요? 홍현지 성균관대 영어영문학과
좋은 글을 쓰고, 못 쓰고는 단어를 얼마나 많이 아느냐의 여부로 결정된다.
좋은 소설을 쓴 작가는 그만큼 많은 단어를 안다는 증거다.
단어를 많이 알지 못하고 글을 쓰려는 것은 불구의 순으로 마술사가 되기를 꿈꾸는 것과 같다.
이 정도면 단어의 중요성이 이해되었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단어는 문학의 밥입니다.
09)좋은 작품을 베껴 써보는 것의 효과는?
선생님의 작품을 읽다보면 묻고 싶은 것이 많이 생깁니다. 그중 가장 궁금한 것은 역시 문장을 잘쓰는 비결입니다. 기성 작가의 좋은 작품을 베껴 써보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나요? 김은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모든 종류의 예술행위에는 재능+노력이 있을 뿐 비결은 없습니다.
예술은 모방에서 시작된다
예술감각은 모방으로 자극된다.
모방 아닌 예술은 없다
모방과 예술, 예술과 모방에 이르기까지 그 논의가 분분했습니다. 인간이 타고나는 여러 가지 본능 중에는 모방 본능이 분명히 있습니다.
모든 예술은 모방으로 시작하되,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표절: 남의 시가, 문장 등의 글귀를 훔쳐서 자기 것인 것처럼 발표함.
11)문학을 언제,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가
선생님 연보를 보면 초등학교 4학년 때 벌써 개인 문집을 가지고 있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게 무슨 얘기인지요? 그럼 그때부터 문학을 하셨다는 건가요? 그랬다면 도대체 언제, 어떻게 문학을 접하게 되셨는지요? 유슬기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아버지는 스물넷에 선암사 법사가 되었습니다.
전국의 젊은 승려 300여명이 일제에 저항하는 비밀결사를 조직했습니다. 총재는 만해 한용운 스님이었고, 이름은 만당이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만당의 재무위원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천년고찰 선암사에서 결혼을 한 최초의 승려가 되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총독부는 그 당시 최대의 교세를 확보하고 있던 불교를 장악해야만 식민통치가 용이해진다는 판단 아래 종교 황국화 정책을 추진한 것입니다. 그 방법의 하나로 젊은 승려들을 결혼시켜 일본식의 대처승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일제의 은혜로 풍경 소리와 목탁 소리를 태교 삼아 태어난 목숨입니다. 사람이 은혜를 입었으면 보답을 해야 도리지요. 그래서 저는 아리랑을 쓴 것입니다.
1949년 여름이 지나고 우리 가족은 순천을 떠나 논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1953년 봄에 벌교로 이사했습니다. 아버지가 벌교상업고등학교에 국어 선생이 된 것입니다.
똥지 문집 -동시
13)어떤 방법으로 작가적 소양을 키웠는지?
우리학교 선배님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대학생 조정래는 어떠했습니까. 그 당시부터 역사를 다룬 대하소설을 쓰고자 마음에 두고 계셨는지요. 어떤 방법으로 작가의 소양을 가꾸고자 하셨는지 궁급합니다. 정명아 동국대 경제학과
소설은 연애이야기나 쓰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써야 하는 존엄한 것이라는 생각을 굳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토대 위에서 사회의식, 역사의식이 강한 제 소설은 탄생하기 시작했고, 제가 글을 써온 40년의 세월은 그 대학 시절에 형성된 의식을 심화,확대해온 노정이었습니다.
15)사회 현실과 관련된 작품을 쓰게 된 계기는?
선생님의 작품은 늘 현실과 사회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기원과 연유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또한 현실 참여적이지 못한 순수문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안세진 명지대 국어국문학과
기원과 연유는 어법에 맞지 않고 원인과 이유라고 평이하게 쓰는 게 합당합니다. 왜냐하면 한 작가의 작가의식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알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단어를 많이 알아야 하는 중요성
첫째,낱말들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입니다.
둘째,낱말들의 쓰임새(언어개념)를 적확하게 터득해야 합니다.
이 두가지가 이루어져야 좋은 글, 바른 글을 쓸 수 있게 됩니다.
모든 작가의 작품은 작가의식에 의해 형성되며, 작가의식에 따라 좌우됩니다.
작가의식은 작가의 생애 전체에 걸쳐서 그가 의식하고, 인식하고, 느끼고, 깨닫고, 행동하는 그 모든 것들이 모여 형성되는 것이므로 그의 우주적 총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16)인물을 창조하거나 구성할 때의 방법은?
선생님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 많은 등장인물 때문에 곤란을 겪게 됩니다. 누가 누군지 혼란스러워 이미 읽은 부분을 다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토록 많은 인물을 만들어낸 선생님의 창의력이나 인간에 대한 탐구에 대해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후배 작가들이나 작가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인물 창조에 대해서나, 혹은 소설을 쓸 때 틀을 그리는 방법 등에 대해 조언해주신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이영준 한양대 경영학부
자동차나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데 대략 2만5천개의 부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아주 작은 부품이라고 해서 덜 중요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한 작가의 능력을 평가하는 데는 그 작가가 얼마나 많은 작품을 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개성적인 인물을 창조했느냐로 결정된다. 즉,소설은 인물 창조와의 싸움이다.
소설에서 인물을 창조한다는 것은 그 어슷비슷한 가운데 존재하는 미세한 차이를 발견해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성입니다. 그 다음에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인물의 전형성입니다. 전형성이라는 그 역할, 그 사건, 그 상황, 그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되도록 꼭 어울리는 생생히 살아 있는 것 같은 요소를 갖춘 인물을 말합니다.
개성적인 인물을 많이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1인칭이 아니라 3인칭 소설을 써라.
지금 우리나라 단편소설의 99퍼센트는 1인칭 소설입니다. 그것은 벌서 20여년 가까이 된 아주 잘못된 작풍이고, 무분별한 유행입니다.
당신이 감동 깊은 작품을 쓰고, 오래도록 행복한 작가 생활을 누리고 싶다면 기필코 3인칭 소설을 습작하십시오.
충고란 그동안 있어왔던 우정에 대한 배신
17)수많은 인물을 그려내는 비결은?
태백산맥에만 액 280여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많은 인물들을 그려낼 수 있는 선생님만의 노하우를 알고 싶습니다. 은유정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대하소설을 읽을 때는 미리 작은 수첩을 준비하고, 등장하는 인물마다 이름을 적어나가고,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그 행적도 메모를 해 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독서 방법입니다.
그 많은 인물을 각기 다르게 개성적으로 그려내는 노하우, 그 요령이나 기술, 또는 비결을 어느 장소의 약도 그려주듯이, 맛있는 밥상 차려주듯이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앞에서 누누이 말했듯이 소설 쓰기란 인스턴트 식품 사 먹는 것이 아니니 그 방법이란 것이 모호하고 그 요령이라는 것이 난해합니다.
노하우-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을 유심히 보기입니다.
유심히는 주의 깊게, 관심 있게, 마음을 한 곳으로 쏟아, 정신을 집중해, 잡생각하지 말고, 한 생각에 몰두하여, 같은 뜻을 다 포함합니다.
나는 파리의 등적부에 적힌 숫자만큼 내 인물을 창조해낼 수 있다.- 플로베르(빅토르 위고와 발자크와 함께 프랑스 3대 작가)
-나는 파리 시내의 모든 사람이 내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뚫어지게 관찰한다.
그리고 그들을 당신의 필요에 따라 분해하고, 나누고, 덜어내고, 결합하고, 덧붙이고, 수정해서 재구성해내십시오. 개성적인 인물을 그렇게 해서 탄생됩니다.
18)소설 속 등장인물의 모델은?
선생님의 소설 속 인물들은 현실에 살아 있는 실재 인물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모델이 되었던 현실 사회에서의 인물이 있습니까? 또, 그 많은 인물 중 자칫 실수로 겹친 경우는 없는지요? 김두루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아리랑 끝 부분에 나오는 허진이란 이름이 한강에도 나옵니다.
세편의 대하소설을 통해 작가는 모두 1천2백여명의 인물을 탄생시켰다.
19)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에는 실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채롭고 역동적인 삶을 사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여 우리 민족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중 특별히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유다정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오.
논 아흔아홉 마지기 가진 놈이 한 마지기 가진 사람보고 팔라고 한다.
외삼촌네 떡도 커야 사 먹는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빼어난 속담 백 가지만 곱씹으며 살면 철학책 따로 읽을 것 없고, 삶도 실수 없이 바르게 살 것입니다.
태백산맥의 염상구-
태백산맥에서 하대치와 외서댁
아리랑에서 공허와 필녀
한강에서 유일표와 강숙자
위의 여섯 명은 바르고 굳센 민중성을 갖춘 인물이라는 점이다.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민중이라는 추상성을 소설을 통해서 그 실체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래서 세 소설을 관통하는 세 가지 공통점 중의 하나가 민중성 이다.
20)어린시절, 화가가 되고 싶었다고 했던데?
어느 인터뷰에서 화가가 되려다가 못 되셨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사연은 어떻게 된 것인지요? 강은나래 연세대 원주캠퍼스 철학과
헤르만헤세가 그랬듯이 더 늙어 그 복잡한 구성을 해야 하는 소설을 쓰기 어려워질 때 저는 새 인생을 시작하듯 차분하게 그림을 그릴 예정입니다.
저는 파리와 로마는 백 번 가도 좋은 곳이라고 말하고는 합니다. 파리는 수많은 미술관이 있기 때문이며, 로마에는 중세 문화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취재수첩에 그린 풍경-화가를 꿈꾸었던 작가의 그림 실력을 엿볼 수 있다.
22)국문과에 진학한 계기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국문과를 선택하는 것은 문학으로 일생을 살겠다는 결심일 것입니다. 그 계기는 무엇이고 누구의 권유였나요. 스스로의 결정이었나요? 임병식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사자격증
23)혹시 시인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선생님의 작품을 읽다 보면 유난히 시가 많이 등장합니다. 계속 현대사에 관한 소설을 써오셨는데, 실은 시에 대한 열망이 있으신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차해나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제가 지금도 손바닥만 한 수첩에다 단어 정리를 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톨스토이 이후 러시아 문호로 꼽히는 솔제니친도 수염이 허옇게 된 말년에도 단어 정리와 분류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언제나 새롭게 써야 하는 숙명을 짊어지고, 노력하면 날마다 조금씩 나아가는 것 같아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학의 길이고, 작가의 길입니다.
시인 못된 한을 풀려고 시인을 아내로 얻었고, 평생을 여왕처럼 떠받들고 사는 것 아닙니까.
24)몸짱 사진의 정체는?
우연히 조정래, 그의 문학 속으로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 17쪽에 역기를 들어 올린 몸짱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소설가 조정래라니! 앳된 얼굴이지만 분명 선생님이 맞습니다. 그 이미지가 소설가와는 잘 안 맞지만 태백산맥 과는 어울리는 것 같고, 알송달쏭 합니다. 어찌 된 일입니까? 변태섭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태권도의 옛 이름이 당수입니다.
아버지가 쉼없이 당부한 두 가지 말
-운동해라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라
보성고등학교 역도부원으로 활동할 당시의 작가 모습-1년간의 운동으로 가슴둘레 1미터가 넘는 몸짱으로 거듭났다.
25)승려가 될 뻔했다던데, 승려 조정래?
어느 산문에서 승려가 될 뻔했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일이었는지요. 승려가 되셨더라면...... 상상만으로도 아찔합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이 없었을테니까요. 몹시 궁금합니다. 이해나 서울대 독어교육과
거짓말 하는 건 질색이고, 허풍 치는 건 싫어하고, 생각이 틀려먹은 건 외면하고, 비도적적인 건 조소하는 성질이니까요.
글감옥에 갇혀 절연 상태로 10년, 20년 세월을 보내는 것, 그것은 또 다른 수도가 아닐 것인가.
저에게 군사독재는 그렇게 험악한 얼굴로 덮쳐왔습니다.
호 인천(鄰天): 출가해서 부모 형제 다 잊고 하늘을 벗해 사는 큰 승려가 되거라
조계사 승적 168호
26)작가 조정래가 교사 생활을 그만 둔 까닭은?
선생님께서는 어느 글에서 모두가 가난해서 책이 거의 팔리지 않는 현실에서 교직이 마음놓고 문학을 할 수 있는 가장 안정된 직업이라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이 길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것이지요? 장일호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그건 참 아픈 기억이었고, 작가 생활의 위기였으며, 생활인의 고통이었고, 역사 격랑에 휩쓸린 웃지 못할 희극이었습니다.
미국을 비판한 누명, 연좌제를 비판한 어떤 전설, 월남전을 비판한 청산댁 같은 작품이 그이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것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7)소설로 독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실제로 작가의 팬은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정래 작가가 소설을 집필할 때 펜의 힘으로 독자들에게 시사하고 싶은 바는 무엇인가요? 이세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작가에게 진실은 곧 목숨과도 같다고 앞에서 강조했습니다. 진실을 위해서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칸트의 말입니다.
진실한 삶이란 생사를 건 싸움 끝에 가능하다-헤겔의 말입니다.
스물네살짜리 여성 작가가 이 세상에 진실은 없다고 등단 일성을 토하고 있습니다. 당돌한 것인지, 경솔한 것인지, 무지한 것인지, 철없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포스트모더니즘에 일시 오염된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젊은이는 한 방울의 포말로 곧 사라져버릴 운명이었기 때문입니다.
넋이 없는 인간이 제대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문학은 그 넋을 감동시키는 작업입니다.
28)작가 조정래의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은?
누명이나 유형의 땅 같은 전반기 작품은 사회의식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선생님의 작품 경향이 사회의식적인 것에서 역사적인 것으로 옮겨진 계기는 무엇인가요> 추효지 성신여대 영어영문학과
추효지 학생의 잘못된 인식이 저를 웃음 짓게 합니다. 질문할 때마다 꼭 해야 하는 질문인지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그 확인이 자아 성장의 촉진제입니다.
31)직접 체험을 소설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깬 계기는 1980년 광주?
직접 체험을 소설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선생님의 원칙은 1980년 광주민주항쟁 이후로 깨졌고 세 편의 대작들로 거듭났습니다. 그 변화의 경계에 대해 자세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진영 고려대 사회학과
깊게 상처받은 광주와 광주 시민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마련한 총으로 수백 명의 국민을 학살한 신군부는 그 죄상을 덮기 위해 더욱 살벌하고 험악하게 국민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폭력 앞에서 작가라는 존재는 무력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직접 체험을 소설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창작 원칙을 이제 바꿔야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남과 북의 정권은 분단을 정치적으로 악용해 자기들의 독재를 합리화시키고 국민을 쉽게 억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남쪽에서는 국가보안법이, 북쪽에서는 형법이 비판자를 찾아 올가미를 던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 토대 위에서 양쪽의 독재는 장수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 땅에 분단이 있는 한 남과 북에는 진정한 민주주의란 있을 수 없고, 인간다운 세상이란 요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33)태백산맥을 써나가다가 정치적 위해를 당하게 될지 몰라 아내에게 미리 어떤 다짐을 했다고 하던데?
태백산맥을 써나가다가 언제 정치적 위해를 당하게 될지 몰라 부인께 미리 그런 사태에 대비해 마음 단단히 먹도록 다짐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얘기인지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류정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작가가 쓰고 싶은 걸 못 쓰면 작가가 아니잖아요. 마음먹은 대로 써요.
아, 아내가 그렇게 믿음직스럽고 커 보일 때가 없었습니다.
우리 인생살이에서 알고도 모르는 척,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넘기는 그 헤아림과 짐작의 여백이 그 얼마가 깊고 포근하고 넉넉한 삶의 미학입니까?
1994년4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로 정식 고발 당함
제가 고발당해서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될 때까지 11년동안 아내는 정말 침착하고 의연하게 이런 상황을 이겨나가며 저를 지켜주었습니다.
34)대하소설을 쓰면서 구성노트가 없다?
태백산맥을 읽고 왜 그런 소설들을 대하소설이라고 하는지 실감했습니다. 마치 배를 타고 긴 강을 흘러 내려가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런데 그 긴 소설, 그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정작 작가는 구성 노트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게 어떻게 된 일인지요. 도무지 믿을 수 가 없습니다. 강현우 경희대
처음에 중, 단편을 쓸 때부터 구성 노트가 따로 없이 머릿속에서 구성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 대하소설에도 구성 노트가 없었던 거지요.
35)태백산맥 취재는 어떻게 했는가
태백산맥에는 세상을 보는 눈을 완전히 바꾸어놓을정도로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 취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전두환 정권 때라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남동우 중앙대
태백산맥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45년 해방부터 1953년 휴전까지 8년동안을 1980년대 후반 무렵부터 해방공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취재는 어렵고 더뎠지만 취재수첩은 자꾸 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소설의 태아였습니다.
36)태백산맥 소년 전사 조원제의 실제 모델은 경제학자 박현채?
태백산맥의 소년 전사 조원제의 모델이 민족경제론의 저자 박현채 선생이라고 합니다. 그게 어떻게 된 사연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빨치산과 관련된 작품으로 이태의 남부군과 이병주의 지리산 등이 있습니다. 이들 작품과 태백산맥이 혹 무슨 관련이 있는지요. 비슷한 시기에 나와서 생기는 궁금증입니다. 권지은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37)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작가의 대하소설 3부작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은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역작입니다. 이 작품들의 구상은 언제 이루어졌나요? 또 실현 가능성을 믿으셨나요? 그리고 21세기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또 한편의 대하소설을 쓴다면 이 시대의 어떤 모습을 가장 담아내고 싶으신가요? 끝으로 작가가 이들 세 작품을 통해서 공통적으로 전달하고픈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현정 한양대 경제금융학과
민족의 허리잇기에 기여하는 작업, 그것이 태백산맥을 쓰는 일이었기에 제목을 태백산맥으로 하는 것은 필연이었습니다.
식민지 36년동안 당한 핍박과 유린, 그에 맞선 저항과 투쟁을 그리는 것이 아리랑이었습니다. 그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식민지 시대의 애국가가 아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설 제목이 아리랑이 되는 것은 너무 당연했습니다.
저는세 편의 대하소설을 쓸 일을 앞에 두고, 그 일을 초과달성해서 맛볼 황홀한 성취감을 그리고 있었지 그 어떤 두려움이나 불안감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더 이상 대하소설은 안쓸테니까 세 번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생략하겠습니다.
세 작품은 그 시대가 다르고, 주인공들이 다르고, 제목이 다른 각기 독립된 작품입니다. 그런데도 세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물론 그 공통점은 작가의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작가는 자신이 노력한 만큼 그것이 독자에게 전달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세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세 가지입니다.
역사의 주인이고 원동력인 민중의 발견, 민족의 비극인 분단과 민족의 비원인 통일의 자각, 민족의 현실을 망치고 미래를 어둡게 한 친일파 문제.
38)태백산맥 마지막 장면이 담고 있는 의미는?
태백산맥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대치 등은 살아남아 결의를 다지고 사라집니다. 그것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사회주의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습니까. 아니면 앞으로 그러한 기회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인지요? 이지혜 중앙대 경제학과
그 마지막 장면이 제가 고발당해 경찰 조사를 받을 때 가장 곤혹스러웠던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이념의 아침이 아니라 인간의 아침입니다. 인간은 그 어떤 시대에나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수천 년에 걸쳐서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려는 여러 가지 이념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이념의 동물이라고도 합니다. 그 20세기의 두 가지 이념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입니다. 그런데 사회주의는 실패했습니다. 실패한 이념은 재생되거나 부활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개도 조건반사를 하는데, 인간은 개보다 훨씬 더 영리하고 교활합니다. 그걸 역사가 입증합니다. 우리 인간은 앞으로도 인간다운 세상을 위하여 끝없이 새 이념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 인간의 아침을 표현하고 상징하는 것이 끝 장면입니다.
39)긴 소설을 끌고 가면서도 강한 흡입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조정래 선생님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대작 중의 대작일 뿐만 아니라 분량도 매우 방대합니다. 그런데 그 긴 소설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이어집니다. 소설의 모든 것이 작가의 창작이라면 그 강한 흡입력도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그 요령이 무엇인지, 어떤 방법을 쓰신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김희성 성신여대 국어국문학과
그 요령이나 방법은 넓게 구성에 포함될 것이며, 글을 쓰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주시해야 할 창작실기가 될 것입니다.
첫째 집필기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집필기단 단축을 위해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습니다. 술 한번 마시면 사흘을 탕진하게 됩니다. 하루 집필량 평균 30장, 사흘이면 90장이 날아간 것입니다. 그 복구는 불가능합니다.
둘째, 하루 집필량을 30장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곡 지키기 위해 한 달 집필량 합산표를 만들어 책상 위에 딱 놓습니다.
저는 그 숨막이는 노동의 세월을 글감옥이라고 표현했고, 그 노동을 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소설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방법으로 기분 전환을 하려 하지 않고 더욱 책상으로 다가앉아 끝끝내 마음먹은 대로 써내고 책상에서 물러나기로 한 것입니다.
술은 문학적 고민을 풀 수 없고, 술로 풀리는 고민은 문학적 고민일 수 없다
그래서 저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쓰는 20년 동안 술을 한 번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재미의 선택 앞에서 현대인의 의식은 리모컨의 속도에 완전히 습관이 되어 있으며, 그 습관은 그대로 책 읽기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입니다. 몇 줄이 재미없고, 더하여 한 두 페이지가 재미없으면 리모컨을 누르듯 책을 덮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저능 응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현대인들에게 책을 읽힌다는 것은 리모컨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라고 저는 인식했습니다.
저는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첫째, 텔레비전에 못지 않게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시키기로 했습니다. 둘째, 등장인물들의 인상을 백지에 도장을 찍듯이 독자의 의식에 뚜렷뚜렷하게 각인시키기입니다. (인물의 개성적 창조) 셋째, 한 문장 한 문장을 쓸 때마다 세 번씩 생각하고 쓰는 것입니다.
처음 떠오르는 문장은 진행되는 이야기를 풀고 엮는 의례적인 것일 뿐입니다.
그 문장을 그대로 적으면 무개성하고 상투적인 문장의 나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문장을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다시한번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개성과 문학성을 살리기 위해 다시한번 생각합니다.
그 세 번째 곱씹기에서 만족하면 비로소 원고지에 옮겨 적습니다.
그 세 번씩의 곱씹기는 아주 짧은 시간에, 아주 빠르게, 자동기계가 움직이듯이 이루어집니다.
회의와 환멸을 딛고 일어서는 것, 그것이 외롭고 쓰라린 작가의 길입니다.
감동은 모든 예술작품의 생명성이며, 예술성의 척도이며, 예술의 존재 이유입니다. 뭇 대중이 예술작품을 필요로 하는 것은 그 감동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며, 그 감동을 오래 간직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동의 크기와 예술성은 정비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0)태백산맥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11년 동안은?
태백산맥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되었다가 11년 만에 무혐의 처분을 받으셨습니다. 그 전모가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한 것은 저 혼자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예술가들의 표현의 자유를 국가가 제한하는 현실에 대한 의견이 궁금합니다. 김현지 시드니공과대학 저널리즘
달리는 열차는 갑자기 방향을 바꿀 수 없는 법입니다.
의사전달은 말 이외에도 눈짓, 눈빛, 표정, 손짓, 몸짓, 태도 같은 것들이 종합되어 이루어진다.
그 살벌한 정치 상황 속에서 이어령 선생은 작가 보호에 나섰던 것입니다. 그건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의 실천이고, 문학평론가로서 수행해야 할 기본 임무의 실천이었습니다.
영욕은 반반이다.
5백여개의 혐의사항으로 이루어진 그 고발장은 120쪽이 넘는 책 모양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 안 사실인데, 그 고발장은 사법사상 가장 긴 고발장이라고 했습니다.
고발자들은 논리적 근거나 객관적 증거가 전혀없이 감정적이고 일방적으로 혐의를 씌우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최소한의 객관성이나 공정성을 가지고 고발 사실들을 식별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전적으로 고발자들의 입장에서 편파적인 수사를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수사에는 진술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저는 밤 12시 반에 풀려났습니다. 밖에서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온 천지에 아내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어찌 그리고 절실하던지요.
서울대 권영민 교수가 태백산맥 다시 읽기라는 평론집을 냈다.
소설가 최일남 -조정래 옹호 칼럼쓴 이후로 신문사 고정칼럼 더는 쓰지 못하게 됨
고발자들이 사건을 빨리 처리하라고 압력도 가하고 시비를 걸고 하니까 검찰에서는 계속 담당 검사를 바꾸며 자료 검토중이라고 한다.
그날 한국일보사 기자로 검사실 앞에까지 저와 동행한 유일한 사람은 오늘의 소설가 김훈 씨였습니다. 저는 그 보퉁이를 검사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분단은 위기의식을 낳고, 위기의식은 보수를 낳고, 보수는 그렇게 견고했습니다.
41)태백산맥 영상화에 얽힌 사연은?
태백산맥이 영화화됐지만 소설에서 보여준 방대함과 깊이를 다루기엔 많이 부족했습니다. 만약, 드라마나 연극 등으로 현대사 3부작이 제작된다면 가장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묻고 싶습니다. 박지숙 한림대 일본학과
분단의 파장이 피해가는 곳은 없습니다.
헤밍웨이가 자기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영화화에 불만을 품고 감독을 두들겨 패 콧뼈를 부러뜨린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제3부작에서 꼭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앞에서 얘기한 세 가지 공통점을 살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의 삶과 역사를 바르게 이끌 수 있는 기본이고, 우리 민족의 미래를 밝게 열어갈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42)태백산맥이 중립적 시선을 취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태백산맥 은 한때 이적 표현물로 조사 받았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념의 대립에서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했다는 평을 듣습니다. 작가님은 태백산맥이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했다는 평가가 의도에 맞는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임정균 인제대 의학과
여기서 중립적이라는 말은 과히 적절하지가 않은 듯합니다. 보다 뜻이 적확해지려면 객관적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양쪽 입장의 가운데에 섬으로써 또하나의 입장을 확보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함으로써 확보할 수 있는 진실을 드러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 객관적 시각으로 양쪽의 모순, 문제점, 잘못 같은 것들을 냉정하게 보고 비판하려 한 것이 저의 태도였습니다.
난 절대로 좌익을 편든 게 아니다. 좌익은 좌익대로, 우익은 우익대로 서로를 욕하고 비판한다. 그 분량도 비교해보라. 거의 같다. 그런데 왜 좌익의 말만 가지고 문제 삼는가. 그 반대로 우익이 좌익을 욕하는 것을 중지한다면 나는 표창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는가. 경찰은 이 점에 대해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게 법의 공정성이다.
제각 객관적 시선을 유지했다는 평가가 있다면 그건 제 뜻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며, 저는 고마움과 보람을 동시에 느낍니다. 지금까지 누누이 이야기해오고 있지만 작가는 그 어떤 정치적 종속물도 아니고, 그 어떤 이념의 부속물도 아닙니다. 문학작품은 정치, 이념, 그것들과 다른 어떤 것이며, 작가가 받드는 것은 오로지 하나, 순수한 인간 그 자체입니다.
43)태백산맥 일본어판 반응은?
태백산맥이 일본에서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좀 의외라는 느낌이 있는데, 그 반응이 어떠했는지요? 고영민 충남대
200년에 슈에이샤에서 완역 출간되었습니다.
톨스토이나 숄로호프, 솔제니친처럼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작가의 대하소설은 다 번역되었지만 한국의 대하소설이 번역되는 것은 최초의 일이다. 일본 독자에게 많이 익혔으면 좋겠다.-슈에이샤 주간
태백산맥은 단순히 한국전쟁에 대해서 쓴 소설이 아니다. 한국전쟁에 대해서 쓰되 그것을 통해서 강대국이 약소국을 어떻게 핍박하고 유린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밝혀 인류사의 문제로 그 지평을 확대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미덕은 한국과 한국 민족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백과사전 노릇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문학평론가 가와무라 마나도
일본 대학 총장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대뜸 태백산맥 읽었느냐고 묻는 겁니다. 진작 읽었다고 하니까 반가워하면서 하는 말이, 지금 일본 대학 총장 사이에서는 태백산맥 읽기 붐이 있는데 태백산맥을 안 읽고는 지식인 취급을 못 받을 지경이라고 하는 겁니다. 참 기분 좋은 말이었어요.-순천대학 허상만 전 총장
45)태백산맥에서 수정하고 싶은 부분은?
태백산맥은 1994년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는 혐의를 벗은 이후에도 역사를 왜곡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데, 태백산맥 집필을 시작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책을 다시 쓰신다면 수정할 부분이 있나요?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성민 서강대
제 작품의 수정 여부를 묻기 전에 귀하의 질문부터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1994년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고, 그 혐의를 벗은 것은 2005년입니다. 그리고 태백산맥이 완간된 것이 20년이 되었고, 집필을 시작한지는 26년이 되었습니다.
수정할 부분? 없습니다.
47)태백산맥 취재여행과 아리랑 취재여행의 차이는?
아리랑을 쓰실 때는 중국 만주, 동남아 일대, 미국 하와이, 일본,러시아 연해주 등지로, 또 한강을 쓰기 위해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취재여행을 다니셨다고 들었습니다. 태백산맥에 비해 아리랑의 어떤 점이 더 어려우셨는지요? 이진주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48)방대한 스케일의 작품을 쓰면서 자료 조사는 어떻게?
선생님의 세 작품은 소설로서의 큰 매력뿐 아니라 우리 근현대사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방대한 스케일의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그전에 철저한 자료 조사와 엄청난 고통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박철홍 부산대 정보컴퓨터공학과
대하소설을 쓴다는 것은 세 가지의 3단계 싸움이 아닌가 합니다. 자료와의 싸움, 인물들과의 사움, 길이와의 싸움이 그것입니다.
대하소설 준비과정에서는 첫째, 시대 선택, 둘째, 새롭게 할 이야기 설정, 셋째, 자료 모으기입니다.
자료모으기는 첫째 필요한 모든 책 섭렵하기, 둘째, 무대가 될 땅의 직접 취재, 셋째, 자료의 취사선택입니다.
취재 현장 확인 이유- 햇빛의 강도, 땅의 냄새, 기온의 감각, 사람의 정서, 인정, 마음 등 사람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
현장의 지형지물은 작가의 상상력을 자꾸 자극해 새로운 이야기가 마구 샘솟게 하며, 영상으로 담기고, 오류 없는 묘사를 할 수 있게 합니다.
49)아리랑 일본어판 출간 계획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아리랑의 일본어판 번역을 요청하고 싶은 계획은 없는지요? 이가온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그렇잖아도 그런 시도가 한 차례 있었습니다. 태백산맥 일어판이 인기를 끌자 일본의 어느 출판사에서 조정래의 다른 대하소설에 대해 묻자 아리랑을 소개해주었는데 10년이 다 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다. 2009년8월초 일본 아오모리에 머물 때 한일문화교류 관계 일을 하는 분이 사인을 부탁하며 내민 책은 태백산맥과 한강, 아리랑은 빠져..
51)한강에서 전라도 사람을 하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김지영 서울대
53)아리랑, 한강의 마무리에 대한 아쉬움은?
아리랑, 한강의 경우 여전히 갈등 구조가 남은 채로 끝을 맺는데, 한국 현대사에 기반을 둔 소설인 만큼 갑작스런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도 없겠지만 대하소설의 마무리로서 아쉬운 측면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손병산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현실은 소설가의 상상을 능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어떤 소설가의 상상이 아리랑의 끝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까. 현실의 삶의 필연성과 처절성은 늘 소설가의 상상력보다 깊고 넓은 파장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현장 취재를 꼭 해야 합니다. 만주의 고생은 그 끝장면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됩니다.
대체로 소설은 삶과 역사의 비장미를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가는 해결자가 아니라 제시자여야 합니다.
54)국가보안법 고발 이후 아리랑, 한강을 집필할 때 어려움은?
1994년 태백산맥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 당한 후에도 계속 집필해 아리랑과 한강을 완성하셨습니다.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든 시간이었을텐데 어떻게 이겨내고 계속 집필을 하셨는지요? 정수정 성균관대 유전공학과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를 어떻게 견뎌냈는지 정말 꿈만 같습니다. 그날이 다시 온다면 이젠 못 견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시 와도 저는 또 견딜 것입니다. 그것이 소설가의 영혼입니다.
55)소설 속 인물 가운데 작가 조정래와 가장 닮은 인물은? 김보만 한양대 경영학과
제 모습은 물론 제가 체험한 것, 아니 제 삶 전체가 많은 등장인물에 부분적으로 투영되어 있지 어떤 한 인물에 집중되어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56)현대사 3부작을 쓰고 난 이후, 가장 큰 보람은?
한 작가가 한 편 쓰기도 어렵다는 대하소설을 선생님은 세 편이나 쓰셨습니다. 그 사실을 저 혼자만 경이롭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세 편을 쓰시고 가장 크게 느끼신 보람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박민희 우석대
독자들의 이런 글이나 말을 들었을 때,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아껴가며 읽었다.
가보로 자식들에게 물려주겠다.
57)작품을 번역할 때 사투리 번역은 어떻게?
선생님의 소설 속 인물들은 사투리로 말을 해서, 처음에는 낯설고 감정이입이 잘 안 되기도 하는데요. 이내, 둥글면서 거세고, 운율이 있으면서 강렬한 사투리의 매력에 빠져들게 됩니다. 하지만 다른 언어로 번역된다면 그런 느낌이 사라질뿐더러, 작품 자체가 내뿜는 아우라가 감해질 것 같습니다. 이런 측면을 보완할 만한 방법을 번역자와 의논해보셨는지요? 만약 그렇다면 어떤 방식이 있을 수 있을까요? 강규영 서강대 영미어문학과
불놀이가 영어로, 태백산맥이 일어로, 아리랑이 프랑스어로, 유형의 땅이 독일어로, 태백산맥이 중국어로 번역되면서도 그건 모두 고민스러운 문제로 대두했습니다.
사투리 번역은 포기하고 모두 표준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번역을 뭐라고 한다고요? 번역은 반역이다.
59)태백산맥에는 야한 장면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데?
이 책엔 야한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소설에 그런 장면은 어느정도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태백산맥을 포함한 선생님의 책에선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습니다. 선생님께서 시대의 암울함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나이 어린 독자가 읽을 때 거북함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거북한 장면을 많이 삽입했어야 했는지, 그 뒤에 숨겨진 선생님의 진심은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장우정 청심국제고등학교
저는 이 질문을 받으며 우선 두 가지 사실에 놀랍니다. 질문자가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이며, 고등학생인데 제 소설을 거의 다 읽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앞에서 소설이 아무리 길어도 작가는 불필요한 문장을 한 문장도 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한 편의 서부영화를 손자, 아버지, 할아버지가 함께 봐도 그 느낌과 깨달음은 다 다릅니다. 지금 느끼는 것이 전부라고 속단하지 마십시오. 삶의 경험도 많고 연륜도 많이 쌓인 어른들이 왜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을까요? 읽을수록 새롭게 발견하고 새롭게 깨달을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60)주로 전라도라는 공간을 소설의 무대로 이용하는 이유는?
선생님의 작품은 주로 전라도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개인적 애착인가요? 민족적 상징으로서의 공간인가요? 우리 민족에게 전라도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유정 고려대 교육학과
전라도가 어떤 땅인지 그 역사성이 안 보입니까?
전라도 땅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 호남평야가 있습니다. 이미 신라시대부터 호남평야의 중심인 김제에는 벼농사를 위해 아시아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벽골제를 세웠을 정도입니다. 전라도 땅은 오랜 옛날부터 관과 민의 이중 갈등구조가 형성되어왔습니다.
농업국가에서 농민은 국민의 80퍼센트가 넘으며, 그중 80퍼센트가 소작인인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이미 지적한 대로 양반은 세금도 내지 않고 국난이 닥쳐도 군대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 두가지 중대한 일을 가난한 소작인이 전부 감당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왕조란 가난한 백성의 등에 달라붙어 피를 빠는 거대한 거머리였던 셈입니다.
나라에 뜯기고, 탐관오리에 뜯기고, 지주에게 뜯기고, 피골이 상접한 소작인은 참다 못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마음이 뭉쳐져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 저항이 무엇입니까? 바로 동학농민혁명이었습니다. 왜 그 불길이 호남평야 중심에서 솟구쳤는지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그 사회적 모순과 갈등은 일제 시대를 거쳐 해방이 될 때까지 변함없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리산에 몰려든 빨치산도 전라도 사람이 가장 많았습니다.
또한 산업화로 농촌 노동자가 산업 노동자로 도시로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어느 도 사람이 무작정 상경 1위를 차지했을까요? 가난에 찌든 소작인이 많았던 전라도 사람이었던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까지 얘기로 왜 세 편의 대하소설의 무대가 전라도인지 그 필연성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전라도에서 태어난 건 완전한 우면이며, 한편으로는 큰 행운입니다. 그러나 그 우연이 아니었더라도 세 대하소설의 무대가 전라도 땅이 되었을 것은 필연입니다.
61)소설을 쓸 때 독자의 대상 연령이나 교육 수준을 고려하는지?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아리랑이 한창 인기였습니다. 활자 중독으로 눈에 띄는 것은 닥치는 대로 읽던 시절이라 선생님 작품도 그때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나이 들어 다시 읽으니 그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또 다른 깊이가 있기는 합니다만, 초등학생이 읽기에도 어렵지 않고, 참 흥미진진한 소설입니다. 글을 쓸 때, 어느 정도의 사람이 읽으면 이해할 만하겠다 하는 식으로 대상의 연령이나 교육 수준을 고려하시는지요? 김가흔 숙명여대 인문학부
주시경 선생 이후 한글 연구를 가장 치열하게 했던 외솔 최현배 선생은 한글 발전에 기여한 소설가들의 공을 두 가지로 꼽았습니다.
첫째, 전체를 한글로 써서 한글 전용에 앞장섰다. 40년 전에 한글 전용을 부르짖었던 분다은 선정입니다.
둘째, 남녀노소, 학식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읽고 즐길 수 있게, 의미와 무게를 지니게 하면서도 쉽게 쓴다. 소설의 독특한 기능을 명쾌하게 지적한 것입니다.
소설은 모든 사람이 읽고 즐길 수 있는 글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글을 쓰면서 그 대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62)작품을 읽기 전에 연구와 비평을 먼저 접한다면?
작가 조정래가 유명한 만큼, 조정래 선생님에 대한 많은 연구와 비평이 나와 있습니다. 소설을 읽기 전에, 이런 연구와 비평을 먼저 접하고 조정래의 작품은 이렇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정보미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그런 독서 방법은 최악의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부지불식간에 남의 인식과 판단에 자기의 의식은 침윤되고 설득당하여 정작 자기의 주관적 가치평가를 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입니다.
평론은 독서의 보조물일 뿐입니다. 선입관이나 고정관념 없이 작품을 먼저 읽고 자기의 주관적 판단과 평가를 한 다음에 비로로 평론을 참작하십시오.
64)작가와 정치성의 관계는?
작가께서는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것과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싫어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신의 문학 속에서 뗄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태백산맥 기념관이나 NL계열이 당신을 절대시 여기는 등, 정치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효진 이화여대 사회학과
우리 인간 세상의 2대 필요악은 정치와 종교입니다. 인간의 3대 발명품 중에 앞자리에 선 두 개가 필요악으로 지목된 것입니다.
모든 정치가 저지르는 3대 악은 횡포, 부패, 오류입니다.
작가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진실만 말해야 하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강도 없는데 다리를 놓겠다고 거짓말을 일삼는 존재와 함께 횡포, 부패, 오류를 저지르며 비인간적인 행위를 할 수 있습니까.
진정한 작가는 그 어느 시대, 그 어떤 정권하고든 불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치의 횡포, 오류를 감시 감독하며 진실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작가는 정치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진보적인 존재일 수 밖에 없으며, 게다가 진보성을 띤 정치세력이 배태하는 오류까지도 직시하고 밝혀내야 하기 때문에 작가는 끝없는 불화 속에서 외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65)경직되고 있는 남북관계에 대한 의견은?
최근 북한 미사일과 핵 개발 선언으로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경직되고 있는 가운데, 작품과 평소 행보를 통해 남북관계의 평화적 진전을 적극 추진해왔던 작가 본인의 의견을 듣고 싶스비다. 나정범 고려대 사회학과
우리 민족의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 유일한 방법은 평화통일이다. 이것은 전 민족적 동의다. 그러므로 북한은 핵을 전면 포기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미국은 북한에 대한 모든 규제와 압박을 풀고 국교를 정상화하고, 북한이 세계 무대에서 정상 국가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지원해야 한다. 따라서 남북한은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동시에 상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군축을 실시하고, 남한은 민족동질성의 정신에 입각해서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적극 나서야 한다.
66)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대하소설 집필 계획은?
조정래 선생님은 3부작을 끝으로 더 이상 대하소설을 집필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지만 1986년 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는 생각이 현 정권 들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격변하는 현대사를 다시 커다란 물줄기에서 서술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고정현 연세대 사회학과
대하소설을 쓰는 일, 그건 물 없이 사막을 거너는 일이고,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일입니다. 그 아득하고 캄캄하고 외로운 고통 속으로 또 들어갈 자신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67)이전 세대의 가난과 지금 세대가 겪는 가난의 차이는?
선생님의 작품 속에서 가난이 생생하게 묘사되는 이유가, 선생님에게 있어 가난은 자신의 삶 그 자체로 체화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세대의 가난과 지금 세대가 겪는 가난은 분명 그 의미가 다를 텐데요.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또 지금 세대의 가난이 작품의 주제가 될 수 있을는지 알고 싶습니다. 반기웅 한양대 국제대학원
구조적 모순에 대한 인식을 투철하게 하면 오늘의 가난은 이 시대에 응답하는 가장 좋은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68)분단 시대의 한반도에서 민족주의는 어떤 의미를 가지나
분단사회를 그린 선생님의 작품은 민족주의의 문제와 결부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오늘날 민족주의를 폐기해야 할 구시대의 유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분단시대의 한반도에 있어 민족주의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심진용 서울대 정치학과
민족주의는 애초에 실체가 없는 것이고, 신자유주의 경제가 꽃피는 이 글로벌한 시대에 그런 시대착오적인 주의에 집착해 어쩌자는 것인가. 나라의 세계적인 발전을 위해서 그런 구시대적 유물은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영토제국주의에서 자본 제국주의로 모양을 바꾼 것뿐입니다.
약소국이 거대한 제국주의의 힘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예나 지금이나 민족주의뿐입니다. 그것이 아니고는 결속의 일체감과 함께 저항의 힘을 응집할 다른 무엇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본 제국주의 국가는 약소국이 소유한 그 강적을 물리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무력을 쓸 수 없으니 그럴듯한 논리 개발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민족주의의 폐해와 시대 착오를 강변하는 폐기론입니다. 자본 제국주의 강대국이 집요하게 공략하는 민족주의 폐기론은 바로 약소국의 정신무장 해체 전법입니다.
그러므로 약소국인 내세우는 민족주의는 개방적 민족주의, 공생적 민족주의, 방어적 민족주의, 저항적 민족주의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무조건 민족주의 폐기를 주장하는 사람 대부분이 그 힘센 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분네들이라는 사실입니다.
5천년 동안 1천 번 넘게 외침을 당해온 약한 민족으로서 강한 쪽에 붙어야 한다는 인식이 뼈에 사무치다 못해 우리의 유전인자가 되어버린 모양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짓이 여럿 있지만, 그중에 으뜸인 것이 좋은 머리 받고 태어나 많은 공부를 하고서도 남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69)좌빨 이라는 단어의 잔인함에 대한 생각은?
태백산맥에서 빨갱이란 말의 잔인함과 시대성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 좌빨 이라는 말이 다시금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데요. 아무 생각없이 내뱉는 듯 보이는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곽고은 한국외대 인도어과
권력을 세습하는 김일성 왕조-유교적 공산주의
73)지금이라도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해야 하는가
한강에는 친일파 이야기가 나옵니다. 현재 친일파는 아직도 부유한 삶을 누리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늦었지만 현재라도 친일파 청선을 제대로 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김규정 제주교대
해방과 더불어 친일파를 깨끗이 청산하지 못한 것은 민족적 불행이고 국가적 재난입니다. 왜냐하면 불의한 자들을 공명정대하게 처벌하지 못함으로써 민족 정기가 훼손되었고 민족 정통성이 무너졌으며, 국가의 존엄성이 서지 않았을뿐더러 사회 질서가 어지러워졌기 때문입니다.
바른 일 한다는 놈 병신, 어떻게든 출세하는 놈 최고.
이런 부정적인 가치관과 부당한 기회주의가 해방 이후 지금가지 우리 사회에 넘치는 것은 다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한 데서 비롯했습니다. 참 슬픈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임종국-친일문학론
임종국 선생의 연구 업적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 민족문제연구소입니다.
74)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순응적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는?
학생들도 태백산맥과 한강 등 선생님의 책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읽혀진다는 것은 분명 공감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요즘 젊은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은 사회적 모순과 불의에 끊임없이 저항했습니다. 요즘 젊은이를 보면 참 순응적이라는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지혜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민중봉기-동학농민혁명-항일의병투쟁-3.1운동-광주학생운동-4.19혁명-광주민주항쟁-6.10항쟁-민주주의 탄생
저는 역사의 힘을 믿고, 인간이 인간이고자 하는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의 힘을 믿고, 젊은이의 순결한 열정을 믿습니다. 그들의 순응적 모습은 삶의 충실일 것이며, 그들이 좀 즐길수 있는 것은 선배들의 헌신이 준 선물입니다. 그 인과응보는 아름다운 꽃피움입니다.
75)21세기를 힘겹게 살아가는 민초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태백산맥부터 한강까지 한민족 1백년사를 기릴 수 있는 3부작을 완성시키셨는데요. 그 속에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함께 자리잡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 속에서 민초는 항상 소설의 주인공이었습니다. 21세기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민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성세희 베이징대학 국제정치학과
78)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아드님 장가가는 날, 예식장 앞에 세워둔 메모판에 이렇게 적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인생이란 연습도 재공연도 할 수 없는 단 1회의 연극이다. 문학을 꿈꾸든, 문학을 꿈꾸지 않든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최명진 부산대
남보다 5분 먼저 행동하라.
주색잡기 하지 마라.
돈은 안쓰면 모아진다.
80)1977년에 어떤 솔거의 죽음을 쓰게 된 까닭은?
선생님께서 1977년에 발표하신 어떤 솔거의 죽음이란 단편소설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솔거는 요즘 불고 있는 바보주의를 나타내는 인물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런 바보 같은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앞으로 바보의 삶을 주제로 더 긴 이야기를 펴내실 의향은 없으십니까? 박혜경 경희대 행정학과
순결한 영혼과 진정한 양심을 가진 사람만이 그 삶을 선택할 수 있을 뿐입니다.
81)동화도 쓰던데, 현재 구상 중에 있는 동화가 있는지?
몇 년전부터 인터뷰에서 동화를 쓰겠다고 밝히신 글을 보았습니다. 2007년 출간된 손자 세대를 위한 위인전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현재 구상중에 있는동화가 있다면 새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좀 듣고 싶습니다. 민경원 한양대 중어중문학과
작가는 여든의 나이에도 소년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괴테
84)언젠가 통일 후를 다룬 통일문학 작품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 통일문학에서는 어떤 주제를 다룰 것인가
선생님의 문학세계에서는 한반도 분단 문제, 좌우 갈등 등 민족문학의 세계를 다뤄오셨습니다. 언젠가 통일 후를 다룬 통일문학 작품을 쓰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통일문학에서는 어떤 주제를 다루실 건가요? 조혜민 명지대 영어영문학과
제 예상으로는 아무리 늦어도 제 아들 대에는 통일이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6.25를 아는 마지막 세대까지 다 떠나가버리면 분단이라는 인식이 지금보다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고, 모든 강물이 결국은 바다에서 만나 하나로 어우러지듯 민족이라는 그 질긴 생명도 끝내는 하나로 뒤엉키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적당한 시점에서 분단시대를 바라보는 통일문학 작품을 쓰려고 합니다. 지금 그 자료준비는 다 되어 있습니다.
그 작품을 아들에게 주어 통일이 되면 출판하게 하고, 아들 대에 안되면 손자에게 물려주고, 손자 대에 안되면 증손자에게 물려주게 하렵니다.
조정래
1943년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태어났다.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였으며,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였다. 단편집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황토, 한, 그 그늘의 자리, 중편집 유형의 땅,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인간 연습, 사람의 탈,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 신채호, 안중근, 한용운, 김구, 박태준, 세종대왕, 이순신 등을 출간하였으며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성옥문화상, 동국문학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광주문화예술상, 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황홀한 글감옥
조정래 작가 생활 사십년 자전 에세이
초판 3쇄발행 2009년9월30일
지은이 조정래
펴낸이 표완수
편집인 문정우
펴낸곳 (주)참언론 시사IN북
출판신고 2009년4월15일 제300-2009-40호
주소 110-090 서울시 종로구 교북동 11-1 부귀빌딩 6층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회장님의 정성이 회원 모두에게 골고루 전해지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포천에서 멋진 활동 기대합니다.
조정래님의 글을 아직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만 ,,,,이렇게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
조정래 선생님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대하소설은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