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열씨는 75세로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사시는 농부이십니다. 그 분을 두번 만나뵈웠는데 나는 그분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스승이 될만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반계 유형원 숭모사업회 회장직을 맡고 계십니다. 겉으로 보아도 훨춘한 체격과 얼글의 골상이 다정하면서도 엄격한 성품을 띠고 있습니다. 그의 중요한 소개가 용인시민신문 2016년 3.28~4.4일자 전면에 "농사5년 더지어야 해! 기부 30년을 꼭 채워야하거든. 하하!"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습니다. 그글을 나는 읽어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7살 때에 3년간 병을 앓다가 1948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짓던 논을 팔았다. 배고파 울다지친 여동생이 두살 때 죽었다. 1950년 9살 때에 전쟁이 일어나 아버지는 징용에 끌려가서 그는 장남으로 집안의 살림을 책임지었다. 그 때 새 어머니가 임신을 하여 피난을 가지 못했다. 여동생을 낳았다. 못 먹어서 산후 퉁퉁 부은 어머니, 젖을 달라고 울어대는 동생을 보고 그는 할 수 없이 밤에 남의 집 담장을 넘어 밥을 훔쳐먹고 이를 담아 어머니를 가져다 주었다.
아버지는 어려운 형편에도 그를 학교를 보내 백암초증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에 진학하였으나 아버지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2학년 때에 자진 학교를 중퇴하고 저수지 쌓는 공사장에 가서 뼈가 부스러지게 막 노동을 했다. 19살이 되었을 때 모은 돈으로 송아지 한 마리를 샀고, 이를 종자로 하여 20여년 후 24마지기 논을 장만하였다. 23살에 결혼하여 1남3녀를 두었다. 25년 전 중학교 동창을 만났는데 장학회를 만들면 어떠겠냐는 말을 듣고 가슴이 뛰었다고 한다. 자신이 그리고 자식들이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을 한이 되어 장학회에 쌀 10가마를 기금으로 기부했고, 25년간 매년 기부를 해오고 있다.
2011년 7순때 그는 부인에게 7000만원 기부를 말했다. 부인은 반대했다. 그는 들어 누어 단식을 했다. 부인은 마침내 동의하여 5000만원을 백암면 장학회에 기부했다. 70평생에 7천만원을 기부한 것이다. 그 후 부인 7순 때에는 용인 시민을 위해 면사무소에 쌀 100포대를 부인 이름으로 기부했다. 그순간 그는 혼자 외쳤다. "참으로 기쁘다. 내 인생을 참으로 멋지게 살고 있구나! 쌀 한 항아리만 있어서도 두 동생이 죽지 않았을 텐데. 너희의 복을 빌기 위해 기부한 것으로 생각해다오! "
그는 3년전 부터 농민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국가를 부강하게 하기위해 일생을 바친 반계 유형원 묘소가 백암면 석천리에 있다는 것을 근거로 그를 숭모하는 사업회를 조직하여 회원에게 30만원씩을 거두고 백중일(음력 7월 15일)에 백중대회를 열고 그의 묘소를 벌초해 준다는 소식을 장원섭 교수로부터 듣고 8월 29일 황규열 회장님을 장교수와 함께 만났다. 나도 금년초부터 반계 유형원을 연구한 사람으로 그를 용인시민에게 알려 시민의 인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의 생애를 바치기로 마음먹고 "반계 유형원 실학사상연구소"를 차리고 그 운동을 하는 중이었다.
황회장님은 첫말씀에 나는 배우게 없어 모릅니다. 반계숭모사업회를 도와달라고 하시는 말씀을 하시길래 그 회에 저도 끼워주십시오" 했다. 이틀 후 전체 모임이 있다고 해서 31일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31일 모임에 갔더니 24명의 회원에서 29명으로 이사가 늘었다는 보고를 했다. 그는 어른스럽게 2차는 가지말라고 당부했고, 전회원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지역사회를 이끄는 어른의 참모습을 보았다.
기부는 절대로 부자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는 기부보다 조건 없는 기부가 참으로 어렵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리고 이를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은 더없는 가치를 가진다.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관행이 강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자기의 재산을 남을 위해 기부한다는 마음과 실천적 행동은 참으로 위대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한국 농민의 기부왕'으로 칭한다. 그는 한국의 농민으로서 지역사회를 이끌어가고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는 주인공이다. 그의 삶의 철학과 행동은 내가 스승으로 모셔야할 분이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그를 포함한 전회원에게 큰절을 올렸다. 나는 반계사상을 용인시민에게 알리는 백만대군을 얻은 셈이다. 집에 돌아와 보니 명단에 나를 반계숭모사업회 고문으로 맨위에 쓴 것을 보았다. 참으로 멋진 분을 스승으로 만나게 된 것을 더 없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