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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리 유적 출토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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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리유적에서 출토된 고산리식 원시무문토기와 덧무늬(융기문)토기는 제주도에서 최초로 출현하는 토기이다. |
문양은 반원형의 비교적 굵은 점토띠를 세 줄로 장식한 태선 융기문 혹은 융대문 형식인데, 맨 위 첫 줄은 수평을 이루지만 둘째 줄과 셋째 줄은 일정한 간격으로 각각 S 자 형과 포물선형으로 배치되고 있다.
고산리식 원시무문토기는 태토에 가는 풀잎 같은 것을 섞어 성형된 특징을 갖고 있다. 겉면에 나타난 흔적들은 식물이 불에 타 없어지면서 생긴 것으로 이것은 사질점토에 식물태토를 보강제로 사용한 때문이라 생각된다.
태토가 유사한 토기는 아무르강 하류지역의 가샤유적에서 확인되고 있다. 아직 기형이 완전하게 복원된 토기는 없지만 그릇의 높이가 20cm 정도인 발형이나 심발형인 것으로 추정된다. 융기문토기는 평저에 구연부가 크게 바라진 형태로 전체적인 기형은 오산리유적에서 발견된 바 있는 대형의 발과 같다.
토기의 태토는 가는 모래가 섞인 점토질로서 적갈색 내지 황갈색을 띠고 있으며, 토기파편이 떨어진 면으로 보아 적륜법(흙을 둥굴게 말아 올겨 가며 만드는 방법)으로 만들었음이 확인된다. 고산리유적의 토기는 김녕리 일대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제주도의 특징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토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단계의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그 시기는 기원전 10,000 ~ 7,000년 경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반도에서 후기 구석기말기 문화에서 신석기초기문화로 옮겨 가는 과정을 설명해주는 유일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