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강림 빈 들에 마른 풀같이 183
D.W.Whittle 작사 · J.McGrahan 작곡; 《통일 찬송가, 1983》 172장
1. 빈 들에 마른 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이 약속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2. 반가운 빗소리 들려 산천이 춤을 추네
봄비로 내리는 성령 내게도 주옵소서
3. 철 따라 우로를 내려 초목이 무성하니
갈급한 내 심정 위에 성령을 부으소서
4. 참 되신 사랑의 언약 어길 수 있사오랴
오늘에 흡족한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후렴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아멘
성령강림을 간구하는 찬송으로서 이렇게 좋은 찬송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이 찬송은 다음 성구에 의거하여 작사된 찬송이다.
내가 그들에게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 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라.(겔34:26-27)
이 찬송은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다니엘 휘틀(1840~1901) 목사가 「복된 소낙비」 'Sbowers of Blesing' 라는 제목으로 1883년에 작사한 찬송시에, 제임스 맥그라나한(1840~1907) 목사가 곡을 붙여 《복음 성가집》 'Gospel Hymns No 4, 1882'에 처음 발표한 것이다. 곡명 'SHOWERS OF BLESSING'은 시제목을 그대로 쓴 것이다.
생키와 맥그라나한이 공동 편찬한 「복음 찬양대」 'Tbe Gospel Cboir,1885'4장에도 실렸다.
본격적인 찬송가로는 생키가 출판한 《성가와 독창곡 750곡집》 'Sacred Songs and Solos; With Standard Hymns, Combined, 750 Pieces, 1889' 522장에 처음 실렸다.
작사자 다니엘 휘틀 (1840 ~ 1901) 목사는 미국매사추세츠 치코피폴스에서 태어나 같은 주 노스필드에서 세상을 떠난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다. 그는 찬송시를 발표한 적에 3개의 아호를 썼다. 1. EI Nathan 2. Elias Nathan, 3. W.W.D. 3번은 그의 이름의 이니셜이요. 앞의 것들은 그가 존경하는 다윗 시대의 선지자 나단 이름을 딴 것이다. 그의 본명도 미국의 정치가 다니엘 웹스터를 딴 것이다. 휘틀은 남북전쟁에 참여하여 소령으로 제대하였다.
그는 부상으로 오른팔을 잃고 포로수용소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심심하여 읽을거리를 찾는 그의 눈에 신약성경이 보였다. 읽어보니 마음에 와 닿는 구 절이 많았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하지는 않고 있었다. 어느 날 밤, 휘틀이 자고 있는데 간수가 와서 한 병사가 죽어가며 자기를 위해 기도할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휘틀은 자기는 그럴 사람이 못 된다고 거절하였다. "하지만 당신은 크리스천이 분명하오. 나는 당신이 열심히 성경 읽는 것을 보았소." 간수가 다그첬다. 하는 수 없이 휘틀은 죽어 가는 병사 방으로 갔다. 그의 회고를 보자.
"나는 병사의 손을 잡고 무릎을 꿇었다. 짤막한 말로, 먼저 내 죄를 고백하고 용서 해달라고 그리스도께 기도하였다. 나는 즉시 주께서 내 죄를 용서해주셨음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소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다. 두려움에 울부짖던 소년은, 내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믿게 해 주소서, 하고 기도하자 순간 조용해지더니 내 손을 꽉 잡았다. 내가 꿇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나자 그는 죽어 있었다. 그의 눈물 어린 얼굴에는 평안이 가득하였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지만 굳게 믿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리스도를 알려주시기 위해 나를 강제로 이끄신 것이다. 그리고 나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을 선포하신 것이다. 나는 하늘나라에서 그 소년을 만나기를 고대한다."
전쟁이 끝난 후 휘틀은 , 시카고에 있는 엘진시계회사 경리로 취직하였다. 10년이 채 못 되어 일을 건어치우고 그는 복음전도단에 가입하였다. 거기서 그는 필립 블리스와 이 찬송가의 작곡가인 제임스 맥그라나한 등 당대의 유명한 복음 찬송가 작가들을 만나 평생을 함께 하였고, 그의 딸 메이(MAY Moody,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작곡자) 도 아버지 휘틀의 가사에 곡을 붙였다. 복음전도자로 헌신하게 된 동기에 대해 휘틀은 이렇게 말하였다.
죽음 같은 적막이 흐르는 둥근 천장이 있는 방에서, 나는 하늘 아버지께 뜻대로 써주소서, 하고 나의 모든 삶을 맡겼다.
이 표현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둥근 천장이 있는 방」은 당시 캠프집회 장소인 콘서트 홀이요, 「죽음 같은 적막이 흐르는」이란 말은 집회가 끝나고 다들 돌아간 한밤중을 말한다. 무디 전도집회가 끝난 깊은 밤중에 집회장소에 홀로 남아 기도하던 휘틀은, 비록 팔 하나가 없는 불구의 몸이지만, 온 생애를 하나님께 바쳐 큰일을 하였던 것이다.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를 작곡한 그의 딸 메이를 무디가 며느리로 맞을 정도로 두 사람은 절친하였던 것이다.
작곡자 제임스 맥그라나한(1840 ~ 1907)목사는 휘틀과 함께 무디 전도단에서 음악을 담당하던 친구다. 그는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 펠로우필드에서 태어나 오하이오의 킨스만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오페라 가수로 촉망받던 유명한 테너요 작곡가였다. 그가 세상 일 다 버리고 전적으로 전도단에 합류하여 일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블리스보다 두 살 아래인 근느 블리스가 열차사고로 38살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먼저 하늘나라로 가자 그의 뒤를 이었던 것이다.
1876년 12월 19일, 블리스는 아내와 함께 시카고에서 열리는 무디교회 전도집회에서 찬양하기 위해, 펜실베이니아에서 기차를 타고 시카고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절벽에 건너질러 놓은 아쉬타불라 철교가 무너지는 바람에, 기차는 60피트(약 18.3 미터) 절벽 아래로 떨어져 불길에 휩싸였다. 100명이 희생되었는데, 그 중에 블리스 부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블리스는 처음에 다치지를 않아 빠져나가려 하였으나, 의자에 몸이 낀 아내를 구하려고 애쓰는 동안 기차가 강물에 빠지는 바람에 두 사람 다 순직하여, 시체도 못 찾아 그의 묘지는 없다. 맥그라나한은 이 비보를 듣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먼저 만난 사람이 휘틀 소령이었다. 맥그라한을 만난 휘틀은 그 때 일을 이렇게 회고하였다.
"내 앞에 블리스가 선정한 그의 후계자가 서 있구나."
두 삶은 함께 시카고로 돌아오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시카고에 도착하기 전에 맥그라나한은 자기의 나머지 생애를 온전히 주께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이로써 오페라계는 스타를 잃어버렸고, 그리스도의 복음전도단은 위대한 복음 찬양자를 얻게 된 것이다. 맥그라나한은 그 후 미국은 물론, 영국과 아일랜드에까지 나가 전도하였다.
이 찬송이 우리 찬송가에 처음으로 채택된 것은 《신편 찬송가, 1935》 366장인데, 생키의 《복음 찬송가(1 ~ 6권 합본)》'Gospel Hymns No, 1 to 6 Complete,1894" 315 장 아니면 《찬양의 찬송들, 1922》'Hymns of praise, 1922' 143장에서 채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