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는 마케도니아 지역의 중요한 항구도시였고 로마 총독이 주둔한 마케도니아주의 수도였습니다.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때 이 도시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의 편지 중에서 가장 먼저 쓰여진 책이고 신약성서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쓰여진 책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주요 관심사였던 재림의 시기와, 먼저 죽은 신도들이 어떻게 되느냐는 물음에 대한 바울의 답변이 담겨 있습니다. 서기 51~52년에 바울이 고린도에서 쓴 것으로 보입니다.
1장 1절을 보겠습니다.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 사람의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발신인으로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이렇게 세 사람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실루아노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실라의 라틴어식 이름이며, 디모데는 바울이 가장 아끼는 애제자였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의 인내를 언제나 기억하고 있다면서 그들의 믿음과 모범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또한 그들이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이 주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이들에게 모범이 되었다고 칭찬합니다.
2장에서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과 나누었던 믿음의 교제를 회고하며 자신을 변호하는 듯한 내용이 길게 이어집니다. 1~5절을 보겠습니다.
1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여러분 스스로가 알고 있습니다.
2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전에 빌립보에서 고난을 받고 모욕을 당하였으나, 심한 반대 속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담대하게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3 우리의 권면은 잘못된 생각이나 불순한 마음이나 속임수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4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서, 맡은 그대로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5 여러분이 아는 대로, 우리는 어느 때든지 아첨하는 말을 한 일이 없고, 구실을 꾸며서 탐욕을 부린 일도 없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증언하여 주십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어디서나 반대자들을 만났습니다. 매를 맞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는 등의 외부적인 박해도 많았지만,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교회 내에서의 모함이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로부터 율법을 업신여긴다는 비난을 자주 받았고, 돈을 벌기 위해 유랑전도를 하는 것이라는 모함도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교인들을 지도하기 어려웠기에 이렇게 스스로 변호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어지는 본문 가운데서 14~16절을 보겠습니다.
14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유대 사람에게서 고난을 받은 것과 같이, 여러분도 여러분의 동족에게서 꼭 같은 고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5 유대 사람은 주 예수와 예언자를 죽이고, 우리를 내쫓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었습니다.
16 그들은, 우리가 이방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여, 구원을 얻게 하려는 일까지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죄의 분량을 채웁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이르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동족에게 받은 핍박을 이겨낸 일을 유대 땅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핍박받은 것과 비교하며 칭찬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한 일을 마치 유대인 전체가 예수님과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서기 392년 이후 중세 천 년을 거쳐오면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죽인 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유럽에서 온갖 박해와 차별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중세를 지나 근대로 들어오면서도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히틀러에 의해 민족말살정책까지 당한 역사는 아직 백 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 전체가 그런 게 아니고 일부 지도자들이 한 것인데, 유대인 전체가 천 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편견과 박해 속에 살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에게 ‘그리스도를 죽인 자’ 라는 오명을 덮어씌운 결정적인 성서의 문구가 바로 이 데살로니가전서 2장 15절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유대 사람은 주 예수와 예언자를 죽이고, 우리를 내쫓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유대 사람’ 이라고 하지 않고 ‘유대 지도자들’ 이라고만 했어도 유대인들이 당한 역사적 아픔은 많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다시 방문하려고 했지만 사탄이 방해했다면서 언젠가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자신의 영광이고 기쁨이며 면류관이라고 극찬하는 내용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