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8시 05분. 번짱인 젤리형님과 주니님이 먼저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난 5분 지각.
염통형은 나보다 더 지각. 8시 30분, 모임 장소인 평촌 중앙공원 인라인 트랙 옆에서 모여 커
피 한 잔씩 마시고 출발(주니님의 차에 넉 대 싣고, 주니님이 타온 커피 마시고... 같이 가신다
던 스윙님은 갑자기 자당께서 편찮으셔서 못 가시고 김밥과 음료수, 연양갱 등을 사 주시고
들어가셨단다. 이궁∼ 고마우셔라).
하남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뒤편에 주차를 하고 자전거를 꺼내 조립. 검단산을 찾은 등산객들
이 우리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지나간다. 차에서 자전거를 꺼내 조립하는 모습이 낯설어
보이나 보다.
가볍게 페달을 밟으며 번짱인 젤리형님이 앞장을 서고, 내가 그 다음, 내 뒤에 주니님, 염통형
은 가장 뒤를 맡는다(염통형께 감사드린다. 매번 뒤에서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시느라 얼마
나 답답하고 지루하실지....).
팔당대교를 건너 청수정에서 잠시 페달을 멈춘다. 평상이 높직하니 놓여 있는 마당에서 휴식
을 취하고 다시 출발. 카페 봉쥬르를 지나고 다산묘가 있는 능내를 지나 양수대교를 향해 속
도를 높인다. 모두가 이렇게 산뜻한 출발에 만족한 듯. 양수대교를 몇 백 미터 앞두고 내 자전
거 체인이 벗겨진다(1단링을 빼버린 상태라 깜빡 잊고 변속할 때 실수를 하면 체인이 벗겨져
버리는 것이다. 오늘 라이딩에서 3번이나 실수를∼).
다시 속도를 올려 양수대교를 건너서 서종 방면으로 기수를 돌린다. 여름엔 연꽃이 아름답게
수면을 장식하는 곳을 지나 북한강변을 따라 널널하게 페달질을 하며 간다. 지나다니는 차량
도 뜸하고 갓길도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중간에 사진 한 장씩 박고 또 출발. 가을, 북한강을 옆
구리에 끼고 자전거를 타는 맛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세련된 애인과 지적인 데이트를
하는 기분이 이럴까? 박하사탕 먹고 키스하는 맛이 이럴까? 안 해 봐서 잘 모르겠다만. ㅎㅎ
ㅎ.
작은 고개를 몇 개 넘어 우측으로 문호리 쪽으로 난 길을 탄다. 해장국이 맛있는 집을 지나(이
집 해장국은 정말 맛있는데, 예전에 보면, 뽀다구는 건더기 다 건져내고 국물만 먹는다. 씽씽
이만 신났지 뭐) 점점 차량도 인적도 뜸해지는 길로 깊이 들어간다. 서서히 완만한 경사가 우
리를 끌어들인다. 가랑비에 속옷 젖듯, 이런 길이 계속 되면 힘이 빠진다. 아주 조금의 경사도
젤리형님은 즉각 알아채신다. 조금씩 호흡이 거칠어지며 댄싱을 하신다. 엉덩이를 실룩실룩
∼.
노란 은행나무가 우산을 펼친 듯 서 있는 개울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스윙님이 사 주고
가신 김밥을 뚝딱 해치우고 사진 몇 방 박고.... 송사리가 보이는 개울물을 들여다보니 너무
맑고 좋다. 중미산 산자락에 위치한 이 마을은 유난히도 은행나무가 많다. 폭이 좀 넓은 개울
에선 동네주민들이 은행알을 씻는 듯, 은행알 특유의 냄새도 나고, 마을 부녀회장의 멘트도
들리고 완전히 전원일기 분위기다. 주니님은 이런 데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시고, 염통형은
일주일만 살아 봐라, 심심해 죽을 게다... 하신다.
중미산 업힐이 시작됐다. 피크닉 기분이었던 여태까지의 여정은 끝장이 나고, 격렬한 호흡의
고통이 우리를 반긴다. 젤리형님은 점점 뒤로 처지고 염통대장이 앞으로 쭉 나가신다. '댄
서'라는 닉네임이 부끄럽지 않게 부드러운 댄싱을 하면서 가파른 고개를 오르는 대장. 현란한
댄싱을 감탄하면서, 난 무거운 엉덩이를 안장에서 떼지 못하고 죽어라고 페달질만 한다. 주니
님은 내 뒤를 바짝 따르며 날 추월할 태세다. 아니, 이럴 수가....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고개에
서 고개를 숙이던 주니님이 아니던가? 이게 웬일? 질 수 없지. 자, 로켓 점화.... 있는 힘을 다
짜내서 염통대장 뒤로 바짝 붙었다. '어, 일취월장했네?' 대장의 격려에 힘을 내서 오르지만
점점 허벅지가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 대장이 업힐 요령을 옆에서 코치를 한다. 아, 고맙긴
하지만, 체력이 뒷받침을 못 한다. 어제 한강 한 바퀴 돌면서 몸을 풀려고 했었던 것이 오히려
허벅지에 무리가 갔나 보다. 젖산이 쌓여 딱딱해진 허벅지에서 점점 힘이 빠진다. 안장 뒤로
엉덩이를 빼고 쭉쭉 발을 내지르라지만, 어디 내 맘대로 되나? 헉헉, 학학...... 경사도에 따라
호흡이 점점 가팔라진다. 눈을 들어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해 보려는 순간, 이마 위에 길게 펼
쳐진 길을 보며 절망감을 느낀다. 우와.... 차라리 보지 말 것을. 그 순간 갑자기 힘이 쭉 빠지
며 페달에서 발을 내려 버린다. 염통형은 옆에서 '아니 뭐야. 벌써 내리면 어떡해?' 잔소리를
하지만, 난 이미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라고 인정해 버린 상태다. 철퍼덕 주저앉아 뒤를 보니
주니님이 올라오신다. 정말 일취월장은 주니님의 몫인 것 같다. 그리고 한참 뒤 젤리형님이
느긋하게 올라오신다. 우리가 쉬고 있는 곳까지 와서 뒤로 벌렁 누으며 하시는 말씀이 '언덕
은 남의 것이야'다.
잠시 쉬고 다시 지긋지긋한 업힐을 한다. 대장은 이미 댄싱으로 훨훨 날아가고 안 보인다. 나
도 훨훨 날고 싶다(젤리형님과 내가 대장보다 몸무게가 20kg 이상 나가니 어찌 훨훨 날 수 있
을꼬? 꿈깨라). 주니님과 격차를 억지로 벌이며 업힐을 한다. 아, 내리고 싶다. 하지만 지금 내
리면 치욕의 '끌고바이크'를 해야 한다. 그럴 순 없지. 자, 다시 페달질. 헛둘헛둘.... 중미산 정
상 바로 밑의 천문대를 지나 한 바퀴 두 바퀴 꾸역꾸역 올라간다. 아무리 힘들어도 가면 가는
것이다.
드디어 고개 정상. 도마치 고개라고 했던가? 포장마차 같은 집이 두어 채 보인다. 칡즙, 마
즙.... 기타 등등을 파는 가게 앞에 차가 몇 대 서 있고, 볕이 참 따뜻하다. 고개 정상은 아주 잠
깐 머무는 곳의 의미 밖에 없다. 여기를 오르려고 그 고생을 했나 싶게. 그렇듯, 정상은 항상
스쳐 지나는 곳. 정상이 좋다고 마냥 머무를 수는 없는 법. 정상을 목표로 올라왔지만, 다 오
른 뒤에는 금방 떠나야 한다. 인생의 정상도 마찬가지겠지? 인생은 업힐과 다운힐이 대부분
이고, 정상은 순간이며 찰나에 불과하다.
잠시 휴식 후에 다운힐.... 이때, 젤리형님의 진면목이 나온다. 다운힐의 왕자라고나 할까? 육
중한 몸무게를 이용한 노브레이크 다운힐. 업힐의 귀재인 대장도 다운힐에서만큼은 젤리형님
의 적수가 아니다. 육중한 몸무게가 유리할 때가 있다는 게 참 위안이 된다. ㅎㅎㅎㅎ.
신나는 다운힐이 없다면 업힐의 의미도 반감될 것이다. 다운힐에서 느끼는 찌릿찌릿한 스릴
감은 돈주고도 못 산다(놀이공원에서는 살 수 있지만). 젤리형님은 페달질 안 해도 가속도가
붙어 멀찍하니 앞서나가고 그 뒤에 대장이 열심히 다운힐 페달질을 한다. 아무리 다운힐 페달
질을 해도 젤리형님과의 간격이 좁혀지질 않는다. 나도 한 무게 하는 처지라 가속도가 장난이
아니게 붙는다. 커브에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중앙선을 넘는 순간 갤로퍼 지프가 아래에서
나타난다. 워메..... 황천길이 바로 코앞이다. 아슬아슬.... 속도가 너무 붙어 대장을 추월할 것
같아 슬쩍슬쩍 브레이크를 잡는다. 내 뒤의 주니님이 걱정이 되어 슬쩍 뒤를 돌아보니 주니님
은 제일 뒤에서 안전빵으로 내려오나 보다. 경험 미숙일 때 괜히 만용을 부릴 필요는 없으니
다행이다(주니님은 30대 초반의 핸섬보이. 외모도 핸섬하지만 매너는 더 댄디하다. 차분하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씀씀이가 나보다 더 어른스럽다).
언덕을 다 내려와 옥천 냉면을 먹으러 간다. 나의 오랜 단골인 '중미산 막국수집'을 지나 40년
전통의 '옥천냉면'집으로 들어선다. 와글와글, 벅적벅적.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걸 보니, 정말
맛있나 보군. 하지만, 웬걸?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라고, 냉면의 맛은 '별로'였다. 대신
완자는 두툼하고 커다란 게 먹을 만했다. 다음에 이 코스를 오면 '중미산 막국수'집으로 가야
겠다. 백김치를 담그는 할머니의 음식 솜씨가 대단하신데, 이미 돌아가시진 않으셨는지.... 그
딸들이 뒤를 이어 장사를 하고 있을 게다.
다 먹고 나와 자판기 커피를 한 잔씩 뽑아들고 담소를 나누다 내가 사고를 친다. 배냥 끈에 부
착한 휴대폰 소리에 놀라 전화를 받으려고 서두르다가 커피를 떨어뜨렸는데 하필이면 그 커
피가 젤리형님 신발과 염통형 타이즈 쪽으로 튀어 버렸다(젤리형님, 염통형, 죄송합니다). 대
충 수습을 하고 다시 장도에 오른다.
양평대교를 넘다가 다시 변속 미숙으로 체인이 벗겨진다. 다들 앞에 있어서 나만 혼자 남게
되었다. 차들이 씽씽 지나가는 다리 위에서 체인을 끼우며 속으로 겁을 낸다. 자전거를 타고
길을 가다 보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짐승들의 시체를 목격하는데, 나도 그 꼴이 되는 거 아닌
가? 조심조심하며 다리를 건너 한참을 밟아대니 저 멀리 염통형의 모습이 보인다. 뒤에 처진
나를 기다리며 천천히 가고 있다. 대장이기 때문에 항상 남을 챙겨야 하는 염통형! 실력 차이
가 너무 나서 같이 라이딩하는 것이 지루할 텐데도 항상 뒤에서 서포트를 해 준다. 그래서 아
무나 대장 하는 게 아니다.
아무튼, 같이 합류를 하고 남종면 분원리 쪽을 향해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남한강변을 끼고
중간 중간에 높지 않은 고개가 몇 개 나오는데 이미 지친 젤리형님은 고개를 오르기가 아주
괴로운가 보다. 점점 뒤로 처진다. 주니님은 몰라보게 달라진 체력을 과시하며 신나게 달린
다. 대장이야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니까 룰루랄라. 역시 나와 젤리형님은 살을 많이 빼야
할 것 같다.
남한강을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달려 퇴촌을 지나 새로 개통된 쭉쭉빵빵 '팔당대교'를 신나
게, 숨차게 달려 하남으로 돌아왔다. 차로 와서 다시 자전거를 접어 실으며 서로 한 마디씩 인
사를 한다. '수고 많았습니다'.
오늘 라이딩 거리는 100km 정도? 한강 한 바퀴를 크게 도는(평촌-안양천-한강고수부지-잠
실-양재천-탄천-분당-정신문화연구원-하오고개-평촌) 거리보다 10km 정도 더 길었다. 하지
만, 힘들고 고생스럽기는 훨씬 더했다. 중미산 도마치령에서 일단 진을 빼고 나니 조그만 고
개만 나와도 먼저 겁부터 났으리라. 하지만, 이런 맛에 자전거를 타는 거 아니겠는가? 고개 없
는 한강길보다 고개 많은 팔당 라이딩이 훨씬 재밌다는 사실, 알랑가 몰라∼
같이 가지 못한 회원님들을 위해 자세한 후기를 남기려고 했는데 지루하지나 않았는지..... 찬
바람 불어 움츠러드는 겨울 오기 전에 부지런히 타야지요. 제 글에 자극 좀 받고들 라이딩에
참여하세요.
첫댓글 1) 나두 박하사탕먹구 키스해봐야지.ㅋㅋㅋㅋ 2) 뭘 많이, 맛있게 먹으면 살이 빠질까? 3) 담엔 꼭 중미산막국수를 먹기루 하지요. 4) 돌님 이번후기는 "後記의典範"이 될만함.
후기 잘 보았습니다.
앞만 보고 힘겹게 따라갔는데 칭찬을 많이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휴~~~긴글 읽느라 힘드네요...허나,국어 선생님다운 글 놀림...멋지군요.중미산 업힐중 쉬던곳은 '도치골'입니다. 중미산 천문대 지나서 고개 정상은 도마치고개가 아니라 '농다치'였습니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 마치 제가 그곳에서 직접 본듯한 사실감 넘치는 후기였습니다. ^^
후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