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말: 기쁜 소식, 수줍음, 존경, 신비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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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붓꽃이란 이름의 유래는?
'각시'라는 말은 옛말에서 '작고 예쁜 것'을 의미하는 것로 일반 붓꽃보다 크기가 작고 아담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꽃봉오리가 벌어지기 전의 모습이 먹을 머금은 붓을 닮았다고 해서 '붓꽃'이라 불린다.
꽃은 4~5월에 피고 꽃대 선단에 지름 3.5-4cm로서 자주색이며 판통은 길이 4-6cm이고 화경은 높이 5-15cm로서 4-5개의 포가 있으나 가장 위의 포에서 1개의 꽃이 핀다.
포는 녹색이며 길이 4~6cm로서 선형이고 예첨두이며 꽃자루는 길이 8mm로서 씨방보다 길다.
외꽃덮이는 좁은 거꿀달걀모양이고, 중앙부에 두드러진 돌기가 없으며 밑부분이 뾰족하고 내꽃덮이는 곧추서며 약간 짧다. 꽃밥은 황색이고, 길이 4mm로서 수술대보다 짧으며 암술대는 3개로 갈라진 다음 다시 끝이 2개로 깊게 갈라진다.
전설은 아래에...
<<전설 1>>
옜날 하늘나라에 수연이라는 어린 선녀가 살았습니다.
수연은 가끔 호기심으로 장난을 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운명적인 어느 날, 수연은 호기심으로 천상의 별자리에
간섭하게 되면서 우주의 질서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녀는 장난의 댓가로 하늘에서 추방되어 지상의 인간들과
함께 살도록 보내졌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수연은 구불구불한 언덕과 꽃이 만발한
들판 속에 자리 잡은 초라한 마을로 보내졌습니다.
그들은 그녀에게 하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하은은 자비롭고 열심히 일하는 젊은 여성으로 성장하여
가난한 삶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빛나는 미소화 온화한 마음으로 노부부에게 빛과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하은이의 20번째 생일이 다가왔습니다,
생일 전날,
그녀는 천상의 유산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는
신비한 노파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노파는 하은이 받은 천상의 벌은 인간 세상에 내려와 살다가
스무살이 되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하늘 문이 열릴 때 하늘로 올라가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하은은 지상의 가족들과 함께한 시간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그녀가 별빛이 가득한 하늘응 올려다 보자, 하늘이 열리고 있엇습니다.
그녀는 무거운 마음으로 노부부에게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그녀가 하늘로 올라가자 그 자리에 아름답고 예쁜 청보라색 꽃이
피어났다고 전해집니다.
사람들은 창포꽃을 닮은 이 꽃의 이름을 각시붓꽃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전설 2>>
관창은 어려서 화랑이 되었습니다.
신라시대 화랑제도는 청소년의 민간 수양 단체로 심신의 단련과 사회의 선도를 이념으로 조직되었습니다.
당나라와 더불어 백제를 치고자 신라군이 출병할 때,
화랑이 된 관창은 660년에 왕에게 천거되어 좌장군인 아버지 밑의 부장(副將)으로 출전하였습니다.
신라군은 황산(黃山)에서 백제군과 대치하였습니다.
당시 용맹하기로 유명한 계백(階伯)이 이끄는 백제군의 항전으로
처음 네 차례의 전투에서 모두 이기지 못하고 신라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신라와 백제 양국의 운명을 건 황산벌전투에서 신라군은 전세가 불리하였습니다.
이 때 신라의 화랑이었던 관창은 목숨을 걸고 적장 계백을 죽이기 위해
적진에 뛰어들어 갔으나 백제군에게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계백은 관창의 어리고 용맹함에 탄복해 죽이지 않고 돌려보냈습니다.
살아 돌아온 관창은 다시 분기하여 적진으로 돌진해 싸우다
또다시 적군에게 사로잡혔습니다.
계백은 이번에는 관창의 목을 베어 말 안장에 매달아 돌려보냈습니다.
어린 관창의 용감한 죽음에 자극된 신라군은 분노하여 의기투합하였습니다.
결국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을 죽이고 백제군을 대파함으로써
백제를 평정할 수 있었습니다.
신라의 태종 무열왕은 관창의 전공을 높이 기려 급찬(級飡) 을
추증하고, 예를 갖추어 장사 지내 주었다고 합니다.
관창은 오늘날까지 충효 정신과 화랑 정신이 투철한 인물로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신라와 백제가 격렬하게 싸웠던 황산벌 전투에서 화랑 관창은 죽게 됩니다.
그런데 관창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무용이라는 처녀가 있었습니다.
관창이 죽은 후에도 변치 않았던 무용은 관창의 무덤을 지키다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둘을 나란히 묻어 주었는데
이듬해 그 자리에 청보라색 꽃이 피었다고 한다.
이 꽃의 모습이 새색시 무용을 닮았고 잎은 관창의 칼을 닮았다 하여
각시붓꽃이라 불렀다고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