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일 강론 : 태생소경 치유(요한 9,1-41)>(3.19.일)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태생 소경을 치유해주셨습니다. 안식일이든 아니든 언제 어디서든지 병자들을 돕고 치유해줄 수 있도록 주님께 청하면서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1. 2019년 말,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했고, 전 세계는 무시무시한 신종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의료장비, 의료인력뿐만 아니라 마스크도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매일 발표하는 확진자와 사망자 통계를 지켜보며,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고, “동선”, “격리” 같은 단어들을 계속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급기야 미사까지 중단되었습니다. 제가 살던 대구 달서구는 인구 60만 명으로 전국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지역이라 확진자들이 정말 많이 나왔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모임이나 접촉을 피했습니다. 저는 외출을 자제하고 사제관에 머물며, 여러 자료를 정리했습니다. 유학할 때 비싸게 샀던 책들을 고물상에 파니까 12,000원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힘든 시간을 꿋꿋하게 견뎌내기 위해 제의실에서 매일미사를 드리고, 교우들을 위해 매일 강론을 써서 카톡으로 보내며 격려했습니다. 저는 한 번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지만, 다들 힘들고 괴로울 수밖에 없었던 3년간 코로나는 우리 삶을 온통 바꿔놓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점점 회복되고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2. 욕쟁이로 유명한 탤런트 김수미 씨가 심한 우울증 때문에 고통받을 때의 일화입니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닥쳐온다고 했듯이, 김수미 씨 남편이 사업에 실패해서 엄청난 빚을 지게 되어, 상황이 아주 나빠졌습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친한 척을 하던, 돈 많은 친척들은 김수미 씨를 외면하고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탤런트 동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 돈을 빌리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늦게 들은 김혜자 씨가 김수미 씨에게 정색하면서 말했습니다. “얘, 나한테는 왜 돈 빌려달라는 소리 안 해? 추접스럽게 몇백만 원씩 꾸지 말고, 네게 필요한 돈이 얼마나 되니?”라며 김수미 씨한테 자기 통장을 줬습니다. “이거 내 전 재산이야. 나는 돈 쓸 일 없어. 다음 달에 아프리카에 가려 했는데, 아프리카가 여기 있었네. 전부 찾아 해결해. 그리고 갚지 마. 혹시 돈이 넘쳐나면 그때 주든가.”
김수미 씨는 그 통장을 고맙게 받았고, 빚을 전부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돈은 나중에 갚을 수 있지만, 혈육이 아닌 자기에게 전 재산을 내어준 것에 김수미 씨는 아주 크게 감동했습니다. 만일 김혜자 씨가 그런 상황을 겪고 있었다면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김수미 씨는 김혜자 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니, 언니가 아프리카에 포로로 납치된다면 내가 나서서 포로교환 하자고 말할 거야. 나는 언니를 꼭 구할 거야.”
이처럼 우리도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서,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겪는 이웃을 잘 도와주어야겠습니다.
3.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태생 소경을 치유하신 기적 이야기’입니다. 요즘에는 ‘소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안 되고,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야 맞겠죠?
지난 2월 22일(수)부터 오른쪽 눈에 다리끼 증상이 있었고, 24(금) 십자가의길기도 후에 경산 제일안과에서 다리끼를 제거했습니다. 눈꺼풀을 뒤집어 짼 후에 다리끼를 빼냈기 때문에, 수술한 눈에서 진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눈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2월 25일(토) 가서 눈을 점검해보니, 다행스럽게도 아무 이상 없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은 어떤 사람에게 질병이나 장애가 있으면 그의 죄 혹은 부모의 죄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질병과 장애가 하느님이 천국의 표징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주셨습니다.
안식일에 소경을 고치신 기적을 “치료행위”라고 생각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이 기적을 베풀면서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이웃에게 그 어떠한 사랑도 베풀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에 치료행위를 했으니까 곱게 봐줄 일이 없었습니다. 아무튼 소경은 육체의 눈도 낫고,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깨달았지만, 바리사이들은 눈이 멀쩡해도 영적으로는 소경이었습니다.
4. 어느 마을에 두 소년이 있었는데, 친구였던 그들은 둘 다 그림을 잘 그렸습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너무 가난해서 그림 공부를 할 만한 돈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명이 “고향을 떠나, 도시에 가서 그림 공부를 교대로 하자. 나보다 네 실력이 더 뛰어나니 먼저 공부해라. 나는 일을 하면서 네 학비를 대주겠다.”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식당에 취직해서 친구의 학비를 보조해주었습니다.
그림 공부를 먼저 시작한 친구는 몇 년간 미술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개인전도 열고, 화단에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그림이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림을 판 돈을 들고, 친구가 일하는 식당에 기쁜 마음으로 갔습니다. 자기는 그림 공부를 다 했고, 이제 친구가 공부할 차례라고 기뻐하며 달려갔는데, 창문으로 식당 안을 들여다보니, 친구가 빗자루를 땅에 놓고 바닥에 꿇어앉아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주님! 저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손이 굳어져 그림을 그릴 수 없습니다. 제 친구에게 제 재능까지 주시어 더 좋은 그림을 그리게 해주십시오.”
그 모습에 감동한 친구는 울면서 친구 손을 그렸습니다. 그 작품은 1508년에 알브레히트 뒤러가 친구 프란츠 나이스타인의 손을 그렸던 ‘기도하는 손’입니다. 2019년 안식년 7월 어느 날에 뒤러의 생가를 방문했을 때, 금방 말했던 일화가 기억났고, 그 집 주변에 많은 사람이 앉아 열심히 얘기하는 모습도 참 보기 좋은 장면이었습니다.
뒤러와 그의 친구처럼, 우리도 우리 주위 사람들이 건강하든 그렇지 않든 기도하고 도와주면서 기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