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5월 21일부터 24일까지 뮌헨에서 열린 하이엔드 오디오 쇼에 대한 우려는 상당한 것이었다. B&W를 위시하여 다질, 테너 오디오, 컨티늄 등 굵직굵직한 메이커들이 쇼에 참여하지 않거나 아니면 축소해서 나왔으므로, 이래저래 세계적인 불황의 여파를 반영하는 듯했다. 그러나 정작 쇼가 개최되었을 때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전보다 더 많은 업체들이 나왔고, 다양한 제품들이 출시되었으므로, 상당히 뜻 깊은 행사가 되었다. 우선 전체적으로 몇 개의 중요한 특징부터 소개하겠다.
우선 이야기가 반복되지만, 많은 업체들이 참가한 것을 들 수 있다. 여기에는 설명이 좀 필요하다. 본 행사는 크게 1층에 두 개의 홀, 2층에 두 개의 홀, 총 4개에 걸쳐 진행되는데, 1층과 2층의 성격이 다르다. 1층이 주로 전시나 진열을 중심으로 작은 부스가 밀집된 쪽이라면, 2층은 정식으로 리스닝 룸을 갖춰서 실제 들어보고, 상담을 진행하는 쪽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전까지는 2층이 모두 차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올해에는 꽉 찬 모습을 보여 확실히 치열해진 오디오 업계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불황에 움츠러들지 않고 오히려 정공법으로 도전하는 모습은 과연 오디오 업계가 가진 자부심이 아닐까 한다. 이를 통계로 설명하면 이렇다. 우선 참여 업체수를 보면 작년 231개에서 올해 248개로 많아졌고, 총액 역시 40%나 상승했다. 13,677명의 유로 관람객 역시 작년 수준을 상회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오디오를 만드는 국적의 다양성이다. 특히 하이엔드에는 이런 성격이 강하게 반영되어, 심하게 말하면 국적이 크게 의미가 없어지는 시대에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테면 8~90년대가 영미의 독주 시대이고, 새천년이 독일을 중심으로 한 중부 유럽의 약진의 시대라면, 향후 2010년대에는 일종의 글로벌화가 활발히 진행되어 구미는 물론 유럽, 아프리카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오디오 메이커들의 발흥이 점쳐지는 것이다. 올해의 경우, 독일을 제외해도 무려 26개국에서 업체들이 나왔다. 이런 현상은 해가 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이번 쇼에는 세르비아나 시베리아, 인도 등 새로운 국적의 오디오 회사들이 선을 보였고, 또 상당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특히 세르비아에는 진공관을 기본으로 하는 메이커들이 여럿 눈에 띠었는데, 만듦새나 성능 면에서 큰 기대를 갖게 한다. 이와 더불어 한국 메이커들의 등장도 언급할 만하다. 에밀레, 실바톤, 에이프릴의 오라 등이 당연하다면, 턴테이블을 제작하는 젠 오디오와 해드폰과 미니 오디오를 만드는 피아톤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 피씨 파이라던가 진공관 앰프, 턴테이블 ... 참 다양한 부문에서 한국 오디오의 약진이 기대된다 하겠다.
또 하나 언급할 것은, 아날로그 관련 제품의 지속적인 등장이다. 한국에서는 아날로그보다는 피씨 파이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관련 제품들이 눈길을 끄는 데에 반해, 이쪽에서는 여전히 아날로그가 활기를 띠고 있다. 또한 눈에 띄는 제품도 많았다. 고가의 리이슈 아날로그 음반들이 성황리에 판매되는 현실인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 아닌가 한다.
그럼 차근차근 주목할 만한 제품들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우선 좋게 들은 것은 랑셰의 모델 3. 그간 저역을 액티브한 모델 4 시리즈나 패시브이긴 하지만 사이즈가 큰 모델 5 등 다소 일반 애호가들의 선택 범위를 벗어난 제품을 만들었지만, 2웨이 북셀프 형식으로 만들어진 3에 이르러, 본격적인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공기를 발음원으로 하는 고역의 자유분방함은 워낙 정평이 있거니와, 이에 커플링되는 미드우퍼의 빠른 스피드와 풍부한 저음 역시 기대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그간 많은 궁금증을 자아낼 만큼 은둔자의 면모를 보인 루멘 화이트가 이번에 본격적으로 아퀼라라는 스피커를 런칭하면서 동시에 미스테레(Mystere) 턴테이블까지 한꺼번에 갖고 나왔다. 필자는 운 좋게 인터뷰까지 진행할 수 있었으므로, 이 부분은 추후 정리해서 리포트하겠다.
아무튼 이 자리에서 아퀼라가 얼마나 진보적인 사고를 갖고 만들어진 제품인지 메이커는 자신하고 있을 뿐 아니라, 턴테이블에 대한 자부심도 확고했다. 소형 냉장고 사이즈의 펌프를 동원해서 공기 부양의 효과를 극대화한 이 제품의 등장으로 한층 아날로그 팬들의 가슴이 설렐 것 같다. 무척이나 스피드하면서 뉘앙스가 풍부한 음이 나와, 향후 큰 반향이 기대된다.
최근에 런칭된 매지코는 대망의 M5를 선보였는데, 이와 매칭된 스펙트럴의 기민한 음이 가미되어, 상당히 신선하고, 짜임새있는 음을 들려줬다. 오랜만에 보는 스펙트럴의 존재도 반갑지만, 마치 정전형 스피커를 듣는 듯 일체의 스트레스 없이 투명하게 공간을 연출해내는 M5의 실력은 과연 명불허전이라 하겠다.
스피커 메이커로 알려진 타이달은 이번에 앰프까지 선보여서 눈길을 끌었다. 특히 로터 브로인이라는 설계자를 고용해서 프리앰프에만 7년을 투자했는데, 그 결실이 느껴질 만큼 내공이 깊은 음이었다. 튜브와 솔리드 스테이트의 장점만을 혼합한 듯한 포름으로, 상당히 디테일이 풍부했다. 이와 관련해서 돌을 가공해 여러 단의 랙과 받침대를 만들고, 그 안에 복잡한 장치를 집어넣은 오디오 스톤 턴테이블도 시선을 끌었다.
정밀 시계를 만드는 기술이 발휘되어 내부에 정교한 베어링을 설치, 역시 꼼꼼한 핸들링이 요구되는 탈레스 톤암과 매칭되어, 깊은 인상을 줬다. 아날로그에는 취미성이 강하게 반영되는 바, 스칸디나비아 스톤을 이용한 이 제품의 등장이 얼마나 많은 애호가들을 사로잡을지 상당히 기대된다.
포세이돈이나 트라이던트 등 주로 크고 무거운 스피커에 역시 고가의 앰프를 생산해온 그리폰에서 이번에는 일종의 팬 서비스로 비교적 저렴한 인티 앰프와 CDP 그리고 북셀프 스피커를 발표했다. 각각 아틸라, 스콜피오, 모조 등의 이름을 붙인 신제품으로, 비록 사이즈는 작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급기의 포름과 만듦새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어서 결코 만만치 않다. 그간 꿈에서나 가능한 이 회사의 제품이 많은 애호가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뜻깊은 선물이 되고 있다. 그리폰답게 저역이 풍부하면서도 빼어난 고역 특성을 가진 음이다.
노도스트는 오딘 시리즈의 파워 코드를 발표하면서 직접 저가의 파워 코드와 번갈아 사용하면서 음의 차이를 느끼게 하는 이벤트를 개최했다. 막연히 좋겠거니 했지만, 실제 AB 테스트했을 때의 업그레이드 효과는 어마어마한 것이어서, 새삼 파워 코드의 존재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덧붙여 디지털쪽도 신제품을 내놓고 있으므로, 피씨 파이에서 좋은 성과를 얻으려는 애호가들이라면 한번 눈길을 던져도 좋을 것 같다.
뭐든 제품을 만들면 한 덩치 할 뿐 아니라, 실력이나 퀄리티에서 전혀 뒤지지 않은 솔루션은 이번에 750 포노 앰프를 발표했다. 아직 자세한 스펙은 나와 있지 않지만, 동사의 엄청난 거함들과 나란히 연결되어 음을 냈는데, 과연 솔루션이라는 찬사가 나올 정도다. 디자인적인 일관성과 높은 퀄리티는 기존의 솔루션 애호가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할 것이다.
KEF는 이번에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블레이드라 명명된 거대한 스피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일종의 애호가 피드백 행사를 한 것이다. 딜러는 물론 일반 애호가들의 시청과 의견을 수렴해 향후 완성할 계획인데, 그에 걸맞는 진보적인 포름과 아이디어로 무장해서 기대를 갖게 한다. 원래 KEF는 중고역을 동축형으로 꾸미는 바, 여기에 양쪽 사이에서 저역이 나와 더욱 위상과 타임 코히어런스가 충실한 음이 연출되고 있다.
한편 모렐 역시 팻 레이디라는 신제품을 발표해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데, KEF처럼 인클로저를 카본 파이버 계통으로 하고 있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두 회사 모두 인클로저의 형상을 통해 유닛의 성능을 최상으로 이끌어내려 하는데, 그런 형상을 꾸미기에는 카본 파이버처럼 딱 떨어지는 재질이 없다. 물론 여기에 메이커마다 섞는 물질이 다르겠지만, 이런 부분에서 향후 스피커의 향방을 읽어볼 만하다. 여기에 비비드까지 개입시킨다면, 이제 스피커는 유닛이 아닌 인클로저 싸움으로 발전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간 여러 개의 부스를 사용해서 위용을 과시해온 B&W가 올해는 딱 한 제품을 AV 관련으로 소개했는데, 그 아이디어가 재미있다. 즉, 커다란 센터 스피커 하나로 멀티 채널의 효과를 얻는 포름이기 때문이다. 중앙에 다이아몬드 트위터를 배치하고, 양 옆으로 미드레인지 및 우퍼를 여럿 배치한 형상인데, 여기에 앰프까지 내장해서 사용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실제 영화를 보는데 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탁월한 서라운드 성능을 들려줬다.
디지털 전송에 일가견이 있는 비홀드도 이번에 젠틀이란 인티 앰프를 발표하면서, 피씨 파이, 하이 엔드 등 여러 분야의 애호가들을 두루두루 만족시킬 만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2채널은 아날로그, 2채널은 디지털을 제공하는 4채널 앰프인데, 물론 확장성이 뛰어나 6채널로 발전시킬 수 있고, 외부에서 다양한 이더넷, USB 등을 연결할 수 있어서 그 사용 범위는 무한대라 하겠다. 음 역시 뛰어난 밸런스 감각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그간 스피커에 주력해온 오스트리아의 WLM이 이번에는 앰프까지 내놔서 종합 오디오 메이커로 한 걸음 나아갔다. 디자인에도 일종의 통일성이 있어서, 스피커와 앰프를 세트로 할 경우 독특한 개성을 발견할 수 있다. 향후 국내에 소개된다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한편 파토스의 경우, 이번에는 스피커를 만들어 역으로 “앰프 & 스피커”의 라인업을 완성하고 있다. 그러면서 호화스런 라인업을 완성하고 있는 바, 아드레날린 파워, 시납스 프리, 프론티어스 그랜드 스피커 등, 그 위용이 대단하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팔라디오의 후예들이 웅지를 펴는 듯한 느낌이다.
작지만 강한 존재인 어쿠스틱 플랜은 이번에 멕앰프(MagAmp)라는 신제품을 내놨는데, 그 내용이 가히 파격적이다. 출력단에 진공관이나 TR이 아닌 룬달의 작은 트랜스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실은 15년전에 라스 룬달이 만든 설계를 기초로 개량을 거듭해서 내놓은 제품으로 채널당 15W의 출력이지만,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음은 사람의 마음을 끄는 뭔가가 있었다.
한편 우리의 오디오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이제 본격적인 출사표를 내건 실바톤을 들 수 있다. 지난 CES 이후 해외 마케팅에 주력하는 인상인데, 3세대째에 이른 JI 300 시리즈의 투명하고, 디테일한 음이야 워낙 정평이 있는 터이지만, 망가 유닛을 이용해서 풀레인지의 성능을 극대화시킨 스피커 역시 주목할 만하다. 디자인에 관해서는 호불호가 가리겠지만, 진공관 싱글의 순수한 음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에겐 좋은 선물이 아닐까 싶다.
에밀레 역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참가했는데, 이번엔 아예 2층의 룸을 사용할 정도로 큰 발전을 이뤘으니와 많은 해외 딜러까지 확보함으로써 향후 세계적인 오디오 메이커로 도약할 단계에 와 있다. 퀸테센스 프리, KM300SE 파워, 알루어 포노 등을 동원한 가운데, 스피커는 레듬, CDP는 AMR 등을 연결하고 있는데, 이들 역시 재미있다.
우선 레듬은 인도산 스피커로, 그 존재가 귀중하려니와 풀레인지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이 또한 높은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또 AMR은 진공관을 적절히 사용한 CDP인데, 심지어 정류관까지 동원하고 있다. 이 회사는 앰프도 만드는 만큼, 역시 주목할 만한 브랜드라 하겠다.
한편 턴테이블이라는 아이템으로 세계 시장을 노크하고 있는 젠오디오는 그간 아날로그 분야에서 쌓아올린 노우 하우를 십분 발휘하고 있어서, 향후 그 행보가 주목된다. 어쿠스틱 플랜과 함께 부스를 쓰면서 차분하고, 짜임새 있는 음을 들려줬는데, 도무지 처녀작이라 믿을 수 없는 높은 퀄리티에 놀랐다. 가격대도 적절해서 향후 국내 애호가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을 것 같다.
한편 이번 행사와 같은 기간에 인근 플레밍 호텔에서도 "하이파이 디럭스"라는 제하에 여러 업체들이 출전한 오디오 쇼가 열렸다. 이중에 주목할 만한 브랜드로는 ATD와 마르텐이 꼽힌다. ATD는 AD 모니터로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으려니와 이번에는 트위터를 리본으로 바꿔서 훨씬 개량한 음을 들려주고 있다. 이전 모델이 다소 나긋나긋한 여성적인 음이었다면, 여기에 힘과 다이내믹스가 더해져서 훨씬 약동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마르텐은 이번에 라인 업을 훨씬 풍부하게 해서 다양한 애호가층을 겨냥하고 있다. 특히 콜트레인 소프라노의 경우, 가격이나 사이즈 면에서 그간 콜트레인이 부담스러웠던 분들에게 어필할 만한 내용을 갖고 있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그다지 많지 않은 제품군을 차례로 다듬고 발전시켜서 조금씩 사이즈를 키워가고 있는 마르텐의 행보는 부침이 많은 하이 엔드 업계에서 충분히 모범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번으로 뮌헨에 세 번째 방문하는 만큼, 그간 허겁지겁 사진을 찍고 인터뷰하던 시절에서 조금은 발전해서 이제는 진지하게 음도 듣고, 깊은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향후 이번 쇼에서 얻은 정보와 내용을 차근차근 독자들에게 소개할 예정이다. 큰 기대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