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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신명기-080 보는 눈과 듣는 귀(신명기 29장 1-9절)
성경말씀은 신명기 29장 1절에서 9절까지 봉독합니다.
[신명기 29장]
1 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사 모압 땅에서 또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이 이러하니라
2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 목전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3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가 목도하였느니라
4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5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6 너희로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7 너희가 이 곳에 올 때에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우리와 싸우러 나왔으므로 우리가 그들을 치고
8 그 땅을 취하여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나니
9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신명기 29장은 호렙산에서 세운 언약 외에 모압 평지에서 추가로 세우신 그런 말씀인데, 여태까지 지난 한 38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 받은 것 외에 덧붙여서 모압 평지에서 몇 말씀을 더 했는데 29장 이하가 거의 다 그런 말씀이고,
또 31장부터는 또 다른 말씀이예요. 그래서 짤막한 29장부터 30장 여기가 또 한 단락이고, 31장도 또 다른 말씀이라는 겁니다.
[신명기 29장]
1 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사 모압 땅에서 또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이 이러하니라
이런 걸 읽을 때는 흐름, 그 문장과 문맥의 흐름이 어디에서 한 단락이 났고, 또 어디서 새로운 문장이 시작 되는가? 이런 것도 자세히 보면 표가 납니다.
2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 목전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3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가 목도하였느니라
보기는 뭘 봤다는 거죠.
그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를 네가 눈으로 목도 하였느니라 하면서 문제는 4절인데요,
4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굉장히 가슴 아픈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저는 교회를 그 제일 처음에 제가 믿어서 세례 받은 교회가 있었고, 그 오래 섬기지는 못했습니다. 전도되어서 출석한지 그저 2년도 채 안 되어서 전도자로 나섰으니까 그 교회에 오래 있지는 못했고, 그 다음에 사천에 가서 교회 문을 닫아 버린 교회를 다시 제 개척을 해서 5년 1개월을 섬겼고요, 저 지리산 밑에 가면 원지라는 곳에 거기서 개척을 해서 14년을 거기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안에 가서 9년 4개월 정도 그렇게 있었고, 여기 샤론 교회에 왔는데, 교회를 다섯 개를 다섯 군데를 섬겨 온 셈이죠.
그러는 가운데 뭐 이런 저런 많은 고비와 과정을 겪어 넘어 오게 되고, 또 여러 사람들 교회들이 뭐 시골교회라 인원이 많지 않았죠. 그래서 몇 천 명 몇 만 명 되면 누가 말씀을 듣는지 못 듣는지 누가 깨닫는지 못 깨닫는지 잘 모를 거예요.
그런데 저는 대체로 뭐 오붓한 가족적인 그런 교회이기 때문에 저의 설교나 강의를 5년이나 14년이나 9년이나 이렇게 들어도 전혀 그 성장도 발전도 안 되고 그런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은 참 힘들어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그 짧은 기간 교회 나 온지 한 1년 밖에 안 되는데, 알고 싶어가지고 뭘 알고 싶어서 그렇게 몸부림을 치면서 사모하고 그런 사람이 있어요.
대표적인 사람은 그 사천에 있을 때에 제가 그 헌신예배 1호라고 하는 그 자매가 있습니다. 백옥림 이라고.. 지금은 전도사님 사모님이 됐는데 그 자매가 어떻게 그렇게 사모하는지 그 대단했습니다.
그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거기서 살다가 그 어려워서 고향 동네에 그 고성군 영현면인가 영현면 뭐 하여튼 금능 이라는 동네로 다시 고향동네로 돌아갔는데 거기까지는 아마 산길로 이렇게 넘어 와야 하는데, 오려면 산길로 한 근 30리나 되지 않겠나 싶거든요.
그런데 때로는 걸어오고 때로는 경운기를 타고 그 자기가 다니는 소곡교회까지 오는 거죠. 주일날. 경운기를 타고 그 험한 산길을 이렇게 포장도 안 되고 비포장 도로인데 그 어떤 면에서 그 한사람을 생각하면서 마치 설교 준비를 하듯이 다른 성도는 죄송하지만 어떻든 그렇게 달게 듣는 거예요.
그래서 헌신을 이야기 했더니 정말 내 삶을 영원히 단번에 전체로 주님께 드리겠다. 해서 그 사람이 제 목회에 첫 열매 인거처럼 처음 헌신을 했어요. 다른 자매 하나하고 그 다음에 원지 같을 때에도 거기에 14년을 있었는데 한 치도 안 달라지는 사람도 있어요.
반면에 공무원으로 면사무소에 나가던 한 그 자매가 방송통신대학을 다니면서 공무원으로 아주 성실한 편인데 제가 가자마자 바로 교회를 나오게 돼 가지고, 아! 그 자매도 어떻게 그렇게 사모하는지 말도 못하게 그렇게 달게 받아 들이고 매 시간 그러니까 공무원 모임을 또 토요일 오후에 공무원 전도를 위해서 공무원 모임을 따로 하는데 거기 뭐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고 방송통신대학 그 원래는 주일날 출석이 없는 건데 공부를 뭐 하는 스터디 그룹이 있어 가지고 어떤 교수를 모시고 주일날 자기들끼리 거기도 열심히 공부했으니까 모이고 하던 건데 그 주일날 모이니까 못 가게 된 거죠! 처음에는 이 걸 가야 되는가 못 가야 되는가? 그 갈등을 했나 봐요.
공부도 아주 성실히 했기 때문에 그러더니 예배에 딱 참여하고 그러면서 은혜를 받기 시작하더니 그때부터는 아예 그 방송 통신 대학을 통째로 그만 둬 버렸어요. 그리고 오직 그저 성경 말씀을 그렇게 사모하고 그런 걸 봤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14년을 있었는데 14년 동안 근무하면서 시무하면서 아마도 한 거의 한 50여회 정도 그 교회 시무하는 동안에 성경강좌를 했을 텐데 물론 그 제가 섬기는 원지 교회 안에서 할 때도 있고 저 중산리 교회라는 데서도 할 때도 있고 산청 기도원서 할 때도 있고 딴 데 옮겨가서 영남 신학대학이나 무슨 장신대나 옮겨가기도 합니다만 한 50여 번이나 했을 텐데 그 50여 번 해도 끝까지 참여 안 하는 사람이 있어요.
원지 교회 안에 그렇다고 뭐 그 광고 할 뿐이지 강제로 참여 하게 할 수도 없고 말이지. 그런데 그 성경 강좌를 참여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제가 보니까 믿음이 다 그 자리예요. 그 자리. 한 치도 14년을 다녔는데 별로 달라진 게 없어. 예배를 성실히 드린다고 할지라도 예배의 설교 가지고는 이게 한계가 있는 거야.
어떤 사람은 그 예배만 드리고도 그 믿음이 자라는 사람이 있지만 대체로 그야말로 완전히 차원을 달리하는 어떤 신앙생활의 변화는 단기간 동안에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이렇게 전체를 읽는 가운데 보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이 생겨 가지고 그렇게 그 말씀이 열리고 마음이 열린 사람은 목회를 하거나 설교를 하거나 뭐 어떤 것 할 때 무슨 뭐 긴 대화가 필요가 없어. 다 통하니까..
그런데 안 되는 사람도 참 그 모세가 이 말을 하면서 얼마나 이게 지금 한두 사람이 아니고 전 이스라엘 백성 앉혀 놓고 너희가 지금 애굽에서부터 여기까지 40년 오는 동안에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를, 그러니까 애굽 바로 왕과 그 신민들에게 쏟아지는 열 가지의 그런 재앙과 그리고 홍해 바다를 가르고 건너오는 그런 이적과 반석에서 물을 내서 마시고 하늘에서 신령한 양식을 이렇게 내려서 먹고 그 온갖 시험과 기적과 큰 기사를 다 목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모세가.
우리가 아무리 봐도 모세가 뭐 잘못된 것 아니잖아요.
모세는 최선을 다했고 모세는 그야말로 하나님이 인정할 정도로 하나님이 대면하여 아시는 사람이고 그 정도 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안 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안 되는 사람이. 이 받을 만한 그러니까 받을 만한 사람들에게만 주시는 은혜가 있나봐..
제가 볼 때 그래 참 목회하면서 그 뭐 다른 사람들은 그 느끼는지 못 느끼는지 모르겠는데 아무리 그 은혜로 진리로 이렇게 해도 그 성장도 안 되고 성숙도 안 되고 변화도 안 되고 그런 사람을 보면 가슴이 아프죠!
목회자로서는 제일 그게 가슴 아픈 일 아니겠는가? 본인도 아마 참 답답할 거야 그렇죠! 아니 그 매 주가서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듣고 하는데 이게 안 들리고 제가 처음에 교회에 갔을 때 두 달 정도가 정말 아무것도 안 들렸어요. 아무 말씀도 기억나는 것도 없고 제가 남의 말귀도 못 알아듣는 그런 사람도 아닌데 말이야.
그러다가 어느 날 참 중생을 체험하고 그때부터는 뭐100%가 아니고 200% 막 들리는 것처럼 그렇게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여기에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라는 말이 굉장히 제 마음에는 참 사무치게 있는 것이고, 그래 제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다시 성경을 보니까 그런 수가 있는 거야. 그런 수가 있고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잠언을 한번 볼까요. 잠언 5장 22절,
[잠언 5장]
22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23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을 인하여 죽겠고 미련함이 많음을 인하여 혼미하게 되느니라
사람이 미련하거나 훈계를 받지 아니해서 사람의 정신이라든지 영이 흐릿하게 혼미해 가지고 그래서 말씀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얘기인데요.
다시 우리가 로마서로 가서 봅시다. 로마서 11장 8절 바울도 뭐 그런 얘기를 해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사도바울이 뭐라고 말씀하느냐?
[로마서 11장]
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이사야 예언자가 받았던 메시지인데 이사야가 받은 사명이 바로 그랬죠?
그 이사야 시대에 어떤 사람들로 하여금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다. 그러는데 이것 참 이러면 기가 막히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에서 소외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런 사람은 우리가 우리 사람 눈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야.
아무리 해도 안 돼요. 심지어 예수님이 와도 안 되고 모세가 와도 안 되고 열두 사도가 다 동원 되도 안 되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제가 성경강좌에 오는 사람들을 보면 참 얼마나 그 진리에 감각되어가지고 마치 감전된 거처럼 사람이 완전히 막 이 변화 돼 가지고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무안에 있을 때도 그 술을 좀 먹고 그렇기는 한데 한 내가 알기로는 일곱 번 여덟 번 참여한 것 같거든요.
일곱 번 여덟 번 참여해 가지고는 끝내 그 온 가족이 다 그렇게 안 되는 거야.
그리고 술 한 잔 먹도 또 목사님 또 이야기 합시다. 술 먹고 또 목사님 이야기 하자고 한 밤중에 그것도 뭐 11시나 1시나 1시 반이나 이렇게 날 찾아와요. 그런 사람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 아니 뭐 만약에 성경강좌도 안 참가 했으면 저 사람이 성경 강좌나 참가하면 혹시 변화가 될라나 기대가 되는데 아니, 그렇게 뭐 안 들으면서 또 뭐 오기는 오는지 모르겠어요. 그 집에 제일 어른 안수집사가 됐다가 70이 넘어서 은퇴 했는데 그 제일 나이가 많은 사람은 오히려 변화가 됐는데, 젊은 아들들 뭐 며느리들 그 집 아들 딸 손자 손녀 다 안 되는 거야 다. 그래서 참 그 떠나오면서도 그런 사람들 보면 참 평생에 마음에 말이죠. 저건 저 무슨 약을 가지고 치료할 것인가? 신약 구약을 다 썼는데 무슨 약을 가지고 치료할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죠!
그래서 여기 29장 4절은 목회하면서 가장 마음에 참 사무치게 남아 있는 혹시 우리 여기 샤론교회도 정말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없어가지고 한 마디도 못 알아듣고 앉아 있으면 어떡하는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하는 거예요.
고린도후서 4장 4절을 한번 또 봅시다. 3절부터 보겠습니다. 신약성경 289페이지..
[고린도후서 4장]
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그러니까 어떤 귀신이 들어가 가지고 그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고,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한다. 바울은 여기에서 ‘내가 그 설교를 잘 못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사람이 믿음이 없거나 어떻게 해 가지고는 그 세상신이라는 신이 그 마음을 혼미하게 해 가지고 도무지 그 마음에 그리스도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이런 것도 있고, 이사야서 6장도 한번 보세요.
이사야서 6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보낼 때 그런 참 무서운 사명을 띠고 갑니다.
언젠가 우리가 또 이사야서 공부할 때 또 나오겠습니다만 이건 참 가슴 아픈 얘기죠.
이사야 6장 8절,
[이사야 6장]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했는데,
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의 경우는 마음을 둔하게 만들어 버리고 귀도 막히게 만들고 눈도 감기게 해라.
..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그게 염려로다. 이렇게 한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어떤 그 강퍅하고 패역한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아요.
우리는 생각할 때 모든 만민에게 한결 같이 은혜를 주시는 것 같아도 은혜 받을 만한 사람이 있는 거야. 뭐 우리가 볼 때요..
사람이 기준을 만들 수 없는 건데 어떤 경우에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 거야. 그 왜 그러느냐? 하나님이 안 주시는 거야.
그래 지금 이사야는 너는 가서 사람들 귀를 열고 눈을 열고 마음을 열어 가지고 깨닫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대 어떤 사람들에게 귀가 멀고 눈이 멀고 마음이 닫히게 해라.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그냥 그야말로 절규하듯이, 아이고 하나님 이렇게 이런 시대가 얼마만큼 갑니까? 언제냐고? 예루살렘이 완전히 황무지가 될 때까지 그 성에 사람이 거의 다 없어질 때까지 은혜의 문이 닫힌다는 거예요.
그래서 은혜를 받을 만한 사람이 받는 것이고, 그리고 또 은혜의 때가 있어요. 때가..
어떤 그 때가 지나가면 은혜 받지 못하는 거야.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다.’ 가까이 계실 때 그를 부르고 그 은혜 받을 만한 때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 다 놓쳐 버리고 나면 한번 닫힌 은혜의 문은 다시 열려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 그 한번 생각해 보세요. 광야에 40년을 같이 왔어. 40년을 모세와 같이 쭉 걸어 왔어도 끝내 깨닫지 못하니까, 보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심정은 너희 에게 주지 않았다고..
반면에 기생 라합 보세요. 여리고 기생 라합 같은 경우에는 그런 광야 길을 40년 걸은 것도 아니고 그냥 술집에서 술시중을 하면서 오면서 가면서 그저 주워듣고 뭐 풍문으로 들었는데 너희 하나님은 상천하지(上天下地)의 하나님이다.
그러면서 아 그 보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을 주셔가지고 결국은 그 메시야 족보, 예수님 족보에 나오는 그런 여인이 된 거야.
그래서 여기 참 이 말씀은 제가 이 오경을 읽을 때 가장 그 가슴이 미어지는 그런 말씀이고, 또 목회자로서도 어느 한 교회에서 목회하는데 참 안 변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나중에는 화가 나죠. 내가 부족해서 내가 잘못해서 그런가? 내가 뭐 혹시 그 마음에 무슨 상처를 주어서 그런가? 뭐 그런 별 생각을 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은혜 받는데 그 몇몇 사람들이 끝까지 그 못 듣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그 괴롭습니다. 그 사람들을 보기가 괴로운 거예요. 내가 괜히 부끄러워요.
성경강좌 왔던 사람들 중에서도 다는 아니지만 혹 그런 사람들이 있거든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다 들어놓고 엉뚱한 소리 하는 거예요. 그러면 참 힘들죠. 우리가 만약에 어떤 약을 썼는데 이 약 저 약 다 썼는데 더 이상 쓸 약이 없다고 그래 보세요. 힘이 드는 거죠.
그래서 우리 마음이 강퍅해지지 않도록 그런데 사람이 뭐 자기 어떤 이해가 걸리거나 해 가지고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자기가 하는 일하고 내가 설교하거나 강의하는 것 하고 안 맞으니까 그게 그저 마음에 부닥쳐가지고 마음에 문이 닫힌 게 그저 그 다음부터 충분히 마음의 문을 열만한 것도 그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뭐 그런 수도 있다는 거죠.
5절,
5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6 너희로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니까 그런 것 뭐 농사 안 짓고 해도 다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 되시면 먹는 것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했다는 거죠.
7 너희가 이 곳에 올 때에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우리와 싸우러 나왔으므로 우리가 그들을 치고
8 그 땅을 취하여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나니
9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실 때 그 말씀을 지키면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을 형통하게 하신다는 거죠.
10 오늘날 너희 곧 너희 두령과 너희 지파와 너희 장로들과 너희 유사와 이스라엘 모든 남자와
11 너희 유아들과 너희 아내와 및 네 진중에 있는 객과 무릇 너를 위하여 나무를 패는 자로부터 물긷는 자까지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선 것은
12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에 참예하며 또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향하여 하시는 맹세에 참예하여
13 여호와께서 이왕에 네게 말씀하신 대로 또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대로 오늘날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자기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시려 함이니라
14 내가 이 언약과 맹세를 너희에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15 오늘날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 선 자와 오늘날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에게까지니
그러니까 지금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새로 태어날 그 사람들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하면서,
거기 16절, 17절에 괄호안에 있는 것은 나름대로 배껴 쓰다가 깨닫고 강조해야 할 바를 첨가한 것인데, 이것이 본문으로 따라 들어와서 어떤 사본에는 이 괄호안의 내용이 없는 사본도 있습니다.
16 (우리가 애굽 땅에 어떻게 거하였었는지 너희가 여러 나라를 어떻게 통과하여 왔었는지 너희가 알며
17 너희가 또 그들 중에 있는 가증한 것과 목석과 은금의 우상을 보았느니라)
강조하려고 이 말씀을 쓴 거죠.
18 너희 중에 남자나 여자나 가족이나 지파나 오늘날 그 마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서 그 모든 민족의 신들에게 가서 섬길까 염려하며 독초와 쑥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생겨서
19 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저주의 말씀은 28장 15절부터 68절까지 말씀이죠.
19 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위로하여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을 강퍅케 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을 멸할지라도 평안하리라 할까 염려함이라
그런 아주 하나님 말씀에 두려워 떨지 않고 그런 사람들이 있을 까 싶어서 염려함이라.
20 여호와는 이런 자를 사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여호와의 분노와 질투의 불로 그의 위에 붓게 하시며 또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로 그에게 더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필경은 그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시되
21 여호와께서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구별하시고 이 율법책에 기록된 언약의 모든 저주대로 그에게 화를 더하시리라
22 너희 뒤에 일어나는 너희 자손과 원방에서 오는 객이 그 땅의 재앙과 여호와께서 그 땅에 유행시키시는 질병을 보며
23 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이 옛적에 여호와께서 진노와 분한으로 훼멸하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음을 보고 말할 것이요
24 열방 사람들도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땅에 이같이 행하셨느뇨 이같이 크고 열렬하게 노하심은 무슨 뜻이뇨 하면
25 그 때에 사람이 대답하기를 그 무리가 자기의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26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섬겨 그에게 절한 까닭이라
이런 말을 사람들이 주고 받을 것이다.
27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땅을 향하여 진노하사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재앙을 내리시고
28 여호와께서 또 진노와 분한과 크게 통한하심으로 그들을 이 땅에서 뽑아내사 다른 나라에 던져 보내심이 오늘날과 같다 하리라
이렇게 사람들이 대답할 것이다
29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그러다가 세상 만국에 뿔뿔이 흩어져서 나가 있다가,
30장,
[신명기 30장]
1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거기 줄을 그으세요.
미리 다 예언을 해 놨다가 그 여호와께 쫓겨간 모든 나라, 바벨론이나 앗수르로 쫓겨간 나라에서 사는 동안에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2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것을 온전히 따라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네 포로를 돌리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4 너의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네 열조가 얻은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너로 다시 그것을 얻게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네게 선을 행하사 너로 네 열조보다 더 번성케 하실 것이며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그러니까 여러분 생명을 얻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반드시 생명을 얻는 거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대적과 너를 미워하고 핍박하던 자에게 이 모든 저주로 임하게 하시리니
8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9절이 회복의 길인데,
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10 (9절에 포함되어 있음)
그러니까 아무 어려운 것도 없죠? 단순해요.
여러분 지금 이 신명기 안에서 거듭되는 말씀이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되면’ 이 말씀이 몇 번 나오는 말이야.
11절,
11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가에 있는 것도 아니야. 무슨 뭐 신령해 가지고 막 40일이나 뭐 20일이나 금식해 가지고 하늘가에 올라가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거야.
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무슨 해외에까지 가서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 해외 유학을 가 가지고 막 유명한 신학 박사 돼 가지고 뭐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그런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1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아무리 멀리 있어도 우리 입에 업고 우리 마음에 없으면 성경 안에 있습니다. 성경 안에 읽으면 다 있는 것이야.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15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이 길은 두 가지입니다. 생명을 얻고 복을 얻는 길, 그리고 사망과 화를 얻는 길 두 가지 있는데,
16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18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치 못할 것이니라
19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이것을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세가 얘기하는 거죠.
하나님은 ‘나만 사랑해라!’ 이렇게 말 잘 못하잖아요! 염치가 많아 가지고..
그런데 모세는 얼마든지 그 말 할 수 있잖아. 이게 정말 모세가 하는 말이야.
모세가 우리에게 신신당부 하는 거야. 지금 시기가 돌아가시기 직전이거든요.
지금 이 34장까지 하면 돌아가시는데 돌아가시기 직전 신신당부 하는 설교인데,
신신(申申)이라는 말이 ‘되풀이 하고 되풀이한다.’는 말이죠.
해서 이게 신명기(申命記)야. 신신당부(申申當付)하는 말씀이 자꾸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신신당부가 신명기란 말이야. 신명기.
옛날에 우리가 ‘신신’이라면 무슨 말인지 몰랐죠? 신신이 뭘까? 그래 신(申)자가 ‘되풀이 할 신(申)’자라는 거야. 그래서 신명기(申命記)야. 신명기.
그래서 같은 말을 자꾸 들으니까 우리 성도들 중에 가만 보니까 그 말투가 노 목사를 닮아 가는 분들이 더러 있는 것 같아요 보니까요.. 제가 신신당부 하니까 자꾸 되풀이하고 되풀이하니까 슬슬 흉내를 내는 사람도 있고, 닮아 가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게 있다는 것은 교육이 되어간다는 것이죠.
그래서 부단히 그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잘 새겨 져서 대게 한 다섯 번 정도에서 한 일곱 번 정도 들으면 어지간하면 다 기억이 된다고 그래요. 제가 한번 이야기 했죠! 그 예습, 복습, 학습을 하면 세 번이죠! 그리고 한 달 내에 한번만 더 보고 그 다음에 한 석 달 내지 다섯 달 안에 한 1년 안에 한번쯤 더 보면요 그러면 그 기본이 한 다섯 번 되거든요.
대체로 정상적인 머리를 가진 사람은요 다섯 번 정도를 들으면 기억이 된다는 거야. 그런데 한 번 들은 것은 거의 다 80~90% 날아가게 해 놨어 하나님께서. 한번 들은 것까지 그 전부다 머리에 남기면 그 해골이 복잡해서 되겠어요?
그러니까 정말 이것을 교육의 원리는 몇 번을 반복을 해서 심어지게끔 그렇게 되어 있는 거야. 그러니까 같은 말 제가 자주 할 때 그걸 재미없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저 이야기는 저것 완전히 심어지게 하려고 하는 거다. 그렇게 생각을 해야 돼요. 저는 그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늘 한결 같은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같은 말 자주하죠.
그런데 저는 같은 말 자주해도 뭐 저는 안 지루해요. 여러분은 지루할지 몰라도 내게는 수고로울 것이 없고 너희는 안전하다. 바울이 한 말이죠? 내게는 다시 준비할 것이 없으니까 수고로울 것이 없고 여러분은 안전하다.
여러분 같이 계속 반복해서 듣는 그런 말씀이 있는데 그 원리가 바로 신명기라는 거야. 듣고 또 듣고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부지런히 가르치는 것 이렇게 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마음에 자리 잡게 되고 우리 아이들 이 처음들을 때는 떨떠름하더니, 이제는 무엇을 먹을 것인지 무엇을 먹지 말 것인지 다 스스로 정리가 된 것 아니예요?
그래서 교육을 하면 교육이 돼야 돼요.
그래서 그것도 가능하면 젊어서 어려서 공부를 해야. 이것이 머리에 잘 마음에 심어서 유대인들은 그 글 배울 때부터 그 재미없어 보이는 레위기를 가르친다고 하니까 그래서 온 세계를 지배하는 그런 민족이 된 겁니다. 우리도 정말로 하나님께 다시 기도할 것은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모두에게 주셔서 하나님 말씀을 학자같이 잘 알아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그 한 말씀도 거침이나 막힘이 없이 다 그저 은혜와 진리로 또 성령으로 통해서 하나님하고 우리사이에 아무 가리 운 것이 없이 그저 맑은 영으로 신령한 교제가 있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그 애굽에서 인도해 낼 때 따라 나왔지만 애굽에서 나와 놓고 끝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그 보는 눈도 없고 듣는 귀도 없고 깨닫는 마음이 없어서 그 혼미한 가운데서 결국은 모래밭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 중에 혹시 세상에서 교회까지 나와 놓고 천국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가 싶어서 또 우리가 두렵고 염려가 되어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허락하사 주의 말씀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다 명료하게 알아 들 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계시의 정신을 우리에게 주셔서 그런 영을 주셔서 주의 말씀을 온전히 알아듣고 100%아니라 200% 깨달을 수 있는 그런 우리 샤론교회 성도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