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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勸學篇(권학편)
25-1. 朱子曰 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하며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하라 日月逝
(주자왈 물위금일불학이유내일 물위금년불학이유내년 일월서
矣라 歲不我延이니 嗚呼老矣라 是誰之愆이고
의 세불아연 오호노의 시수지건)
주자가 말하길 “오늘 배우지 아니하고서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올해에 배우지 아니하고서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날과 달은 가서 세월은 나를 위해 더디 가지 않느니라. 아! 늙었도다. 이 누구의 허물인고.”라 하였다.
⋇ 勿謂(물위) : ~라고 말하지 말라.
⋇ 日月逝矣(일월서의) : 세월은 흘러간다.
⋇ 歲不我延(세불아. 끌 연) : 세월은 나를 위해 더디 가지 않음.
⋇ 愆(허물 건. 과실 건) : 허물. 잘못. 실수.
(해설)
사람이건 동, 식물들이건 태어나면서부터 성장하여 꽃피우고 열매 맺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 농부가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듯이 사람은 모름지기 배워야 하는데, 그 시기를 놓쳐 뒤 늦게 배우려면 배움의 속도는 물론 그 깊이 또한 늦고 얕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즘에야 평생교육이라 해서 제2의 청춘(평균수명의 연장으로 百壽의 시대가 도래 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예측도 나오는 시점이다.)과 더불어 발전 속도가 빨라진 학문의 재정립 혹은 노년을 즐기는 취미라든가 평소에 꿈꾸던 분야에 대한 재도전의 형태로 다양하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 목마름을 해소시키고 있다. 사람이 배우지 아니하면 지혜는 물론이거니와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대하여 뒤떨어질 수 있다. 또한 시행착오를 많이 겪게 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식에게 천금을 물려주기 보다는 한 권의 경서를 읽게 해주는 것이 더 값어치가 있다 단언하기까지 하지 않는가. 그러면 어떤 것을 배워야 하는가? 나이에 맞는 즉, 성장에 맞추어 그에 합당한 수준의 학문을 가르치도록 오랜 경험을 통해 정하였다. 무서운 속도로 발전한 다양한 학문은 한 사람이 평생을 다 바쳐서 공부를 하기에는 너무나 방대하여 졌다. 그래서 기초를 확실하게 다진 후에 각자의 재능에 맞는 전문분야를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탐구하게 된다. 예로부터 학문을 하는 이유는 2가지로 대별되었다. 첫째는 그 동안 닦은 지식을 넓게 펴서 백성들에게 이롭고 두루 혜택이 가는 政事(정사)를 하기 위함과(입신양명 혹은 출사라 한다.) 자신이 정립한 학문을 천하의 영재들을 가르치거나 더욱 깊게 정진하는 길을 택한다.
그러나 배움이 필요로 하는 시기에 학문에 일로정진하기는커녕 꾀를 부리고 지루해 하여 한 눈을 파는 경우가 많다. 놀이와 오락에 빠진다거나 잡다한 邪說(사설)에 현혹되어 젊음을 낭비하는 일이 非一非再(비일비재)하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오늘만 날인가 내일 열심히 하면 되지”하며 위안을 삼는다. 내일, 내일 하며 어물어물하다 보면 쏜살 같이 흘러간 세월은 되돌릴 수 없기에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만다. 학문의 길도 끝이 없다. 배우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살아 있는 학문이냐 죽은 학문이냐는 그것을 어떻게 실행하는가에 달려 있다. 배운 것을 실제로 실천에 옮겨 여러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어야 함은 물론 교훈과 잘못된 행태에 대한 개선이 있어야 한다. 흔히 말하는 말로 “이빨이 빠진 훈장이 바담 흥하면서 제자들은 바람풍이라 않는다고.” 나무라는 격이 되면 안 된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여유로움을 보여야 한다. 편협과 독선에 빠지거나 배우지 못하였다고 무시하거나 궤변이나 괴팍한 언어로 올바른 질서나 가치관을 混沌(혼돈) 시키는 행위를 하여서도 안 된다. 황금 같은 시간에 청춘을 다 바쳐 이룩한 소중한 학문을 그러한 가치가 없는 일에 낭비하여야 할까. 더 많은 이들에게 행복과 평안을 위해 사용하기도 모자랄 정도로 부족하기만 할 터인데 작은 고집과 자기 잘난 맛에 엉뚱한 발상과 착오로 많은 이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불행의 길로 이끄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자만과 오기는 구별되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모든 일이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배움은 내일로 미루어서는 안 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일임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朋友(붕우)와 友情(우정)
1. 肝膽相照(간담상조) : 간과 쓸개까지 내보이는 사이
2. 古今之友(고금지우) : 知己之友(지기지우). 知音(지음)
3. 蝌蚪時事(과두시사) : 올챙이 적 친구 → 貧賤之交(빈천지교), 布衣之交(포의지교).
4. 管鮑之交(관포지교) :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 고사
5. 交友以信(교우이신) : 붕우 간의 믿음 중시
6. 交淺言深(교천언심) : 사귄지 얼마 안 되었어도 깊은 말 하는 사이
7. 膠漆之交(교칠지교) : 아교와 칠처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
8. 君子之交淡若水(군자지교담약수) : 오래 변하지 않는 우정(莊子 : 장자)
9. 金蘭之交(금란지교) : 쇠도 자를 수 있는 同心(동심)과 난향 같은 우정. 금란ㆍ金蘭契(금란계)ㆍ金蘭之友(금란지우).
10. 金石之交(금석지교) : 쇠와 바위처럼 굳건한 우정. 金石契(금석계).
11. 琴詩酒伴(금시주반) : 거문고를 타고 시를 지으며 술 마시는 사이
12. 其臭如蘭(기취여란) : 그윽한 난향이 물씬 묻어나는 우정
13. 斷金之交(단금지교) :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쇠도 자른다 二人同心其利斷金(이인동심기단금)의 우정
14. 讀書尙友(독서상우) : 독서를 통하여 만나는 옛 聖賢(성현).
15. 同心之言(동심지언) : 意氣投合(의기투합) 우정
16. 斗酒隻鷄(두주척계) : 망우를 생각하는 정(曹操 : 조조).
17. 莫逆之交(막역지교) : 허물이 없는 교제.
18. 忘年之友(망년지우) : 나이불문 재주와 학문으로 사귀는 벗
19. 忘形之交(망형지교) : 忘形之友(망형지우). 외모가 아니라 심지로 사귀는 벗.
20. 暮雲春樹(모운춘수) : (구름을 보며) 멀리 있는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
→雲樹之懷(운수지회).
21. 無言相通(무언상통) : 말없이도 서로 통하는 사이
22. 刎頸之交(문경지교) : 생사를 같이하는 見危授命(견위수명)의 우정.(인상여와 염파)
23. 潘楊之好(반양지호) : 인척관계가 겹친 친숙한 교분
24. 方 外友(방 외우) : (수도승이) 세속 밖의 사귐을 맺는 벗
25. 伯牙絶絃(백아절현) : 知音(지음). 춘추시대 거문고 명수 백아와 鍾子期(종자기) 고사.
→ 伯牙善鼓 鍾子期 善聽(백아선고 종자기 선청)
26. 腹心之友(복심지우) : 서로 속마음까지 아는 사이.
27. 奔走之友(분주지우) : 주선하고 힘써주는 벗(후한서).
28. 朋友有信(붕우유신) : 믿음을 중시하는 우정 → 交友以信(교우이신).
29. 朋友責善(붕우선책) : 서로 좋은 일을 권장하는 우정.
30. 貧賤之交 不可忘(빈천지교 불가망) : 糟糠之妻(조강지처) 같은 벗.
31. 氷炭相愛(빙탄상애) : 친구끼리 서로 훈계함(회남자) →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는 우정.
32. 桑麻之交(상마지교) : 野人無曆日(야인무일력). 葛巾野服(갈건야복)의 사귐.
33. 世行(세항) : 대대로 교분이 있는 같은 또래의 벗.
34. 水魚之交(수어지교) : 물과 물고기처럼 떨어질 수 없는 사이
35. 勝友(승우) : 좋은 친구. 勝引(승인).
36. 詩酒徵逐(시주징축) : 술 마시고 시 지으며 사귀는 벗(韓愈 : 한유).
37. 心心相印(심신상인) :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벗.
38. 與子同袍(여자동포) : 두루마기를 같이 입는 사이.
39. 如兄如弟(여형여제) : 형제처럼 가까운 붕우. 如兄若弟(여형약제).
40. 友風子雨(우풍자우) : 구름 같은 벗 →구름을 벗 삼고 비를 자식삼음.
41. 雲樹之懷(운수지회) : 暮雲春樹(모운춘수).
42. 渭樹江雲(위수강운) : 멀리 떨어진 벗을 생각하는 마음→暮雲春樹(모운춘수).
43. 以文會友(이문회우) : 학문으로 사귀는 우의.
44. 以友輔仁(이우보인) : 서로 인(仁)을 보완해주는 우정.
45. 周而不比(주이불비) : 편파적 붕당 없는 공평한 사귐.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군자주이불비, 소인비이불주).
46. 竹林之遊(죽림지유) : 야인의 사귐. 隱居放言(은거방언), 葛巾野服(갈건야복).
47. 竹馬故友(죽마고우) : 어릴 때부터 같이 놀며 자라며 키운 우정. → 竹馬舊友(죽마구우). 竹馬之好(죽마지호).
48. 知己之友(지기지우) : 충심과 진가를 알아주는 벗. 오성과 한음, 관중과 포숙아.
49. 芝蘭之交(지란지교) : 芝草(지초)와 蘭草(난초) 향기처럼 청초하고 고상한 사귐과 우정.
50. 芝蘭之化(지란지화) : 훌륭한 벗으로부터의 감화.
51. 知心之交(지심지교) : 마음이 통하는 벗과의 교제.
52. 知音(지음) : 伯牙絶絃(백아절현).
53. 追友江南(추우강남) : 隨友適江南(수우적강남), 친구 따라 강남 간다.
54. 布衣之交(포의지교) : 구차하고 보잘 것 없었던 선비시절의 사귐을 잊지 않는 우정 → 貧賤之交(빈천지교).
55. 呼兄呼弟(호형호제) : 형제처럼 허물없이 매우 가까운 친구사이.
-. 우정 없는 친구는 소 빠진 송편과 같다. 朋友責善(붕우책선), 意氣投合(의기투합).
(출처 네이버 블로그 선효후문)
花石亭(화석정) - 李珥(이이) -
林亭秋已晩(임정추이만) 숲속 정자엔 가을이 이미 깊은데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 시인의 시상은 끝이 없도다.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 저 멀리 강물은 하늘 맞닿아 푸르고
霜楓向日虹(상풍향일홍) 서리 맞은 단풍은 타는 듯 붉도다.
山吐孤輪月(산토고윤월) 먼 산은 외로운 둥근 달 토해 내고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 강은 만 리의 바람을 머금었네.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 아∼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 처량한 소리가 저녁구름 속에 끊어지네.
※ 騷(떠들 소), 楓(단풍나무 풍), 虹(무지개 홍), 吐(토할 토), 含(머금을 함).
25-2. 少年은 易老하고 學難成하니 一寸光陰이라도 不可輕하라 未覺池塘에
(소년 이노 학난성 일촌광음 불가경 미각지당
春草夢인데 階前梧葉이 已秋聲이라
춘초몽 계전오엽 이추성)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아직 못가의 봄풀은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는데, 섬돌 앞의 오동나무 잎은 벌써 가을 소리를 낸다.
⋇ 池塘(못 지. 못 당) : 연못.
⋇ 已秋聲(이미 이. 추성) : 이미 가을 소리를 냄.
(해설)
가장 많이 알려진 권학문이며 또한 많이 인용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학문이라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정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은 것이 현실인바, 그 이유는 각자의 타고난 재능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통상적인 상식선의(기초분야) 학문이야 모르면 일상생활에 약간의 불편과 그것도 모르냐고 힐문을 당하지만, 전문적이고 깊은 학문으로 들어가면서 적성에 맞지 않으면 겉돌게 되면서 심각한 장애까지 유발하는 기피현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흥미는커녕 싫증과 압박에 스트레스는 물론 자신의 능력에 대한 회의까지 겹치는 최악의 상태가 되는데 이것을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를 찾는다 하다가 엉뚱한 곳에 집착하여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돌이키지 못할 惡手(악수)를 둔다.
학문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이룬다는 것이 그리 녹녹치만은 않다. 어느 정도 이루었는가를 측정할 길이 없고, 또 얼마를 더 깊고 넓게 연구하여야 하는가, 또한 답이 없다. 끊임없이 정진하는 것 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흔히 말하길 “이제 학문이란 문에 발을 들여 놓았다.”하는 경지를 博士(박사)라 부른다고 하질 않습니까? 종점이 아니고 비로소 자기의 학문의 길을 시작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 하기에 새로운 학문을 여는 험하고 힘든 고통의 길이 시작되는 원점이라 부릅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다거나 미지의 세계에 첫 발을 딛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즉,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은 물론 누구라도 추측만할 뿐 확신을 못하기에 호기심도 크지만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 그리고 두려움과 시시각각 닥치는 상황에 대한 응기응변에 당황스러움에 마음을 졸리게 되지요. 누구에게도 자문을 구할 수도 없고, 자료 또한 전무하기에 캄캄한 밤길을 등불도 없이 더듬거리며 한발 씩 조심스럽게 내딛는 상황이 연출되겠지요. 論語(논어)의 첫 머리에 나오는 구절이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로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인 것처럼 무엇인가를 배워 안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며 생각의 크기와 시야를 넓혀주기에 자신도 모르게 기쁨에 겨운 환호를 지르게 되며 더 많이 알고픈 욕망이 배움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러한 열망을 언제까지 지속적으로 이어가느냐가 중요하며, 그 시기 또한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배움에 나이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지만 늙어서 보다는 한 살이라도 젊은 나이에 시작함이 바람직하겠지요.
세월의 빠름과 무상함을 많은 이들이 읊었고, 뒤늦게 한탄을 하는 절절한 사연들도 많이 접합니다. 혈기 넘치는 끓는 피는 배움이란 테두리를 벗어나고픈 유혹이 강렬하게 자극하기에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이탈을 하여 전혀 상반된 길을 걸어가는 경우도 왕왕 발생합니다. 학력이 전부는 아니라 하지만 제도화된 사회의 벽은 높고 두터우며 틈을 보여주지 않기에 도전하는 순간 눈물을 삼켜야 하는 일이 벌어지며, 또한 순위가 매겨진 학벌 또한 발목을 잡는 냉혹한 현실에 두 번 눈물을 흘리게 되지요.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뒤늦은 후회를 해 보지만 돌이킬 수는 없지요. 흘러간 세월을 다시 돌릴 수는 없으니까요.
合浦珠還(합포주환)
- 합포에 구슬이 다시 돌아왔다는 뜻. 지방장관이 善政(선정)을 베풂을 이르는 말임. - 합포는 구슬의 명산지인데, 부임한 太守(태수)마다 탐욕을 부려 얼마 동안 구슬이 나지 않다가 孟嘗(맹상)이라는 청렴한 태수가 부임해 선정을 베풀자 구슬이 다시 났다고 한다(嘗到官 革易前 求民病利 曾未踰歲 去珠復還 : 상도관 혁역전 구민병리 증미유세 거주부환).
(출전 後漢書 循列吏傳) ※ 曾(거듭 증), 踰(넘을 유), 循(돌 순).
몽유도원도
晋(진)나라 때 무릉에 살던 한 어부가 배를 타고 계곡을 오르는데 양 기슭에 현란한 복사꽃 숲 사이로 물줄기가 살져 버렸다. 그 앞에 산이 하나 있었는데 작은 구멍이 나 있어 들어가 보았다. 여남은 발짝을 걸으니 기름진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논밭이 있고 물이 있고 뽕나무, 대나무 사이로 길이 잘 나 있었다. 닭소리, 개소리가 들리고 가난하지만 알뜰하게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와서 인사를 하길래 내력을 묻자 “秦(진)나라 때 시끄러운 전란을 피해 처자를 거느리고 속세와 떨어진 이곳에 와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秦(진)나라 다음에 한나라, 위나라 그리고 晋(진)나라가 들어선 것도 모르고 살고 있었다. 잔뜩 酒肉(주육)으로 대접받고 나왔는데 이 어부를 비롯,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시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도연명이 지은 “桃花源記(도화원기)”로 이 글이 뿌리가 되어 도원경…하면 한국을 비롯한 한문 문화권의 이상향이 돼 내렸던 것이다.
세종대왕의 맏아들이 문종이요, 둘째가 세조, 셋째 아들이 안평대군이다. 조선조 왕손 가운데 으뜸가는 풍류객이요, 시·문·서·화·악에 뛰어나 특히 서에 있어서는 역대 임금들이 그 필법을 따랐을 만큼 명필이었다.
그 안평이 어느 날 바로 도연명의 도원경을 찾아드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을 현세에 재생하고 싶었던 안평은 그 꿈에 흡사한 지금 서울 세검정의 武溪(무계)에 터를 잡고 정자를 크게 지어 무계정사라 이름 지었다. 효자동으로 뚫린 부암동 터널입구쯤으로 지금은 복개되고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당시 정승·판서를 비롯, 학자·문사·명필·화가·악장…귀천 없이 이 무계정사를 드나들지 않으면 행세를 못했을 지경 이었다. 사치도 대단했던 것 같다. 정사에 있는 바둑판과 바둑알은 모두 옥으로 만들고 그 옥에다 금칠까지 했을 정도니-.
조선 초기 산수화의 최고봉이었던 궁정화가 安堅(안견)도 이 안평대군의 식객 가운데 한 분이었다. 이 안견에게 꿈에 거닐던 도원경 이야기를 하여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게 한 것이 “몽유도원도”다. 1447년 4월 20일에 착수하여 사흘 만에 그린 것으로 그 내력을 적은 안평대군의 글과 정인지·김종서·신숙주·성삼문·박팽년·이개·서거정·최항 등 당대 명사들의 찬시가 붙어 있다. 무계인맥의 시·서·화 삼색이 합작해낸 역사적 창조물인 것이다.
그 후 이 무계정사는 수양대군이 쿠데타에 저항하는 본거지로 지목받아 수양이 김종서·황보인을 제거할 때 무계인맥 제거에도 손을 댔다. 안평은 강화에 귀양 가서 끝내 사약을 받고 있다. 이 조선조 최고의 명화가 임진왜란 때 왜인들에 약탈되어 지금 일본 천리대 도서관에 있는 것을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 개관기념으로 일시 귀국, 전시되고 있다.
우리나라 명화가 왜 일시 귀국 전을 가져야 하는가. - 이 모순이 안타깝기만 하다. 한국 사람의 가난하지만 알뜰한 이상향을 일본에 압류당한 듯한 야릇한 느낌과 더불어-.(이규태 코너 1986년)
25-3. 陶淵明詩에 云하되 盛年은 不重來하고 一日은 難再晨이니 及時當勉勵
(도연명시 운 성년 부중래 일일 난재신 급시당면려
하라 歲月은 不待人이니라
세월 부대인)
도연명의 시에 이르길, “젊은 때는 두 번 거듭 오지 아니하고, 하루에 새벽도 두 번 있지 않나니, 때가 되거든 마땅히 학문에 힘쓰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 陶淵明(도연명) : 이름은 잠(潛). 자는 원량(元亮), 동진(東晋)의 시인.
⋇ 盛年(성년) : 젊은 나이. 좋은 나이.
⋇ 不重來(부중래) : 거듭 오지 아니함.
⋇ 難在晨(난재신) : 새벽이 두 번 오지 아니함.
⋇ 及時(급시) : 때가 되거든.
⋇ 勉勵(힘쓸 면. 힘쓸 려) : 힘쓰는 것.
(해설)
학문만 세월에 민감한 것은 아니다. 세월의 흐름 천하장사도 막지 못하고, 미남미녀들의 미색도 막지 못한다. 그래서 모든 일들은 그것을 해야 하는 적당한 때가 있는 것이다. 지나고 나면 후회하지 말아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때는 그 중요한 시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보인다. 똑똑하면 똑똑한 대로, 바보스러우면 바보스러운 대로 각자의 이유와 나름 사정에 의하였다고 항변을 한다.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핑계와 남에게 공을 넘기는 탓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메뉴다. 主客顚倒(주객전도)인 것을 알면서도 구차한 변명과 사유도 각자의 개성에 따라 다양하다. 배움에 정진하였다고 모두가 성공을 보장 받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름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처세에 대한 바른 길이 무엇인가는 알게 된다는 자체가 커다란 수확으로 남는다.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알면서 당하면 조금은 분함이 덜어지는 느낌도 무시하지 못한다. 역사 이래 변함없이 회자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늘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데,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자가 존재하는가 하면 배울 기회를 잡고도 엉뚱한 길을 고집하여 이탈하는가 하면 타고난 자질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여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과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되나”하는 풍자의 대상도 분명 존재한다. 흙속에 묻힌 진주가 아닌 짱돌이라 아무리 다듬어도 자갈 밖에 되지 않는다는 한탄을 듣게 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젊음은 돌아오지 못하고, 하루에 새벽은 두 번이 없는 세월”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모두 자신의 몫이다. 누구는 하루를 48시간처럼 쓰는데, 누구는 8시간 밖에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확실한 것 아닌가. 톨스토이의 “지금 이 시간이 제일 중요한 시간이요, 지금 하는 일이 제일 중요한 일이며, 지금 만나는 사람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다.”라고 한 말처럼 하루하루가 제일 중요하다 생각하며 전력투구할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상에 사로잡혀 있거나 일확천금 같은 행운을 기대하는 것은 모두 一場春夢(일장춘몽)일 뿐이다. 기초부터 확실하게 쌓아올리지 못한 학문 또한 沙上樓閣(사상누각)처럼 일시에 허물어지는 비운을 맞이하거나, 정도를 걷지 못하고 샛길로 빠지면 邪說(사설)과 偏狹(편협)되거나 獨善(독선)에 사로잡혀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도 危害(위해)를 입히는 최악의 사태를 유발시킬 수 있다. 건물을 짓던 탑을 쌓던 하루아침에 짓고 쌓을 수는 없는 것처럼 학문 또한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한 지루하고 답답하며 五里霧中(오리무중)같은 터널을 묵묵히 인내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정진하여 빠져 나와야 비로소 광활하고 햇빛 찬란한 세상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조급해 하지도 말며, 조금 깨우쳤다고 교만하지도 말아야 하고, 지지부진하다 한탄하지도 말아야 한다. 늘 겸손하고 겸허하며 진지한 태도로 즐겁게 도전하는 마음으로 배움에 몰두하여야 한다. 한 우물을 파는 정성으로.
風樹之嘆(풍수지탄)
- 風樹(풍수)는 “詩經(시경)”의 해설서인 “韓詩外傳(한시외전)”에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려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樹欲靜而不風止 子欲養而親不待 : 수욕정이부풍지 자욕양이친부대)”고 하여 돌아가신 어버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나타낸 부분에서 유래한 말로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는 슬픔이나 한탄을 비유해 이르는 말임.(출전 韓詩外傳)
(孔子適齊 中路聞哭者之聲 其音甚哀 孔子謂其僕曰 “此哭哀則哀矣 然非喪者之哀矣” 驅而前 少進 見有異人焉 擁 帶素 哭者不哀 孔子下車 追而問曰 “子何人也?” 對曰 “吾丘吾子也” 曰 “子今非喪之所 奚哭之悲也?” 丘吾子曰 “吾有三失 而自覺 悔之何及” 曰 “三失可得聞乎? 願子告吾 無隱也” 丘吾子曰 “吾少時好學 周遍天下 後還喪吾親 是一失也 長事齊君 君驕奢失士 臣節不遂 是二失也 吾平生厚交 而今皆離 是三失也 夫樹欲靜而不風停 子欲養而親不待 而不來者年也 不可再見者親也 請從此辭 遂投水易死” 孔子曰 “小子識之 斯足爲戒矣 自是弟子辭歸養親者十三人” : 공자적제 중로문곡자지성 기음심애 공자위기복왈 “차곡애즉애의 연비상자지애의” 구이전 소진 견유이인언 옹 대소 곡자불애 공자하차 추이문왈 “자하인야?” 대왈 “오구오자야” 왈 “자금비상지소 해곡지비야?” 구오자왈 “오유삼실 이자각 회지하급” 왈 “삼실가득문호? 원자고오 무은야” 구오자왈 “오소시호학 주편천하 후환상오친 시일실야 장사제군 군교사실사 신절불수 시이실야 오평생후교 이금개이 시삼실야 부수욕정이부풍정 자욕양이친부대 이불래자년야 불가재견자친야 청종차사 수투수이사” 공자왈 “소자식지 사족위계의 자시제자사귀양친자십삼인” - 공자가 이나라 저나라로 주유할 때, 어느 날 제나라를 돌고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몹시 슬피 우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울음소리를 따라가 보니 곡성의 장본인은 皐魚(고어)라는 사람이었다. 공자가 우는 까닭을 물어보니, 울음을 그친 고어가 입을 열었다. “저에게 세 가지 한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공부를 한답시고 집을 떠났다 고향에 돌아오니 부모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둘째는 저의 경륜을 받아들이려는 군주를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셋째는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친구와 사이가 멀어진 것입니다.” 고어는 한숨을 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리 나무가 조용히 있고 싶어도 바람이 멎지 않으니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식이 효도를 다하려 해도 그때까지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돌아가시고 나면 다시 뵙지 못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저는 이제 이대로 서서 말라 죽으려 합니다.” 고어의 말이 끝나자 공자는 제자들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말을 명심해 두어라, 훈계로 삼을만 하지 않은가? 이날 충격과 함께 감명을 받은 공자 제자 중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를 섬긴 사람이 열 세명이나 되었다고 한다.”)(출처 네이버 블러그 몽촌)
哭子(곡자) - 許蘭雪軒(허난설헌) -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지난 해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올해는 사랑스런 아들을 잃다니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 땅이여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 두 무덤 나란히 앞에 있구나.
蕭蕭白場風(소소백장풍) 사시나무 가지엔 쓸쓸한 바람
鬼火明松楸(귀화명송추) 도깨비 불 무덤에 어리 비추네.
紙錢招汝魂(지전초여혼) 소지 올려 너희들 넋을 부르며
玄酒存汝丘(현주존여구) 무덤에 냉수 부어 놓으니
應知第兄魂(응지제형혼) 알고 알고 너희 넋이야
夜夜相追遊(야야상추유) 밤마다 서로서로 얼려 놀테지.
縱有服中孩(종유복중해) 아무리 아해를 가졌다 한들
安可糞長成(안가분장성) 이 또한 잘 자라길 바라겠는가.
浪吟黃臺詞(낭음황대사) 부질없이 황대사 읊조리면서
血泣悲呑聲(혈읍비탄성) 애끓는 피눈물에 목이 메인다.
※ 楸(가래나무, 개오동나무 추), 縱(늘어질 종), 孩(어린아이 해), 呑(삼킬 탄).
25-4. 筍子曰 不積蹞步면 無以至千里요 不積小流면 無以成江河니라
(순자왈 부적규보 무이지천리 부적소류 무이성강하)
순자가 말하길 “반걸음을 쌓지 않으면 천리에 이르지 못할 것이요, 작게 흐르는 물이 모이지 않으면 강하(江河)를 이룩하지 못할 것이다.”고 하였다.
⋇ 不積(부적) : 쌓지 않음.
⋇ 蹞步(반걸음 규. 걸음 보) : 반걸음.
⋇ 小流(소류) : 작은 흐름.
⋇ 江河(강하) : 강과 하천.
(해설)
흔히 말하는 모든 분야에서의 전문성과 뛰어남을 뜻하는 내공의 축적은 세월과 함께 하는 특성을 지닌다. 어느 분야에서이건 정순함은 물론 때 묻지 않은 순수함도 지녀야 한다. 얼마나 치열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였는가도 그것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단 없이 꾸준하게 하되 한 우물만을 파는 집중력과 연관된 타 분야까지 넓게 소화시키는 박학다문이 필요하다. 우리속담에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란 말처럼 모든 일은 “시작이 반이다.”라 하며 말만 앞세우기보다는 행동으로 실행하는 것을 중요시 하였다. 또한 “길을 가다가 포기하면 아니 감 만 못하다.”하며 끝까지 완주하는 불굴의 인내와 의지를 높이 사고 있다. 지난하고 고되며 힘든 역경의 길임을 잘 알기에 모두가 내일처럼 기뻐하며 박수를 쳐 주는 것이다.
하나를 포기하기 시작하면 모든 일들에 대하여서도 똑 같이 반복할 가능성이 높아지기에 이를 경계한 것이다. 대체로 소심하고 의지가 약할수록 무엇인가에 의지하려 하고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변명이 많아진다. 겉만 화려하게 포장하려는 욕구가 강하며, 작은 성과도 크게 부풀리는 자기 과시와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행위를 과감하게 펼치기도 하는 이중성을 지니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조그만 질책에 민감하고 누군가와 비교됨을 꺼려하는 경향을 보이며 자신만의 울타리를 쳐놓고 훼손당하거나 손상을 입히려 하는 행위 등에 대하여는 강한 반발을 한다. 즉, 자신의 약점의 노출을 지극히 꺼려하며 조금 모자람을 은폐시키려는 시도와 맞물려 모든 言行(언행)도 극과 극을 오가는 양면성을 갖는다. 포기는 절대 아니고 유보라 강변하기도 하는 그 본질에는 이런 심리적 요인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태산은 작은 塵埃(진애)가 모여서 이루게 되고, 강은 작은 細流(세류)가 모여서 이루게 된다.”라는 말처럼 그 시작은 미미하게 보이지만 그러한 것들이 모여 커다란 모양 세를 만드는 원천이 되듯이 우리들의 삶도, 학문도 성공도 마찬가지의 길을 걷게 된다. 작다고 거부하고 소홀히 여기면 큰 것을 이룰 수가 없다. 견고하게 만들어진 제방도 작은 개미 한 마리에 의하여 무너지고, 오동 잎 하나 떨어지는 것이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존재한 모든 것들이 아무리 작고 보잘 것이 없어도 나름 존재 이유가 있다고 하지요. 땅은 이름 없는 식물은 키우지 않는다고 한 말과 일맥상통 합니다. 배우는 이유가 무엇이든, 또 무엇을 배우는가도 중요하지만 그를 어떻게 이룩하는가도 중요하기에 시작의 중요성과 거부하거나 소홀하지 않는 확고한 신념과 의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배움의 환경도 매우 중요합니다. 올바른 학문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길을 가르쳐 줄 스승이 필요 합니다. 혼자 배운다는 것은 힘도 들지만 더 오랜 시간이 걸리며 바른 길로 가고 있는 지조차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캄캄한 밤길을 홀로 걷는 것과 같지요. 그리고 어느 경지에 도달하였는지도 알지 못 합니다. 비교대상도 없고 평가하여 줄 사람도 없기 때문 이지요. 그러다 보면 외로움과 막막함에 포기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 또한 극복하여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많은 길을 앞에 두고 지름길을 찾아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결코 바람직스럽지는 않고, 또한 평탄하지 않은 험한 길을 선택함도 현명하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무도 무엇이 최상인지는 단언할 수가 없습니다. 각자 타고난 재능과 자질이 천태만별하기 때문에 스스로 찾아 행하는 길 밖에는 확실한 대안이 없습니다. 십인십색이라 자기 입맛에 맞는 길을 선택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스스로 지는 수밖에.
破釜沈船(파부침선)
-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 싸움터에 나가면서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고 결전을 각오함을 이르는 말임. -
楚(초)나라의 項羽(항우)가 秦(진)나라와 鋸鹿(거록)에서 싸울 때, 강을 건너는 배를 가라 앉 히고, 솥과 시루를 깨뜨려 죽을 각오로 싸워 크게 이긴 데서 연유함.
(출전 史記 項羽本記) ※ 鋸(톱 거).
(項梁이 已破章邯하고 引兵至定陶하여 再破秦軍하고 項羽沛公이 又與秦軍으로 戰於雍丘하여 大破之하고 斬李由하니 梁이 益輕秦하여 有驕色이어늘 宋義諫曰 戰勝而將驕卒惰者는 敗라 臣이 爲君畏之하노라. 梁이 弗聽이러니 二世悉起兵하여 益章邯擊楚軍하여 大破之定陶하니 項梁이 死하다. 章邯이 已破項梁하고 乃渡河하여 北擊趙하니 趙數請救於楚어늘 楚王이 以宋義로 爲上將軍하고 項羽로 爲次將하여 以救趙할새 諸別將을 皆屬宋義하고 號爲卿子冠軍 이라하다. 甲午三年이라 冬十月에 宋義行至安陽하여 留四十六日不進하니 羽 曰 國兵이 新破 에 王이 坐不安席하여 掃境內以屬將軍하시니 國家安危가 在此一擧어늘 今에 不恤士卒而徇 其私하니 非社稷之臣也라하고 十一月에 項羽卽其帳中하여 斬宋義하고 乃悉引兵渡河하여 皆沈船破釜甑하고 燒廬舍하고 持三日糧하여 以示士卒必死하고 於是에 與秦軍으로 遇하여 九戰大破之하고 虜王離하다. 當是時하여 楚兵이 冠諸侯라 於是에 始爲諸侯上將軍하니 諸侯皆屬焉이러라 : 항량 이파장한 인병지정도 재파진군 항우패공 우여진군 전어옹구 대파지 참이유 양 익경진 유교색 송의간왈 전승이장교졸타자 패 신 위군외지. 양 불청 이세실기병 익장한격초군 대파지정도 항량 사 장한 이파항량 내도하 북격조 조수청구어초 초왕 이송의 위상장군 항우 위차장 이구조 제별장 개속송의 호위경자관군 갑오삼년 동시월 송의행지안양 유사십육일부진 우 왈 국병 신파 왕 좌불안석 소경내이속장군 국가안위 재차일거 금 불휼사졸이순기사 비사직지신야 십일월 항우즉기장중 참송의 내수인병도하 개침선파부증 소려사 지삼일량 이시사졸필사 어시 여진군 우 구전대파지 로왕이 당시시 초병 관제후 어시 시위제후상장군 제후개속언- 항량이 이미 장한을 격파하고 군대를 이끌 고 정도에 이르러 다시 진나라 군사를 깨뜨렸다. 항우와 유방이 또 진나라 군대와 옹구에서 싸워 크게 이기고 이유<이사의 아들>를 목 베었다. 항량이 더욱 진군을 가볍게 보아 교만한 기색이 있었다. 송의가 이에 간하기를 “전쟁에 이겨, 장수가 교만하고 병졸이 게으른 자는 패하는 것이니, 신은 君<군>을 위하여 두려워 합니다.”하였으나 항량은 듣지 않았다. 진나라 二世<이세>가 군대를 모두 일으켜 장한에게 보태주고 이에 장한이 초군을 쳐 정도 에서 크게 깨뜨리고 項梁<항량>을 죽였다. 장한이 이미 항량을 깨뜨리고 이에 하수를 건너 북으로 조나라를 치니, 조나라가 여러 번 초나라에 구원을 청했다. 초왕이 송의로 상장군을 삼고, 항우를 차장으로 삼아 조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는데, 여러 별장을 모두 송의에게 소속 시키고 이름 하여 卿子冠軍<경자관군>이라 하였다. 3년<갑오, B.C. 207> 겨울 10월에 송의가 행군하여 안양에 이르러 46일을 머물면서 나아가지 않았다. 항우가 말하기를 “군대가 막 격파당하여 왕이 앉아도 자리가 편안하지 않은 지경에 안에서 군을 쓸어 모아 장군에게 소속시켰으니, 나라의 편안함과 위태로움이 이 한 번의 거사에 달려 있는데, 이제 사졸을 돌보지 아니하고 그 사사로움을 따르니 사직의 신하가 아니요 .”하고, 11월에 항우 가 그의 장막 가운데에서 송의를 베고, 이에 군대를 모두 이끌고 하수를 건너면서 배를 모 두 가라앉히고, 솥과 시루를 깨뜨리고, 막사를 불태우고, 사흘 치 양식을 지니고서 사졸에 게 반드시 죽을 것을 보아였다. 이에 진나라 군대와 아홉 번 만나 싸워 크게 쳐부수고 왕이 를 사로잡았다. 이때를 당하여 초나라 군대가 제후군의 으뜸이 되었도다. 이에 비로소 항우 는 제후의 상장군이 되니, 제후가 모두 그 소속이 되었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몽촌)
※ 雍(누그러질 옹), 惰(게으를 타), 悉(다 실), 徇(주창할 순), 甑(시루 증), 廬(오두막집 려).
경복궁 秘史(비사)
조선왕조 초기 3대 임금인 태조, 정종, 태종은 자의건 타의건 간에 죽기 전에 왕위를 물리 고 있다. 그래서 네 번째 임금인 세종은 정종과 태종 두 분의 상왕을 모셔야 했다. 임금이 거처하는 정궁에 상왕을 모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또 멀리 떨어져 모실 수도 없다. 큰 정사를 의논해야 하고 또 자주 문안도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종 초년에 정궁 인 창덕궁과 이웃하고 있는 수강궁을 늘려 지금 창경궁의 기틀을 잡고 있다.
그 후 성종도 위로 세 분의 과부를 모셔야 했다. 할머니인 세조비와 생모인 덕종비, 양모인 예종계비인데 문안드리기 편하게 하기 위해 이 창경궁을 지금의 구조와 형태로 중건시키고 그곳에 모셨던 것이다. 그것이 연유가 되어 임금과 사별한 왕비들의 거처로써 대부분의 왕 비들이 창경궁에서 승하하고 있다. 이 궁에서 태어난 임금만도 정조·장조·순조·헌종 네 임금 이나 되고, 또 중종도 이 궁에서 승하하고 있으니 정궁으로도 자주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궁에 벼락이 치거나 궁중에 저주 같은 요사가 생기거나, 마마 같은 병환이 생기거 나 반정, 반란이 일어났을 때 避宮(피궁)으로 자주 쓰였던 예비궁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옛날 창경궁에서는 세 원혼을 달래는 무당굿을 베푸는 은밀한 관습이 있었다 한다.
그 한 원혼의 주인공은 임경업 장군이다. 청나라에 끝내 거역하다가 심양 땅에서 압송돼온 장군을 인조는 살려두려 했는데 간신 김자점이 옥졸을 시켜 창경궁 時敏堂(시민당)북쪽에서 박살시켰던 것이다. 어찌 원혼으로 창경궁 숲속을 울어 헤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두 번째 원혼의 주인공은 바로 사도세자. 영조는 지금 명정전 남쪽 회랑에 거동하여 사도세 자를 불러놓고 자결할 것을 다그쳤다. 세자는 옷을 찢어 목을 두 번 졸랐으나 죽지 않자 이번에는 큰 뒤주를 갖고 오라 시켜 가두고 “아버님 살려 주십시오.”하는 비원을 들으며 임금은 손수 못질을 했다. 뒤주에 틈이 난 것을 보고 그 틈까지 손수 틀어막고 지금 선인문 안마당에 옮겨 풀과 두엄으로 덮어 포도대장 具善復(구선복)으로 하여금 포졸 100명으로 감시케 했다. 7일째까지 살아 있어 “어지러우니 흔들지 말라”하더니 8일째 숨을 돌리고 있다. 어찌 그 원혼이 이 선인문 안마당을 떠날 수 있으랴.
세 번째 원혼의 주인공이 바로 유명한 장희빈이다. 장희빈이 나인 雪香(설향)과 무녀 五禮 (오례) 등을 시켜 인현왕후를 죽이고자 갖은 저주 끝에 독살시킨 것이 탄로가 되어 숙종이 희빈이 거처하는 창경궁의 취선당에 가서 사약을 내렸다. 약그릇을 집어던지고 고함을 지르 자 힘센 궁녀로 하여금 문판으로 덮어놓고 그 위에 올라앉아 압사시키고 있다. 비사가 곳곳 에 가득가득한 창경궁이다. 일제의 궁궐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창경궁이 동물원, 식물원을 곁 들인 창경원이 되었다가 90년 만에 복원, 증건 되어 어제 開宮(개궁)을 하고 있다. 세종· 성종·광해군·효종에 이은 다섯 번째의 중건인 것이다.(이규태 코너 1986년 8. 24)
※ 이제 끝났습니다.
자료출처-http://cafe.daum.net/sungho52
박광순선생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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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복사꽃 숲 사이로 물줄기 살찌어 흐르는데
산 구멍 속으로 들어가니
뽕나무와 대나무 사이로 길이 잘 나있고
닭소리와 개소리 들리는
가난하지만 알뜰하게 사는..."
마음을 밝게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자료 올려 주신 古方님 께 감사 드립니다
나 한몸은 우주 천지에 주인공 임을 한시도 잊지말고
지혜를 밝혀 최상의 삶을 살아가시길
축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