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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의 사경예술
0.1 mm의 붓끝을 통해 펼쳐지는 멈춤의 지혜와 느림의 미학
김경호의 사경을 통해 본 한국의 선의 미학
지난 4월3일 뉴욕 맨해튼 첼시에 위치한 갤러리 “호”에서는 한국 전통사경의 맥을 잇고 있는 한국 전통사경 기능 전수자인 외길 김경호 작가의 전통사경 시연회가 전시회 오픈에 앞서 있었다. 뉴욕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동양미술부 수석 큐레이터, 뉴욕 한국문화원 큐레이터등 뉴욕 미술계의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던 이번 시연회에는 색과 형태를 통해 표현하는 서양의 미술과는 달리 0.1mm의 가는 붓끝을 통해 펼쳐지는 동양적 선의 미학을 만끽할 수 있는 자리였다. 또한 감색(보라색 기운이 감도는 짙은 검푸른색) 종이위에 금이라는 세련된 색의 조화로 표현된 한국 전통사경의 화려함과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정교함에 참석자들의 감탄이 이어졌고 이를 통해 한국 전통사경에 대한 그들의 뜨거운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왜 선으로 모든 사물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김경호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던 필자는 문득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고대나 중세의 서양 미술이 색과 형태를 통해 대상을 화려하게 표현하고자 했던 것과 달리, 어쩌면 우리의 그림은 눈 앞에 있는 대상의 3차원적인 형태를 묘사하는데 그 목적이 두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선으로 펼쳐지는 김경호 작가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자면 필자도 모르는 사이 그 유기체적인 곡선의 역동성에 빠져들고 만다.
왜 화공은 다양한 패턴과 문양으로 화면을 가득 채웠을까? 그건 바로 에너지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각각의 사물들이 뿜어내고 있는 에너지를 선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것이다. 즉, 한국 전통사경 변상도(불교 교리나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종교 그림)속의 선재동자가 관세음보살에게 법을 구하는 장면은 단지 그 상황만을 묘사하는데 그 목적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시에 모든 사물은 에너지를 가진 에너지체로서 서로 유기적인 관계속에 상생상극한다는 부처님의 연기법을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설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을 통해 다시 바라본 김경호의 전통사경은 필자에게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펼쳐보이고 있었고, 우리 선조들이 세상을 이해했던 그 통찰력과 지혜에 다시금 숙여해졌다.왜 인류는 진화하고 테크놀로지는 발전하는데, 우리의 깨달음은1700년전 우리 조상들의 갖고 있던 그 지혜에도 아직 미치지 못하는 것일까?
한국 전통사경이 뉴욕 첼시를 찾았다.
인류는 지금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 바뀌는 문명의 전환기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빠른것이 경쟁력으로 여겨지는 시대. 이젠 아무도 손편지를 쓰지 않는다. 이메일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한 문자를 이용하기때문이다.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이메일나 문자에 비해2~3일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손편지는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여겨진다. 곧 경쟁력이 떨어지는 방법인 것이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는 ‘시간이 없다, 바쁘다’이다.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하던 많은 일을 기계가 대신하게 되었고, 인터넷,스마트 폰, 컴퓨터의 대중화로 우리가 하는 일의 처리 속도를 몇배는 더 빠르게 해 주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더 바쁘고 늘 시간은 모자란다. 왜일까?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효율과 비효율의 원리로 이분화 된 후, 경쟁이 모든 것을 지배하며 현대 사회는 경쟁 논리를 바탕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은 사회와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낙오될까 불안해하면 경쟁에 뀌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논리는 신자유시대가 들어선 지난 30년 동안 브레이크 없이 그 속도를 높이다가 결국 2008년 미국 4대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 사의 파산을 시작으로 전세계의 주식이 폭락하고 미국의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파산하는 세계 금융시장의 쇼크를 초래했다. 경쟁중심 시스템의 한계를 스스로 보여준 상징적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경쟁이라는 미명아래 제어장치가 마비된 이러한 사회 가속화 현상의 피해는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 자체의 파멸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틈이라는 공간적 미학이 비효율이라는 개념로 전락해 버린 후, 어쩌면 우리는 우리들 마음 속 여유라는 공간까지도 함께 사장시켜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로인해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까지 망각한 채,스스로를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명의 혼란기에 마치 일침을 가하듯 느림의 미학과 멈춤의 지혜를 보여주는 한국의 전통사경이 사회 가속화 현상의 정점에 서 있는 이곳 뉴욕을 찾은 건 결코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0.1 mm의 붓끝으로 펼쳐지는 사경의 세계
요리 전문가의 요리 시연과 달리, 미술작업은 많은 집중력과 몰입을 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신만의 작업공간을 필요로 한다. 특히 전통사경과 같이 극미의 세계를 표현하는 작품은 삼매에 가까운 작가의 몰입을 요하기 때문에 공간이라는 부분에 더욱 민감한 작업이다. 처음 전통사경 시연회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필자는 이러한 이유로 내심 많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의 작가들이라면 보여주고 싶지않을 자신의 작업과정을 대중앞에서 선보인다는 김경호 작가의 자신감에 놀랐고, 일생을 한국 전통사경연구와 작업에 몰두하며 쌓아 왔을 작가의 내공과 몰입의 경지는 감히 필자가 상상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세계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그리고 그 몰입의 작업과정을 통해 작가가 만끽했을 나와 참나가 하나가 되는 그 삼매의 환희가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예상했던데로 갤러리에서 만난 김경호 작가는 내면의 고요함이 밖에서도 흐르고 있었고, 마치 뿌리 깊은 나무처럼 안정감이 느껴지는 그러한 품성을 지니고 있었다. 시연에 앞서 참석자들에게 한국 전통사경의 세계사적 의미와 가치, 고려 전통 금니사경의 제작과정을 설명을 하고 있는 김경호 작가의 어깨 너머로 하얀색 테이블보가 깔려져있는 그의 작업대와 그 위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대나무 몸통을 가진 0.1mm의 작은 서예붓들이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금가루를 아교와 섞을때 사용하는 하얀 사기 그릇들,작가의 손때가 느껴지는, 하지만 잘 관리된 듯 보이는 다른 미술 도구들,모든 것들이 마치 보살계를 받은 수행자의 자태처럼 너무도 정갈하고 겸손하게 놓여있었다. 감지금니 7층 보탑의 작은 보탑하나를 완성하는데 약 2시간 반이 걸린다는 설명과 함께, 김경호 작가는 시간 관계상 그 중 일부분만을 시연하겠다고 말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1분. 2분. 작업을 하는 작가는 흔들림이 없는데 그 짧은 시간을 지켜보는 필자의 인내심은 ‘언제 끝나지?’ 하며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필자 스스로도 흠짓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우리 현대인들은 광고나 다른 영상 매체를 통해 빠르게 바뀌는 이미지들에 길들여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마치 인스턴트 음식이나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에 길들여진 사람이 음식 본래의 향기와 맛을 느끼기 힘들 듯, 빠르게 변하는 것들에 익숙해져버린 우리의 시각은 김경호 작가의 정지된 듯한 멈춤의 미학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자
기 수행의 시간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들었다.
전통을 넘나드는 김경호의 사경, 시대정신으로 다시 태어나다
코리아아트포럼이 기획하고 뉴욕한국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전통사경전에는 작가 자신이 생애 최고의 작품으로 내새우는 본인의 사경작품 2점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 스스로 이름을 붙힌 <일불일자 감지금니 ‘화엄경약찬게’>와 <감지금니 7층보탑 ‘묘법 연화경 견보탑품’>이 바로 그 두 작품이다. 화엄경약찬게의 작품 크기는 가로 360cm, 가로 31cm로 보라색 기운이 감도는 짙은 검푸른색 종이인 감지에 금가루인 금니,은가루인 은니, 경면주사, 채묵,먹, 석채, 녹교, 명반을 사용해 글과 그림으로 완성되었다. 부처님의 경전, 즉 그 가르침을 불상에 봉안한다는 의미에서 1.1cm 크기의 불상 약 800 구에 화엄경약찬게의 글자를 하나씩 하나씩 봉안한 작품이다. 한국의 전통사경임을 나타내기 위해 한문 대신 한글을 사용했다는 작가의 의도를 통해 한국 전통사경에 대한 그의 사랑과 자부심을 다시 한번 엿볼 수 있었다. 전통을 보전하고 계승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그저 옛것을 답습한다는 것 만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것이다. 전통은 그 시대의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되고 재창조되어야 한다. 그만큼 전통을 계승하는 예술가의 작가적 역량이 요구되는 작업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두번째 작품, 감지금니 7층보탑 ‘묘법 연화경 견보탑품’은 한국 전통사경에 대한 작가 김경호의 독창적인 재해석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로 663cm, 세로 7.5cm 크기의 이 작품은 7층탑 267기와 5층탑 196기등 총 463기의 보탑에 태극기, 무궁화,당초문이 작가의 독창적인 표현을 통해 디자인 되어있다. 약 8개월동안 하루 10시간정도의 작업시간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이 작품은 한국 전통사경의 계승이라는 맥락에서 그 역사적 가치가 충분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10시간 작업시간을 분석해 보면 실재 작업시간은 6시간 밖에 안된다고 김경호 작가는 말한다.금을 최대한 맑고 청정하게 하는 정화작업을 수시로 해 주어야하고 0.1mm의 공간에 먼지와 같은 작고 미세한 점을 찍으려면 온 정신과 감각기관을 집중해야만 확장된 공간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고 그때만이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경은 몸과 마음이 최상의 컨디션을 갖추었을 때에만 가능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인것이다.서양의 전통적인 회화 재료를 들자면 유화와 아크릴정도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미술재료의 특징중 하나는 작업과정 중 언제든지 형태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Flow를 만들고,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삼매에 들고, 그 상태에서 작가가 인지하는 대상에 대한 변형과 재해석이 가능하고 그에따라 그림은 끊임없이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필자가 접한 한국 전통사경의 작업과정은 작가가 먼저 삼매에 있어야만 가능한 작업인 듯 했다. 그럼 작가는 어떤 과정을 통해 삼매의 경지를 만들까? 한국의 전통사경은 본 작업을 하기위한 준비과정이 많이 필요한 작업 중 하나이고, 사경에 필요한 재료와 도구의 준비에서부터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성스러운 자세와 몸가짐을 요구하는 작업이기도하다. 이러한 복잡한 준비 과정은 작가의 삼매 몰입을 도와주기 위한 우리 선조들의 지혜로운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치 막걸리와 정종의 차이처럼 한국전통사경의 세계는 보통의 이해관계로 얽히고 설켜있는 인간 세상보다는 좀 더 맑고 고차원적인 세계를 지향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중세 불교의 사경과 중세 서양미술의 성서 필사본
한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부터 시작었던 한국의 사경문화는 1700년의 전통을 갖고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의 기록에 의해면 우리나라에 처음 불교가 공인된 건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이다. 이때 승려 순도가 중국 전진의 왕 부견의 명을 받아 불경과 불상을 전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이어 374년에는 중국 진나라의 승려인 아도가 왔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에 375년에 초문사를 지어 순도를 머물게 하였고, 아불란사를 지어 아도를 머물게 했는데, 불법을 전파를 위한 대대적인 사경 사업이 이러한 사찰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시기인4세기경 서양에서는 로마제국이 봉괴되기 시작하면서 초기 중세 미술이 수도원을 중심으로 시작된다. 수도사들이 속세를 벗어나 신앙에 정진하기 위해 공동생황을 하던 수도원은 그당시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 역활을 했는데 수도원 안에는 장서를 소장하는 있는 도서관이 있었기때문이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의 시대였던 당시 책들은 수도사들이 일일이 직접 베껴쓴 필사본이었는데 기도서, 복음서와 같은 성서 필사본들은 화려한 문양 그리고 세밀화들로 장식되었다.하지만 서양의 수도사들이 일생을 수도원안에서 생활하며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던것에 반해, 중세 불교의 승려들은 국제인이었다고 한다.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던 당시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자신 태어난 곳에서 자라고 또 일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승려들은 불법탐구를 위해 중국이나 인도등 새로운 세계를 탐방하며 견문을 넓혔다. 그 당시 신라시대의 명승 혜초나 원효대사와 같은 깊은 통찰력과 해안을 겸비한 위대한 고승들이 우리에게 많았던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러한 위대한 승려들이 연구업적은 어느 나라 승려의 저술인지를 가리지 않고 주변국에 널이 전해지고 받아들여 졌는데, 이는 불교 문학의 세계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사경예술의 세계성을 입증하는 단서이기도 한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의 전통사경이 일반인이나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많이 알려져있지 않은 반면 서양에서는 수도원 중심으로 발달했던 복음서나 기도서의 필사본이 서양미술사의 위대한 유산으로 간주되어 그 디자인이나 서체들이 오늘날에도 활발하게 이용되고 제창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도 서양미술사 시간에 중세 수도사들이 제작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고, 서체를 공부하는 수업시간에는 많은 서양의 친구들이 중세시대 수도원에서 만들어졌던 필사본의 서체나 디자인을 자신의 작품속에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볼때, 잊혀져 가던 한국사경의 전통을 되살리고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 김경호 작가의 발자취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하지만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해도 한사람의 이룰 수 있는 역량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의 미술계나 미술 교육계의 자각과 각성을 통한 홍보와 알림의 과제가 남아 있지 않나 생각한다.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뉴욕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에는 김경호 작가의 사경 작품이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뉴욕 퀸즈 자치구 의장인 헬렌 M. 마샬은 2012년 10월 12일을 외길 김경호의 날로 선포했다. 우리것의 아름다움에 세계는 감동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어떤지 모르겠다.
준비된 사경가 외길 김경호
사경의 미학은 종교성과 예술성의 합일에 있다고 김경호 작가는 말한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 경과 작가가 하나가 되고 몰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경은 부처님 말씀을 손으로 다시 쓰는 작업이기 때문에 경건한 자세로 한글자 한글자 온갖 정성을 다해 필사해야 하는데, 이는 불상이나 불탑과 마찬가지로 경전은 여래의 전신사리와 같은 품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부처님의 사리를 대하는 자세로 필사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자삼례’라는 말이 있다. 불경을 서사할 때 한 글자를 쓸때마다 세번씩 절을 올린다는 의미인데 사경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를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자기 마음의 바탕위에 진리를 새겨 나가는 작업이 바로 사경이고, 이것이 곧 수행이라는 것이다. 종종 고려 시대의 사경원 꿈을 꾼다는 작가 김경호는 이시대의 준비된 사경원이다. 꿈속에서 사경원의 각 처소를 돌며 감독을 하곤 한다는 그. 그가 전생에 실재로 고려 사경승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사경이 그의 인생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휘준 서울대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는 사경은 작가 김경호에게 운명과도 같다도 말한다. 마치 사경의 복원과 계승이라는 일을 위해 준비를 차곡차곡 해왔던것처럼 작가 김경호는 붓과 함께 사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면서 서예, 수묵화,뎃생, 수채화, 구성미술 그리고 더불어 불교와 문학을 심도있게 공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후 작가 김경호는 불교미술사학자 고 장충식 교수로부터 사경의 역사를 배웠고, 명필 고 여초 김응현 선생에게 사경 서예를 전수받았다. 더불어 한글 궁체의 대가, 꽃뜰 이미경 선생으로부터 한글 서예의 최고임을 인정 받았다. 그의 사경작픔이 빛나지 않을 수 없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 김경호는 사경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인재와 시스템의 부재를 앞으로의 한국사경이 풀어야 할 최대의 과제로 들었다. 즉, 고려시대의 사경원에서와 같이 사경이 분업을 통해 사성될 수 있도록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사경을 통해 발원해 보는 화엄의 세상
어쩌면 작가 김경호의 한국전통사경 계승의 길은 마치 그의 호 외길이 설명해주듯 보통 사람들이 싑게 갈 수 없는 외로운 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경의 연원으로 세계최초 목판인쇄술과 금속 활자가 우리 선조들의 손에 의해 개발되었다는 역사적 자부심과 불교 전래국중 최고의 사경 문화를 꽃피웠던 고려시대 사경에 대한 그의 열정이 살아있는 한 지난 30년 이상 사경의 길을 걸어왔던것 처럼 앞으로도 그는 이 길을 걸어갈 것임은 분명하다. “생명과도 바꿀 수 있는 작품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작가 김경호, 마치 고려의 사경이 고려 시대 수많은 외침과 내란의 국난 속에서 더욱 그 빛을 발했던것 처럼 그의 염원과 혼이 담긴 사경을 통해 오늘 이땅에 그가 꿈꾸는 이상세계인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화엄의 세상이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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