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입제일)(陰.1월6일)♥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띠가 개띠이니 올해 90세이다.
벌써 우리와 이별한지가 34년이나 된 긴 세월이다.
지금은 57세라면 아직도 청년 취급을 받는 나이지만 몇십년
전에는 나이가 많고 환갑(61세)을 넘기기가 힘들고 일찍 다(多)들
세상을 하직하고 환갑 행사를 크게들 하였다.
환갑 잔치를 하는것은 오래 살은 기념도 하고 앞으로도 무병장수
하시라는 그런 큰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제사를 지낸후 무슨 말끝에 사진 이야기가 나와 70년이 지난 빛바랜
사진 한장을 찿아 모두모인 가족들 앞에 형수님이 내놓았다.
사진을 보니 아버지가 엄청 멋쟁이 였다.
언젠가 본 기억이 있는 사진인데 오늘 새삼스레 더 멋져 보인 까닭은
큰집에 걸려있는 액자속의 사진은 돌아가시기 전에 찍은 사진이라 볼
폼이 영 아니었다.
키도 약1m 80cm 가량되며 우리 동네에서도 그당시 아버지와 비슷한
연세에는 키가 첫번째 아니면 두번째 정도로 상당한 큰 키였다.
옛날에는 우리나라 장수들이 6척(尺) 거구라고 하는데 1척이 1자이니
1자는 지금 30Cm 환산하면 1m 80Cm 이다.
지금은 잘살고 잘먹으니 젊은 사람들 중에 이정도의 키는 자주 볼수있다.
사진속의 아버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우리 형제보다 또 아들 항렬의 4촌들
보다 우리집 손자와 얼굴이 비슷한 곳이 너무 많았다.
우리손자(지윤)가 증조 할아버지를 속 빼닮았다.
사진속에 중절모를 쓰고 넥타이를 메고 구두를 신었으며 코트를 입고
계신 멋쟁이 아버지를 보고 매제(妹弟)가 혹시 장인 어른이 친일파가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머리를 세차게 좌우를 흔들며 아니라고 했다.
내가 아버지로 부터 들은 이야기는 조실 부모하고 큰 아버지 댁에서 자라
학교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했고 배우지 못한체 가난 때문에 일본에 돈벌러
가셨다고 했다.
일자무식인 아버지께서 처음 도착한 일본땅은 오사카(大阪)이라 했다.
열여섯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 이국땅에 무사히 도착해 그곳에서 생활을
적응하려면 많은 애로사항과 말못할 사연들도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래도,
그 어린 나이에 세상을 꿰뚫어 보는 총명함이 있었는가 본다.
오사카에서 금붙이 장사를 해서 제법많은 돈을 벌었는데 국내에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아버지가 사시던곳 지금 나의 고향은 어머니 친정 곳이다.
우리집과 일본 시대때 농업 전수학교(5년제)와 거리는 약 20~3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고 막내 외삼촌(타계)님도 이학교 출신이다.
이학교는 지금의 언양 중학교 전신이라고 한다.
지금은 삼남 중학교가 건립되여 몇번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옛날에는 너집 내집 할것없이 자식이 많아 많은 부모님들이 고생했는데
우리 부모님들도 예외는 아니다.
나이가 들면 여성 호르몬이 많이나와 남자들이 여성화 된다는 이야길 자주
듣는데 나라고 별수도 없다.
조금 슬픈것을 보아도 눈물이 자주나고,
어떤때에는 남들이 볼까봐 민망한 생각이 들때도 있다.
특히,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감당이 불감당이다.
아마도 우리 년배의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이 비슷하지 않을까?
쓸데없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東方 徐希京
이 사진은 70년이 넘은 사진이다.
이때의 사진은 이 한장밖에 없는 귀중한 가족 사진이다.

우측이 아버지 중앙에 아기를 안고있는분이 어머니(19세때의 모습).
중앙 아기가 형님(신사생) 좌측 은 이웃집 아가씨. 모두(4명) 돌아가셨음.
뒷편 교복을 입은 농업 전수학교 학생. 이분들은 누군지 알수없음.

100일날 아침. 아들집에서.....


200일 기념사진



300일 기념.(2012년 7월3일生. 2013년 5월14일 삽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