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6005]간송당(澗松堂)趙任道-暮秋舟中遇雨[모추주중우우]
暮秋舟中遇雨(모추주중우우)
(늦가을에 배를 타다가 비를 만나다)
간송당(澗松堂) 趙任道
紅樹江村暮 (홍수강촌모) 붉게 물든 숲 강마을은 저물고
明沙野渡秋(명사야도추) 흰모래 나루터에 가을이 왔내
孤舟何處泊(고주하처박) 외로운 배는 어느 곳에 머물까
細雨雁聲愁(세우안성수) 가랑비에 기러기 울음도 수심에 잠겼네.
위 시는 澗松간송선생이 창녕 남지와 함안 대산 용화산 자락의
합강정사를 낙동강에 배를 타고 오가며
비를 만나 만추의 강마을을 서정적으로 노래한 듯
원문=간송집 澗松集 卷一 / 詩○五言絶句
暮秋舟中遇雨
紅樹江村暮,明沙野渡秋。
孤舟何處泊?細雨雁聲愁。
늦가을에 배를 타다가 비를 만나다〔暮秋舟中遇雨〕
붉게 물든 숲, 강마을은 저물고 / 紅樹江村暮
흰 모래 나루터에 가을이 왔네 / 明沙野渡秋
외로운 배는 어디에서 머물까 / 孤舟何處泊
가랑비 내려 기러기 울음도 근심에 잠겼는데 / 細雨雁聲愁
ⓒ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남명학연구소 |
김익재 양기석 구경아 정현섭 (공역) | 2015
趙任道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덕용(德勇), 호는 간송당(澗松堂).
조식(趙埴)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문화유씨(文化柳氏)로,
병절교위(秉節校尉) 유상린(柳祥麟)의 딸이다.
김중청(金中淸)·고응척(高應陟)·장현광(張顯光) 등을 사사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4년(선조 37) 향시에 합격하였고, 그 이듬해인 21세 때
『관규쇄록(管窺鎖錄)』을 저술하였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거상대절(居喪大節)」 10조(條)를 써서
자손들이 교훈으로 삼도록 하였으며,
또 아버지의 언행록인 『추모록(追慕錄)』을 지었다.
1614년에는 동당시(東堂試)에, 그 이듬해 향해(鄕解)에 합격하였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향인(鄕人)이 조임도를 의병장으로 추대하였으나 신병으로 참여하지 못하였다. 1634년 공릉참봉(恭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고, 1638년『취정록(就正錄)』을 쓰고
그 이듬해『김라전신록(金羅傳信錄)』을 편찬하였다.
1644년『대소헌유사(大笑軒遺事)』를 찬하였으며,
1647년 대군사부(大君師傅)에 임명되어 창녕까지 가다가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그 뒤 공조좌랑으로 임명되었으나,
노병으로 사직하고 부임하지 아니하였다. 사헌부지평에 증직되고,
함안의 송정서원(松亭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간송집(澗松集)』 7권 4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