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호호호 ~ 원문보기 글쓴이: Nayana ~
2005년 하반기 한국방송작가협회 주최로 열린 공개특강의 녹취록입니다. *
여러분 반갑습니다, 김규완입니다.(박수) 지난 학기에 김수현 선생님과 이경희 작가가 이 자리에 서서 강의를 했고, 제가 이경희 작가를 격려차 따라왔다가 이경희 작가가 너무 떨길래 우황청심원도 사다 먹이고 '뭘 그렇게 떨고 그러냐?'고 많이 놀렸는데, 진짜 떨리네요.(웃음) 무슨 말씀을 드려야 여러분한테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고 해서 질문지를 봤는데, 딱 여러분이 가장 절실하게 궁금해 할 내용이 이거다 싶은 게 있어서 그 얘기를 해드릴게요. 등단하기 전까지의 막막함을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질문이 있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등단은 쉬웠는데, 등단하고 나서 약 5년 동안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등단은 교육원 덕분에 신인상에 당선이 되자 신인상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일선 PD의 요청을 받고 그 대본을 가지고 드라마를 했기 때문에 데뷔는 빨랐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그 이후에 약 5년 동안, 1년에 단막극 하나씩 하면서 그러니까 원고료를 회사원들의 연봉으로 따지면 연봉 200으로 5년을 견디면서 그 동안 많은 막막함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이런 거예요. 데뷔작이 나간 다음에 저는 열심히 날개를 펴고 날아가고 싶은데, 저의 펄럭거리는 날개를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활용하려는 분들이 계셨어요. 이를테면 다른 작가분이 쓰신 원고를 저에게 던져주면서 '니 마음대로 고쳐봐라'하더라구요. 그 작가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교육원에서도 배웠고 배우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의 상식으로 생각했을 때 안 되는 일인 것 같고 해서 안 하겠다고 했을 뿐인데 '너는 배가 불렀냐?'는 거예요. 그 때 저는 배가 고팠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고파도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 있는 거 같아요. 남의 것 먹으면 안 되고, 상한 음식도 안 되고… 그래서 먹지 말아야 될 음식을 안 먹고 배가 고팠어요. 또 이런 일도 있었어요. 어떤 감독이 다른 작가분과 긴 호흡의 미니시리즈를 준비하시면서 저랑 하자고 하시길래, 단막극 하나 겨우 했을까 말까 한 나에게 이게 웬 떡이냐 싶어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열심히 해야겠다며 날개를 다시 펄럭거리려 했는데, 그분은 이미 방송사에서 정해준 작가분과 작업을 하시면서 나쁘게 말하면 이중플레이를 하신 거고, 그분 표현에 따르면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그 작가분과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미리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일환으로 저를 따로 만나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 사실을 알고 작가분을 만나 뵙고 나서 솔직히 조금 아까웠지만 그것 또한 내가 먹을 밥이 아니어서 먹지 않았어요. 미니시리즈를 준비하는 게 오래 걸리기 때문에 그러느라고 2년 가까이 흘렀고, 이런 일도 있었어요. 아주 유명하고 재미있는 일본 드라마 비디오테이프를 주시면서 보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잘 보겠습니다.'했는데, 그 분의 의도는 '좀 베껴 써도 돼.' 이런 거였더라구요. 그 분이 그 드라마에 너무 열광하셨던 나머지 그런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우리 보통 '나도 그런 드라마 만들고 싶다.'라는 얘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드라마'라는 게 그런 종류의, 그런 강도의 감동을 주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얘기여야지, 여러분들도 다 아시듯이 베끼는 건 안 되는 일이잖아요. 이 피래미작가도 다 아는 너무 당연한 얘기를 그분은 모르고 계시길래 그 떡도 먹지 않았어요. 아까 최완규 선생님께서 소재를 방송사에서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는데, 그런 경우에 여러분이 잘 알아봐야 하는 게 있어요. 어떤 감독이 자기 아이디어를 말씀해 주시는데 굉장히 재미있더라고요. 그 얘길 만들면 정말 대박이 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인물도 만들고, 감독이 굵은 뼈대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준비하는 데 좀 수월했고 신이 나서 일을 하고 있는데,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서 '내가 요새 이런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를 했더니 그 후배가 놀라더니 자기가 일본에서 본 드라마 내용이랑 똑같대요. 그럴 리가 없을 거라면서 감독한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너 그럼 그걸 모르고 지금까지 했냐' 이러시더라구요. 저는 모르고 했거든요. 감독은 '다 알면서 선수끼리 왜 이래.' 이런 식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건 정말 상한 음식 중에서도 최고로 상한 음식이었기 때문에 그것도 먹지 않았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못 먹다 보니 배가 많이 고프고, 힘들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5년 동안 뭔가를 끊임없이 하고 있긴 했는데 성과는 거의 없었고, 고작 1년에 단막극 하나 하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했던 현실에서… 그걸 어떻게 견뎠느냐.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가령 그 때 제가 뭔가가 되고 싶었고 방송작가라는 남들 듣기에 좀 멋져 보이는 그런 타이틀을 얻는 것에 먼저 목이 말라 있었다면 분명히 지쳤을 것 같아요. 방송작가가 안 되고 5년이 흐르는데 안 지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제가 안 지쳤던 이유는 그 이름을 얻는 것보다는 그냥 '글쓰기'가 좋아서였어요.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 좋았고, 글을 위해서 뭔가를 상상하고, 그 상상을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뛰어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모니터 앞에 앉아서 썼다가 지워보고 하는 이 모든 과정이 그 5년 동안 참 즐거웠어요. 지금은 긴 드라마도 쓰고 바빠지기도 했지만, 교육원 4학기를 포함한 그 시절만큼 즐겁지가 않아요. 참 안타까운 일이죠. 제가 이번 학기에 교육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거든요. 연수반 친구들을 통해서 그 때 그 시절의 재미있었던 느낌을 조금씩 받아요. 그러니까 지금 이 시기가 여러분한테는 세상만사가 너무 재미있고, 또 세상만사가 다 내 드라마의 소재 같고, 눈을 감고 있으면 아이디어가 퍼뜩퍼뜩 떠오르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그러지 않나요? 분명히 그럴 것 같은 여러분의 자세와 눈동자를 보면서, 저도 자극을 받아서 이제 조금 재미있어지려고 해요. 처음 강의를 제안 받았을 때 너무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었고 왜 나를 이런 고난에 빠트리려는 건지 원망스러웠는데, 여러분을 통해 의욕과 자극을 받는다는 점 하나는 참 감사하게 생각해요.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면, 조급한 분을 가끔 봐요. 대부분 뭐가 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조급함이에요. 빨리 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짜증도 읽히구요. 그런데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글 쓰는 일만큼은 여러분에게 즐거운 일이 된다면, 그 결과로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니까 방송작가 너무 부러워하지 마시고, 글쓰기를 좋아하세요. 여러분과 함께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같은 일을 조금 먼저 시작한 사람으로서 제가 저에 대한 다짐의 의미이자 여러분께 부탁하고 싶은 얘기를 하나 할게요. 이 바닥에서 은어 비슷하게 '빤쓰 벗고 뛴다.'는 말을 해요. 길을 가다가 갑자기 누가 옷을 다 벗어 던지고 팬티까지 벗고 뛰면 사람들이 다 봐요. 보고 싶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다 보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빤쓰 벗고 뛴다.'는 말은 무조건 보게 하기 위해서 팬티까지 벗겠다는 얘기고, 아주 자극적인 얘기를 그것이 유해독소가 있든 없든 자극적으로 해서 보게 하는 것이 목표라는 거죠. 예를 들어서 신데렐라 이야기, 돈 많은 남자 만나서 팔자를 고치는 것만이 여자의 유일한 행복의 완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심어주는 드라마라도 하겠다는 거고, 기타 등등 자극적인 소재들이 많잖아요. 왜 그렇게 하냐고 물어보면, 사람들이 보고 시청률이 올라야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으니까 그러는 거죠. 굉장히 쓸쓸한 말입니다. 드라마의 태생이 '상품'이라는 말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그 상품을 만드는 우리들, 그러니까 생산자는 양심적이고 질 좋은 상품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청률이 많이 올랐는데 전부 욕하고 손가락질 하면서 봤던 드라마들을 떠올려보세요. 왜 욕했는지도 한 번 생각해보세요. 왜 비웃었는지를 잊지 않는다면, 나중에 등단한 작가가 되었을 때 그 손가락질이 나에게로 향하게 되는 것만은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좋은 작품을 쓰는 좋은 작가로 일선에서 만나기를 바랍니다. 또 여러분들이 질문하신 것 중에 보면 소재는 어떻게 찾는지, 캐릭터는 어떻게 만드는지, 취재는 어떻게 하는지를 굉장히 많이 궁금해 하시는 것 같아서 그걸 좀 말씀드릴게요. 없는 소재를 발로 뛰니까 찾아진다기보다, 그냥 소재가 나한테 와요. 일을 하지 않을 때도 나는 늘 생각을 하고 세상만사를 보고, 그런 것들에 어린 애처럼 굉장히 열심히 반응 하면서 그 희로애락을 느끼다 보면 '나도 저런 슬픔, 저런 기쁨, 저런 감동을 전해주고 싶다.'는 이야기꺼리가 나에게 오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 거저 얻어진 것 아닌 거 같습니다. 저는 교육원에 다니기 전에 7년 정도 학원에서 중고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쳤어요. 여러분 중에도 그런 분이 계시겠지만, 학원 강사라는 생활이 남들과는 리듬이 달라요. 남들이 출근할 때 잠을 자고, 오후 느즈막이 수업이 시작해서 밤늦게 끝나고, 주말에 수업이 많기 때문에 남들 놀 때 일해야 해요. 그러면 저는 친구들을 만날 시간이 없고, 여행을 갈 수도 없고 그래서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이 책을 읽는 거였어요. 7년 동안 목적의식을 가진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됐는데, 저희 집에 책이 깔려 죽을 만큼 많아요. 지금 여러분은 책을 읽으면서 이것이 드라마꺼리가 되는지, 구성, 인물, 주제, 소재가 어떻고 저떻고 트집을 잡으면서 보시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 때 정말 즐기면서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에 책을 읽는 자세가 팔짱 낀 자세가 아니었어요. 그렇게 즐기는 것이 오래 거듭되다 보니, 이야기라는 양식을 가진 것들의 구조가 어떻고, 어떤 인물들이 나와야 그 책을 재미있게 읽고 또는 재미없게 읽고… 하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힌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제일 권하고 싶은 영화 보기나 책 읽기의 방법은 즐기라는 거예요. 아무 생각하지 마시고, 적극적이고 관용어린 자세로 읽으세요.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구조도 눈에 들어오고 어떤 것이 거짓된 감정이고 어떤 것이 즐거운 감정인지 알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교육원에 다니는 이 시기가 또 가장 좋은 시절이고, 여러분의 무한 상상력과 결합해서 시너지효과를 낼 테니까 책 많이 보시고, 영화 많이 보세요, 즐겁게. 취재는 아까 최완규 선생님께서 말씀을 다 해주신 걸로 알고, 또 거기에 있어서는 제가 최완규 선생님한테 명함도 못 내밀죠. 저는 약간 테크니컬한 부분만 말씀드릴게요. 여러분들이 '취재는 어떻게 하는지.'를 묻는데 처음에는 그 '어떻게'가 무슨 말인지를 몰랐다가 나중에 생각해보니 의외로 '구체적인 방법. 사람에게 다가가는 기술'을 묻는다는 걸 알았어요. 그거야 각자 개성이고 나만의 노하우겠죠. 취재할 때 여러분이 녹음기를 들고 가거나 수첩을 들고 가서 '이런 걸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하고 수첩부터 펼쳐 놓지 마세요. 그러면 취재원은 긴장을 하고 경계도 해요. 취재원은, 저 사람이 다 받아 적을 거니까 군더더기 없는 말을 해야 하고, 문법적으로 옳아야 하고, 나쁜 말은 하면 안 되고 이런 긴장감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내가 알고 싶은 정보를 현장감 있게 들을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서 조직폭력배를 취재해야겠다 하면 아는 사람의 사돈의 8촌을 동원해서라도 연결해 보고, 그래도 안 찾아지면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영등포 뒷골목에서 진치고 계시던지 해서 그 취재원에 어떻게든 접근을 하셔야겠죠. 저는 '피아노'를 위해서 조폭을 만나야 했는데 저의 경우에는 감독이 알고 있는 조폭이 있어서 수월하게 만났어요. 그 사람들이 겉으로는 우락부락하고 문신도 있고 칼자국도 있고 그런데 마음은 정말 의외로 비단결 같고 감수성이 정말 예민해요. 그 사람들도 수첩을 꺼내면 얼어요. 그냥 어떻게 살아왔는지 살아온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세요. 보통의 사람들은 자기 얘기를 하는 걸 의외로 좋아하고, 누군가 진지한 눈으로 보면서 듣고 있다는 걸 즐거워해요. 공감의 자세로 들으면 이야기가 졸졸졸졸 나와요. 여러분들이 궁금한 게 그 사람 전체는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듣다 보면 원하는 관련된 부분이 나오거든요. 그 때 굉장히 흥미롭다는 듯이 질문을 막 하시면 아주 열성적으로 대답해요. 어떤 사람은 드라마 장면까지 만들어줘요. 가장 취재하기 힘든 분들은 교수님들이에요. 이해는 해요. 저한테도 누가 작가의 일상을 알고 싶다고 물어오면 귀찮을 것 같은데, 술 사주면서 같이 친구처럼 얘기하자면 할 수는 있을 것 같긴 해요. 처세술 같지만 어차피 여러분들은 죽을 때까지 남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해요. 전문적인 영역의 자료를 수집하시려면 인터넷 검색을 먼저 하시잖아요. 필요하긴 한데, 그 지식검색은 1차적인 접근 방법으로만 쓰세요. 대충의 윤곽을 잡고 분위기를 파악하는 정도의 용도로만 인터넷 검색을 활용하세요. 그 다음엔 뛰셔야 해요. 인터넷 검색은 발로 뛰어야 하는 동선을 많이 줄여줘요. 그리고 취재라는 것은 혼자하기보다 여럿이서 하면 훨씬 더 빨리 방대하고 주옥같은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어요. 글 쓰는 친구들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나의 일에 관심 가져주고 응원해 주는 친구들이 있을 거예요. 조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친구들과 공유하시고 도움을 얻으시면, 취재자의 개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정보들까지도 다 가져오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긴 드라마를 쓰면서 저 혼자 취재할 시간이 없어서 보조작가를 두었는데, 그 친구는 낯짝이 뻔뻔하고 무서운 것도 없고 사람 만나는 일 자체를 너무 즐거워하는 친구라서 훨씬 더 많은 걸 얻어왔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처음에는 부끄럽고 쑥스럽겠지만 조금 적극적으로 얼굴에 철판을 깔면 내 드라마가 훨씬 더 풍성해져요. 도움이 되셨길 바래요. 시간이 많이 남긴 했지만, 여러분들이 질문하신 양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그 질문들에 대답하는 시간으로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박수) <진행자 : 김규완 선생님께도 질문 항이 많은데, 조금 중복되거나 강의 중에 말씀하신 부분은 뛰어넘고 남아있는 질문을 하고 나서, 시간이 되면 세 분 정도 현장에서 직접 질문을 받아보기로 하겠습니다. > '사랑한다 말해줘'를 감명 깊게 봤습니다. 특이 이나라는 캐릭터가 가장 마음에 남는데, 캐릭터를 구상하실 때 염두에 두시는 점은 무엇인지가 궁금합니다. 여러분의 시높시스를 보게 되면 '명랑하고 유쾌하고…' 등 그 사람의 성격을 써두고 그것을 그 사람의 캐릭터라고 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제 생각에는 그런 성격만이 캐릭터인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전체의 모습이 어떠한가가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드라마 첫 회에 등장하기 직전까지 이 인물은 어떻게 살았을까, 드라마 밖에서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기에 지금 이런 첫 모습으로 등장하는가, 이것이 캐릭터라고 생각하거든요. 인물을 정하고 나면, 마치 그 사람의 전기를 기술하듯이 써봅니다. 그러다 보면 그 인생 굴곡의 무늬에 따라서 그 사람이 처음 드라마에서 무슨 말을 할지, 그리고 어떤 톤으로 말할지, 화를 낼지 아니면 울면서 등장할지, 그 음색은 어떨지가 결정되거든요. 이나의 캐릭터는… 보통 원론적으로 작법책에 보면 '프로타고니스트, 안타고니스트' 이런 말들이 나오잖아요. 그 인물들 사이에 바늘구멍만하게라도 소통의 구멍 하나를 반드시 뚫어 놓습니다. 그러면 팥쥐와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악한 인물도 등장하지 않고, 콩쥐처럼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전형적인 인물은 나올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나도 그 바늘구멍을 통해 연민과 이해를 흘려보낸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악한 사람도 없고, 선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되면 자칫 캐릭터가 모호해지지는 않을까요? 서툴게 이해하면 모호해진다는 얘기를 듣겠죠. 그리고 실제로 모호해졌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는데, 잘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어요. 그걸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노력하느냐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창조해 낸 극중 인물 중에서 가장 사랑했던 캐릭터는 어떤 드라마의 누구였으며 그 이유는? 저는 너무 사랑했는데 감독이 너무 싫어해서 그 뜻을 펼치지 못한 경우가 있었는데, '피아노'라는 드라마에서 부둣가의 깡패였던 '독사'와 '영탁'이라는 인물입니다. 깡패의 보스와 중간 보스였는데 그 두 사람의 관계가 서로를 참 믿고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쟤가 언제 내 등 뒤로 칼을 꽂을지 몰라.' 두려워하고 또 한편으로는 나를 떠날까봐 두려워하는 그런 캐릭터였는데 제가 그 관계를 야심만만하게 표현하려고 원고를 썼는데, 주인공도 아닌데 얘네들 얘기를 왜 이렇게 길게 썼냐며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하셔서 못썼습니다. 시나리오작가 지망생들이 드라마작가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줄리엣의 남자' '건빵선생과 별사탕'을 집필했던 박계옥 작가는 드라마를 쓰기 전에 '돈을 갖고 튀어라' 등등의 시나리오를 써서 이미 영화판에서 명성을 날리던 작가였고, 지금 '가을 소나기'를 집필하고 있고 좋은 드라마를 많이 쓰셨던 조명주 작가는 처음에 '접속' '연풍연가' 등 시나리오를 먼저 시작했어요. 가끔 드라마를 쓰다가 영화 시나리오도 쓰고 왔다 갔다 하시는 분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그 분들이 보여주고 있고, 둘 다 영상언어로 이뤄져 있다는 것과 기본적인 이야기 양식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습작시절에 대해서는 아까 책이나 영화에 즐겁게 빠져들라는 요지의 말씀하셨는데, 사실 막막하다 보면 그 상황에 즐겁게 빠져들기가 쉽지 않죠. 1년에 단막극 한편씩 쓰면서 무작정 즐겁게 읽고 있는 그런 상황이 가능할지… 그 동안 지탱해왔던 힘이라고 할까 그런 것은 어떤 것이었는지? 사람이 좀 철이 없으면 되는데요.(웃음) 저 같은 경우에는 저희 집이 그렇게 넉넉하지 못한 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5년 동안 돈을 한 푼도 못 벌어 오는데 어머니께서 '돈을 벌어와라.'든지 '시집이나 가버리지.' 이런 얘기를 단 한 번도 안 하셨어요. 저에게 단 한 번도 그런 부담을 주지 않으셨어요. 부담주지 않으셔도 마음 한켠에 분명히 부담이 되긴 되죠. 딸이 언젠가는 훌륭한 작가가 될 거라고 믿어서 그러셨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제가 좋아하니까, 즐거워서 그렇게 책을 읽고 앉아있고 하는데 그걸 못하게 하실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아마 부모님 마음은 다 똑같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집안의 시선 때문에 힘드시다면 진지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서 구체적인 플랜을 말씀드려보세요. 2년이면 2년, 3년이면 3년 동안 부모님께 폐를 끼쳐드릴 텐데 그 기간만 조금 저를 도와달라고 간곡하게 말씀드리시면, 그 기간 동안 밥은 먹여주실 거 아녜요. 그렇게 부모님이 주시는 밥 얻어 드시고 나중에 은혜를 백배로 갚으세요. 드라마를 만들 때, 주제나 형식 등을 잡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어떤 건지? 적어도 '빤쓰 벗고 뛰지는 말자.'는 게 언제나 가장 공통된 거예요. 그 다음 두 번째는… 제가 그간 해온 드라마가 약간 어렵다는 얘기를 들어요. 최완규 선생님께서도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 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저는 어렵게 쓰더라도 보는 사람은 쉽게. 제 드라마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저에게는 핸디캡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쉽게 볼 수 있도록 쓰자.'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씁니다. 그럼 본인의 취약점이랄까 그런 것이 너무 진지하고 어렵게 쓰는 건가요? 취약한 부분은 어떤 거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한두 개가 취약해야죠. 어떤 감독이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너는 해석력은 좋은데 기획력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기획한 이 드라마가 다른 사람에게 재미있을지 없을지를 생각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참 오해인 것이, 저는 분명히 그런 것을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이 드라마가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 분들이 보기에는 재미없는 거예요. 아까 최완규 선생님이 말씀하신 부분과 일맥상통하는 얘기인데, 이 이야기가 재미있을까 재미없을까를 판단하는 '극적 본능'이 저에게는 굉장히 취약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현장에서 구르다 보면 어떤 드라마가 성공하는지 조금 감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생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차피 드라마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판단해줍니다. 시청률을 늘 염두에 두시는 감독이나 제작자들이 판단해 주시고, 제가 그 판단력이 부족한 만큼 조언을 많이 듣는 편이에요. 김규완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작가는 타고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천부적 재능이 몇 %, 후천적 노력이 몇 %? 김수현 선생님 같은 분을 보면 분명히 타고 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김수현 선생님과 비교를 하다 보면 그 누구도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작가가 없을 것 같아요. 피 속에, 유전자 속에 단 몇 %라도 조금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무당의 기질이랄지, 곡마단의 피에로 같은 기질이랄지 그런 것들이 단 몇 %라도 피 속에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이 어느 날 발현이 되는 거겠죠. 그 피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작가가 되고 예술가가 되는 건 아니죠. 그러나 일단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갖고 있고, 그 유전자가 노력과 결합을 해서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업을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나 연습법이 있나요라는 질문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서 지난 번 특강 때 이경희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포스트잇을 많이 이용한다는 얘기를 하셨거든요. 그런 구체적인 노력이 어떤 게 있으신지요? (질문지를 들여다보고는)'없다'라고 써놓았네요. (웃음) 저도 여러분들과 똑같이 하는데요, 여러 번 말씀드려도 지나치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메모'하는 거예요. 특히 작업을 할 때는 종이와 연필이 주머니 속에 있지 않으면 불안한 상태가 돼요. 왜냐하면 작업하는 동안에는 온 신경이 원고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 원고와 관련된 내용이 아무 때나 팍팍 떠오르고 머릿속을 스치기도 하고, 화장실에서 일을 보다가도 떠오르는데 그걸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늘 메모를 해요. 이 메모가 병적으로 되기도 했었어요. 나중에 그렇게까지 병적으로 하지는 않게 되어서 과거의 메모노트를 보면, 자다가 일어나서 꿈꾼 내용을 기록할 만큼 메모에 집착했었어요. 그런데 실제로 그 노트가 긴 드라마를 집필할 때 여러 가지 소스를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메모하는 것이 노하우라면 노하우죠. 막연히 '이런 걸 쓰고 싶다.'라고 느끼는 것을 주제 잡고 구체화시키는 방법? 이것은 작가의 개성마다 그 방법이 다를 텐데, 저의 경우에는 회의 할 때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것처럼 떠오른 그 화두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적어 봐요. 예를 들어 '사랑'에 관해 쓰려고 한다면 사랑에 관계된 유의어를 전부 적어본 다음에 쓸 데 없는 것은 다 버리고 내가 하려는 얘기의 범위를 점점 좁힙니다. 물론 그 중에 0.1%만 활용하게 되는데, 그렇게 좁히다 보면 이 사랑 얘기를 운반할 '사람'이 고맙게도 떠오릅니다. 인물이 떠오르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그 때부터 아까 말씀드렸듯이 그 인물의 전기를 쓰는 것으로부터 구체적으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단막극이 아닌 연속극이나 미니시리즈에서는 집필하는 과정이 첫 씬부터 차근차근 진행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요? 보통 저는 첫 씬이 쓰여지지 않으면 두 번째 씬도 안 나옵니다. 두 번째 씬을 못쓰면 세 번째 씬도 안 나와요. 그래서 중간에 한 번 막히면 영영 못씁니다. 가령 나중에 많이 써보고 난 뒤에는 중간을 좀 비워놨다가 뒤를 먼저 쓰고 나중에 채우기도 하지만 그랬을 경우에는 원고가 마음에 별로 들지 않더라구요. 쓰시는 분들마다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트리트먼트라고 하는 구성표를 굉장히 세밀하게 써놓으신 분들은 아마 그런 일은 없으실 텐데, 저는 일단 첫씬이 나와야돼요. 촬영 장소 선정을 작가가 하는가, 또 작가가 카메라 감독의 카메라 기법에 참견하는가라는 질문이 있는데? 저는 한 적이 없습니다. 촬영 장소를 염두에 두고 쓴 적은 없으니까 대본을 보고 이 장면을 어디서 찍으면 좋을까 하는 것을 고민하는 것은 제작하시는 분의 고유 영역인 것 같아요. 이런 경우는 있었어요. '피아노'를 끝내고 감독과 함께 울진에 놀러 갔는데 아름다운 대나무숲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거기를 저도, 감독도 마음속에 담아뒀다가 '사랑한다 말해줘'를 작업할 때 누가 먼저랄 거 없이 거기를 배경으로 쓰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서로 하게 돼서 그 때는 본의 아니게 촬영장소를 선정한 꼴이 됐어요. 카메라 기법 같은 경우에는 원래 잘 알지도 못하잖아요. 여러분들은 잘 아시나요? 저는 모르는데. 그건 참견할 필요도 없고, 참견하면 실례인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쓴 원고와 의미가 달라지게 너무나 이상한 촬영을 하시는 감독은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만났습니다. 믿고 맡겨 두시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집필에 대해서 생각하시는 의견이랄까 장단점 같은 것이 있다면? 공동집필은 할 수 없습니다. 한 작품을 니가 한 줄 쓰고 내가 한 줄 쓰고 이렇게는 못해요. 그런데 드라마의 양식이 워낙 다양해지고 있다 보니, 또 예컨대 '전원일기' 같은 주간 시추에이션의 경우에 매주마다 달라지는 에피소드를 한 작가가 매주매주 생각해내기는 어렵기 때문에 편의상 한 주는 니가 쓰고 한 주는 내가 쓸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전제되어야 할 것은 이야기 틀을 만들고, 인물을 정하고, 인물의 톤을 맞추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의논해야 한다는 거죠. 한 작품을 혼자 쓰더라도 내 머릿속에서 많은 의논을 하잖아요. 마음이 잘 맞는 두 사람, 세 사람은 한 사람이 혼자 애쓰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효과를 낼 수도 있고, 뜻이 맞지 않는 경우에는 배가 산으로 가죠. 한 줄씩 나눠 쓰는 게 아니라면 분명히 가능한 작업이고, 드라마 양식이 다양해지면서 필요불가결 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작업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공동작업'은 가능하고 '공동집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 드라마는 진지한 스토리보다는 가볍고 유머러스한 작품들이 많은데, 방송사에서 그런 요구를 하는 건지? 방송사에서 그런 것만을 받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떤 경우 작가와 방송사가 야합을 하기도 합니다. 피곤하게 사는 사람들이 누가 골치 아픈 드라마를 보겠냐, 즐겁고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해줘야지라는 인식이 바탕 되어 있어서 가볍고 경쾌한 이야기를 선호하는 트랜드가 최근 몇 년 동안 있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잘 살펴보면 꼭 그것만이 주류가 아닌 경우가 많아요. 무겁고 진지하고 침울한 작품인데도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던 경우도 분명이 있으니까, '내 이야기가 너무 진지해서 방송사가 받아주지 않을 거야.'하는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잘만 쓰세요. 드라마는 왜 존재해야 하는지, 드라마에 대한 김규완 선생님의 철학이랄까 그런 것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그럼 존재하지 말아야 되겠습니까?(웃음) 이 지구상에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드라마건 뭐건 '이야기'의 양식은 영원히 계속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옛날 얘기를 들어왔고,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하고 뒤를 궁금해 하는 호기심이 인간의 본질 중 하나죠. 그 이야기의 다양한 형태 중의 하나로 드라마라는 것이 있는데, 드라마는 텔레비전만 켜면 되니까 참 쉽게 볼 수 있어요. 제가 가르치는 반의 학생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에 한 학생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이런 글을 남겨서 그게 머릿속에 많이 남아있는데, '밖에 나와 있다가도 몇 시가 되면 우리 엄마는 그걸 보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이제 자식을 다 키워 놓으시고 별다른 소일거리가 없으신 우리 어머님들을 위해서라도 드라마는 꼭 존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물 이력서 작성에서는 캐릭터가 개성이 강하고 분명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막상 대본을 쓰고 보니 흐릿하다면 무엇이 잘못된 건지, 어떤 노력을 하면 다시 살릴 수 있을까요? 인물의 이력서라는 것을 작업을 할 때 가장 기초 공사인데, 기초 공사 끝내 놓고 건물 다 지었다고 하면 그런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 이력을 가진 인물을 만들어냈으면 그 인물들을 자꾸만 만나게 하고 부딪히게 해야 사건이 만들어지는데 그걸 안 해놓으면 갈등을 가지고 부딪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잘 못했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받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드라마를 쓰시기 전에 소설에 먼저 뜻을 두셨거나, 다른 장르로 가기 위한 전단계쯤으로 드라마를 쓰시려는 분들, 혹은 아직 미숙하신 분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는 현상이에요. 아직 미숙해서 그런 거니까 시간을 가지고 계속 연습하다 보면 흐릿하지 않고 뚜렷한 사건과 인물들이 나타날 겁니다. <진행자 : 김규완 선생님께 질문하고 싶은 분들이 계시면 질문을 좀 받아볼까요? > 교육원에 재학 중에는 일정한 커리큘럼에 따라서 작품도 써야 하고, 내 작품을 봐주는 친구들도 있고 선생님도 계시지만, 교육원을 졸업한 후에는 그런 압박도 없을 테고 전문적으로 봐줄 사람들도 없을 텐데 이런 과정에서 어떻게 공부하셨는지 궁금하고, 그만큼 나를 다잡을 수 있는 의지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전문반 올라갈 무렵에 신인상을 받았고, 전문반 다니면서 그 방송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 경우랑은 조금 다른데, 그 때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을 보면 교육원을 계속 재수하거나 했던 것 같아요. 재수가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겠지만 좋은 점 하나는 그런 자극을 끊임없이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어느 정도 공부하고 나면 선생님들의 말씀이 크게 도움이 안 되고 들었던 얘기 또 듣고 별다른 새로운 얘기도 없을 수 있는데, 같이 공부하는 동료들이 계속 작품을 내기 때문에 오는 자극. 동료들이 쓴 좋은 작품을 보면 나도 쓰고 싶다는 자극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된다면 교육원을 계속해서 재수하시는 방법을 권하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TV드라마를 보도 계속 가슴이 떨리고 피가 끓는다면 하셔야 되는 일인데 교육원 졸업 후 드라마를 봐도 별로 가슴이 안 뛴다면 그냥 즐겁게 다른 일 하셔도 되구요.(웃음) 강의를 들으면서 조금 건방진 생각이겠지만 '저희는 지금 걷고 있는데, 뛰는 것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저희에게 아주 좋은 미니시리즈 기획안이 있다 하더라도 같이 하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요. 현재 저희는 단막을 통과해야만 미니시리즈도 쓸 수 있잖아요. 지금 저희에게 가장 큰 숙제는 단막을 얼마큼 잘 써야만 이 관문을 통과하느냐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요령을 말씀해 달라는 것은 아니지만 단막을 쓰는 데 있어 조금 더 도움이 될만한 얘기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MBC가 베스트극장을 폐지해버렸고, SBS가 오픈드라마를 폐지해버리는 나쁜 짓을 했잖아요. 정말 어리석은 짓인데 제가 아무리 어리석다고 소리 높여 외쳐도 제 말 듣고 부활시켜 주지는 않거든요. 이제 KBS 드라마 하나가 남았는데, 그 대신에 MBC는 4부 연작드라마라는 형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통로가 좁아지긴 했지만 아주 없진 않죠. 단막극 쓰는 방법은 여러분들 선생님께서 다 가르쳐 주셨을 텐데, 소재를 얻는 방법에 관련된 얘기 한 가지만 할게요. 소재가 어느 순간 저한테 온다고 했잖아요. 온다는 게 이런 의미에요. 예전에 '집에 가는 길'이라는 단막극을 썼을 때, 신문기사로 그 소재가 왔어요. 신문을 열심히 보다 보면 어떤 드라마보다 눈물 펑펑 흘리게 할 가슴 뜨거운 드라마가 있거든요. 그 기사는 맞벌이 부부가 아이들을 맡겨놓을 곳이 없어서 밖에서 문을 잠그고 일을 나갔는데, 그 사이에 불이 나서 안타깝게 저 세상으로 갔다는 거였어요. 그 기사 한 줄이 너무 가슴이 아파서 오래 묻어 두고 있다가 어느 날 써보기로 한 건데, 그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조명하자니 부모를 생각하면 너무 가슴 아파서 직접적으로는 도저히 쓰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가능하면 유쾌하게 살려고 애쓰는 소년가장의 이야기를 메인에 놓고, 나를 울렸던 그 부부를 그 소년가장 옆방으로 이사 오게 해서 드라마를 써서 SBS 공모에 냈는데 떨어졌어요. 떨어지고 나서도 방송을 원하는 PD가 있어서 방송이 됐어요. 수업을 하다 보니 이런 일이 있어요. 필을 받아서 의욕이 앞서다 보니 본인은 감동적으로 막 써왔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아주 어지럽기 그지없어요. 그건 자기감정에 너무 빠져서 취사선택을 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이를 테면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잖아요. 그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제라고 치고, 그 이야기를 운반할 기재를 소재라고 치면, 그 모든 소재와 이야기들이 주제를 향해서 달려 나가야 되는데, 곁가지로 불쑥불쑥 솟아나는 필을 감당하지 못해서 한 이야기에 모두 다 담아서 40장씩 써오시는데… 단막극은 단일한 기둥을 가지고 가능하면 단일한 인물이, 단일하다는 말은 한 사람이 아니라 한 집단이거나 한 커플이거나 보통 그렇게 되어야 맞아요. 메인 인물이 늘어나다 보면 중요한 얘기가 두 가지, 세 가지로 늘어난다는 거거든요. 그렇게 되면 미니시리즈가 돼야지 단막에서는 다 소화할 수 없다는 점, 나에게 온 필을 다스릴 줄 아는 능력,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 이것이 단막극에서는 중요한 점 같습니다. 앞에서 다른 학생이 말했듯이 작가 등단의 문이 좁고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에, 제 주위에서도 보면 프로덕션 등에 보조작가로 들어가서라도 일단 먼저 시작을 하려는 친구들이 많고, 프로덕션에서 상처를 받고 나오는 친구들의 얘기도 듣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각오하셔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외주제작사의 보조작가가 일견 바람직한 측면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드라마의 성패요인 중 가장 큰 것을 배우로 잡았고, 작가는 10순위 정도 됐을 거예요 아마.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전문반 강의하고 계신 구본근 감독 말씀에 따르면 국내 방송의 성공요인 중 1번이 작가이고, 2번이 배우, 해외로 수출할 때에 1번이 배우고, 2번이 작가라는 말씀을 언젠가 하시더라구요. 얼마나 탄탄한 대본을 갖고 드라마를 시작하느냐가 성공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다라는 것은 올바른 인식으로 들어섰다는 거고, 그런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겁니다. 그리고 신인작가이지만 훌륭한 대본을 써서 성공을 거뒀던 몇몇 작품이 있다는 거 알고 계시죠? 드라마 하나가 성공한다는 것은 제작사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건데, 작가료를 조금 지불했는데 대본이 너무 재미있어서 광고수익도 많이 얻고, 수출해서 돈도 많이 받자 그동안 작가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신생 외주제작사 등에서 작가를 잡기 위해 난리가 난 거죠. 이것은 여러분들에게도 기회고, 제작사에도 톱스타 캐스팅에 들어갈 많은 노력을 신인 작가 하나가 줄여줄 수 있기 때문에 얼마나 좋은 일이겠어요. 그래서 그런 시도를 하다 보니 된다 싶은 작가를 일단 계약하고 성과가 없으면 집에 가라는 거고, 집에 가라는 말에 상처를 받는 거겠죠. 일에 대한 보수마저 지급하지 않는 양심불량의 제작사도 있어요. 그게 현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각오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상처 받은 그 작가가 물론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런 경험이 나중에 거름이 되고, 결코 헛된 경험이 되지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고, 제작 상황이라든지 방송판을 경험했을 거기 때문에 너무 상처 받지 말고 힘내라는 말 전하고 싶고, 여러분도 상처 받을 각오는 하세요. 저도 5년 동안 무수하게 많은 상처를 받았는데 나중에는 상처 덜 받고 '그래 너랑 안 놀면 되지.'라고 코웃음 칠 수 있는 내공이 생기더라구요 |
|
출처: 호호호 ~ 원문보기 글쓴이: Nayan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