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보여준다'는 말이 무슨 뜻일지 궁금한 마음으로 찾아갔던 소보사.
가장 먼저 들은 이야기는 청각 장애인과 농인의 차이였어요. 흔히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을 '청각 장애인'이라 하지만 귀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 있듯 (수어를 통해)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의미로 '농인'이라 부른다고 해요. 청각 장애인은 수어가 제1언어가 아닌 이들이에요.
소보사는 농인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도록 수어를 중심에 둔 전국 유일의 배움터인데요. 수어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농인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언어이고, 그래서 수어가 농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하다고 합니다.
소보사 배움터 학생이었다가 지금은 교사로 함께하는 지원, 상욱 선생님 살아온 이야기 들었어요. 상욱 선생님은 중학생 때 농학교 선생님이 수어를 사용하지 않아 공부와 소통에 어려움 겪었다고 해요.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소보사에서 마음과 생각을 다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수어라는 걸 깨달았다고요.
고등학생 시절에는 친구들이 꿈을 포기하고 체념하는 모습을 보며, 농인들의 꿈을 찾아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을 품었다고 해요.
지원 선생님은 청인과 함께 학교를 다녔지만 중학교 때 농학교 친구들과 친해져 그제서야 수어를 배웠다고 해요. 공부의 즐거움을 수어로 알려주고 싶어 선생님이 됐다고 해요.
한편, 병원은 인공와우 수술(인공 달팽이관을 삽입해 소리를 증폭시키는)을 권하고 정부도 수술비를 지원해줍니다. 하지만 수술 후 이어지는 지난한 언어치료 과정에서 농인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해요. 기술적으로는 언어를 배우지만 자연스러운 상호작용 자체는 아니라서요.
또 농인들은 시위 현장에 나가도 온전한 이야기를 전달하기 어렵고, 농사회 지도력이 때론 청인보다 농인을 더 억압하는 현실도 알게 됐어요.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국가와 자본의 힘이 농인에겐 매우 촘촘하고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그동안 너무 몰랐던 건 아닌지 깨닫습니다.
소보사를 일궈온 주희 선생님은 지난 30년간 농사회가 쉽게 바뀌지 않는 모습 보면서 절망하는 시간이 많았지만, 오히려 투쟁이 아닌 삶으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결심했다고 해요.
아이들이 스스로 ‘청각 장애인’이 아닌 ‘농인’의 정체성을 갖고 수어로 소통하며 자기답게,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느끼셨다고요.
농사회가 바뀌지 않더라도 농인이 힘 모아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우리의 변화를 보여주는 쪽으로 운동의 성격을 다시 정하면서 공부방에서 대안학교로 새 출발한 소보사. 이곳에서 만들어가는 변화들이 이 삶과 운동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이라고 나눠주셨어요.
특히 선생님들은 햇빛 들어오는 방에서 아이들이 자기 언어인 수어로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걸 보면 마음이 녹고 행복을 느낀다고 하셨어요.
저는 수어로 이제 막 ‘안녕하세요’ ‘맛있게 드세요’ ‘고맙습니다’ 정도만 할 수 있는데 옆에서 수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 활기차다고 느껴요.
온갖 동작과 표정을 사용하고 계속해서 눈을 맞춰야 하는 대화 방식이지요. 눈도 마주치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던 옛 순간들이 떠오르면서, 생기란 정성껏 소통하는 관계 안에서 채워지는 것임을 봅니다.
농인 아이들이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언어로 이야기하며 농 정체성을 든든히 세울 수 있는 소보사가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에 응원하는 마음이 차올랐습니다.
나아가 소보사는 얼마 전부터 인근의 청인 마을학교와 수업으로 만나기도 하고, 사회선교학교에서 예전에 탐방 갔던 인수마을밥상에서 청인들과 수어로 인사하며 지내고 있는데요.
농인이 청인에게 맞춰지는 관계가 아닌 청인들이 수어를 배우며 마음 내는 모습을 보면서, 농인과 청인이 함께 살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해요. 농인과 청인이 있는 모습 그대로 더불어 지내는 생태계가 더 푸르게 움텄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