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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3장
그리스도를 마귀의 세력으로 비난하는 종교 지도자,
예수님의 참된 가족
(찬송 14장)
2023-3-24, 금
맥락과 의미
마가복음 2장에서 시작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공격에 대한 5개의 이야기는 3:6까지 이어집니다. 3장 마지막에서는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도 바리새인들의 비난에 흔들립니다.
3장의 첫 부분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것으로 논쟁이 일어나고, 마지막 부분은 예수님이 마귀에 들렸다고 가족과 바리새인이 비난하는 내용입니다. 그 사이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제자 공동체를 세우시는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비난하는 종교 지도자들과 가족들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새롭게 세우십니다. 세상을 뒤바꾸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자 저항 세력이 일어납니다. 사단이 저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악한 세력을 부수는 일에 힘을 소진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악과 도전에 대한 예수님의 해결책은 제자들을 세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악과 싸우는 일에 힘을 많이 쓰기보다 새로운 사회를 세우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3장에서 예수님은 회당과 바다, 산과 집, 네 장소로 옮겨 다니십니다. 회당과 집 사이에 바다와 산이 있습니다. 회당과 집에서는 사단의 목소리와 핍박이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병을 고치는 일을 하셨습니다. 산에서는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주님은 바닷가와 산에서도 구원의 일을 하십니다.
지금 우리의 집, 내가 일하는 직장이 회당이나 집과 같은 안락함이 없습니까? 바다 바람이 불어옵니까? 산처럼 황량합니까? 그곳에 주님이 계십니다.
1. 안식일에 병고치심과 논쟁 5: 안식일은 선을 행하는 날(1-6절)
2. 바다로 가심,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 못하도록 경계함(7-12절)
3. 산에서 기도하시고 제자들을 부르심(13-19절)
4. 예수님의 가족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귀신들렸다고 비난함(20-35절)
1. 안식일에 병고치심과 논쟁5: 안식일은 선을 행하는 날(1-6절)
안식일에 예수님이 회당으로 들어가셨을 때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지 보기 위해 지키고 있었습니다(엿보았다, 2절).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을 반대하는 그들의 고정관념에 대해 예수님은 도전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대해 문제 삼은 것이 아닙니다. 율법주의를 문제로 삼으십니다. 그들의 완악함을 아십니다. 눈이 멀어 버린 상태를 드러내십니다. 그들은 종교 의식으로서 안식일은 잘 지킵니다. 그러나 장애인의 치유를 막습니다. 주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도전합니다.
사람들의 악한 마음을 보셨을 때, 주님은 “탄식하셨습니다”(5절). 괴로워하셨습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으셨습니다. 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그 진노를 나타내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악한 시스템을 파괴하십니다. 그 장애인을 일부러 사람들 가운데 세우신 다음에 치유하셨습니다.
5절에서 손이 “회복되었다”는 것은 사도행전 1:6에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실 때가 이때입니까?”와 같은 말입니다. 사람들을 육체적 병으로부터 회복하는 것이 기적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의 표시로서 사람들을 질병으로부터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에서 요한이 그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서 물었습니다. “오실 그이(메시아-그리스도)가 당신이니이까?” 예수님께서 “병 고침을 받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대답하셨습니다(마 11:3-5).
그리스도의 병 치유는 복음 전파를 위한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 병을 치유하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는 메시아이심을 증거하기 위해 치유하셨습니다.
“손을 내밀라” 말씀하시며 치유하셨습니다. 지금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말씀하십니다. 교회가 말씀을 선포하고, 가정에서 말씀을 읽을 때, 성령님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손을 내밀라.” 육체적 질병을 치유해주십니다.
우리 병을 고쳐주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더 가까이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죄용서 받고 회개하면서 들어갑니다. 병 고침을 받고 부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그분의 나라에 계속 들어갑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 우편에서 중보 기도하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병을 고쳐 달라고 부르짖는 성도들과 교회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치유해 주십니다(약 5:13-19).
2. 바다로 가심,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 말도록 경계함(7-12절)
1) 바다로 가심(7-9절)
기적으로 육체적 질병만을 치유 받기 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은 떠나 가십니다. 제자들만 데리고 가십니다. 배를 “대기하게” 하셨습니다. 이 말은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제자들이 기도에 전혀 힘쓰는 것(행 1:14), 말씀과 성찬, 교제에 전혀 힘쓰는 것(행 2:42,46)에 계속 사용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타시도록 배를 준비한 것은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위해서 땅에서 은혜의 수단, 그릇을 준비하는 것을 그림처럼 미리 보여줍니다. 지금도 교회는 은혜의 수단(말씀, 세례와 성찬, 교제, 기도)을 준비하는 데 온 힘을 다합니다.
제자들이 준비한 배에 몸을 실었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가 힘써 행하는 은혜의 그릇에 은혜를 담아 주십니다. 교회가 준비한 빵과 포도주와 함께 성령님을 통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의 생명을 나누어 주십니다. 빵과 포도주와 함께 그리스도는 성령님을 통해 영적으로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성례를 행하고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일에 집중합시다. 질병과 가난, 혼인하지 못함, 직장 없음, 그러한 문제들에 생각을 집중하지 맙시다. 해결사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이 명하신 은혜의 수단에 집중합시다.
예수님은 무리들이 “에워싸 미는 것”(9절)을 피해 가셨습니다. “에워싸 미는 것”은 “환난”(막 4:17, 13:9, 14)이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말씀 때문이 아니라 병고침과 먹을 것을 위해 예수님을 에워 싼 이 군중은 그분에게 환난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큰 환난을 일으킬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아시고도 무리를 환영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둘러싸여 밀렸습니다. 환난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한 것은 그들 중 선택받은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군중 가운데 떠밀리기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피해 따로 가셨습니다. 참 믿음을 가진 제자들을 따로 모으십니다. 교회를 세우십니다. 열 두 제자를 임명하시면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시면서, 핍박하는 사람들을 주의하고 피하라(마 10:17,23)고 권고하셨습니다.
우리도 환난을 주는 세상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고 복음적 삶을 살아갑니다. 고생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피하여 교회로 따로 모입니다. 다시 세상으로 들어가고, 다시 피합니다. 이렇게 주일의 예배와 6일간의 부대낌을 반복하는 동안 우리 주님이 오십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환난을 받읍시다. 기뻐하고 담대하게 직장으로 학교로 갑시다. 그리고 다시 세상을 피하여 주일 예배로 옵시다. 성찬의 영적 잔치로 나옵시다.
2) 사역의 요약(10-12절)
10-12절은 지금까지 예수님이 무리를 위하여 하신 일을 중간 정리합니다.
그들은 주로 병을 고침 받기 위한 실리적 목적으로 예수님께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를 찾는 그들 안에 거짓이 함께 있었습니다. 더러운 귀신, 즉 더러운 영들은 예수님을 보면 엎드러져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진리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귀신들린 자들의 입으로 그 진리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계, 곧 꾸짖으셨습니다.
진리의 증거도 적절한 때가 있고 합당한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들 되심은 십자가와 부활 이후에, 제자들을 통해 분명히 증명될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는 복음 전파를 위해 더러운 영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이 사단의 도움을 받으셔야 할 정도로 약하지 않습니다. 세상적으로 배운 것도 없고 가난한 그분의 제자들을 사용하십니다.
주님은 복음을 전하면서 사단의 도움을 받고 악과 타협할 수 없는 거룩한 분입니다. 거짓과 더러움의 영이 진리와 거룩의 복음을 전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복음에 불순물이 낍니다. 더 혼란스럽게 됩니다. 사단은 부분적으로 옳게 하면서 교회와 하나님 나라에 더 큰 해를 끼칩니다.
지금도 사단은 거짓된 말과 속임수로 교회와 성도를 유혹합니다. 주님이 정하지 않은 악한 방법을 조금만 사용하면 복음을 더 잘 전할 것 같은 미끼를 던집니다. 조금만 악과 타협하면 교회가 성장할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이런 마귀와 귀신의 유혹과 세력을 경계해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 너희가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오직 거룩한 영을 통해, 거룩한 사도와 교회를 통해 복음을 전파하십니다. 사도들이 전한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할 때 일하시는 성령님으로 모든 것이 충분합니다.
3. 산에서 기도하시고 제자들을 부르심(13-19)
예수님은 혼자 산으로 가서 기도하신 후(13절) 제자들을 세웠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을 얻기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더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도 지혜와 능력을 얻기 위해 기도했는데, 도대체 무엇을 믿고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교회를 세울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첫째, 그분이 원하는 뜻을 전하는 사람들을 세우셨습니다. 능력이나 선함이 있는 사람을 뽑으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뜻에 따라 무능한 죄인들 가운데서 12명을 선택하셨습니다.
둘째,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하기 위해 그들을 세우셨습니다(12절). “그분을 향하여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자와 교회는 세상으로 파송되기 전에 먼저 세상에서 나와서 그리스도와 함께 해야 합니다. 세상에 들어가 일하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합니다. 새 나라의 일꾼이 되기 전에 먼저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을 위해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20에서도, 제자들이 귀신 쫓아낸 일을 자랑할 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보다는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더 기뻐하라.”
지금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많은 일을 성취한 것보다 우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합시다. 우리가 병들고 가난해서 남들이 보기에 많을 일을 하지 못할 때도, 하늘 나라를 향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합시다.
4. 예수님의 가족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귀신들렸다고 비난함(20-35)
1)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하여 잡으러 온 가족(20-21절)
예수님의 권속, 즉 가족은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붙잡아 가려고 왔습니다(21절). 이 말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아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는 일에 쓰인 말입니다(12:12, 14:1,44, 46).
예수 그리스도의 가족이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악한 일의 한 부분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예수님을 사랑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잘 의식하지 못하면서 예수님을 핍박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그 경건한 여성 마리아까지도! 그녀는 소녀 시절에 천사를 통해 “네 아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분이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그 뜻대로 되기 원합니다”(눅 1:26-38). 마리아 까지도 사단의 시험에 빠졌습니다.
가족은 예수님이 귀신들렸다고 생각하여 다시 그를 집으로 데려가려 했습니다(21, 31-35절).
2)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사단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22-30절)
그 사이 부분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사단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하는 이야기가 끼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거짓의 영에 사로잡혔습니다. 예수님의 가족도 바리새인들의 말에 영향을 받아서 거짓의 영에 감염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선언합니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늑탈하지 못한다.”(27절) 강한 자는 사단과 그의 부하들인 귀신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단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병도 일으키는 세상 가운데 오셨습니다. 귀신의 포로가 된 사람들을 해방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사단보다 더 강한 분입니다. 먼저 사단을 결박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릅니다. 마귀와 죄의 권세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두려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사단이 두려움으로 위협할 때마다 계속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면서 마귀를 이깁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죄를 용서하십니다. 예수님을 비난하는 죄도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모독하는 죄는 영원히 용서하지 않습니다(28절). 성령님을 모독하는 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마귀를 추방한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배반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믿을 때 죄용서 받습니다. 사도 바울도 “전에 자기가 알지 못하고 교회를 핍박했기” 때문에 그 죄를 용서받았다고 간증합니다 (딤전 1:13).
그러나 예수님이 귀신들렸다고 비방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하심을 분명히 알고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합니다. 복음 진리를 알고, 구원을 맛본 다음에 다시 마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저항하는 일이 없도록 깨어 기도합시다(히 6:4-6, 12:6).
3) 예수님의 참 가족은 말씀을 배우고 행하는 자(31-35절)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근처에 “둘러 앉아서”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 뜻을 행하는 자”(35절)가 그리스도의 참 가족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가족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둘러 앉아서 교회에서 예배를 함께 드리는 가족이라야 참 가족입니다. 가정에서 둘러 앉아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찬양할 때 참된 가족이 됩니다.
혈연적으로 가족이 아닌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배하고 순종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가문에 입양된 우리의 자기정체성을 분명히 합시다. 함께 입양된 성도를 귀히 여기고 실제적인 도움을 서로 줍시다.
믿고 복종할 일
우리는 이 땅에 정의를 세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고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이 땅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유일한 해결책은 하나님이 택하신 성도와 교회입니다. 교회와 성도를 어두운 세상 가운데 빛으로 두셨습니다. 소금으로 두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사단의 세력을 멸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세우셔서, 거룩한 교회 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믿음의 사람과 가정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사단과 귀신이 굴복하고 도망합니다.
질병이 낫기를 기도합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우리의 유익을 위해 병을 주시고 오래 동안 계속 질병 가운데 있게 하십니다. 빨리 치료해주실 때도, 치료 기간이 길어질 때도,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족합시다. 병 가운데서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일(사명과 직분)을 할 수 있다”(빌 4:1-13)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집시다.
우리의 가족 관계나 실리적 이익을 위해서 그리스도께 나오거나, 그분이 하시는 일을 비난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합시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또 참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배웁시다.
우리의 가족 관계와 일상 생활이 하나님 나라의 한 부분으로 성장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는 은혜의 수단을 잘 사용할 때, 교회 안에서 가정 안에서 우리 개인 안에서 지금도 성령께서 강력하게 일하십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나는 어떻게 예수님과 한 가족이 되었습니까? 예수님과, 다른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가족을 이루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병의 치유는 우리의 구원에 대한 상징
예수님은 육체적 질병을 고쳐주시기 전에 먼저 우리 영혼의 질병을 치유해 주십니다.
한 회당장의 딸이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딸을 고쳐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때 집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따님이 이미 죽었습니다.” 그는 절망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 집에 들어가 죽은 소녀를 살리셨습니다. 지금도 병을 치료해 달라고 기도하는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딸의 병과 죽음보다 더 깊은 불행은 부모의 두려움과 ‘믿음 없음’입니다. 병과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병 고침을 받으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몸은 건강한데 두려움에 눌려 있으면 더 고통스럽습니다.
주님은 종종 육체적 질병이라는 위기를 통해 우리 안에 감추어진 두려움이라는 질병을 드러내십니다. 온 땅을 창조하시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을 완전히 믿지 않는 우리의 믿음 없음을 드러내십니다.
우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일까요? 비난하기 위해서일까요? 죄책감을 일으키기 위해서일까요? 우리의 두려움을 없애시기 위해서입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강하고 담대함은 성도의 심리현상이나 정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믿음의 선물상자의 한 부분이 강하고 담대함입니다. 질병 앞에서, 문제 앞에서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합시다.
병과 문제를 우리에게 두신 상태에서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병이 나을 가능성을 보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주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합니다. “병을 보지 말라. 나를 보아라. 너의 믿음의 눈을 들어서 나를 보아라. 나를 믿고 너의 마음을 짓누르는 두려움에서 해방되어라.” 믿음으로 우리 영혼을 계속 치유하십니다. 그러기 위해 질병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너의 자녀가 생육하고 번성하리라.” 그러나 과학적으로는 임신이 불가능한 상태에 두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환난 가운데 인내하고 연단하고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로마서 4장 19-22절입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아브라함만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 우리도 우리 죄로부터 구원하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의롭다 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딸로 입양해주셨습니다(로마서 4:23-25).
로마서 8:31-39. 교회의 성찬 때마다 새롭게 약속해주시는 말씀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습니까? 환난, 곤고, 핍박, 기근, 옷이 없음, 위험, 칼이 끊겠습니까?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병을 고쳐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와 함께 간절히 기도해도 어떤 병은 우리에게 평생 남겨 두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숙하고 하나님 나라가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도록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로마서 8:28) 일하십니다.
고린도후서 12:7-10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최전방에 서서 복음을 전하던 사도 바울에게도 하나님은 평생 힘든 질병을 달고 살게 하셨습니다. 병을 고쳐 주시기를 세 번(아주 많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나의 은혜가 너에게 족하다. 나의 능력이 너의 약한 가운데서 온전하여지기 때문이다.” 바울 자신은 약하고 고통스럽지만, 그런 바울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이 더 완전히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에게 족하다”는 말씀에 순종하여 자족하며 간증합니다. “이러므로 내가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성막을 치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한다. 왜냐하면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하기 때문이다.”(고린도후서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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