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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인간혁명 30권 제2장 雌伏(46~51)
<자복 46>
1979년 12월 16일, 시코쿠장인 구메가와 세이타로는 가나가와문화회관에서 열린 본부중앙회의에 참석해 다른 방면 간부들과 함께 회관에 머물던 야마모토 신이치와 간담할 기회가 있었다.
구메가와가 단숨에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이곳 가나가와문화회관에 계시는 동안 시코쿠 멤버 800여명과 함께 이곳에 오려고 합니다. 가능하다면 배를 빌려 타고 와서 가까운 항구에 댈 예정입니다. 저희가 도착하면 멤버들을 만나 주실 수 있으십니까?”
“시코쿠 동지들이 저를 만나러 일부러 와주시는군요. 알았습니다. 만나겠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이 정말 기쁩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구메가와는 뛸 듯이 기뻤다.
이후 일정을 정했다. 해가 바뀐 1월 13일 배로 다카마쓰를 출발해 14일 낮 가나가와문화회관에 도착하면 가나가와 멤버들과 교류회 등 여러 회합을 열고 그날 밤 시코쿠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준비 기간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게다가 연말연시를 끼고 있다. 대형 여객선을 빌리고 참석자를 선발하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출발하는 날이 되었다.
1980년 1월 13일 오후 1시 대형 여객선 ‘선플라워 7호’가 가가와현 다카마쓰항에서 구름이 낀 바다를 향해 출발했다. 출항하고 얼마 지니지 않아 배 안에서 간부회를 열었다.
한 간부가 인사에서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니치렌(日蓮) 대성인 시절, 시조 깅고는 가마쿠라에서 사도로 유배된 대성인을 찾아갔습니다. 또 사도에 사는 아부쓰보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미노부에 계신 대성인을 뵈러 갔습니다.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도 구도심을 불태워 가나가와로 가서 새로운 광선유포의 역사를 여는 결의를 함께 다지지 않겠습니까!”
발랄하고 힘찬 환성이 메아리쳤다.
구도하는 사람은 환희로 넘친다.
<자복 47>
배에서 개최하는 간부회에서 시코쿠장인 구메가와는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지금 학회가 매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야마모토 선생님은 전국 어디에서도 자유롭게 지도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힘으로도 선생님과 우리의 유대를 절대 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행동을 제한 당하신다면 우리 제자들이 스승 슬하로 달려가면 됩니다. 불타는 구도심이 있는 곳에 ‘불가능’이라는 장벽 따위는 없습니다. 우리 시코쿠가 앞장서서 선생님과 함께 창가학회 창립 50주년의 개막을 축하하지 않겠습니까!”
찬동하는 큰 박수가 터졌다. 모두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시코쿠의 에히메현 오즈시나 고치현 고치시 등에서도 악승들이 일삼는 무도한 행동과 폭언에 학회원들은 분한 눈물을 참고 또 참았다. 게다가 신심하는 학회원들의 생명선이라고 해야 할 사제의 유대를 분단하려는 음모가 드러났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동지들의 진실한 마음이자 결의였다.
신이치는 ‘선플라워 7호’ 상황을 수시로 들었다.
그리고 ‘편안하게 즐겁게 오세요’라는 전언을 보냈다. 선내 홀에 영상 시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 함께 영화감상도 하세요’라는 말을 전했다.
즐거운 배 여행이었지만 밤이 깊어지자 저기압의 영향으로 바다가 거칠어졌다.
철썩! 철썩! 쾅!
배가 몹시 흔들렸다. 그러나 구조 스태프로 참석한 닥터부 의사들이 미리 뱃멀미 예방주사를 권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 두었기 때문에 모두 무사했다.
어떤 일이든 무사고, 대성공을 거두려면 철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 따라서 니치렌대성인은 “사전의 조심”(어서 1192쪽)을 강조하셨다.
배는 파도를 헤치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모두 이튿날 신이치와 다시 만날 일을 고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자복 48>
1월 14일 아침이 밝았다. 태양이 서서히 떠올라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비추고 있다. 이윽고 ‘선플라워 7호’에서 눈 덮인 후지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종문(宗門)의 승려들이 일삼는 비방과 중상을 견디며 풍설의 나날을 이겨낸 동지들 가슴에는 당당하고 웅장한 그 모습이 깊이 와 닿았다. 배 라운지에서는 여자부원들이 신이치와 가나가와 멤버에게 들려줄 ‘친구의 노래’ 등을 연습하는 합창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오 전 배가 요코하마항에 다다랐다. 배 좌현에는 ‘선생님! 안녕하세요’라는 글자를 크게 써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붙여 놓았다. 그런데 배가 접안하는 방향은 우현이었다.
“앗, 반대편이다! 다시 붙이자!”
남자부원들이 서둘러 떼었다. 다시 붙였는데 너무 당황한 나머지 글자를 반대방향으로 잘못 붙여 버렸다. 훗날 이것도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신이치는 배가 도착하자 “자, 다 함께 환영합시다!” 하고 말하고 가나가와문화회관을 뛰어나갔다. 시코쿠 동지들은 갑판 위에 서 있었다.
오산바시 국제여객선터미널 위에는 ‘가나가와에 잘 오셨습니다’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고 가나가와 멤버들이 연주하는 시코쿠의 노래 ‘우리의 천지’가 부둣가에 힘차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환영 연주를 하는 사람들 앞에 검은 코트를 입고 열심히 손을 흔드는 신이치의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 선생님!”
모두 목청껏 신이치를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울먹이는 부인부원도 있었다.
신이치도 외쳤다.
“잘 오셨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배에서 내리는 시코쿠 동지들을 가나가와 동지들이 큰 박수로 맞았다.
여자부 대표가 환영하는 의미를 담아 시코쿠장인 구메가와에게 꽃다발을 증정했다.
신이치가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다들 몸은 괜찮습니까? 잘 오셨습니다. 이것으로 시코쿠는 승리했습니다! 21세기를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광포의 돌파구를 열었습니다.”
신념에 찬 행동이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연다.
<자복 49>
신이치는 배에서 내리는 장년부원들을 웃는 얼굴로 맞으며 어깨를 감싸 안고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격려의 말을 건넸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만나서 기쁩니다. 자, 출발입니다!”
신이치는 시코쿠 동지들의 뜨거운 구도심이 기뻤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념이 있는 한 광선유포를 위해 살아가는 창가(創價)의 사제정신은 영원히 맥동하기 때문이다.
신이치가 구메가와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 배로 오다니 놀랍군요. 재미있군요. 이것만으로도 모두 마음가짐이 새로워졌을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이렇게 여러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광선유포는 지혜로 승부를 내는 일입니다. 광포의 길에는 늘 여러가지 장벽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그래도 자타의 행복을 위해, 평화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육로가 막혔다면 해로나 공로를 이용하는 등 계속해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 거듭 전진해야 합니다. 결코 질 수 없으니까요.”
천년 전, 키르기스스탄의 위대한 시인 바리사군이 이렇게 말했다.
“생이 있는 한 모든 희망은 그대와 함께 있다. 지혜가 있으면 모든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신이치가 이처럼 환영하는 모습도 세이쿄신문에는 실리지 않았다. 아니 실을 수 없었다.
신이치가 준비한 꽃다발을 여자부 대표가 구메가와에게 대신 증정했을 때도 신이치는 옆에서 큰 박수로 축하하고 환영했다. 그러나 신문에는 이런 모습이 잘리고 박수를 치는 팔과 그 아래쪽 모습만 실렸다. 편집자가 살을 에는 듯한 심정으로 사진을 자른 것이다.
가나가와문화회관 앞에서도 가나가와 동지들이 멀리서 온 시코쿠 벗들을 큰 박수로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한결같이 스승을 구도하는 신심의 숨결을 함께 나누었다.
시코쿠 동지 중 한 사람이 외치듯이 말했다.
“제자가 스승을 만날 수 없다.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이런 말에 절대로 순순히 따를 수 없습니다!”
<자복 50>
시코쿠 멤버들은 그룹을 몇 개로 나눠 가나가와문화회관 내부와 회관 부지 내에 있는 도다평화기념관을 견학했다.
이 기념관은 일반적으로 ‘영국 7번관’이라 부르던 건물로 붉은 벽돌로 지은 역사적인 건물이다. 이 건물을 수리하고 단장해 1년 전인 1979년 8월에 개관했다.
도다 조세이 (戶田城聖) 제2대 회장이 1957년 9월 8일 이곳 요코하마에서 ‘원수폭금지선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그 정신과 의의를 새기고 반전(反戰)과 평화에 관한 자료를 전시해 시민들에게 널리 공개하고자 지은 기념관이다.
기념관에서는 도다가 발표한 ‘원수폭금지선언’을 녹음테이프를 통해 실제로 들을 수 있었다. 청년부가 1973년 이후 작업한 반전출판 서적 56권과 영역본 ‘평화를 위한 외침’도 볼 수 있었다.
또 사진패널이나 물품자료를 이용해 전쟁 중 국민의 생활, 가혹한 전쟁터에서 생활하는 병사들의 모습,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투하, 각 지방의 공습, 오키나와 전투, 전쟁이 끝나 돌아온 사람들의 참상 등을 전시하고,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을 테이프에 녹음해 직접 들려주는 코너도 있었다.
창가학회가 전개하는 평화운동의 발자취나 신이치의 평화제언, 우호를 맺은 세계식자들과 대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시코쿠 동지들은 전시품을 감상하고 테이프를 들으며 전쟁의 비참함을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 아니라 창가학회가 세계평화라는 커다란 조류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리고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새롭게 다짐했다.
‘유네스코헌장’에는 평화를 위해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한다고 씌어 있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건이 욕망과 증오 등에 사로잡히지 않는 생명을 구축하는 일이다. 바로 인간혁명이다.
창가학회는 인간의 마음속에 이러한 ‘평화의 방벽’을 세우면서 세계에 우정의 연대를 넓혔다.
사회에서 불법자(佛法者)가 완수해야 할 사명은 입정안국(立正安國) 즉 시회의 번영과 인류의 평화를 실현하는 일이다.
<자복 51>
오후 1시 반, 가나가와문화회관 3층 대강당은 꽃처럼 환한 웃음으로 가득찼다. 시코쿠와 가나가와의 교류간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가나가와를 대표해 인사한 간부가 감동에 복받친 듯 이렇게 말했다.
“시코쿠 동지 여러분! 가나가와에 정말 잘 오셨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시코쿠 여러분에게 많은 점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광선유포의 사명을 완수하고자 모두 마음을 합쳐 스승을 구도하려는 이체동심의 신심입니다. 또 ‘지금이야말로 파도를 타고 넘어 크게 전진하자. 승부를 내자!’는 기개입니다.“
신이치가 회장을 사임한 지 벌써 9개월이 되려 했다. 그런 상황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를 갈라놓는 것은 이상하다고 가나가와 동지들이 아니 전국 전 세계 동지들이 느끼고 있었다.
그런 만큼 자신들이 직접 스승 슬하로 달려가자고 정한 시코쿠 벗의 용기와 구도심에 가나가와 멤버는 공감하고 감탄했다.
이어서 시코쿠 대표가 인사했다.
“어제는 요코하마 시내에 눈이 많이 내렸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봄 날씨처럼 따뜻해서, 야마모토 선생님을 비롯해 동지 여러분이 기원해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야마모토 선생님이 계시는 동안 이곳 가나가와에 시코쿠 동지들이 차례로 찾아 올테니 잘 부탁드립니다.”
또 모리카와 가즈마사 이사장은 시코쿠 멤버의 노고를 치하하고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항해를 하다 보면 늘 바다가 잔잔한 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파도가 크게 이는 날도 있고 폭풍우가 거세게 몰아치는 날도 있을지 모릅니다. 지금 학회를 둘러싼 상황도 이와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철저한 ‘제목’과 ‘단결’로 희망찬 전진을 개시했으며 합니다.
그리고 올해가 ‘지역의 해’인 만큼 우리 지역에 확대와 승리의 실증을 세워 신시대의 돌파구를 열지 않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행동’이고 ‘실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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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해외에 있어서 볼 수 없었는데 이렇게 도움을 주셔서 선생님의 글을 읽고 다시한번 발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