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1850년 이전에는 그렇지 안았다.
군사-산업-과학 복합체는 아직 유년기였고, 과학혁명의 과실은 여물지 않았으며,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 강재국들 사이의 기술 격차는 크지 않았다,
1770년 제임스 쿡은 분명 호주 원주민보다 훨씬 뛰어난 기술을 지녔지만,
그렇기로는 중국인이나 오토만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왜 호주를 탐험하고 식민지로 만든 사람은 제임스 쿡 선장이었을까?
왜 왕룽안 선장이나 후세인 파샤 선장이 아니었을까?
더욱 중요한 문제로,
만일 1770년 유럽인들이 무슬림, 인도인, 중국인보다 기술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그 다음 세기에 자신들과 너머지 온 세상 사이에 그렇게 큰 격차를 만들 수 있었을까?
어째서 군사-산업-과학 복합체는 인도가 아니라 유럽에서 꽃피었을까?
영국이 약진했을 때 어째서 프랑스, 독일, 미국은 재빨리 따라가고 중국은 뒤처졌을까?
산업화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사이의 격차가 명백한 정치경제적 요인이 되었을 때,
어째서 러시아,이탈리아, 호주는 그 격차를 줄이는데 성공했고 페르시.아, 이집트, 오토만 제국은 실패했을까?
누가 뭐래도 1차 산업혁명기의 기술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편이었다.
증기기관과 기관총을 만들고 철로를 놓은 것이 중국인이나 오토만인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엇을까?
세계 최초의 상업용 철로가 개통된 것은 1830년 영국에서였다.
1850년이 되자 서구 국가에는 4만 킬로미터의 철로가 종황무진 달리고 있었다.
이에 비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철로는 총연장 4천 킬로미터에 불과했다.
1880년 서구에 깔린 철로는 35만 킬로미터가 넘었지만,
나머지 세계의 철로는 35,000킬로미터에 불과했다. (이 중 대부분은 영국이 인도에 놓은 것이었다)
중국에 철로가 놓인 것은 1876년에 이르러서였다.
길이 24킬로미터로 유럽인이 건설했는데, 중국 정부는 이듬해 이것을 파괴했다
1880년 중국 제국에선 단 하나의 철도도 운영되지 않았다.
페르시아에 철도가 처음 놓인 것은 1888년에 들어와서였다.
테헤란과 남쪽으로 10킬로미터 떨어진 무슬림 성지를 연결하는 공사였는데,
건설과 운영은 벨기에 회사가 맡았다.
1950년 페르시아에 놓인 철로는 총연장 2,500킬로미터에 불과했다.
국토 면적이 영국의일곱재인 나라로선 현편없이 적은 수치다.
중국인과 페르시아인에게 부족했던 것은 증기기관 같은 기술적 발명이 아니었다.
(그거라면 공짜로 베끼거나 사들일 수도 있었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서구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형성되고 성숙한 가치, 신화, 사법기구, 사회정치적 구조였다.
이런 것들은 빠르게 복사하거나 내면화할 수 없었다.
프랑스와 미국이 재빨리 영국의 발자국을 뒤따랐던 것은
가장 중요한 신화와 사회구조를 이미 영국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인과 페러시아인은 사회에 대한 생각과 사회의 조직 방식이 달랐던 탓에 그렇게 빨리 따라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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